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우리 민족의 고난의 역사
세상의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 우리
민족처럼 수난의 역사를 많이 겪은 민족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만큼이나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수탈을 당해왔으며, 가난으로 얼룩져
왔습니다.
우리 민족의 설움의 역사는
조선시대에도 계속되었고, 20세기 들어와서도
1970년대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20세기 초에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는 북한공산당에 의해
6.25전쟁이 일어나 삼천리 금수강산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온 조국강토는 폐허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35년간의 일제 식민지와
제1차세계대전에 맞먹는 전쟁비용이 들어간
6.25전쟁으로 인해 이 나라는 눈물이 한이
된 민족이 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우리 민족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왔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영육간에 축복받는 비결인 줄을 모르고
살아왔기에 우리 민족의 설움과 아픔을 계속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섬겨야 될 텐데, 이 민족이 하나님을 섬길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시33: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1885년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고
서양선교사들을 우리나라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2년 뒤인 1897년에 다시 우리나라는 저주를
불러들여왔습니다. 믿는 자인데도 핍박을 면해보기
위해 제사를 추도예배로 바꾸어 드림으로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상숭배의 댓가는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이 나라의 국권이 일본에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우상숭배 때문에 국권을 잃어버린 민족이
또다시 우상숭배행위를 교단적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1938년 우리 교회가 속한 조선장로교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때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평양
땅은 지금까지 우상숭배를 결의한 죄를 받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면 그 죄가
3~4대까지
이른다는데, 딱 3대가 그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진
독립투사들이 열정과 수고로 인하여 일본은 패망하였고 다시 회복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또다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신사참배를 목숨으로 저지했던 사람들을
정죄하였고 신사참배를 가결했던 자들이 교회의 주도권을 잡았던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선 교회의 분열을
가져왔으며, 몇년 뒤 씻지 못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북한공산당이 3일이면 전쟁이 끝날 줄 알고 남한을
진격해 들어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6.25전쟁으로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민간인을 포함하여 남한이
200만명의 피해가
났고, 북한은 민간인 100만명을 포함하여 250만명의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결국 450만명의 사상자가 난
것이죠. 이때 천만 이산가족이 생긴
것입니다. 피해가 어디
사람뿐이었겠습니까? 이때 우리 남한의
43%의 산업시설이
파괴되었으며, 33%의 주택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재기불능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계속된
것입니까? 우상숭배행위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도 그것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이처럼 고난의
점철된 역사와 가난으로 수 천 년을 이어져 내려왔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주었던 1885년까지,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겨왔고, 귀신들을 죽은 조상으로 알고 섬겨왔으며, 우상숭배행위를 국민의례인 줄 알고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 온갖 질병과 가난과 무지 그리고 저주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상숭배행위”가 바로 온갖 저주의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유
사실 오늘날 2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수공품 조각들과
귀신들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만들어 숭배함으로 저주가 임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 그럼, 우상을 숭배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사람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하나님
대용품으로 다른 것들을 만들어 섬기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자나 여자의 형상내지는
짐승이나 새, 곤충과 물고기의 형상을 만들어
섬깁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을 향해 경배하고
비는 행위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게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야 복을
받을텐데, 하나님을 안 섬기고 살았으니
주변나라들에게 시달림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
60억 인구 가운데 아직도 불상이나
수공품이 하나님인 줄 알고 섬기는 숫자가 힌두교인이
7억6천7백만명, 불교인이
3억5천6백만명, 토착종교인이
2억4천4백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까지는
성황당이나 정자나무 아래에 가서
복을 달라고 빌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영적으로 조금 민감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은 조상이 복을 준다고 하는
미신 때문에 자기 조상이 죽은 제삿날을 얼마나 극진히 살피고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을 속여서 조상의
흉내를 내며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 것을 모른 채, 진짜 제삿날에 죽은 조상이 나타나 복을
주는 줄 알고 극진히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천국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 가운데서도 지옥에 떨어지는 성도들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았더니 그것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우상숭배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 예수믿는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합니까? 그런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찌 우상을
하나님처럼 숭배한다는 말입니까? 천주교는 혹시 몰라도 우리 개신교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있습니다.
첫째는, 사탄이 귀신들을 섬기도록 교회 가운데에 교묘히
만들어놓은 제도(예식)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제사 대신에 드리는 추도예배가
시초입니다. 그러면, 한국교회에서 추도예배를 언제부터
시작했는가입니다. 추도예배가 언제 기독교회 교단에서
인정을 받았을까요? 여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1897년에
추도예배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옵니다. 그 당시, 아펜셀러
선교사 등이 발행했던 신문인 <조선그리스도인의
신보> 9월호에
추도예배라는 기사가 처음으로 실렸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처음으로 추도예배를 드린 사람은
이무영씨라는
정동감리교회 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이무영씨는 궁궐에서 물품을 관장하는
정3품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윤치호와 함께 독립협회 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모친
기일을 맞이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사를
드려야 하나 아니면 드리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제사> 대신 <추도예배>라는
방법을 고안해 내어 최초로 <추도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와 발단이 되어 교인들도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동의하면서 추도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후 여러 교회에서도 추도예배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드리는 풍습이
점차적으로 확대된 것이지요. 그리하여 각 교단에서도 추도예배를 정식
받아들였는데, 1934년에는
감리교에서, 교리와
장정에다 부모기일 추도예배를 만들어 넣자고 논의한 끝에, 부모기일
추도예배 순서를 삽입해 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감리교단의 영향을
받아, 구세군, 성결교단도
1950년대에 추도식을 공식적인 예식으로
결정했으며, 우리 장로교에서는
1970년대
말에 추도예배를 받아들였습니다. 서양선교사들이 절대적으로 반대했던
추도예배가 어느새 예배의식 가운데 들어와 안방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장례예식도 자연스럽게
예배가 되어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화장예배 등이 거룩한 예식으로 둔갑하여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다 죽은 자 때문에
예배드리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청년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육체가 죽은 자들은 영이 죽은 자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마8:22). 죽음에 임하는 것은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체를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까지 들여와 장례예배를 드리는 것은 저주를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신구약 성경 가운데 단 한 번이라도
죽은 자들을 위해 예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 핍박을 모면해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인데 이것이 바로 귀신들이 영광받는 길인 것입니다.
