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1(수) 수요기도회(정제된 요약 글)
제목: [레위기강해(13)] 정결법(06) 생명과 피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관계(레위기 17:1~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GJ8ydeVDaU
레위기는 어떤 책인가? 레위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백성이 어떻게 속죄받고, 어떻게 정결하게 되며, 어떻게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다. 레위기를 단지 제사 규정의 모음으로 읽으면 그 깊이를 놓친다. 레위기 안에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만나시는 길, 더러워진 사람을 깨끗하게 하시는 길, 그리고 깨끗하게 된 사람을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시는 길이 들어 있다.
레위기 17장은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다. 앞쪽으로는 제사법과 정결법을 돌아보게 하고, 뒤쪽으로는 성결법을 열어 준다. 이 장이 피를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제사법에서 피는 죄를 덮는 수단이었다. 정결법에서 피는 더러움을 씻고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성결법으로 넘어가면 사람은 이제 피로 속죄받고 물로 씻김받은 자답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레위기 17장의 첫 명령은 이스라엘 사람이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잡을 때, 진영 안에서 잡든 진영 밖에서 잡든 회막 문 앞으로 가져오라는 것이다(레 17:3~4). 이것은 얼핏 보면 도살 장소에 관한 규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피를 보호하고 우상숭배를 차단하기 위한 규례다.
레위기 17장의 가장 반복되는 명령은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거류하는 타국인에게도 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레 17:10). 피를 먹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매우 엄중한 명령이다.
레위기 17장의 중심 문장은 11절이다. 이 한 절 안에 피와 생명과 속죄가 모두 들어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이 세 문장은 피의 신학을 완성한다.
레위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읽으면, 세 단어가 선명하게 보인다. 피, 물, 성령이다. 피는 제사법의 중심이고, 물은 정결법의 중요한 수단이며, 성령은 성결법의 완성을 보여 준다. 구약의 레위기는 이 세 흐름을 예표로 보여 주고, 신약의 그리스도는 이 세 흐름을 실제로 완성하신다.
예수의 피는 교리적인 표현에 머물지 않는다. 예수의 피는 실제 능력이다. 레위기 17장이 피를 먹지 말라고 엄중히 명한 이유도 피가 장차 예수의 피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예수의 피는 성도에게 최소 일곱 가지 유익을 준다.
레위기 17장의 피 규례는 오늘 성도에게 실제적인 적용을 요구한다. 구약 백성은 짐승의 피를 먹지 말아야 했다. 오늘 성도는 예수의 피를 흔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구약 백성은 피를 회막 앞에서 다루어야 했다. 오늘 성도는 예수의 피를 십자가와 하나님 앞에서 경외함으로 다루어야 한다. 구약 백성은 피를 생명과 속죄의 표지로 보아야 했다. 오늘 성도는 예수의 피를 생명과 속죄와 정결과 승리의 실제 능력으로 믿어야 한다.
레위기 17장이 생명과 피와 그리스도의 보혈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레위기 17장은 정결법의 마지막에 놓여 있으면서 성결법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 이 장은 피를 통하여 제사법의 속죄와 정결법의 씻음과 성결법의 거룩함을 하나로 묶어 준다.
[설교핵심]
이 설교는 레위기 17장을 바탕으로 생명과 피의 신성함, 그리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심도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구약의 제사법과 정결법이 궁극적으로 인류를 정결케 하는 물과 피를 남기신 예수의 사역을 예표하며, 특히 피가 곧 생명이기에 함부로 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이 설교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단순한 상징을 넘어 죄 사함과 사탄의 참소를 이기는 실제적인 영적 권세임을 강조하며, 신자들이 삶의 현장에서 이 보혈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의지하고 선포할 것을 권면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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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1(수) 수요기도회(투박한 요약 글)
제목: [레위기강해(13)] 정결법(06) 생명과 피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관계(레위기 17:1~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레위기 강해도 어느덧 열세 번째 시간에 이르렀다. 이 시간에 다룰 본문은 정결법의 마지막 부분, 곧 레위기 17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이다. 이 본문의 핵심은 "피"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생명과 피"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가 레위기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깨끗하게 하는 방식이 누가 무엇을 주관하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제사장이 주관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통해 죄를 해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 각자가 스스로 정한 절차를 따라 몸과 옷을 씻어 깨끗하게 되는 방식이다. 앞의 것을 '제사법'이라 부르고, 뒤의 것을 '정결법' 혹은 '성결법'이라 부른다.
