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6(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레25:1~25:5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kJ8C_9uSBuI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
2.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3.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
4. 면제년은 왜 빚을 탕감하고 동족 종을 놓아주게 하는가?
5. 희년의 네 가지 원상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
6. 토지·가옥·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
7.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가?
[설교핵심]
이 설교는 레위기 25장을 바탕으로 안식년과 희년이 단순한 휴식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거룩함을 회복하는 단체적인 성결례임을 강조합니다. 핵심은 모든 땅과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이 탐욕으로 잃어버린 자유와 기업을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특사 조치'와 같은 은혜를 설명합니다. 특히 정보배 목사는 구약의 고엘(기업 무를 자) 제도를 현대의 회개와 연결하여, 가까운 친족이 대신 빚을 갚아주듯 우리가 조상과 자녀를 위해 대신 회개함으로써 영적인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하늘의 가족과 기업을 되찾는 것이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축복임을 일깨워줍니다.
레위기강해(21)
성결법(08)
안식년과 희년의 단체적인 성결례(02)
(레 25:1-55)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레위기의 성결법(레 18~27장)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을 함께 다룬다. 먼저 제18장부터 제22장까지는 일반 백성과 제사장이 각각 지켜야 할 개인적인 성결(聖潔, holiness)을 가르친다. 그러나 제23장부터 제27장까지는 온 회중이 함께 모이고 함께 순종함으로 이루는 단체적인 성결을 보여 준다. 그중에서 제23장에서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를 지킴으로 거룩해지고, 제24장에서는 성막 안의 등잔불과 진설병을 돌보아 거룩해지며, 제25장에서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온 백성이 함께 시행함으로 거룩해짐을 말씀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께서는 개인이 혼자 거룩해지는 것으로 온전하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안식일과 절기에는 성회를 열어 함께 찬양하고 감사하며 말씀을 들어야 한다. 혼자 부르는 찬양과 온 회중이 한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은 다르다.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높일 때 예배의 풍성함이 커지고, 천사들의 도움과 마음을 치유하는 은혜도 강하게 임한다. 개인적인 회개(悔改, repentance)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함께 모여 순종하는 단체적인 성결례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성막 안에서의 봉사도 제사장만의 일이 아니었다. 백성이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것으로 등불을 밝히고 열두 진설병을 차렸다. 주의 종이 성령의 불을 밝히고 신선한 말씀을 준비하려면 성도도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한다. 제사장과 백성이 서로의 사명을 다할 때 공동체 전체가 빛을 받고 생명의 양식을 먹는다.
그런데 레위기 25장의 단체적인 성결례는 이 협력을 땅과 경제와 가족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먼저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포하고, 추가로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희년(禧年, jubilee)은 땅을 쉬게 하고 종을 놓아주며 기업을 되돌리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완전한 원상회복(原狀回復)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지와 가옥과 종을 무르는 고엘(גֹּאֵל, go’el) 제도는 장차 우리를 되찾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그런데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이 규례들을 실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공동체 전체가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자유와 회복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지키지 않았다. 마침내 예수께서 오셔서 그 규례의 영적 실체를 이루셨고, 지금은 회개하는 자가 그 은혜에 참여하게 하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이 왜 함께 필요한지, 등잔대와 진설병이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지,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은 무엇을 선포하는지,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지, 그리고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개인적 성결과 단체적 성결은 왜 함께 필요한가?