둘째는, 사탄이 또다른 전략으로 바꾼 우상숭배 행위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추구하고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는 받을지언정 진노는 받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징계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훈련이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의 차원에서
어려움을 당해도, 결국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자, 여기를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엡5:5-6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렇습니다. 보이는 가공물을 만들어 섬기는
것과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려 귀신을 섬기는 것은 직접적인 우상숭배행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도들이
육체를 위해 탐욕을 계속 부리는 그 행위 자체가 우상숭배와 같다고 하셨습습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3;1-6의 말씀입니다.
골3:1-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들)을
찾으라(갈망하라)... 2 위의
것(들)을
생각하고 땅의
것(들)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왜냐하면)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의)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나쁜
정욕)과
악한 정욕(욕정)과
탐심(탐욕)이니
탐심(탐욕)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여기에 나오고 있는
‘탐심’이라는 말의 어원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 더
많이 차지하려는 탐욕’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이런 것들에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교회도 더 큰 교회를 짓기 위해 안달이
나 있습니다. 성도들은
더 세상적인 것들을 누려보기 위해, 이제는
부정한 방법도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행위가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3. 우상숭배행위의
결과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도
우상숭배행위를 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일차적으로 그런 사람은 이 땅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과 자기자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출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계2:20-23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이처럼 출애굽기
20장
5절의
말씀에 따라,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자기자신만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의 가족처럼 3-4대까지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에 따르면, 우상숭배하는 본인은
침상에 던져져 눕게 되며, 그의 우상숭배를 따라가는 자들 또한
큰
환난에 던져지게 되고, 정작
자기 아들은 사망으로 죽임당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계2:20~23). 작년에 죽었던 문선명의 아들 중에도
비명횡사해서 죽은 아들이 있고,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을 믿는다해도
얼마든지 천국갈 수 있다고 주장한 릭 워렌 목사의 아들도 몇 달 전에 권총으로 자살해서 죽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죽어서는
그의 영혼이 지옥에 가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계21:8).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4.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왜 이러한
우상숭배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이러한 영적 비밀을 몰라서 그렀습니다. 그리고 둘째, 발람이나 니골라당의 가르침처럼 십자가 긋고 제사드리면 상관없다는 잘못된 가르침이나 핍박을 모면해보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낸 추도예배 같은 것들이 곧 우상숭배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더욱이 직접적인 우상숭배행위는 아니더라도 죽을 때까지 땅의 것만을 일평생 추구하는 것도 우상숭배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변형된 우상숭배행위입니다. 그래서
일평생
돈을 추구하고도 그것이 우상숭배행위인지 전혀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음란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우상숭배행위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좀 고상한 것 같지만
지식만을
추구하는 것도 우상숭배행위가
되며,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도 우상숭배행위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5. 우리의
결단
그렇다면, 이 민족이 살 길은
무엇일까요?
우선, 첫째, 자신이 우상숭배했던 과거를 회개해야
합니다(계2:5,16,21~22).
결국 회개하지 아니하면 모두가 다 지옥행이기 때문입니다. 이래도 마귀는 영광받고 저래도 영광을
받으니 예수님께서 지금도 천국에서 피눈물을 흘리지 않으실 리가 있겠습니까? 이전까지 모르고 행했든 알고 행했든
우상숭배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다시는 우상숭배행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고전10:7,14). 어떻게 하면 우상숭배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먼저는 요셉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는 장소로부터 도망치는
것입니다.
고전10:7,14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우상숭배하는
장소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가게 된다 하더라도 우상숭배행위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이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 이외 땅의 것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탐심이 곧 변형된 우상숭배행위임을 온 가족에게
알려주고, 이런 것들을 행하지 않기로 온
가족이 다 함께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란
무엇입니까? 금은동과 목석으로 만든 조각품과
귀신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하나님보다도 더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여러분의 마음 속을 점령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천국 못
들어갑니다. 천국에 있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것입니다.
이제는 똑바로 정신을
차립시다. 그래서 우리 후손에게 저주를 물려주지
맙시다. 폐허를 물려주지
맙시다. 가난을 물려주지
맙시다. 불치병을 물려주지
맙시다.
1964년
12월
7일
한독정상에 참여했다가 작성해간 원고를 읽지
못하던 박정희 대통령의
일화를 우리도 잊지
맙시다.
1961년에 파송된 독일간호사와 광부들에
감명을 받은 독일수상이 박정희대통령을 독일로 불러들였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원고를 접고 눈물로
말했던 그 연설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우리 후손만큼은 결단코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저도 이제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제대로
믿읍시다. 우상숭배하지
맙시다. 그래서 우리 후손만큼은 절대로
저주를 받지 않도록,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우리
모두 제대로 믿읍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