얼마 전만 해도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줄로만
알았다. 왜냐하면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은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우리 자신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믿음이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아주 적다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마7:13~14). 아예 처음부터 우리가 그렇게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형통과 축복을 받기 전에 오히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견뎌내야 하는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요한계시록 2장 18-29절까지의 말씀은 소아시아에 위치한 네번째 교회 ‘두아디라’라는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다. ‘두아디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두아디라’라는
이름은 요한계시록 말고도 사도행전에서도 나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두아디라에서 살고 있던 ‘루디아’라는 자주옷감 장사가 마케도냐의 빌립보까지 옷감을 팔러왔다가 사도바울의 전도를 받고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 그 도시는 옷감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현재는 아킷사르(Akhissar)라 불리우는 이 도시는 고대 무시아의 수도로서, 헬라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여 ‘두아디라’라는 이름이 붙혀진 곳이다. 이 도시는 카이쿠스 계곡과 허마스 계속 사이에 자리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무역이 번창하였고 많은
무역상인들이 거주하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털실 제조업, 아마포 제조업, 외투 제조업, 염색업, 피혁업, 옹기제조업, 빵제조업, 청동 제조업 등이 성행하는 도시였다. 종합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직업이 옷감으로 먹고 사는 그런 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시도 다른 여느 도시처럼 우상숭배가 가득했는데, 특히 이 도시에서는 시(詩)나 음악 그리고 예언이나 의술을 주관하는 신으로 추앙받던 태양신
아폴로(Apollo)를 숭배했다. 아폴로 신은 제우스 신의 아들로서, 각종 제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들의 수호신으로 간주되었고 이 도시에는 이 신을 숭배하는 축제행위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도시에서는 황제숭배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박해는 없었다. 다만 이 도시는 아폴로 신전 말고도 아르테미 신전, 삼바타 신전, 헬리오스 신전 등이 우후죽순 격으로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이 도시 전체가 온통 우상숭배를 하는 도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시에서 제조업이나 상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여러 동업조합에 가입해야 했고 그들의
수호신을 섬기며 그것과 결부된 음란한 축제에 참가해야 했다. 그래서 그곳에서 우상에 바쳐진 제물과 음식과 술을 나눠먹고 신전의 여사제들과 음행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만일 그들 조합원의 수호신을 숭배하는 것을 거부라도 하는 날에는 조합에서 추방되기에 이르렀으며 곧
제조업 뿐만 아니라 상업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아디라 교회는 이러한 유혹을 물리치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있었다. 이들은 사랑의 수고와 믿음과 그리고 인내의 열매들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그들이 비록 곤란한 삶을 살았지만 점차 주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어 나중에는
그들이 처음보다 훨씬 더 많은 복을 받게 되었다(19절).
그런데 그 교회에
아주 엄한 주님의
책망이
있었다.
그것은 영향력있는 한 명의 지도자 때문이었다.
얼마나 주님께서 화가 나셨으면 자신을
‘그의 눈이 불꽃 같고 그의 발이 빛난 주석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을까?(18절)
그의 눈이 불꽃 같다는 말은 주님께서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어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는
뜻이며, 그의 발이 빛난 주석 같다는 것은 그들의 행위를 주님께서 반드시 밟아 심판하시겠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이 교회는 버가모
교회보다 한 단계 더 우상숭배하는 교회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버가모 교회가 발람의 교훈 내지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수용하는 분위기였다면,
이 교회는 그러한 가르침을 주장하는 사람이 그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고,
그 교회의 중직자들이나 주의 종들도
그러한 가르침을 따라서 행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 교회의 사악한 지도자를 일컬어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이라고 말씀하셨다(20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도 않았지만 자기가 하는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그 여자는 ‘자칭 선지자’였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호리고 또한 넘어뜨린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그녀는 간교한 ‘음녀’였으며, 마지막으로 원래는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에 시집와서 북이스라엘 전체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의 부인인 이세벨을 닮았다는 측면에서, 그녀는 ‘이세벨’이라 불렸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녀의 주장이 얼마나 사람들을 홀렸으면 그녀를 지도자로
칭송하면서, 그녀를 따라가는 주의 종들이 부지기수였을까 하는 점이다. 버가모 교회에서는 몇몇 사람만 그런 가르침을 따랐던 상태였다고
한다면, 두아디라 교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 우상숭배를 겁 없이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조합원의 친목도모를 위해서는 우상을 숭배하고 그 신전에 바쳐진 제물을
먹으며, 음란한 행위를 갖는 것이 오히려 성도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그럴싸한 교리로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의 종이라는 자들까지 그녀의 가르침에 따라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었고, 음행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녀와 또한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있다(21절). 사랑하는 우리 믿는이들이여, 우상숭배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음행은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이런 것들은 결단코 친목도모 행위가 아니며, 국민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저주를 불러들이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 십계명을 보라. 그리고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과 사도바울의 권면을 보라.
출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행21: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고전10:19-21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사람들은 잘 모른다. 우상을 숭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으며 음행을
저지르게 되면,
본인은 질병으로 병상에 눕게 될
것이고(마9:2,6,
막4:21,
7:30, 눅5:18,
8:16, 17:34, 행5:15),
그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은 환난에 던져지게
되며,
자기의 자녀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22~23절).
이것이 바로 그들이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들이 받는 징계다. 하지만 이것은 그나마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의 거짓 지도자 이세벨과 그녀를 따르는 무리들은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의 행위를 불꽃같은 눈으로 예의주시한 다음 반드시 주석같은 발로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두아디라 성도들 중에 일부는 이세벨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사탄의 은밀하고도 비밀스런
행위들에 참여하지 않는 이가 있다고 칭찬하신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만약 그들이 주님재림시까지 이러한 신앙을 끝까지 지킨다면 반드시 그에 따른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것은 첫째로, 장차 도래할 세상에서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시겠다
하신다. 그리고 둘째로, 새벽별을 주시겠다 하신다(26~28절). 철장을 가지고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는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셨는데 그와 똑같이 주시겠다는
말씀이며, 예수님처럼 새벽별과 같은 영광(단12:3, 고전15:41, 계21:7)을 그들에게도 주시겠다는 뜻이다.
지금은 미혹의 시대다. 이제는 거짓 사도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해야
한다.
그것을 분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우상숭배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음행을
허용하는가의 여부다. 한국교회 안에도 이미 추도예배와 장례예배 속에 이런 규례가 정례화되어
있다. 이제는 걷어내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우리가 징계를 받지 않을 뿐더러 천국에서도 예수님과 더불어 만국의 통치자로서의
영광을 차지하는 성도가 되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9월 특별새벽집회 기간에
정병진목사(alletei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