성결례 중에서도 개인적 성결례(레 18-22장)는 각 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을 가리킨다. 일반 백성은 이방인의 음란과 우상숭배를 버려야 했고, 제사장은 죽음과 부정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며 거룩한 제물과 성물을 바르게 다루어야 했다(레 18:1-22:33). 누구도 다른 사람의 성결을 대신할 수 없다. 자기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각자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성결례도 필요하다(레 23-27장). 만약 공동체 전체가 세상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 거룩함을 지키기가 어렵다. 한 사람만 안식년을 지켜 밭을 쉬게 하는데 이웃은 계속 농사를 짓는다면, 순종한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한 사람만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는데 다른 사람들은 계속 채무자를 독촉하고 종을 부린다면 하나님의 질서가 공동체 안에 뿌리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 백성이 같은 때에 함께 멈추고 함께 놓아주며 함께 회복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특히 레위기 23장의 안식일과 일곱 절기는 단체적인 성결의 첫 형태다. 백성은 정한 날에 성회로 모여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다. 속죄일(贖罪日, Day of Atonement)을 제외한 절기에는 창조와 출애굽과 추수의 은혜를 기뻐하며 축제를 누렸다.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온 공동체가 기억하고 감사할 때 그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했다. 예배는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함께 닮아 가는 통로였다.
오늘날 교회도 같다. 혼자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함께 드리는 예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성도들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며 회개할 때 한 사람의 믿음이 다른 사람을 붙들어 준다. 낙심한 사람은 공동체의 찬양 속에서 힘을 얻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성도의 간증과 순종을 보며 깨닫는다. 하나님은 지체들이 서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회를 세우셨다(고전 12:12-27).
그러나 단체적 성결례는 획일적으로 똑같은 일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의 일을 하고 백성은 백성의 일을 하되, 서로의 역할이 한 목적을 향해야 한다. 백성은 기름과 곡식을 드리고 제사장은 등불과 떡을 잘 관리해야 한다. 성도는 헌신과 물질로 말씀 사역을 돕고, 주의 종은 기도와 연구로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 한 지체가 자기 역할을 버리면 공동체 전체가 약해진다.
성결은 결국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이 땅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거룩해질수록 천국에서도 주님 가까이에 나아갈 자로 준비된다. 한 사람만 뜨거워지고 다른 사람들은 차가운 교회가 아니라, 모든 지체가 회개하고 충성하여 함께 성령의 통치를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정결(淨潔)한 마음과 공동체의 질서 있는 순종을 함께 받으신다.
3. 등잔대와 진설병은 제사장과 성도의 협력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레위기 24장의 '등잔대'와 '진설병'은 성막 안에서 이루어지는 단체적 성결례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첫째, 등잔대의 등불을 간검하는 것부터 살펴보자(레 24:1-4).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봉사해야 했지만 필요한 재료는 백성이 다 가져왔다. 백성이 감람나무를 가꾸고 감람을 찧어 순결한 기름을 드리면, 제사장은 그것을 가지고 아침과 저녁으로 등잔을 살피고 심지를 손질하여 밤새 불꽃이 타오르게 했다(레 24:1-4). 제사장의 봉사와 백성의 헌신이 합쳐져야 성소가 밝아졌던 것이다.
그런ㄷ게 이때의 감람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고, 등잔불은 하나님의 빛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세상의 참빛이시며, 그분을 따르는 성도도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았다(요 1:9; 8:12; 마 5:14-16). 교회가 어둠을 밝히려면 성도는 성령 충만(聖靈充滿, fullness of the Holy Spirit)을 받아야 하고, 주의 종은 공동체 안에서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살펴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통치를 받지 않으면 세상과 구별된 빛을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주의 종들은 성도들이 피땀 흘려 드린 헌금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 헌금 가운데 일부로 사례를 받는다면 성도의 노동과 헌신을 기억하며 더 충성해야 한다. 백성이 힘들게 마련한 감람기름을 제사장이 허비할 수 없었던 것처럼, 목회자는 성도가 드린 시간과 물질을 말씀과 기도와 영혼 구원(救援, salvation)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성령의 불을 밝히고 진리를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그 헌신에 응답해야 한다.
