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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22.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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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Dp4JsG_SQhU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5)] 다윗의 아들 솔로몬(03)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1)(왕상3: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p4JsG_SQhU

 

 

 

1. 들어가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살필 때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사실이 있다. 솔로몬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왕이 아니다. 그는 다윗의 뒤를 이은 왕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다윗을 보아야 한다. 다윗은 전쟁에 능한 왕이었다. 그는 사자와 곰에게서 양떼를 건져 냈고, 골리앗을 무너뜨렸으며, 사울과 내부의 반역자들, 그리고 주변의 이방 대적들과 싸웠다. 그의 생애는 전쟁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 전쟁은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백성을 살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대적을 꺾기 위해 싸웠다.

  솔로몬은 그 전쟁의 열매 위에서 평화를 누렸다. 그러므로 다윗과 솔로몬은 서로 분리해서 볼 수 없다. 다윗이 없으면 솔로몬의 평화가 설명되지 않는다. 전쟁에 능한 아버지가 있었기에 평화의 아들이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론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과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고, 그 승리 위에서 자기 백성에게 참 평강을 주신다. 전쟁 없는 평화가 아니라, 승리 뒤에 오는 평화다.

  솔로몬의 또 다른 특징은 지혜다. 그는 '지혜의 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지혜는 단순한 천재성도 아니고 처세술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고, 또한 배우고 연구했다. 열왕기상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다고 말하고, 동시에 그의 지혜가 동방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지혜보다 뛰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지혜를 구해야 하지만,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준비된 그릇을 쓰시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의 중심은 “듣는 마음” 곧 '지혜'이었다(왕상 3:9, 11). 그는 자기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주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을 구했다. 여기서 솔로몬은 장차 심판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며, 모든 사람을 공의로 심판하실 분이다. 따라서 참 지혜는 단지 세상을 잘 사는 기술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도록 오늘을 준비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윗의 전쟁 뒤에 온 솔로몬의 평화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평강과 심판 지혜를 예표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윗의 전쟁 뒤에 왜 솔로몬의 평화가 왔는가?

  성경은 솔로몬 시대의 평화를 아름답게 묘사한다(왕상 4:25). 이스라엘 백성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안정이 아니다. 백성이 두려움 없이 살고, 수고의 열매를 누리며, 원수의 압박에서 벗어난 상태다. 히브리어로 평화는 “샬롬”이다. 샬롬은 전쟁이 잠시 멈춘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온전함, 안전, 회복, 질서, 생명의 풍성함을 포함한다. 솔로몬이라는 이름도 평강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이름부터 평화의 왕의 성격을 가진다.

왕상 4:25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그러나 이 평화는 솔로몬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다윗이 먼저 싸웠다. 다윗은 블레셋과 아말렉과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아람과 싸웠고, 내부의 반역과 외부의 침략을 막아 냈다. 열왕기상에서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준비하면서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 때문에 성전을 짓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말 속에는 중요한 고백이 들어 있다. 아버지가 피 흘리며 싸웠기에 아들은 평화 가운데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왕상 5:3-4).

왕상 5:3-4 내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원수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이 원리는 영적 세계에서도 동일하다. 악한 영이 그대로 있는데 평화만 말하면 그것은 성경적 평화가 아니다. 회개하지 않은 죄가 그대로 있고, 귀신들이 합법적 근거를 붙들고 있는데 “나는 평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위로일 뿐이다. 다윗의 전쟁은 밖으로는 블레셋과 주변 민족을 향했고, 안으로는 사울의 추격과 압살롬의 반역과 세바의 난을 통과했다. 이것은 성도의 영적 싸움도 안팎에 있음을 보여 준다. 밖으로는 세상의 유혹과 시대의 영이 있고, 안으로는 마음속의 죄성과 가문의 영과 귀신의 참소가 있다. 밖의 대적만 말하고 안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안의 문제만 말하고 밖의 악한 영의 공격을 모르면 싸움의 범위를 놓친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의 싸움을 통해 자기 안의 대적과 자기 밖의 대적을 함께 분별해야 한다.

  다윗이 원수를 제압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평화를 누렸듯이, 성도도 회개와 믿음과 말씀으로 악한 영들과 영적 전쟁을 치러야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다. 영적 전쟁을 피하면 일시적으로 조용할 수는 있지만, 악한 영의 지배는 끝나지 않는다.

  히브리서의 말씀도 이 원리를 보여 준다. 성도는 죄와 싸워야 한다(히 12:4). 아직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않았다는 책망은, 신앙생활이 단순한 위로와 성공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싸움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다윗의 전쟁은 솔로몬의 평화를 준비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성도의 참 평강을 준비했다. 그리고 성도의 회개와 영적 전쟁은 천국의 기업과 안식을 준비한다. 그러므로 평화를 원한다면 먼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죄와 악한 영을 대적해야 한다. 이것이 다윗의 전쟁 뒤에 솔로몬의 평화가 온 이유다.

 

 

3. 솔로몬의 평화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평강을 예표하는가?

  솔로몬은 평화의 왕이었지만 완전한 평화의 왕은 아니었다. 그의 평화는 제한적이었다. 그의 시대에는 사방의 대적이 잠잠했으나, 그의 말년에는 우상숭배와 타락의 씨앗이 왕국 안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실체가 아니라 예표다. 그는 장차 오실 참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예표 안에서도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희생 제물의 비밀을 보여 주었다면, 다윗과 솔로몬은 왕권과 평강의 비밀을 보여 준다. 다윗은 싸우는 왕이었고 솔로몬은 평화를 누리는 왕이었다. 그러나 구속사 안에서 이 둘은 서로 끊어진 두 이야기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이루실 구원의 경륜을 예표한다.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피 흘려 싸우셨고, 그 피로 평강을 주셨다. 이것이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길이다.

