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은 오고 오는
모든 시대를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뼛속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기는 자가 되어 구원받을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곳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에베소교회와 서머나교회 그리고 버가모교회에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거기에는 자신을 구원할만한 참 믿음이 가지고 있는
4가지
속성들에 대해 잘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처음
사랑으로 사랑하라.” “고난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 “거짓
지도자를 삼가라.”가 그것이다. 이제는 소아시아에 있는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으로서
“이중적인 삶에서 돌이키라”라는 주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데(Sardis). 두아디라에서 남동쪽으로 약
48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서, 현재 터키지역에 속한 이 도시는 B.C.700년경부터 B.C.546년까지 약 150년간 루디아(Lydia)의 수도로서 상당히 큰 영화를 누린
도시다.
특히 이 도시는 상업적으로 매우 번창한
도시였다.
특히 염직 공업과 양털
염색,
사금채취가 유명하여서
사치와 부을 누렸지만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하여
A.D.2세기경에 그만 도시 자체가 없어지는
비운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 도시는 군사적인 측면으로 볼 때 성채가 난공불락의 요새로 되어 있었기에 즉
남쪽 벽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암벽으로 되어 있었기에 이 도시의 주민들은 상당히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도시는 어린아이들이라도 적군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안일한 생각 때문에 그 도시는 두 번씩이나 갑작스럽게 함락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즉 B.C.546년에는 페르시아와 왕 고레스(Cyrus)가 이 도시를 침입하였는데, 사데의 군대가 자신들의 유일한 접근로라 생각한 곳을 방비하고 있는
동안, 페르시아 군대는 다른 절벽을 타고 기어올라 갑자기 그들을 공격하는 바람에 그 도시는 완전히 초토화
되었으며, 그로부터 약 350년 후에도 헬라의 안티오쿠스 대제(Antiochus the
Great)도 같은 방법으로 그 도시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성지순례를 가보면 이 도시의 입구에는 온통 무덤들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주님께서도 만약 사데 교회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도둑처럼 오셔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3절).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자신을 어떤 분으로
소개하시며,
그 교회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셨을까?
계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렇다. 주님은 완전한 일곱 영들로서 교회와 말씀의
전달자를 감찰하시고 계신데, 사데 교회는 살아있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라고
책망하셨다.
그 도시사람들은 자신이야말로 가장 안전하다고 주장했지만 그 도시가 갑자기 공격받아 망하게 된
것처럼, 사데 교회도 꼭 그와 같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데 교회, 사실 언제 누가 세웠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 교회가 ‘위대한 어머니’라고 불리는 시벨레(Cybele)라는 거대한 신전 옆에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시벨레 신전은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처럼, 여타의 다른 도시 신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한 신전이었기에 모두가
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신전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 도시도 우상숭배와 황제숭배를 하고 있던 도시들 중의 하나였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 옆에 나란히 위치해 있는 사데 교회는 왜 죽은
교회라는 책망을 들어야 했을까?
한 마디로 그 교회 성도들이 이중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주일이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상업과 제조활동을 통해서 얻은 물질의 십입조를 꼬박꼬박 하나님께
드렸으며, 구제헌금도 하곤 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신앙생활은 별로 흠잡을 데가 없이 보였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은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서 온전한 것을 하나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2절).
그랬다. 그들이 교회에 와서는
예배생활,
헌금생활,
구제생활,
전도생활,
봉사생활도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다 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교회 밖을 나간 다음에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교회에 나올 때에는 흰 옷을 걸치고 들어왔지만 그들이 교회 밖을 나갈 때에는 연회장의 옷으로 갈아입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들은 흰 옷을 벗어던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거룩한 성전인 몸이었지만 시벨레 신전에 가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과 술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먹고 마셨으며, 신전 여사제들과 음란한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그것도 교회의 몇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 거의 대부분이 그러한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주일이 되면 꼬박꼬박 교회에
나갔고,
입에 발린 말로
“주여,
우리 세상에 나가 죄짓고
살았나이다.
세상에 살다보니 어쩔 수
없었나이다.
용서해주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얼마나 그들이
세상에서 죄로 물들어 버렸으면, 사데 교회에는 자신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흰 옷을 입고 다니는 자가 겨우 몇 명뿐이라고 주님께서
한탄하셨을까?(4절).
하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시고자 몇 가지 해결방안을 말씀해 주셨다.
첫째,
깨어 정신차리라
하셨다(2a절). 정신 차려서 아직까지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들 즉 죽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들을 견고하게
하라 하셨다. 그리고 둘째, 그들이 처음에 복음을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기억해보라 하셨다(3a절).
그들은 결코 이중적인 삶을 살라고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때 자신의 과거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주님을 믿기로 결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세례받을 때에 들었던 복음을 쉬이 잊어버리고는 세속의 유혹과 죄악을 끊지 않고 도로
그리로 들어갔던 것이다. 셋째,
처음에 들었던 복음을 이제 지켜 행하고 그들의
이중적인 삶을 회개하라 하셨다(3a절).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대지 말고, 이제는 주님께서 원래 말씀하셨던 우상숭배 행위를 그치고, 우상의 제물도 먹지 말고, 음란을 끊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도둑같이 임하여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다(3b절). 이 일을
어찌하랴!
이러한 책망이
어찌 사데 교회에만 해당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 교회에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흰 옷을 입고
다니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몇몇 성도들이 있었다. 그들의 세속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깨끗하고 성결한 삶을 살려고 했던
것이다. 혹시 조금이라도 잘못된 마음이나마 가졌던 날에는 주님 앞에 나아가 통곡하며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었기에,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피로 그들의 죄를 씻어주시어서 그들에게 다시 흰 옷을 입혀주셨던
것이다.
계7:13-14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우리 성도들이 비록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하지만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만약 그렇게 산다면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첫째,
천국에서 흰 옷을 입혀주시겠다고
하신다(5a절).
그리고 둘째로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신다(5b절).
얼마나 그들이 세속화되어 버리고,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해버렸으면, 아니 얼마나 죄를 짓고 세상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살았으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워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실까? 여러분은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고 계실 주님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았는가? “내 백성이, 아니 내 자녀가 나를 믿고 죄에서 깨끗함을 받았거늘, 어찌 다시 죄악에 다시 빠져서 죄짓기를 밥먹듯이 한다는 말인가!” 주님에서 흐르는 피눈물이 보이지 않는가! 셋째,
그들의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시겠다고 하신다(5c절).
이미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어도, 우상숭배와 음행을 계속 저질러서 양심을 화인을 맞은 사람처럼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교회에
나와서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사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겠다고 하시겠는가?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갈 곳은 과연 어디라는 말인가?
주님은
아신다.
그분은 우리의 속을 살피시는
이시다.
이제는 그분 앞에
정직하라.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있다고
하라.
없는 것처럼 속이지
말라.
주님 앞에 다 내어놓고 용서를
빌라.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짓지
말라(요8:11).
그래야 하늘에서 흰 옷을 입게 될
것이며,
생명책에 기록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지 아니할
것이며,
그 이름이 하늘에서 불려질
것이다.
그래야
한다.
성도들이여,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아멘.
9월특별새벽집회기간에
정병진목사(alletei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