둘째, 이제는 진설병을 진설하는 규례를 살펴보자(레 24:5-9). 등잔불의 간검 외에도 제사장이 성막 안에서 해야 할 일은 진설병을 진설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등잔불과 같은 원리를 보여 준다. 이것은 성막 안에서 진행되는 단체적인 성결례의 두 번째 사례다. 제사장이 성소 안에 떡을 진설하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운 가루를 가져와야 했다. 그것이 첫 열매이든 십일조이든지 하나님께 바치면, 제사장들은 그것으로 열두 덩이의 떡을 만들어 두 줄로 떡상 위에 놓아야 했다. 이때 열두 떡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를 상징한다. 제사장은 온 백성을 어깨에 메듯 그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어느 한 지파도 굶지 않도록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야 했다(레 24:5-9; 출 28:9-12).
이때 제사장은 안식일마다 묵은 떡을 물리고 새 떡을 진설해야 했다. 오늘날 말씀을 맡은 종도 매주 신선한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이전에 전한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간에 성도들이 먹어야 할 말씀을 기도와 연구로 새롭게 차려야 한다. 성도가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이 자라지 못하고 작은 환난에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생명의 떡을 꾸준히 먹을 때 영적 내공이 쌓이고 가정의 파수꾼으로 담대히 설 수 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아 떫은 감을 된장물에 우려 떫은 맛을 빼고 먹었다. 먹을 것이 귀했기에 그것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성도에게 공급하는 말씀까지 묵은 것을 계속 우려내어 먹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영원하지만 공동체가 지금 들어야 할 적용과 깨달음은 신선하게 준비해야 한다. 주의 종은 말씀의 큰 우물에서 계속 길어 올려 성도가 배불리 먹도록 해야 한다.
그때 물린 떡은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그것은 제사장과 그 가족이 거룩한 곳에서 먹게 했다. 이는 말씀을 충성스럽게 진설하는 제사장과 그 가족을 하나님께서 먹이신다는 원리도 함께 보여 준다. 주의 종이 세상일로 인하여 지쳐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성도도 굶고 자신도 먹을 떡을 잃는다. 반대로 성도를 살리는 생명의 떡을 풍성히 공급하면 공동체의 헌신을 통해 목회자와 가족도 돌봄을 받는다.
그러므로 목회자 혼자 잘해서도 안 되고 성도 혼자 열심을 내서도 안 된다. 성도는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드리듯 은사와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주의 종은 그것을 소중히 받아 성령의 빛과 생명의 말씀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서로가 자기 몫을 감당할 때 교회 전체가 밝아지고 자라며 거룩해진다.
그리고 성막 밖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는 자와 이웃의 형제를 살인을 행한 자에게는 공동체의 성결을 위해 그들을 그대로 두지 말고 죽이라고 하셨다(레 24:10-24).
4. 안식년은 왜 땅을 쉬게 하며 하나님의 소유권을 선포하는가?
그렇다면 안식년은 어떤 단체적인 성결례인가? 하나님께서는 안식일과 일곱 절기들 그리고 성막 안에서의 성결례와 성막 밖에서의 성결례를 언급하신 후에, 두 가지 단체적인 성결례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단체로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는 것이었다(레 25:1~22).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는 어떻게 안식년을 지켜야 했는가? 그것은 그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육 년 동안 농사를 하고 나서 일곱째 해가 찾아오면 그 해에 땅을 쉬게 하라는 규례였다(레 25:1-7). 그러면 그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해에는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포도원을 가꾸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저절로 난 곡식과 포도는 자기 소유로 취하지 말라고 했다(레 25:1-5).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의 생계를 막으려 하신 것이 아니라 땅의 참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치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사실 젖과 꿀이 흐리는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되었고, 가나안 족속의 죄가 가득 찬 뒤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유권 자체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기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땅에 머무는 거류민이며 동거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 년 동안 농사하고 살면 계속해서 그 땅이 자기 땅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해가 찾아오면 그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그 땅이 자기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식년 저절로 자신 소출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그것은 주인만이 그것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저절로 자란 것들은 땅의 주인뿐만 아니라 그의 남종과 여종, 그의 품꾼과 거류민이 함께 먹을 수 있었고, 또한 심지어 가축과 들짐승도 먹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셨다(레 25:6-7). 그 해는 주인이 그 땅에서 농사한 것이 아니므로, 누구도 그 땅의 산물을 가리켜 “내가 수고해서 얻은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 규례를 한 사람에게만 지키라고 한다면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나만 밭을 놀리고 이웃은 계속 소출을 거둔다면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민족이 안식년이 되면 그 해에는 모두 함께 쉬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안식년을 지켰을까? 