레위기 17장은 바로 이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본문이다. 짐승을 잡아 먹으려 할 때에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 할 때에도 반드시 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피에 관한 규례 속에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흘리실 피에 대한 예표가 짙게 배어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 17장에 나타난 물과 피의 원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연결되며, 그 피가 오늘의 성도들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레위기가 나누는 제사법과 정결법·성결법의 차이는 무엇인가?
레위기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 책 전체를 그저 "제사에 관한 규례집"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기 쉽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레위기의 원제목은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라는 뜻을 지니는데, 이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구체적인 삶의 규례를 세세히 일러 주셨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법이고, 11장부터 27장까지는 정결법과 성결법이다. 제사법의 핵심은 속죄에 있다. 물론 제사 가운데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처럼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의무가 아닌 것들도 있지만, 속죄제와 속건제처럼 반드시 드려야만 하는 제사, 곧 드리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제사가 이 부분의 핵심을 이룬다. 반면 11장부터는 성격이 달라진다. 정결하게 되는 것, 곧 깨끗하게 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여기서 의무제와 자원제의 차이를 분명히 짚을 필요가 있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레 4:2 누구든지 부지중에 죄를 범하되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어겨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면
이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죄를 범한 자라면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제사다.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그 죄가 그대로 남아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는 이와 다르다. 이 제사들은 드리고 싶은 자가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로서,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즉각적인 심판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제사법의 진짜 핵심은 번제나 화목제 같은 자원제가 아니라, 속죄제와 속건제 같은 의무제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오직 속죄, 곧 죄사함을 받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 두 부분을 나누는 진짜 기준은 무엇일까. 많은 주석가들이 11장부터 27장까지를 통째로 성결법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통째로 정결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구분의 실마리가 바로 레위기 17장 1절과 2절에 나타나 있다.
레 17: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두 부류로 나누신다. 하나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제사장들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 곧 일반 백성이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이다. 제사장이 주관이 되어 드리는 일을 다룬다는 뜻이다. 그러나 11장부터 27장까지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주신 명령이다. 백성 각자가 스스로 부정하게 되었을 때, 곧 무엇을 먹어서든 무엇에 접촉해서든 부정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씻고 옷을 빨고 필요하면 속죄제나 번제를 드려 나아가는 절차를 규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법과 정결법을 나누는 기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제사장이 주관적으로 드리는 것이 제사법이고, 일반 백성이 스스로 부정을 처리하기 위해 정해진 절차를 밟아 나가는 것이 정결법이다. 이렇게 구분하면 학자마다 견해가 갈리는 11장 이후의 본문을 훨씬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3. 정결법과 성결법은 어떻게 다르며 그 구분 기준은 무엇인가?
11장부터 27장까지를 다시 둘로 나눌 수 있다. 11장부터 17장까지, 곧 이 시간에 다루는 본문까지는 정결법이라 부르고, 18장부터 27장까지는 성결법이라 부른다. 정결법이라는 말은 "깨끗하게 하다"는 뜻이고, 성결법이라는 말은 "거룩하게 하다"는 뜻이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방법이 서로 다르다.
정결법에 속한 본문들을 살펴보면 그 방법이 대체로 물로 씻고 옷을 빨고 몸을 씻은 후 필요하면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11장은 음식법으로서 부정한 짐승에 접촉하지 말라는 규례를 담고 있고, 12장은 해산 후 여인이 어떻게 정결하게 되는지를 다루며, 13장과 14장은 나병에 관한 규례, 15장은 유출병에 관한 규례를 담고 있다. 나병에 관한 규례를 보면 그 절차가 얼마나 엄격했는지를 알 수 있다.
레 13:45-46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는 혼자 살되 진영 밖에 살지니라
나병에 걸린 사람은 진영 밖으로 나가 홀로 지내야 했고, 제사장의 검사를 거쳐 병이 나은 것이 확인되어야만 다시 물로 씻고 정결 예식을 통해 진영 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처럼 11장부터 16장까지 이어지는 정결법은 각기 다른 상황을 다루지만, 그 처리 방식은 한결같이 물로 씻거나 피를 드리는 절차로 귀결된다. 16장은 대속죄일 제사로서 사람만이 아니라 지성소라는 장소까지 정결하게 하는 절차를 다룬다. 이 모든 경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물과 피다. 몸을 씻고 옷을 빨 때는 물이 필요하고, 제사를 드릴 때는 피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결법의 핵심 도구는 물과 피라고 정리할 수 있다.