  솔로몬의 평화가 다윗의 전쟁 위에 세워졌듯이, 예수님의 평강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 위에 세워졌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평안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요 14:27).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 세상의 평안은 조건이 좋아질 때 잠시 생기는 안정이다. 돈이 생기고, 문제가 해결되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줄 때 생기는 감정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안은 그보다 깊다. 죄 사함을 받은 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 악한 자에게서 건짐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평안이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헬라어로 평화는 “에이레네”다. 바울은 예수님을 우리의 화평이라고 말한다(엡 2:14). 예수님은 단지 평화를 전달하시는 분이 아니라 평화 자체이시다. 그분은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셨고, 원수 되었던 관계를 화목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강은 감정의 안정이 아니라 구속의 결과다. 죄의 문제가 처리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사탄의 참소가 무력해질 때 비로소 참 평강이 온다.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솔로몬의 평화는 성전 건축과도 연결된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을 때 성전이 세워졌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교회를 예표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 하셨고, 부활 후 성령을 보내어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화목을 얻은 자들이 모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된 공동체다. 그 안에는 참 평강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화평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셨다(마 5:9). 그러나 그 평강은 죄와 귀신과 거짓을 방치하는 평강이 아니라, 회개와 진리 위에 세워지는 평강이다.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싸움을 무조건 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적 화평은 죄와 거짓과 악한 영을 그대로 둔 채 덮어 버리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고, 그 다음 사람과 화목해야 한다.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죄를 회개해야 하고, 악한 영이 역사하는 통로를 닫아야 한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평강은 성도에게 영적 전쟁과 회개와 정결의 길을 요구한다.

 

 

4. 솔로몬은 왜 왕이 된 뒤 ‘듣는 마음’을 구했는가?

  솔로몬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아마도 그는 20살에 왕위에 오른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 다윗과 달리 오랜 전쟁터에서 단련된 왕이 아니었다. 다윗은 사자와 곰과 골리앗과 사울의 추격을 통과하며 왕으로 빚어졌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미 준비된 왕국을 물려받았다. 겉으로 보면 유리한 출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거운 부담이었다. 많은 백성을 다스려야 했고, 아버지 다윗의 왕국을 이어야 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성전도 건축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나아갔다.

  열왕기상 3장에서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다. 번제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제사다. 왕이 된 솔로몬은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라고 물으셨을 때, 솔로몬은 장수도 부귀도 원수의 생명도 구하지 않았다. 그는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했다(왕상 3:7-9). 이 점이 중요하다. 지혜의 출발은 자기 욕망이 아니라 사명에 대한 두려움이다.

왕상 3:7-9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듣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라고 설명할 수 있다. “레브”는 마음이고, “쇼메아”는 듣는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순종한다는 뜻까지 포함한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구한 듣는 마음은 백성의 사정만 듣는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듣고, 그 뜻에 순종하며,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이다. 왕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 많은 마음이 아니라 듣는 마음이다. 지도자는 먼저 들어야 한다. 하나님께 듣고, 말씀에 듣고, 백성의 억울함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 구함을 기뻐하셨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자신을 위한 것을 먼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왕이 되었으나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백성을 바르게 재판하기 위한 지혜를 구했다. 이때 하나님은 지혜뿐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더하여 주셨다(왕상 3:11-12).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필요한 것들을 더하신다.

왕상 3:11-12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네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일천 번제도 거래의 수단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솔로몬이 많은 제물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지혜를 주신 것이 아니다. 번제의 본질은 자기 전부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데 있다. 왕이 된 솔로몬은 먼저 자기 왕권이 자기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했다. 아버지 다윗의 왕국도 자기 것이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도 자기 소유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맡은 청지기였다. 그래서 그는 “주의 백성”을 재판하게 해 달라고 구했다. 참된 지혜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데서 시작한다.

  솔로몬의 기도는 오늘날 성도와 사역자에게도 적용된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인기가 아니다. 사람을 많이 모으는 기술도 아니다. 듣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듣는 마음,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마음, 영적 세계를 분별하는 마음, 양떼를 바르게 인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듣는 마음이 없으면 지식이 교만이 되고, 은사가 자기 자랑이 되며, 권세가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구한 듣는 마음은 왕의 첫 번째 지혜였다.

 

 

5. 참 지혜는 왜 은사와 학습이 함께 있어야 하는가?

  솔로몬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것만 말하면 절반만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솔로몬이 배운 사람이며 연구한 사람이라고도 증언한다(왕상 4:29-30). 그는 동방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지혜보다 뛰어났다. 그는 잠언 삼천 가지를 말했고, 노래 천다섯 편을 지었으며, 초목과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까지 논했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어느 날 갑자기 지혜로운 문장을 말한 사람이 아니라, 폭넓은 배움과 관찰과 연구의 과정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 준다.

왕상 4:29-30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솔로몬이 동방과 애굽의 지혜보다 뛰어났다는 기록도 중요하다. 동방의 지혜는 욥기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고, 애굽의 지혜는 고대 세계의 학문과 행정과 격언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솔로몬은 그 모든 것을 알고도 하나님 경외가 지식의 근본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지식을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 되며, 세상 지식에 무릎 꿇어서도 안 된다. 세상 지식은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생명의 길은 될 수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지식은 결국 사람을 자기 자랑과 허무로 이끈다.

  하나님께 받은 지혜와 사람이 배운 지혜는 서로 원수가 아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지만, 말씀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에게 깊은 말씀 사역을 맡기기는 어렵다. 기도만 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감동은 있을 수 있어도 분별이 약해진다. 반대로 공부만 하고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하면 지식은 많아도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말씀 사역자는 두 가지를 함께 가져야 한다. 하나는 성령의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과 역사와 원문을 배우는 수고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이 원리는 영적 전쟁에서도 같다. 무턱대고 귀신을 향해 소리만 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알아야 한다. 죄가 무엇인지, 귀신이 합법적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무엇인지, 회개와 예수의 피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영적 실제를 본다고 해도 말씀의 기준이 없으면 속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와 말씀의 기준은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이 동탄명성교회가 강조하는 “영적 팩트 기반”의 길이다. 보고 들은 영적 세계도 말씀으로 검증되어야 하고, 말씀도 영적 실제 안에서 살아 있는 능력으로 경험되어야 한다.

  야고보서는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한다(약 1:5). 이것은 지혜가 인간의 학문으로만 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하나님께 구하는 지혜는 게으름의 핑계가 아니다. 구하는 자는 찾고, 찾는 자는 배운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말씀 앞에 앉고, 원문을 살피며, 성경 전체의 흐름을 추적한다. 그러할 때 성령께서 어느 순간 깨닫게 하신다. 공부한 것들이 흩어진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경륜으로 연결된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또한 지혜는 겸손을 요구한다. 배운 사람이 더 위험해질 수 있는 이유는 배움이 자기 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더 위험해질 수 있는 이유는 은사가 자기 권세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는 반드시 여호와 경외와 결합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배움을 자랑하지 않고, 은사를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다. 그는 모든 깨달음과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안다.