놀랍게도 성경 기록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을 지켰다는 대목을 발견하기 어렵다. 역대하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서 바벨론에서 70년을 살게 했다고 언급하였다(대하 36:21). 그리고 신약 시대가 되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이 안식년의 성취자로 오셨음을 그들에게 드러내셨다. 즉 당신이 안식일의 주라는 것을 선포하시면서(마 12:8), 그날 병든 자를 고쳐 귀신들린 자로부터 귀신을 쫓아주시어,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마귀의 종노릇한데서 해방시켜 주셨다(눅 13:16).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대하셨고 그들에게 안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 1:28-30)
이건 십일조도 마찬가지다.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권을 믿고 십일조를 드린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신만 드린다고 생각하면 손해처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단체적 성결은 서로의 순종을 지지하여 탐욕을 이기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땅의 소유권에 관한 말씀은 우리의 몸과 재물과 재능에도 적용된다. 건강할 때에는 몸이 내 것처럼 보이고, 지혜와 노래와 기술도 내 능력으로 얻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병이 들거나 힘이 사라지면 그것이 맡겨진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과 시간과 지식도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기업이다. 내 것처럼 움켜쥐지 않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
필자가 성경을 연결하여 깨달은 바에 따르면 흙으로 지음받은 육체도 하나님께 속한 땅이다(창 2:7). 귀신이 죄를 틈타 사람의 몸에 들어와 괴롭힌다 해도 그 몸의 영원한 소유자가 될 수 없다. 안식년이 되면 땅을 쉬게 해야 했듯이, 하나님은 자기 소유인 사람에게 안식을 주고 악한 영의 압제에서 놓이게 하기를 원하신다. 병이 심해졌다 약해지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허락 아래 있으며, 마귀가 사람을 끝없이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안식년의 핵심은 일하지 않는 데 있지 않고 주인을 인정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믿고, 맡기신 것을 이웃과 나누며, 몸과 재물과 은사를 주님의 뜻에 돌려 드리는 것이다. 땅을 쉬게 하는 순종을 통해 온 백성은 자신들이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임을 배웠다.
5. 면제년은 왜 빚을 탕감하고 동족 종을 놓아주게 하는가?
그런데 안식년 외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7년에 면제년을 지켜야 했다. 이러한 규례는 레위기에는 나오지 않고 신명기 15장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매 칠 년 끝에 동족의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는 규례를 지키라고 하셨다(신 15:1-18). 안식년은 국가 전체가 같은 주기로 일곱째 해를 지키는 규례이지만, 빚과 종살이의 면제는 각 관계가 시작된 때부터 계산해서 7년째에 지키는 공동체 성결례였다. 즉 돈을 빌렸더라도 일곱째 해가 되면 채권자는 더 독촉하지 말아야 했고(신 15:1-11), 동족이 종으로 팔려 여섯 해를 섬겼으면 일곱째 해에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했던 것이다(신 15:12-23)
그런데 이러한 규례는 희년에도 지속되어야 했다. 형제가 가난하여 곁에 머물면 이자를 받아 이익을 남기려 하지 말고, 거류민과 동거인처럼 함께 살게 하라고 하셨다(레 25:35-37). 종을 놓아줄 때에도 빈손으로 보내지 말도록 했다. 양 떼와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에서 넉넉히 주되, 하나님께서 복 주신 만큼 나누어 새 삶을 시작하게 하라고 하셨다(신 15:13-14). 면제는 채무자를 겨우 풀어놓는 일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기반까지 마련해 주는 은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빚을 끝까지 받아내기를 원하고, 값없이 일하는 종을 계속 붙들어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만 면제를 요구하면 그것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만 손해 보는 것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 공동체가 함께 면제년을 시행하게 하여 어느 집이나 같은 기준으로 형제를 놓아주게 하셨다. 개똥이네와 소똥이네가 면제했다면 말똥이네도 면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고 공동체 가운데 영구적인 종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면제년를 실시하라고 한 것인가? 그것의 근거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하셨으므로 그들은 사람의 영구적인 종이 될 수 없고, 언제나 하나님의 종이었다. 채권자와 주인은 잠시 그들의 노동과 채무 관계를 맡았을 뿐 한 사람의 미래를 영원히 붙잡을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은 동시에 마귀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붙잡을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람이 죄를 지어 마귀의 종이 되고 악한 영에게 시달릴 수 있지만 사람의 참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사탄은 죄의 빚을 붙들고 사람을 영원한 채무자처럼 부리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빚을 탕감하고 종을 놓아주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자기 피로 값을 치러 우리를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속량하셨다(막 10:45; 벧전 1:18-19).