반면 18장부터 시작되는 성결법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18장에서는 가족 간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규례, 곧 가족 간의 성적 관계를 금지하는 규례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몸을 씻으라거나 제사를 드리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인륜의 도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결법에서는 물로 씻거나 제사를 드리는 절차 대신, 보다 적극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요구된다.
거룩하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째는 구별되었다는 뜻이고, 둘째는 깨끗하다는 뜻이다. 세상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성결이다. 예를 들어 재물을 벌어도 그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겨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그러하다. 레위기는 이 원리를 이렇게 명시한다.
레 27:30 십일조는 여호와의 것이니 땅의 소산물이든지 나무의 열매든지 여호와의 성물이라
내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태도, 그것이 곧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이다. 세상 사람은 자기가 번 것을 자기 마음대로 쓰지만, 성결한 백성은 자기 소유조차 하나님 앞에 구별하여 드린다.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역시 성결법에 속한 삶의 방식이다.
성결법의 범위 안에는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규례도 포함되어 있다. 매년 돌아오는 절기를 지키는 것, 칠 년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을 지키는 것, 오십 년마다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희년을 지키는 것은 모두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방식이다. 세상 사람은 시간을 오직 자기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지만, 구별된 백성은 시간의 일부를 떼어 하나님께 돌려드린다. 이 역시 성결의 한 단면이다.
이 구별됨의 원리는 한 민족 전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아가서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신부의 고백을 이렇게 노래한다.
아 2: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사론의 수선화는 흔히 무궁화와 연결되어 이해되기도 하는데, 이는 세상과 구별되어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백성은, 마치 꺾으려 해도 쉽게 꺾이지 않는 무궁화의 줄기처럼 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술을 마셔도 확실히 마시고 죄를 지어도 확실히 짓듯이, 한번 예수를 믿으면 죽기까지 붙드는 신앙의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질 자체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그 기질이 온전히 주님을 향해 쓰일 때 세상과 구별된 성결한 백성이 세워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예화다.
또한 하나님이 이 땅을 자연재해로부터 지켜 주시는 것 역시 구별하여 보호하시는 은혜의 한 단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큰 지진이나 태풍이 인접한 지역을 덮쳐도 유독 이 땅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은, 감사를 모르는 자리에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되새기게 한다. 감사를 모르면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구별된 백성은 이러한 보호하심 앞에서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결국 정결법이 물과 피로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면, 성결법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별된 삶을 살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 레위기 17장에서 물과 피는 무엇을 예표하고 있는가?
정결법의 핵심 도구가 물과 피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강하게 예표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을 신약에서 분명하게 증언한다.
요일 5:6-8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실 이유가 전혀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셔서 육신을 입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 그 육신은 가지고 가셨지만, 이 땅에 남기고 가신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물과 피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 내셨다.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며 온몸으로 피를 흘리셨고, 마지막에는 창에 옆구리를 찔려 물과 피가 함께 흘러나왔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에는 피와 물이 다 빠져나가고 뼈만 남아 십자가에서 내려지신 것이다.
이 사실은 복음서의 증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요 19:34 그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이미 숨을 거두신 뒤였지만, 군인의 창이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함께 흘러나왔다. 이는 우연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레위기가 정결법을 통해 예비해 온 물과 피의 원리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문자 그대로 성취된 사건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사법에서는 주로 짐승의 피가 사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소제처럼 피가 사용되지 않는 제사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제사법의 핵심 도구는 피다. 그런데 정결법에서는 물과 피가 함께 사용된다. 이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제사법의 피가 장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죄하실 피를 예표한다면, 정결법의 물과 피는 그리스도께서 장차 우리를 속죄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일에도 그 피가 사용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 두 가지 기능을 함께 언급한다.
요일 1:8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구약의 언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이는 곧 "속죄하며 정결하게 한다"는 뜻이다. 다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죄는 덮인다. 그러나 실제로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는 죄를 자백하는 절차, 곧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 왜 하필 물과 피가 선택되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값을 이렇게 설명한다.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은이나 금은 아무리 값비싸도 결국 없어질 재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 레위기가 짐승의 피 하나하나를 그토록 소중히 다루도록 규정한 것은, 장차 이 보배로운 피가 이 땅에 임할 것을 예비하시려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였다.
이와 함께 물이 상징하는 바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신약은 물로 씻는 예식, 곧 세례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표징으로 제시한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물이 몸을 씻어 정결하게 하듯,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음을 나타내는 표다. 레위기의 정결법이 물로 몸을 씻게 한 것과, 신약이 세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것은 결국 같은 흐름 위에 있다.