  솔로몬은 받은 지혜와 배운 지혜를 함께 가진 왕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에게도 말한다. 은사만 구하지 말고 말씀을 배워야 한다. 지식만 자랑하지 말고 성령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하늘의 지혜와 땅에서의 준비가 함께 있을 때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릇이 된다. 성도가 천국을 준비하려면, 기도하는 무릎과 공부하는 눈을 함께 가져야 한다.

 

 

6. 솔로몬의 지혜는 어떻게 심판주 예수님을 보여 주는가?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목적은 재판이었다. 그는 백성을 공의롭게 판단하고 선악을 분별하기 위해 듣는 마음을 구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지혜는 단순한 지식의 지혜가 아니라 심판의 지혜다. 왕은 백성을 다스릴 뿐 아니라 판단해야 한다. 억울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해야 하고, 거짓과 진실을 분별해야 하며, 선과 악을 가려야 한다. 이 점에서 솔로몬은 장차 오실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왕권은 보좌와 연결되고, 보좌는 통치와 심판을 뜻한다. 성경에서 왕은 단순히 권세를 누리는 사람이 아니다. 왕은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한다는 말도 단순히 높은 자리에 앉아 영광을 누린다는 뜻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다스리고 판단할 수 있는 자가 왕 노릇한다. 이 땅에서 말씀으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 사람이 천국에서 왕의 보좌를 감당할 수는 없다. 그래서 솔로몬이 먼저 재판의 지혜를 구한 것은 왕직의 본질을 붙든 기도였다.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2:42). 남방 여왕, 곧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먼 곳에서 왔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대 사람들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을 눈앞에 두고도 듣지 않았다. 이것이 심판의 근거가 된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빛을 거부할 때 심판을 받는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온 이방 여왕은 마지막 날에 말씀을 듣지 않은 세대를 정죄하게 된다.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다. 아버지께서는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다(요 5:22). 이는 예수님께서 인자, 곧 사람의 아들로 오셨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오신 그분은 사람의 사정을 아시고,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으며, 사람을 심판하실 권세를 받으셨다(요 5:27).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지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심판주이시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분의 심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 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심판에는 두 차원이 있다. 하나는 성도가 죽은 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다(고후 5:10). 거기서 성도는 자신이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상급과 신분과 기업을 받는다. 또 하나는 마지막 백보좌 심판이다. 거기서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성도는 오늘만 보지 않는다. 마지막 심판을 본다. 지금의 선택이 천국의 위치와 기업과 상급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솔로몬의 지혜는 재판의 지혜였고, 예수님의 지혜는 최종 심판의 지혜다. 솔로몬은 두 여인의 아이 문제를 판단했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판단하신다. 솔로몬은 제한된 왕국의 왕이었지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솔로몬에게서 멈추면 안 된다.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솔로몬보다 더 크신 예수님께 가야 한다. 참 지혜는 심판주 앞에 설 날을 알고 오늘을 사는 것이다.

 

 

7. 잠언과 전도서는 왜 하나님 경외를 지혜의 결론으로 말하는가?

  솔로몬이 남긴 지혜 문헌을 보면 지혜의 결론이 분명해진다. 잠언은 처음부터 여호와 경외를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한다(잠 1:7). 이것은 성경의 지혜가 세상 지식과 다른 지점이다. 세상 지식은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성경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서는 데서 출발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학문은 결국 자기 이름을 높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히브리어로 지혜는 “호크마”다. 호크마는 단순히 머리가 좋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알고 그 질서 안에서 바르게 사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서워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심판주이시고, 내 삶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분 앞에서 내 생각과 욕망을 내려놓는 것이다.

  전도서는 솔로몬의 또 다른 결론을 보여 준다. 그는 많이 배우고, 많이 누리고, 많이 소유하고, 많은 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수고는 헛되다고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는 말은 모든 공부와 수고가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많이 공부하는 것의 피곤함도 전도서는 숨기지 않는다(전 12:12). 하나님 없는 수고, 심판을 모르는 지식, 영원을 잃어버린 성공이 헛되다는 뜻이다. 세상 지식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경외로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전 12:12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전도서의 마지막 결론은 분명하다(전 12:13-14).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지혜와 심판이 연결된다. 지혜는 마지막 심판을 아는 것이다. 심판을 아는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회개를 미루지 않는다. 생명책과 천국의 기업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전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잠언 8장에서는 지혜가 인격화되어 나타난다. 지혜가 길가 높은 곳에서 부르고, 성문 어귀에서 소리를 높인다. 이것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면서도, 그리스도론적으로는 참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신약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로 증언한다(고전 1:24). 그러므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격언만 붙들고 그리스도를 놓치면 잠언의 중심을 놓치는 것이다. 인생의 허무만 말하고 하나님 경외와 심판을 놓치면 전도서의 결론을 놓치는 것이다.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잠언과 전도서는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잠언은 지혜의 시작을 말하고, 전도서는 지혜의 결론을 말한다. 시작은 여호와 경외이고, 결론도 여호와 경외다. 그 사이에는 인생의 수고와 배움과 성공과 실패가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섰느냐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지혜 문헌은 성도에게 묻는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세상을 잘 사는 사람이 되었는가, 아니면 심판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는가?

 

 

8. 성도는 어떻게 평화와 지혜의 왕을 따라 준비되어야 하는가?

  성도는 솔로몬의 평화를 부러워할 수 있다. 그러나 솔로몬의 평화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앞에 다윗의 전쟁이 있었다. 성도는 천국의 안식을 원하지만,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 죄와 싸워야 하고, 귀신과 싸워야 하며, 자기 안의 교만과 불순종과 음란과 탐욕과 거짓과 싸워야 한다. 싸우지 않는 성도는 평화를 얻는 것이 아니라 지배당하는 것이다. 악한 영이 주는 가짜 평안은 결국 사람을 죄와 저주와 사망으로 끌고 간다.

  평화의 왕을 따르는 성도는 먼저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전쟁의 시작이다. 회개할 때 예수의 피가 역사하고, 악한 영의 합법적 근거가 끊어진다. 회개하지 않고 축복만 구하는 것은 솔로몬의 평화만 원하고 다윗의 전쟁은 거부하는 태도와 같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방식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천국에서 왕 노릇할 성도는 이 땅에서 싸워야 한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싸워야 하고, 솔로몬처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성도는 가정 안에서도 이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부모가 영적 전쟁을 하지 않으면 자녀는 싸울 법을 배우지 못한다. 부모가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자녀는 진리를 분별하는 귀를 얻기 어렵다. 부모가 회개하지 않으면 가문의 악한 영들이 계속 통로를 얻는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생활은 개인적 경건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회개는 가정의 문을 바꾸고, 한 사람의 영적 전쟁은 다음 세대의 길을 바꿀 수 있다. 다윗의 전쟁이 솔로몬의 평화를 준비했듯이, 오늘 한 성도의 회개와 전쟁이 자녀 세대의 평강을 준비할 수 있다.