그러므로 면제년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내야 한다.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셨다. 즉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고 번역된 말을 보면, 빚을 탕감해 주라는 뜻이다(마 6:12).
또한 베드로가 형제를 일곱 번 용서하면 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셨다(마 18:21-22). 이 70×7의 용서는 다니엘의 70이레가 품은 면제와 희년의 정신과도 연결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용서에는 계산의 끝이 있어서는 안 된다.
면제는 무책임과 게으름을 장려하는 제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자유를 기억하여 형제의 미래를 빚으로 묶어두지 말라는 명령이다. 나도 애굽에서 구원받은 종이었고,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탕감받았음을 기억할 때 다른 사람을 놓아줄 수 있는 것이다. 면제년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긍휼을 경제와 노동의 관계 속에서 실제로 나타내는 성결례였다.
6. 희년의 네 가지 원상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
그렇다면 안식년에 의해 희년은 어떤 제도인가? 이 규례는 안식년과 면제년을 확대하여 완전한 원상회복을 이루는 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일곱 번의 안식년, 곧 7년을 일곱 번 지난 49년 뒤 오십 년째가 되면 그 해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라고 하셨다. 안식년은 49년째 되는 해의 일곱째 달 열흘 속죄일에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어 자유를 선포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희년을 뜻하는 히브리어 ‘요벨’(יוֹבֵל)이라는 말은 뿔나팔(쇼파르)에서 나온 말인 것을 알 수 있다(레 25:8-10).
그렇다면 희년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 그 해에는 네 가지 일을 해야 했다. 첫째, 49년째 안식년에 이어 50년째에도 땅을 쉬게 했다. 둘째, 종을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했다. 셋째, 가난 때문에 팔았던 기업을 원래 소유자에게 되돌려주어야 했다. 넷째, 흩어진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 돌아가게 해야 했다. 그러므로 희년은 단순한 휴식의 해가 아니라 땅과 신분과 기업과 가족이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자유와 해방의 해였다.
한편 부득이 땅을 매매해야 한다면, 그때에는 희년까지 남은 햇수에 따라 값을 정하도록 했다. 희년이 오래 남았으면 여러 해의 소출을 얻을 수 있으므로 값을 많이 받고, 희년이 가까우면 적게 받아야 했다(레 25:14-17). 땅 자체를 영원히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다음 희년까지 얻을 소출의 권리를 거래한 셈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 많은 땅을 사들여도 희년이 되면 원래 기업을 받은 가문으로 돌려주어야 했다.