5. 하나님은 왜 짐승의 피를 먹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는가?
사실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레위기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이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시면서도 이 명령을 함께 주셨다.
창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니라, 노아의 언약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7장의 규례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창세기 이래로 이어져 온 원리를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절차로 세밀하게 재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레위기 17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절부터 9절까지는 짐승을 잡을 때 그 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다루고, 10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먼저 3절과 4절을 보면, 음식으로 취하기 위해 짐승을 잡을 때에 관한 규례가 나온다.
레 17:3-4 이스라엘 집의 그 어떤 사람이든지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그것을 회막 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피를 흘린 자로 여겨질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그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여기서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라는 세 짐승이 언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세 짐승은 레위기 3장과 7장에서 이미 화목제물로 규정된 짐승들이다.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 달리 헌제자 자신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제사다. 그런데 레위기 3장은 화목제를 드릴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규례를 이렇게 명시한다.
레 3:16-17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기름과 피는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곧 화목제를 드릴 때는 기름과 피를 하나님께 드리고, 흔든 가슴과 오른편 뒷다리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며, 나머지 고기만 헌제자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레위기 7장은 이 화목제의 규례를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
레 7:30-32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로 삼고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로 삼을지니
또한 화목제 가운데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와 서원이나 자원함으로 드리는 제사는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한이 서로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
레 7:15-17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의 고기는 드리는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제물이면 드리는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는 그날 안에 다 먹어야 하고, 서원이나 자원하는 제사는 이튿날까지는 먹을 수 있으나 셋째 날까지 남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밀한 규정을 두신 것은 화목제물조차 함부로 여기지 않도록 하시려는 뜻이었다. 이어서 7장은 기름과 피를 먹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엄히 경고한다.
레 7:23, 26-27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조금도 먹지 말 것이요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나 짐승의 피든지 무슨 피든지 먹지 말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은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이처럼 화목제물을 드릴 때든 그저 고기를 먹기 위해 짐승을 잡을 때든, 기름과 피만큼은 절대로 사람이 취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했다. 그러므로 백성이 그저 고기를 먹고자 짐승을 잡을 때에도 반드시 회막 문 앞으로 끌고 와서 잡아야 한다. 그래야 피가 하나님께 돌려지고, 백성은 피를 먹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 진영이나 집에서 사사로이 잡는다면 그 피를 함께 먹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도 선짓국을 먹는 문화가 남아 있듯이, 옛사람들도 짐승을 잡으면 그 피를 국으로 끓여 먹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5절부터 7절은 들에서 제사를 드리던 옛 습관을 다룬다.
레 17:5-7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그들의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하며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 문 여호와의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 그들이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는 제물을 드리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있을 때부터 들에서 숫염소나 송아지 같은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던 습관에 젖어 있었다. 애굽에는 숫염소를 신격화하여 섬기는 신앙이 있었고, 무엇보다 송아지를 신 가운데 최고로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사건 역시 바로 이 애굽에서부터 몸에 밴 우상숭배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의 신들을 섬기던 그 습관이 광야에 나와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반드시 회막 문 앞으로 제물을 가져오도록 규정하신 것이다.
결국 음식으로 취하기 위해서든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든, 짐승을 잡는 자리는 반드시 여호와의 성막 앞이어야 했다. 이는 피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경외함으로 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피를 계속해서 흘리는 것을 지켜보면 사람의 마음은 점점 잔인해지기 마련이다. 피를 보면 사람은 흥분하게 되어 있고, 그 흥분은 더 큰 폭력을 낳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를 다루는 자리와 절차를 엄격히 제한하신 것이다.
6. 피 속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10절부터는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제시된다.
레 17:10-12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누구든지 무슨 피든지 먹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자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어느 누구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이 말씀의 핵심은 분명하다. 피에는 생명이 있고, 피를 흘리면 생명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를 먹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살생, 곧 생명을 해치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 이어지는 13절과 14절은 스스로 죽었거나 다른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에 대해서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다.