  성도는 또한 지혜를 준비해야 한다. 지혜는 성령께 구해야 하지만, 동시에 말씀을 배워야 한다. 말씀을 모르는 열심은 위험하고, 성령 없는 지식은 교만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을 통전적으로 보아야 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경륜을 보아야 하고,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길을 보아야 하며, 회개와 천국복음의 길을 보아야 한다. 말씀을 배운 사람은 영적 세계를 분별할 수 있고, 악한 영의 속임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성도는 듣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듣지 않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듣고, 책망하실 때 듣고, 회개하라고 하실 때 들어야 한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말씀도 들리지 않고 성령의 책망도 들리지 않는다. 솔로몬이 처음에 구한 것은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듣는 마음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에게도 필요하다. 듣는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께 순종하고, 순종해야 평강을 누린다.

  이 준비는 추상적인 결심이 아니다. 말이 달라져야 하고, 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하며, 말씀을 듣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구했듯이 성도도 먼저 들어야 한다. 회개하라는 말씀을 들어야 하고, 천국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들어야 하며, 영적 전쟁을 피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듣지 않는 마음은 이미 교만에 붙들린 마음이다. 반대로 듣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더 깊은 지혜를 부어 주실 수 있는 그릇이다.

  성도는 마지막 심판을 준비해야 한다. 세상 사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천국 가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 돈을 벌고 사람을 설득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혜가 하나님 경외로 이어지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준비하지 못한다. 참 지혜는 주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서도록 오늘의 말과 행동과 선택을 바꾸게 한다.

  성도는 평화와 지혜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평화만 원하면 싸움을 회피하게 되고, 지혜만 말하면 지식 자랑에 빠질 수 있다. 다윗의 전쟁과 솔로몬의 지혜가 함께 있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이 둘은 하나가 된다. 예수님은 전쟁에 능한 여호와로서 사탄을 이기셨고, 평강의 왕으로서 자기 백성에게 평안을 주시며, 솔로몬보다 더 큰 지혜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따라 싸우고, 예수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예수님의 심판 앞에 설 준비를 해야 한다.

 

 

9. 나오며

  솔로몬이 어떻게 평화와 지혜의 왕으로 세워졌는지를 살펴보았다. 다윗이 전쟁에 능한 왕으로 사방의 원수를 제압했기 때문에 솔로몬은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이 평화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실 참 평강을 예표한다. 성도는 악한 영과 죄의 문제를 방치한 채 평화를 말해서는 안 된다. 참 평강은 회개와 영적 전쟁과 그리스도의 승리 위에서 누려야 한다.

  또한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은 왕이었지만, 동시에 배우고 연구한 왕이었다. 성도도 성령께 지혜를 구해야 하며, 동시에 말씀을 깊이 배워야 한다. 말씀 없는 은사는 위험하고, 성령 없는 지식은 생명이 약하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조명과 말씀의 연구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 특히 사역자는 듣는 마음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듣고, 말씀을 듣고, 양떼의 형편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장의 결론은 평화와 지혜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평화가 없는 지혜는 차가운 분석으로 끝나기 쉽고, 지혜가 없는 평화는 거짓 평안으로 흐르기 쉽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진리 위에 세워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평강의 열매를 낳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통해 진리를 배우고, 회개를 통해 정결해지며, 성령의 지혜로 오늘의 영적 상황을 분별해야 한다.

  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하고, 마지막 심판을 기억하는 데서 완성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의 회개, 오늘의 순종, 오늘의 영적 전쟁, 오늘의 말씀 연구가 천국의 기업과 신분과 상급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주시는 평강 안에서 살고, 그분의 지혜로 오늘을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싸워야 하고,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해야 하며,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영적 전쟁을 피하지 말아야 하고, 말씀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며, 회개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떼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영적 용사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정결함을 입고,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로 천국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전쟁 뒤의 참 평강을 누리고, 심판 앞에 부끄럽지 않은 지혜로 천국의 기업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17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평화와 지혜의 왕으로 조명하며, 그가 누린 영광이 부친 다윗의 영적 전쟁과 승리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했음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참된 평화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는 싸움을 통해 쟁취되는 것이듯, 성도 역시 영원한 평화를 위해 지혜를 갈구하며 치열한 영적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솔로몬의 지혜는 유전적 요인이나 개인적 학습을 넘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림으로써 얻은 ‘듣는 마음’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이는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판의 지혜로 귀결됩니다. 결국 이 설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지식에 머물지 않고 성령의 가르침과 성경 공부를 병행하여, 장차 올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는 실천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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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요약입니다]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25)] 다윗의 아들 솔로몬(03) 그는 평화의 왕이자 지혜의 왕이었다(01)(왕상3: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p4JsG_SQhU

 

1. 들어가며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국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왕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긴 자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다윗 한 사람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솔로몬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 마치 아브라함만으로는 성부를 다 알 수 없고 이삭과 야곱을 함께 공부해야 성부·성자·성령의 경륜을 알 수 있듯이, 다윗과 솔로몬은 하나의 짝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전모를 드러낸다.

  솔로몬의 이름 자체가 이미 그의 사명을 선포한다. '솔로몬(שְׁלֹמֹה, 쉘로모)'은 '샬롬(שָׁלוֹם)'에서 온 이름으로, 평화를 뜻한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 이름을 예비하셨다. 다윗이 전쟁의 왕으로 부름 받았다면, 솔로몬은 평화의 왕으로 부름 받았다. 이 둘의 관계는 단순한 부자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안에서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기도 하였으니, 그의 지혜는 동방의 모든 사람과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다(왕상 4:30). 그러나 그 지혜의 왕이 탄식한 말이 있으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는 것이다. 이 두 극단, 곧 최고의 지혜와 최심(最深)의 탄식 사이에서 솔로몬이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솔로몬은 지혜 문학의 중심에 선다. 구약성경 가운데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5권을 '지혜 문학'이라 부르는데, 이 가운데 솔로몬이 직접 저술한 책은 '잠언, 전도서, 아가서'다. 욥기는 동방의 지혜를 대표하고 시편은 다윗의 경건을 담고 있지만, 이 모든 지혜 문학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솔로몬은 이 진리를 삶으로 구현한 왕이었다. 비록 말년에 타락하였지만, 그의 전성기는 이 진리의 살아 있는 증거였다.