그런데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희년을 지켰을까? 아니었다. 그들은 안식년과 면제년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희년도 역시 지키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년의 성취자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나사렛 회당에서의 첫 공생애 취임설교에서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펴게 하셨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해야 한다는 말씀을 읽게 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그날 듣는 사람의 귀에 응했다고 선언하셨다(사 61:1-2; 눅 4:18-21).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돌아보면 그분이 희년을 실제로 시행하는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랬다.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몸을 고쳐 육체라는 땅에 안식을 주셨다. 죄의 빚을 자기 피로 갚아 마귀의 종을 자유롭게 하셨다.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을 다시 차지할 길을 여셨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원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셨다. 예수께서 우리의 형제가 되어 값을 치르셨기에 희년의 네 가지 회복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만약 이스라엘이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실제로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그 규례가 선포될 때 땅은 쉬고 종은 풀려났을 것이며, 기업과 가족은 원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필자가 깨달은 영적 원리에 따르면, 그렇게 되었다면 귀신도 일곱째 해마다 사람의 몸을 놓아주어야 했고, 희년에는 사람이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가족과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규례를 행하지 않았기에 그 회복이 공동체 안에서 시행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희년을 강제로 시행하셨다. 희년이란 우리가 아무리 갚아야 할 것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값을 해결하고 본래 자리로 돌려놓으시는 특별사면과 같은 것이다. 다만 지금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이 은혜가 적용된다. 회개하는 자에게 악한 영이 떠나가고, 죄와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며, 하나님 가족의 신분과 하늘 기업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혜택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희년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육적 이스라엘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민족이므로, 그들을 위한 선교도 필요하다. 그러나 불순종한 육적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과 물질적 성전만을 위해 성도의 피땀 어린 물질을 쏟아야 한다는 세대주의적 선교는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모든 민족에게 열어 놓으신 희년의 복음을 전하고, 회개하는 영혼을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하며, 그들이 하늘 기업을 얻도록 돕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만 탓할 수 없다. 우리가 채권자와 주인의 자리에 있었다면 빚을 없애 주고 종을 놓아주며 산 땅을 돌려 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같은 아담의 후손이며 탐욕에 기울어진 죄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부지런히 회개하여 희년의 원상회복을 실제로 누려야 한다.
7. 토지·가옥·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가?
그런데 희년이 돌아오기 전에 팔아서 잃어버린 토지와 가옥(집)과 종살이는 어떻게 되물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희년이 오기 전에도 무르기(히브리어로, '게울라')를 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그것은 팔어버린 토지도 가능했고, 팔아버린 가옥도 가능했다. 심지어 팔아버린 사람(노예)도 가능했다.
첫째, 토지 무르기를 보자(레 25:23-28).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가 가난하게 됨으로 어쩔 수 없이 땅을 팔았다고 치자. 그것을 자신이 다시 되돌려받고 싶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가? 그때에는 그 땅을 판 자기가 부유해져서 그 값을 치를 수 있다면, 남은 햇수를 계산하여 그 값을 치르고 다시 토지 무르기를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자신에게 만약 그렇게 할 만한 힘이 없다면, 가까운 친족이 그 값을 치러 주고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이때 팔렸던 토지를 다시 사서 되찾아 줄 자 곧 기업 무를 자를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가 대표적인 고엘제도의 실행의 예인 것을 알 수 있다.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은 뒤, 맏며느리 룻은 아무 기업도 없는 이방 여인이 되었다. 그러나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가 값을 치르고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며 룻을 아내로 맞이했다. 룻이 보아스에게 옷자락을 펴서 자신을 덮어 달라고 한 것은 그가 바로 그녀의 전남편의 기업 무를 자였기 때문이다(룻 3:9; 4:9-10).
둘째, 사람이 종으로 팔린 사람을 무르는 경우를 보자.(레 25:39-55) 이때에는 가까운 혈족이 와서 종의 값을 치르고 놓아주라고 하셨다. 먼저 형제가 무를 수 있는 것이 제일 우선 순위이고, 그다음에는 삼촌이나 삼촌의 아들, 곧 사촌이 무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가까운 살붙이도 무를 수 있었다(레 25:47-49). 그러나 팔린 종에게 고엘이 되어 주려면 혈연적으로 가까워야 하고, 값을 치를 능력이 있어야 하며, 기꺼이 무르려는 마음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 조건을 완전히 갖춘 우리의 고엘(기업무를 자)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기꺼이 사람이 되어 우리와 같이 피와 살을 함께 나누셨다. 그리고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히 2:11-14). 그런데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으므로 우리의 죄값을 치를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놓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 보아스가 룻을 덮고 기업을 되찾아 주었듯이 예수님은 자기 피로 우리를 사서 잃어버린 생명과 기업을 회복하셨던 것이다.