레17:13-14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사냥하여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잡으면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어떤 육체의 피든지 너희는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것을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사냥한 짐승이라 할지라도 그 피는 반드시 땅에 흘려 흙으로 덮어야 했다. 이는 피 안에 아직 처리되지 않은 생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를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하신 이유는, 단지 위생이나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에서 상대방을 죽인 뒤 그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풍습을 지녔던 부족들이 있었다. 이는 자신들이 용맹한 부족임을 과시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의 본질은 결국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피를 먹는다는 것은 반드시 그 생명체를 죽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피만 뽑아내고 생명은 살려 주는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를 먹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살생과 살인의 죄를 전제하고 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피를 먹지 말라는 계명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는 구원받을 기회를 얻을 수 없기에,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것을 엄격히 금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에는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신약의 히브리서 기자는 이 원리를 그리스도의 피와 직접 연결시킨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리고 히브리서는 짐승의 피로는 근본적인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히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같은 히브리서는 율법 전체의 성격을 이렇게 규정한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레위기가 짐승의 피를 두고 그토록 세밀하게 규정한 모든 절차는, 결국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오시기까지 그 그림자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짐승의 피는 예행 연습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다.
이 지점에서 짐승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를 짚어야 한다. 대제사장은 해마다 다시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 한 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해마다 반복해서 드려야 하는 짐승의 피는 그 자체로 온전한 속죄를 이루지 못한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의 피 흘림으로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셨다. 이 사실은 오늘의 성도가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할 때, 그 속죄의 효력 자체는 이미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다만 성도가 매일의 삶 속에서 그 피의 은혜를 붙들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은, 속죄가 반복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그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힘입어 살아간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이 사실을 친히 선언하셨다.
마 26:27-28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이 구약에서부터 짐승의 피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명하신 것은, 결국 장차 흘려질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미리 깨닫게 하시려는 뜻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참된 속죄와 정결과 거룩을 이루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7.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성도에게 어떤 효능을 가져다주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효능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속죄의 효능이다. 속죄라는 말은 히브리어 카파르에서 왔는데, 이는 본래 "덮다"라는 뜻이다. 아가서에는 이 단어와 어원이 닿아 있는 표현이 나온다(아 1:14). 또한 창세기에서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사용한 재료를 가리키는 말에도 같은 어원이 등장한다(창 6:14). 방주 안팎에 역청을 발라 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덮은 것처럼, 속죄란 죄를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덮어 물이 새어 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에스겔서에는 이 단어가 그룹 천사를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된다(창 6:14).
아 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창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고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겔 28:13-14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여기서 "지키는 그룹"으로 번역된 표현은 원어의 뜻을 살리면 "덮는 그룹"이다.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에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는데, 그 십계명이 드러나면 죄가 정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속죄소를 피로 덮어야 했다.
레 16:14 아론은 그 피로 손가락에 찍어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이렇게 속죄소를 피로 덮음으로써 십계명이 드러나 정죄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속죄, 곧 덮음의 원리다.
둘째는 칭의의 효능이다. 죄를 덮어 버리시니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다. 바울은 이 칭의의 은혜를 다른 곳에서 이렇게도 표현한다(고후 5:21).
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를 스스로 다 씻어 낸 다음에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죄가 덮이고, 그 위에 생명이 심겨져 거듭나게 된다.
셋째는 보호의 효능이다. 출애굽 당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은 재앙에서 보호를 받았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넷째는 죄에서 깨끗하게(정결케) 하는 효능이다.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정결의 효능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이 아니라 양심 깊은 곳까지 미친다.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짐승의 피가 몸을 씻어 겉을 정결하게 했다면,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을 씻어 속사람을 정결하게 한다.
다섯째는 악한 영을 쫓아내는 축사의 효능이다. 성경은 사람을 괴롭히는 영을 가리켜 더러운 영이라 부르는데, 예수의 피는 이 더러운 영을 물리치는 데 능력이 있다. 다만 이 효능은 회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진실한 회개 없이 예수의 이름만 외운다고 해서 악한 영이 순순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회개한 사람에게 예수의 피가 임하면 악한 영과 그 사람 사이의 결속이 끊어지고, 그 영을 몰아내는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러한 권세로 더러운 영을 명하여 나가게 하신 사건을 증언한다.
막 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여섯째는 치유와 생명력의 효능이다.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상한 마음과 상한 몸이 회복되는 은혜가 함께 임한다.
요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이 치유의 근거는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마련된 것이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신 것은 단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우리의 상함과 아픔까지도 담당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자는 영적인 회복만이 아니라 육신의 회복까지도 구할 수 있다.
또한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가운데 하나로 이렇게 증언한다.
막 16: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는 예수의 생명이 성도 안에 거하실 때, 육신에 가해지는 위협조차 능히 이겨 낼 수 있는 생명력이 부어짐을 보여 준다.