  이번 시간에 솔로몬을 공부하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그것은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왕으로서 솔로몬은 참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지혜의 왕으로서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러므로 솔로몬을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게 된다. 이 시간에는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가 그리스도론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솔로몬의 지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솔로몬보다 크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윗은 전쟁의 왕이고 솔로몬은 평화의 왕인데, 이 두 왕은 어떤 관계인가?

  다윗을 '전쟁의 왕'이라 부르고 솔로몬을 '평화의 왕'이라 부를 때, 이 둘은 서로 대립하거나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진리를 두 국면으로 드러내는 짝이다. 다윗이 싸워 이겼기 때문에 솔로몬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고, 다윗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 22:8). 전쟁 없는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역사의 교훈이 아니라, 구속사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다.

대상 22: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히브리어 '에하드(אֶחָד)'는 '하나'를 뜻하지만, 그것은 고립된 단위의 하나가 아니라 연합 안에서의 하나다. 창세기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합하여 한 몸(בָּשָׂר אֶחָד, 바사르 에하드)이 될지로다"(창 2:24)라고 할 때,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두 인격이지만 하나의 연합을 이룬다. 다윗과 솔로몬도 마찬가지다. 둘은 구별되지만 하나의 경륜을 함께 이룬다. '약히드(יָחִיד)'가 홀로이며 외로운 단수의 하나라면, '에하드'는 연합 안에서의 하나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는 에하드다. 순서는 반드시 전쟁이 먼저이고 평화가 나중이다. 이 순서를 뒤집을 수는 없다. 평화를 먼저 말하고 전쟁을 생략하려는 것은 이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 원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땅에서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을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고"(히 12:4)라고 하여 영적 싸움의 치열함을 요구한다. 이 싸움에서 이긴 자에게만 영원한 평화가 주어진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 성밖에는 평화가 없다. 지옥은 평화가 아니라 싸움과 다툼으로 가득한 곳이다. 참된 평화, 영원한 평화는 전쟁에서 이긴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잘 치러야 한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고

  다윗이 전쟁에서 강했던 이유는 두 가지에서 비롯되었다. 첫째는 그에게 타고난 기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어머니는 전쟁에 능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이새의 본처에게서 나온 일곱 아들들 가운데 그런 기질을 가진 아들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특별히 예비하신 어떤 여인을 통해 다윗 하나를 낳게 하셨다. 그녀는 이새를 만나기 전에 이미 스루야와 아비가일을 낳았고, 스루야의 아들들인 요압, 아비새, 아사헬은 다윗의 군대에서 가장 용맹한 장수들이 되었고, 아비가일이 낳았던 아마사가 뛰어난 군장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이 어린 시절 사자와 곰과 싸워 이긴 것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그 타고난 기질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이 전쟁에 능한 여인을 이새에게 보내심으로 다윗을 준비하셨다. 둘째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이 강성해진 것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라"(삼상 18:14).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타고난 기질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에 이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가 함께하였기에, 다윗은 전쟁마다 이겼고, 그 결과로 솔로몬에게 평화를 유산으로 넘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

삼상 18:14 다윗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라

  다윗이 모든 전쟁에 능했던 이유는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그의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편 23편에 나타난 그의 고백을 보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또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시 23:5)라고 하였다. 이 믿음이 사자 앞에서, 골리앗 앞에서, 수많은 전쟁터에서 다윗을 지탱하게 하였다. 기질과 믿음,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다윗은 전무후무한 전쟁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국가 간의 관계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협상과 대화만으로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착각하는 것은 성경의 원리를 모르는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의지로 다윗이 주변 민족들을 제압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참된 평화는 힘에 의해 보장된다. 돈을 퍼줌으로써 혹은 선언문을 작성함으로써 얻어지는 평화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악한 영을 제압하지 않고는 내 안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다윗이 없으면 솔로몬도 없고, 전쟁의 승리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이 두 가지가 에하드를 이룬다.

 

3. 솔로몬의 지혜는 타고난 것인가, 배운 것인가, 아니면 받은 것인가?

  솔로몬의 지혜를 논할 때 흔히들 두 가지 극단에 빠진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셨으니 그냥 얻은 것"이라는 극단이고, 다른 하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것"이라는 극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솔로몬의 지혜는 받은 것이기도 하고, 배운 것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비단 솔로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우선, 솔로몬에게는 지혜를 가지고 타고날 수 있는 혈통적인 유전자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 밧세바의 집안에는 두 가지 탁월한 유전자가 흐르고 있었다. 하나는 지혜의 유전자다. 밧세바의 조부는 아히도벨이었다. 아히도벨은 다윗 왕국 최고의 모사(謀士)였으니, 그의 계략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묻는 것 같았다. 성경이 "그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음같이 하였으니"(삼하 16:23)라고 기록할 만큼 탁월한 지략가였다. 중국의 제갈량에 비견될 만한 인물이었다.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이 밧세바의 아버지였으니(삼하 11:3, 23:34 참조), 이 놀라운 지략의 피가 밧세바를 통해 솔로몬에게 흘러 내려온 것이다. 이런 집안의 후손으로서 솔로몬은 지혜를 향한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태어났다.

삼하 16: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모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음같이 하였으니 아히도벨의 모략이 그러하여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하였더라

  그리고 솔로몬에게는 또 다른 유전자로서 용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밧세바의 아버지 엘리암은 다윗의 용사 삼십 명 중 한 사람이었다(삼하 23:34). 장군의 기질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밧세바는 그 기질을 솔로몬에게 그대로 물려주었다. 그러므로 솔로몬에게는 지혜의 씨앗과 용사의 기질이 함께 흘렀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성일 뿐이다. 가능성이 현실이 되려면 공부와 훈련이 필요하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씨앗이 있다 해도 땅에 심지 않으면 싹이 나지 않듯, 타고난 재질도 갈고닦지 않으면 발휘되지 않는다.

  열왕기상 3장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다고 기록한다(왕상 3:12). 반면 솔로몬 자신은 잠언 서두에서 자신이 배우고 연구하였음을 선언한다. 그런데 이 둘은 모순이 아니다. 받은 지혜와 배운 지혜,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 이 두 가지를 어느 하나도 생략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주권만 강조하여 "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말하며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고, 인간의 노력만 강조하여 "내가 공부하면 된다"고 자만하는 것도 성경적이지 않다. 구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회개와 믿음이라는 인간의 응답이 요구된다. 지혜도 이와 같다.