셋째, 가옥을 무르는 규례를 보자(레 25:29-34). 이때에는 집이 어디에 있고 누구의 집이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성벽이 없는 마을 안쪽의 집의 경우는 토지처럼 희년이 되면 원주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했지만, 만약 성벽 있는 성읍의 집은 판 뒤 일 년 안에 무르지 않으면 산 사람의 영구적인 소유가 된다고 하셨다(레 25:29-31). 필자는 성벽에 붙은 집을 기생 라합의 집과 같이 멀리 내다보는 파수꾼의 사명을 가진 자와 연결하여 이해한다(수 2:15). 시대를 먼저 보고 경고해야 할 사람이 죄로 인하여 자신의 사명을 팔아 버렸다면 지체하지 말고 빨리 회개하여 그 사명을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정한 때를 넘기면 그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위 지파의 경우는 레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옥을 무를 수 있었다. 혹시 물어줄 사람이 없으면 희년이 되면 응당 레위 사람에게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었다(레 25:32-34)
그런데 이러한 고엘의 원리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필자가 교회 건물을 마련할 힘이 없었을 때 누나와 매형이 동생의 사명을 알아보고 자기 재산을 드려 교회 명의로 마련하도록 도왔다. 어린 시절에는 누나가 어두운 부엌에서 설거지할 때 필자가 늑대 소리를 두려워하면서도 곁을 지켜 주었다. 혈육이 서로를 지킨 작은 사랑이 세월 뒤에는 사명을 살리는 큰 헌신으로 돌아왔다. 가까운 친족은 어려움에 빠진 가족의 기업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매형과 누님 가족은 물질적으로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어떤 인간 친족도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기업을 되찾아 줄 수는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의 값을 완전히 치를 수 있는 참된 고엘이시다. 성도는 그분의 속량(贖良, redemption)을 받아 자유인이 되고, 이어 가족을 위해 값을 치르는 사랑과 회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고엘 제도는 우리를 찾아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며,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속한 가족을 살려야 할 책임이 함께 있음을 보여 준다.
8. 회개하는 성도는 가족의 기업과 영적 자유를 어떻게 되찾는가?
그런데 희년이 되기 전에 땅과 집과 종을 되돌려주는 고엘 제도는 자신의 혈통과 관계없는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자기와 피를 나눈 가까운 친족만이 실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가족을 위한 회개의 영적 원리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즉 자기 조상이 지은 우상숭배와 음란과 살인과 무속의 죄로 인하여 나와 내 후손에게 악한 영이 내려왔다면, 누가 그것을 끊어 주어 자유롭게 놓아 줄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나의 혈통에 속한 자여야 한다. 나와 피를 나눈 가까운 사람이 내 조상의 죄를 대신 자백함으로써 저주의 사실을 끊어줄 수 있는 것이다. 혹시 부모가 회개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더라도 상관없다. 그의 자녀가 그 죄를 찾아 회개함으로 내려온 영을 내보낼 수 있다.