일곱째는 사탄을 이기는 능력이다.
계20:11-12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속죄와 칭의와 보호와 정결과 축사와 치유와 승리라는 일곱 가지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짐승의 피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도록 명하신 것은, 바로 이 놀라운 효능을 지닌 그리스도의 피를 미리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
8. 예수의 피를 오늘의 신앙생활에서 어떻게 실제로 활용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육신은 가지고 가셨지만 물과 피를 남기고 가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피를 일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피를 힘입어 나아가라고 권면한다.
히 10:19, 22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기에도 물과 피가 함께 등장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마음은 피 뿌림으로 깨끗하게 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 언약의 피를 부활의 소망과도 연결시킨다.
히 13: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그 피는 곧 영원한 언약의 피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피를 붙들고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는 차원을 넘어 부활의 소망까지 붙드는 것이다. 다만 그 전제는 언제나 회개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를 자백하지 않은 채로 예수의 이름과 피를 형식적으로 되뇌는 것만으로는 실제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하게 회개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그 피가 실제적인 능력으로 역사한다. 실제 목회 현장에서는 이 피를 "뿌리고 바르고 덮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선포하며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장례식장처럼 악한 영의 활동이 짙은 장소에 들어갈 때 이렇게 선포하며 들어가면, 그 효력이 두세 시간가량 지속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시간이 지나 자리를 옮기거나 다시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되면, 또다시 예수의 피를 뿌리고 바르고 덮는다고 선포해야 한다. 한 번 선포했다고 해서 평생 유효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바뀔 때마다 다시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가정이나 자녀의 방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질 때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자녀가 방문을 닫아 놓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색을 보이거나, 세상을 떠난 가족이 계속해서 나타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을 방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위험한 상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속히 교회에 알리고 그 자리에 예수의 피를 선포하며 처리해야 한다. 또한 공동묘지였던 땅 위에 세워진 집이나, 이전 거주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우상숭배 행위를 많이 행했던 장소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자주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장소를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꿈속에서 두려운 영적 존재를 마주하거나 영적으로 눌리는 일이 있을 때에도, 예수의 피를 부르며 그 이름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만약 꿈속에서 예수의 피를 선포하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아직 믿음이 온전히 서지 못했거나 회개할 부분이 남아 있다는 신호이므로 속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이 증언하는 것처럼 어린 양의 피가 실제로 참소하는 자를 물리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사람의 피를 흘리는 첫 계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피를 함부로 대하는 문화, 피를 보고 흥분하는 문화는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반대로 예수의 피를 존귀하게 여기고, 그 피가 지닌 속죄와 정결과 보호와 치유와 축사와 승리의 능력을 매일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붙들어야 한다. 결국 레위기 17장이 짐승의 피를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그토록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오늘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지를 미리 가르쳐 주는 그림자였던 셈이다.
9. 나오며
지금까지 레위기 17장에 나타난 생명과 피의 원리를 통해 제사법과 정결법의 구분, 정결법과 성결법의 차이, 물과 피가 예표하는 그리스도, 피를 먹지 말라는 규례의 이유,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일곱 가지 효능을 살펴보았다. 레위기는 제사장이 주관하는 제사법과, 백성 스스로 깨끗함을 이루어 가는 정결법,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별된 삶을 사는 성결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정결법의 핵심 도구인 물과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남기고 가신 물과 피를 예표하며, 이는 장차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속죄와 정결을 이루실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였다.
노아 시대부터 이어져 온 피에 관한 원리는 레위기에 이르러 회막 문 앞이라는 구체적인 자리와 절차로 세밀하게 규정되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그림자가 실체로 완성되었다. 짐승의 피가 해마다 반복되어야 했던 것과 달리, 그리스도의 피는 단 한 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가 날마다 그 피를 붙드는 것은 속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그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짐승의 피조차 함부로 먹지 못하게 하시고 반드시 회막 문 앞에서 처리하도록 엄격히 규정하신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시려는 뜻과 더불어 장차 흘리실 그리스도의 피가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려는 뜻이었다. 성도는 이 사실을 깊이 새겨,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속죄와 칭의와 보호와 정결과 축사와 치유와 승리의 능력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날마다 붙들어야 한다. 또한 회개 없이 그 피를 형식적으로만 의지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죄를 자백하는 삶을 통해 실제로 깨끗해지는 은혜를 누려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고 가신 물과 피의 은혜를 날마다 새롭게 붙들며, 속죄와 정결과 거룩함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01일(수)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