  오늘날 설교자가 성령의 감동만을 내세우며 공부를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비교해 보라. 베드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였지만, 신약성경을 13권이나 저술한 것은 바울이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는가?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엄격하게 배운 자였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행 22:3). 충분한 공부가 성령의 역사를 담는 그릇이 된다. 성령은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여 일하시지만, 또한 우리의 공부를 통해 일하신다. 성령이 역사할 수 있도록 공부로 그 통로를 열어 두어야 한다. 언제라도 성령이 임하실 수 있도록 충분히 공부로 준비된 자가 더 깊은 지혜를 받을 수 있다.

행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이처럼 받은 지혜와 배운 지혜는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함께 작용하듯, 은혜로 받는 지혜와 노력으로 배우는 지혜가 함께 있어야 한다. 칼빈주의의 극단은 "하나님이 다 하시니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성경은 "부지런히 찾으라, 힘써 구하라, 두드리라"고 명한다. 갈매기가 먹이를 얻기 위해 열심히 날아다니듯, 지혜를 얻으려는 자는 부지런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기도하며 부지런히 구해야 한다. 그 위에 하나님이 은혜로 지혜를 더하여 주신다. 이것이 솔로몬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를 얻는 길이다.

 

4. 솔로몬은 얼마나 방대한 공부를 했으며, 그럼에도 결론이 "헛되다"인 이유는 무엇인가?

  솔로몬이 얼마나 많은한 공부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4장과 전도서가 함께 증언한다. 열왕기상 4장 30절은 "솔로몬의 지혜가 동방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단순히 선천적 재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 지혜가 뛰어나다는 평가는 솔로몬이 동방의 지혜와 애굽의 지혜를 실제로 습득하고 그것을 능가했음을 전제한다.

왕상 4:30 솔로몬의 지혜가 동방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동방 모든 사람의 지혜'는 욥기서가 대표하는 바로 그 지혜다. 욥은 동방 사람이었고(욥 1:3), 욥기서는 대표적인 지혜 문학이다. 욥과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 사이의 논쟁은 물론이고, 엘리후의 개입에 이르기까지 그 논증의 깊이와 수사적 세련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욥기의 그 논쟁을 오늘날 그대로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 있다. 솔로몬은 이 동방의 지혜 전통을 두루 섭렵했다.

  그리고 또한 솔로몬이 배웠던 '애굽의 모든 지혜'란 "무엇은 무엇이고,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식의 격언 문학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는 형식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스타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방식과 다르다. 하나님은 "~하라, ~하지 말라"는 명령 형식으로 말씀하시지,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는 격언 형식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 솔로몬은 이 모든 지혜의 전통을 공부하고 능가하였다.

  그 결과 솔로몬은 잠언을 3천 가지나 말하였고, 노래는 1005편이나 지었다(왕상 4:32).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잠언서가 대략 1천 절 남짓이니, 그것은 그가 말한 3천 잠언의 1/3수준이다. 나머지 2천 잠언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지었다는 1,005편의 노래들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아가서(8장)와 시편 72편, 127편이 전부이다. 또한 솔로몬은 동식물에 관하여도 논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많이 하였다. 그래서 그는 초목과 짐승,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자연계 전체를 논할 수 있었다(왕상 4:33). 한 마디로 솔로몬은 당시의 자연 과학에 해당하는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사람을 보냈고, 스바 여왕은 직접 땅끝에서 찾아왔다.

왕상 4:32-33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에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전도서는 솔로몬의 학문적 성실함을 이렇게 증언한다.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전 12:9-10). 그리고 공부의 과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기록한다.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전 12:12). 공부는 몸을 피곤하게 한다. 오늘날에 대학원을 마칠 때에 논문을 쓰는 것 역시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담을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이다.

전 12:9-10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전 12: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그런데 이토록 방대한 공부를 했던 솔로몬이 내린 결론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8). 그럼, 왜 세상 공부는 헛된 것인가? 왜냐하면 이 세상 지혜는, 아무리 깊고 넓다 해도, 천국에 가는 길을 열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 지혜는 세상을 사는 데 유익하지만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도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므로 그 지혜 자체가 구원이 되거나 영생이 될 수는 없다. 이것이 솔로몬의 탄식이요, 동시에 경고다. 세상 지혜를 아무리 쌓아도 죽는 날 그것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지혜는 천국의 지혜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전 12: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전도서 결론부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선언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그가 내린 공부의 결론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수만 권의 책을 읽고, 수천 가지 격언을 지어내고, 동방과 애굽의 모든 지혜를 섭렵한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 그것이 인간의 전부다. 세상 공부의 끝에서 이 진리를 발견한 자가 참으로 지혜로운 자다.

전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어떻게 다른지는 잠언 1장 7절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잠언 1장 2절부터 6절까지는 지혜를 배우는 방법과 목적을 기술한다.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자원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라." 이것은 세상 어느 지식인도 추구할 수 있는 목표다. 여기까지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좌우명으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7절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하나님의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여호와 경외 없는 지식은 결국 헛되다는 것이 솔로몬의 결론이다. 모든 지식의 시작점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이 선언이 솔로몬의 탄식과 깨달음의 핵심이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5. 솔로몬은 왕이 된 후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으며, 어떻게 구했는가?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나이는 대략 스무 살 전후였다. 사울이 마흔 살에 왕이 되었고, 다윗이 서른 살에 왕이 되었으나(삼하 5:4), 솔로몬은 더 이른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사울 40년, 다윗 40년, 솔로몬 40년의 각각의 통치가 이어진다. 그런데 솔로몬은 전쟁도 정치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가운데서, 갑작스럽게 왕이 된다. 형 아도니야가 요압 장군과 아비아달 제사장의 지지를 등에 업고 왕위를 찬탈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러한 혼란함 속에서 다윗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게 된다. 

삼하 5: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간 다스렸으되

  그런데. 이러한 솔로몬의 눈앞에는 아버지 다윗이 정복하여 복속시킨 수많은 민족들이 있었고, 그 백성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스라엘 백성 외에도 주변 민족들이 들어와 이스라엘 공동체에 합류함으로써 다스려야 할 대상이 더욱 많아졌다. 다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평화롭게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많은 백성들을 공의롭게 다스려야 할 책임은 오롯이 어린 솔로몬에게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그는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인간의 지혜로는 역부족임을 처음부터 인정한 것이다.