자녀를 위한 회개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영적으로 어리고 죄에 묶여 스스로 회개하지 못한다면 부모가 먼저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철저히 회개함으로 자녀의 사슬을 풀어줄 수 있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는 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부모가 깨끗해진 뒤 자녀에게 역사하는 악한 영을 불러내어 예수 이름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회개와 축사(逐邪, deliverance)의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자기 속의 영을 뽑을 때보다 자녀에게서 불러온 영을 뽑을 때 더 큰 고통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다. 이는 가까운 혈육을 살리는 일에는 그만큼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을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이것은 자녀의 책임을 아예 삭제해 준다는 뜻이 아니다. 가족을 위한 대신 회개는 악한 영이 붙잡은 혈통의 근거를 제거하고 회개할 길을 열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후에 자녀가 깨닫고 자기 죄를 직접 회개하고 또한 믿음으로 순종하면 그에게 드리워진 저주의 사슬을 끊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직 본인이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가까운 친족이 고엘처럼 앞서 값을 치르는 수고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다. 죄를 구체적으로 찾아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그 죄와 관계된 우상과 물건과 습관을 끊으며, 악한 영에게 떠나갈 것을 명하는 과정이다. 자신이 먼저 정결해져야 가족의 영을 받아서 쫓아낼 힘이 생긴다. 자기 속에 악한 영이 가득한 채 자녀의 문제만 해결하려 하면 싸움을 감당하기 어렵다.
고로 가족을 위한 회개는 희년의 네 가지 회복을 가져오게 한다. 육체라는 땅이 안식을 얻게 하고, 마귀의 종 된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며, 잃어버린 하늘의 기업을 되찾아 주고,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에게 돌아가게 해 준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와 형제자매가 함께 회개한다면, 한 사람만의 회복을 넘어 가문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로 돌아가는 단체적인 성결이 일어날 수 있다. 자녀가 부모와 조상의 죄를 대신 회개하면 부모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길이 열리고, 부모가 자녀를 위해 회개하면 자녀가 악한 영의 속박에서 벗어나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이 원리를 알면 가족이 완고하다고 해서 가족 전도를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해준다. 자녀가 회개하지 않고 방황한다고 정죄만 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더 깊이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조상들의 죄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원망하기보다, 나를 통하여 그 죄의 사슬을 끊으시려는 통로가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내가 먼저 구원받고 회개의 길을 알게 된 것은 가족 전체를 천국으로 이끄는 파수꾼이 되라는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무르는(되돌리는, 회복케 하는) 일의 궁극적인 능력은 예수님의 피에 있다. 우리의 회개가 값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값을 치르신 그리스도의 피를 가족에게 적용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참된 고엘로서 우리를 덮어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 이름과 권세를 의지하여 부모와 자녀와 형제의 영적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가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먼저 믿은 자가 가족의 파수꾼이 되어 조상의 죄와 자기 죄와 자녀의 죄를 회개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악한 영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회개가 가정으로 번지고 가정의 회개가 교회 공동체의 성결로 이어질 때 희년의 원상회복이 오늘 우리 가운데 실제가 된다.
9. 나오며
레위기 25장의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 그리고 토지와 가옥과 종을 무르는 고엘 제도가 단체적인 성결을 어떻게 이루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개인이 혼자 거룩해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제사장과 백성, 채권자와 채무자, 주인과 종,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등잔대와 진설병은 교회의 협력을 보여 준다. 성도는 순결한 감람기름과 고운 가루를 가져오듯 은사와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주의 종은 그것을 받아 성령의 빛과 신선한 생명의 말씀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서로가 자기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때 공동체 전체가 밝아지고 말씀으로 성장해야 한다.
안식년은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면제년은 사람이 하나님의 종임을 선포한다. 희년은 땅을 쉬게 하고 종을 놓아주며 기업을 되돌리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하는 완전한 원상회복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희년과 고엘로 오셔서 자기 피로 죄의 빚을 갚고 우리를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하며 하늘 기업과 하나님 가족을 되찾게 하셨다.
이 은혜는 회개하는 자에게 적용된다. 조상의 죄와 자기 죄와 자녀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며, 가까운 가족을 위한 영적 싸움을 감당해야 한다. 자신부터 정결해지고 가족의 파수꾼이 되어 한 사람의 자유가 온 가문의 회복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몸과 재물과 은사와 사명은 우리의 영원한 소유가 아니다. 청지기로서 그것을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전하며 공동체를 거룩하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희년의 자유와 기업과 가족을 회복하고 온 가정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16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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