  당시 법궤는 다윗 성에 있었고, 성막은 사울 왕 때 제사장들이 학살당한 뒤 법궤와 분리되어 기브온으로 옮겨져 있었다. 기브온은 번제단이 있는 큰 산당이었다. 솔로몬은 기브온으로 올라가 거기 있는 번제단에 무려 천 번제를 드렸다. 황소 천 마리를 잡아 드린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예배가 아니라 목숨을 건 헌신이요, 왕국의 재물을 하나님께 쏟아붓는 대가 지불이었다. 왕이 드리는 번제이므로 당연히 황소였을 것이다. 그 천 마리의 황소가 타오르는 번제의 연기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은 그 헌신에 감동하셨다. 밤에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다(왕상 3:5).

왕상 3:4-5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번제 일천 번을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그런데 이때 솔로몬이 구한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는 부도 영화도 장수도 구하지 않았다. 원수의 생명을 멸하는 힘도 구하지 않았다. 어린 왕이 가장 구하고 싶을 법한 것들, 즉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나 풍요를 누리는 것을 구하지 않았다. 그가 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7-9). 그가 구한 것은 '듣는 마음', 곧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לֵב שֹׁמֵעַ)'였다. 백성의 소리를 잘 들어 선악을 분별하고 공의롭게 재판하는 마음이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을 구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간구를 들으시고 크게 기뻐하셨다.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왕상 3:11-12).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 더하여 주셨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위하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위해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욱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

왕상 3:11-13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내 앞에서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니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솔로몬의 기도 태도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낮추었다. 왕위에 오른 자가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실제로 자신이 이 큰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는 지혜를 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부족함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께 구한다. 그래서 솔로몬의 기도는 겸손에서 시작하여 사명으로 끝난다. "내가 부족하오니 주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기도다. 자신의 필요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맡겨진 사명을 위한 기도,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킨다.

 

6. 솔로몬이 구한 "듣는 마음"은 무엇이며, 지혜의 참된 목적은 무엇인가?

  '듣는 마음'은 지혜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지혜(히브리어 호크마, חָכְמָה)란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마음이요, 그 말씀에 따라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목적은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공의롭게 재판하기 위함이었다. 지혜의 열왕기상 기자가 정의한 지혜는 바로 이 듣는 마음이다. 즉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의 소리를 잘 듣고 그에 따라 바르게 분별하는 능력이다.

  지혜의 목적이 재판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솔로몬이 지혜를 받자마자 보여 준 능력이 바로 두 창기 사이의 재판이었다(왕상 3:16-28).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것이라 다투는 두 여인 앞에서 솔로몬은 "살아 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진짜 어머니는 "차라리 이 여자에게 주고 죽이지 마소서"라고 호소하였다. 이로써 진짜 어머니가 가려졌다. 온 이스라엘이 이 재판을 보고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보았더라"(왕상 3:28)고 경탄하였다. 지혜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어려운 판단 앞에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왕상 3: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판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지혜의 목적이 재판이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왕의 가장 핵심적인 직무가 재판임을 알아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왕은 단순히 군사 지도자가 아니라 최고 재판관이었다. 백성이 왕에게 나아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송사(訟事)였다. 왕이 공의롭지 않으면 백성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솔로몬이 재판을 잘하기 위한 마음을 구한 것은 왕으로서의 사명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 사명의 핵심은 심판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심판을 위한 것이요, 심판을 위한 준비가 바로 지혜다.

  그런데 이 재판의 주제는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궁극적 목적은 그가 장차 심판을 잘 받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이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는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을 위해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고 선포한다. 지금 이 순간 죽는 자는 곧바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죽은 후 무덤에 잠자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천년왕국이 진행되고 있으며 낙원에서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상급 심판을 받게 된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받는 심판은 정죄의 심판이 아니라 상급의 심판이다. 어떤 신분을 얻을 것인가, 어떤 처소에서 살 것인가, 어떤 면류관을 받을 것인가가 결정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0장의 백보좌 심판에서 온 인류의 최후 심판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심판주 앞에 섰을 때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를 아는 자다. 그날을 준비하는 자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기름을 준비한 것처럼, 신랑이신 주님을 맞이할 때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지혜다.

  또한 '듣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오늘의 성도에게도 중요한 도전을 준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사람은 교만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자기 생각이 꽉 들어차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한 번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인다. 말씀 앞에서 "내가 30년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리스도가 누군지도 몰랐구나, 구약 성경을 헛것으로 봤구나, 주님이 오시는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구나"라고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다. "한 번 영원히 구원받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상급 심판을 의식하며 날마다 준비하는 삶을 사는 자가 바로 '듣는 마음'을 가진 자다. 그런 깨달음이 없다면 아직 지혜가 없는 것이다.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아야 한다.

 

7.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큰 평화와 지혜의 왕이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솔로몬이 평화의 왕이요 지혜의 왕이라면,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크신 분이다. 예수님은 평화를 베푸는 왕이 아니라 평화 그 자체이시다. 사도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엡 2:14)라고 선포한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전쟁으로 이루어진 평화를 다스렸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심으로 평화를 이루셨다. 피를 통해 악한 영을 내보내고,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고,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화목케 하신 것이다. 이것이 솔로몬의 평화와 예수님의 평화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다.

엡 2:13-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수님은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다. 히브리어로는 '샬롬(שָׁלוֹם)'이요, 헬라어로는 '에이레네(εἰρήνη)'다. 예수님이 직접 요한복음 14장에서 선포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일시적이고 조건적이다. 힘의 균형이 깨지면 무너지는 것이 세상의 평화다. 솔로몬이 다윗의 전쟁으로 얻은 평화도 솔로몬이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왕국 분열로 이어졌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적 실재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비롯되는 평화이기 때문이다.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된 자에게 임하는 평화는 환경이 어떻게 바뀌어도 빼앗길 수 없다.

  또한 예수님은 지혜에 있어서도 솔로몬보다 크시다. 예수님 자신이 이를 선언하셨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42).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땅 끝에서 찾아온 스바 여왕이 있었다면,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님이 직접 오셨음에도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말씀을 외면하고 귀를 막는 것은 솔로몬보다 크신 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심판 날에 스바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평화를 얻는 길에도 반드시 순서가 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하셨다.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먼저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악한 영을 쫓아내고, 죄와 싸워 이기고, 그 후에 화평을 가져오는 것이다. 전쟁을 생략하고 평화를 가져오려 하는 것은 착각이다. 영적 전쟁에서 이긴 자만이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또 전달할 수 있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고 천국에 들어간다.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히 아시고 성취하셨다는 것도 솔로몬보다 크심을 확인케 한다. 예수님은 열두 살 성인식 때에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셨고, 그들이 그 지혜와 대답에 놀랐다(눅 2:46-47). 예수님도 공부하셨다. 율법을 공부하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의 계시를 받으심으로, 예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지혜와 평화를 온전히 갖추셨다. 솔로몬은 나중에 타락하여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고 우상을 섬기다가 60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크시다.

  예수님이 솔로몬보다 크신 평화와 지혜의 왕이심은 또한 그의 이름에서도 확인된다. 예수(יֵשׁוּעַ, 예슈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뜻한다. 그는 단지 평화를 선물로 주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 자체를 주시는 분이다. 솔로몬의 이름이 샬롬에서 왔듯이,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을 담고 있다. 솔로몬이 이 땅에서 누리는 평화를 다스렸다면,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가져다 주신다. 사도 바울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고 한 것이 바로 이 평화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환경을 초월하는, 솔로몬도 완전히 누리지 못한 그 평화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크신 평화의 왕이요 지혜의 왕이시다.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지혜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지혜를 구하는 것은 예수를 믿은 성도의 첫 번째 과제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이를 명확하게 선언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하라. 하나님은 꾸짖지 않으시고 후히 주신다. 자신이 지혜롭지 못함을 겸허히 인정하고, 하나님께 구하는 자가 지혜를 얻는다. 솔로몬이 "종은 작은 아이라"고 고백한 것이 지혜를 받은 출발점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를 얻는 데는 두 가지 통로가 있다. 첫째는 공부다. 솔로몬처럼, 바울처럼,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진리의 말씀을 정직하게 공부해야 한다. 지혜는 지식을 활용하는 힘이다. 지식 없이 지혜가 활용될 그릇이 없다. 성경에 대한 지식, 구속사에 대한 이해, 신학적 훈련은 성령이 역사하실 통로가 된다. 오늘날 목회자의 경우에도 대학 교육과 신학대학원 과정, 인턴십, 목사 고시 등 십 년에 가까운 준비 과정이 요구되는 것은 그 이유가 있다. 충분히 공부하지 않으면 성도를 바르게 섬길 수 없다. 그러나 공부만으로 되지 않는다. 지식이 지혜가 되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성령은 공부로 쌓아 놓은 지식의 그릇 위에서 역사하신다. 충분히 공부해 놓은 자에게 성령이 임할 때, 그것이 지혜가 된다.

  둘째는 기도와 헌신이다. 솔로몬은 천 번제를 드린 후에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대가 없는 기도, 헌신 없는 간구는 하나님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솔로몬이 자신의 왕국 재물로 황소 천 마리를 드린 것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과 같다. 그 헌신 위에 꿈이 임하였고, 그 꿈 속에서 지혜가 허락되었다.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헌신은 값비싸야 하며, 구함은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지혜를 구하는지 목적이 분명할 때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솔로몬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재판을 위해 지혜를 구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셨다.

  지혜를 사용하는 목적도 분명하다. 지혜는 심판을 잘 받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솔로몬이 재판을 잘하기 위해 지혜를 구했듯이, 성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지혜를 구해야 한다. 지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위해 지혜를 구한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혜와 다를 것이 없다. 지혜로운 성도는 항상 심판주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오늘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것이 그날 심판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인가?"를 묻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 즉 호크마는 욥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하셨느니라"(욥 28:28).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심판을 두려워하여 악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려는 자다. 회개 기도문 앞에서 귀를 막지 않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아무리 회개를 촉구해도 회개하지 않는 것은 교만이요, 지혜가 없는 것이다.

욥 28:28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하셨느니라

  지혜 문학인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는 한결같이 이 진리를 선언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이 진리를 알고, 믿고, 삶으로 실천하는 자가 참된 지혜자다. 지혜로운 성도는 말씀 앞에서 "내가 틀렸구나, 내가 몰랐구나"라고 고백하며 돌이킨다. 배울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게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하되 그 결론이 헛되다는 솔로몬의 고백처럼, 모든 지식의 끝에서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지혜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지혜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이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심오하다. 욥기의 욥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 하였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응답을 받았다. 시편의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임을 노래하였다. 잠언의 솔로몬은 그 지혜를 격언과 잠언으로 정리하여 후세에 남겼다. 전도서의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됨을 고백한 끝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지혜 문학이 한 목소리로 선언하는 최종 진리다. 모든 지혜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이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는 자가 참된 지혜자요, 그가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자다.

전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세상을 사는 지혜도 필요하다. 세상 공부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진리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이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처럼,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세상의 것까지 더하여 주신다. 이것이 솔로몬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지혜의 길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솔로몬의 삶을 통해 구약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9. 나오며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가 전쟁과 평화의 에하드를 이루며, 솔로몬의 지혜가 타고난 가능성과 치열한 공부, 그리고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솔로몬이 천 번제를 드리며 재판을 잘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했을 때 하나님이 지혜를 허락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화 그 자체이시며 솔로몬보다 크신 지혜의 주이심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지혜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심판주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준비하는 힘임을 살펴보았다.

  모든 성도는 이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지혜의 목적은 심판주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함이다. 세상의 지식과 성령의 지혜를 함께 구해야 한다. 어느 하나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공부하지 않고 성령만을 구하는 것도 잘못이요, 성령의 도움 없이 공부만으로 되는 것처럼 자만하는 것도 잘못이다. 솔로몬처럼 치열하게 공부하되, 솔로몬처럼 하나님 앞에 값비싼 헌신으로 나아가 지혜를 구해야 한다.

  또한 영적 전쟁에서 도망쳐서는 아니 된다. 다윗이 전쟁에서 이겼기에 솔로몬이 평화를 누렸듯이, 이 땅에서 죄와 싸워 이기는 자만이 장차 영원한 평화를 누리게 된다. 말씀을 들을 때 "내가 틀렸구나" 하고 돌이키는 듣는 마음, 그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그 지혜로 심판주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날마다 준비해야 한다.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을 하나님이 더하여 주셨듯이, 먼저 심판주 앞에 설 준비를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삶도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 세상 지혜와 하늘의 지혜를 모두 구하되 순서를 바로 해야 한다. 하늘의 지혜가 먼저요, 세상 지혜는 그 도구다. 이 순서를 바로 잡고, 솔로몬처럼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지혜를 구하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솔로몬보다 크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며, 마지막 날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17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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