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2(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16)] 성결법(03) 제사장의 성결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레위기 21:1~22:3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_3yLP-W86vg
레위기강해(16)
성결법(03) 제사장의 성결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
(레 21:1-22:3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레위 지파를 구별하시고, 그중에서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주신 후에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제사장들은 백성의 죄를 속죄하고, 부정해진 것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와야 했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단지 제사의 절차를 기록한 옛 율법이 아니다.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며, 속죄받은 백성이 어떻게 깨끗해지고, 마침내 어떻게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다.
레위기의 큰 구조도 이 세 단계를 보여 준다. 1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와 제사장 위임을 통하여 속죄의 길을 다루고, 11장부터 17장까지는 음식과 출산과 나병과 유출병과 대속죄일과 피의 규례를 통하여 정결의 길을 다룬다. 이어 18장부터 27장까지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하는지를 다룬다. 18장부터 20장까지가 일반 백성의 성결례라면, 21장과 22장은 제사장과 대제사장 그리고 그들이 다루는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다.
'속죄'와 '정결'과 '성결'은 서로 이어지지만 같은 말은 아니다. '속죄'는 피로 죄를 덮어 하나님 앞에서 죄 없는 자처럼 여김받게 하는 것이고, '정결'은 물과 피로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다. '성결'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실제로 살아 내는 것이다. 특히 구약에서는 성결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버리고 “하라”는 명령을 행함으로 거룩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렇지만 신약시대 들어와서는 거룩한 성령께서 믿는 자 안에 내주하시며 그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도록 이끄신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달랐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거룩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특히 제사장에게는 일반 백성보다 더 엄격한 성결이 요구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 앞에 서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 주며, 거룩한 성물과 제물을 다루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제사장 자신이 더러우면 그가 전하는 말씀과 그가 드리는 제사까지 욕되게 보일 수 있었다. 오늘날 영적 지도자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많이 알고 많이 맡은 자일수록 더 철저히 회개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눅 12:47-48).
특히 레위기 21장과 22장은 제사장과 성물 및 제물에 관한 성결례로서, 시체 접촉과 애도의 관습, 혼인, 육체의 흠, 성물의 취급과 제물의 조건까지 세밀하게 규정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겉모습만 보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자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조금이라도 속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는 규례로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의 속죄와 정결과 성결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제사장과 대제사장에게 왜 더 높은 성결이 요구되었는지, 시체와 혼인과 육체의 흠에 관한 규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를 오늘날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레위기의 속죄·정결·성결은 어떻게 다르며 서로 연결되는가?
먼저 '속죄'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죄를 가리는 일이다. 레위기 1장부터 7장까지의 다섯 제사와 8장부터 10장까지의 제사장 위임 규례는 피 흘림을 통하여 죄인이 용서받는 길을 보여 준다. 짐승의 피는 장차 흠 없는 어린양으로 오셔서 단번에 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속죄가 없다면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므로 속죄는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죄가 덮였다고 해서 삶에 묻은 모든 더러움이 저절로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레위기 11장부터 17장까지는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해산한 여인, 나병과 유출병, 시체 접촉, 대속죄일과 피의 규례를 다룬다. 부정해진 사람은 물로 씻고 정해진 기간을 기다리며, 필요한 경우 피의 속죄를 받아야 했다. 정결은 죄와 부정으로 더러워진 것을 씻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상태로 회복하는 과정이다.
성결은 깨끗해진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별되어 사는 단계다. 레위기 18장부터 20장까지는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우상숭배와 음행과 근친상간과 동성 간의 성행위를 버리며, 십계명에 순종하라고 명한다. 성결에는 금지와 명령이 함께 있다.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끊는 소극적 순종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절기와 안식년과 희년과 예물을 지키는 적극적 순종이 함께 있어야 한다.
레위기의 중심 명령은 “거룩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그분의 백성도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말씀을 행하여 거룩해야 한다(레 19:2, 20:7-8). 거룩함은 막연한 감정이나 종교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하며, 생활의 모든 영역을 그분께 드리는 구별이다.
그러므로 '속죄'와 '정결'과 '성결' 가운데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속죄만 강조하고 삶의 더러움을 그대로 두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정결만 추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없다면 다시 세상의 풍속에 물들게 된다. 반대로 자신의 행위로 거룩해지려 하면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지 않으면 죄 사함의 기초가 없다. 예수의 피로 속죄받고, 죄를 자백하여 깨끗해지며, 말씀에 순종하여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온전한 흐름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목적도 단지 종살이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사는 데 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거룩하게 하시려고 불러내셨다(레 22:32-33).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도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구원받은 사람은 더러움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
3. 구약의 성결법과 신약의 성령·회개를 통한 성결은 어떻게 다른가?
구약의 백성은 돌판과 두루마리에 기록된 '율법'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 말라”는 명령 앞에서 멈추고 “하라”는 명령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했다. 그러나 모든 백성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신 것은 아니었으므로, 말씀을 깨닫고 끝까지 행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율법은 거룩함의 기준을 제시했지만 사람의 내면을 새롭게 하여 그 기준을 이루는 생명까지 공급하지는 못했다.
신약의 성도에게는 거룩한 성령께서 내주하신다(요 14:16). 성도 개인과 교회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지 말라고 깨우치실 때 멈추고, 행하라고 이끄실 때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서도 구원받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전은 거룩하므로 성령을 모신 성도도 거룩해야 한다(고전 3:16-17).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성도를 해방한다고 말했다(롬 8:2). 생명의 성령의 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우리를 이끌지만, 죄와 사망의 법은 육신과 악한 영을 통하여 죄의 충동으로 끌고 간다. 성도는 중립적인 존재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어느 법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지를 날마다 선택해야 한다.
필자가 실제로 영적인 삶에서 씨름하며 깨달은 것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고 선포하는 것만으로 죄의 충동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갈 2:20). 이 믿음의 고백은 중요하지만, 이미 죄를 통하여 들어와 몸과 혼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그대로 두면 같은 유혹과 성질이 또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여 용서받고, 악한 영이 머물 근거를 제거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그 영을 내보내는 회개가 필요하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실 뿐 아니라 악한 영을 밀어내는 힘도 주신다. 필자가 축사 사역을 하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거듭나 성령을 모신 사람 안에서는 성령께서 악한 영을 밖으로 밀어내시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그러한 내적인 힘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체험은 성령의 내주와 회개가 실제적인 정결과 축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필자는 구약 시대에는 주로 죄를 따라 들어온 뱀들이 사람 안에서 역사했고, B.C.400년경 말라기 선지자 이후 B.C.4년 예수님의 탄생 전후에 악한 영들이 하늘에서 집단적으로 쫓겨나면서 신약 시대에는 더 큰 귀신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고 파악하고 있다. 고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뒤 귀신들을 쫓아내신 것도 이러한 영적 전쟁의 순서를 보여 준다(마 4:1-11, 12:25-29). 예수께서는 강한 자를 결박하시고 그의 졸개들을 내보내셨으며, 승천하신 뒤 보혜사 성령을 보내 각 성도가 악한 영을 이기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결은 율법을 폐기하고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마음에 새기신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순종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가 모두 자동으로 처리되었다고 여기며 회개를 버려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죄를 지었으면 자백하고 깨끗함을 받아야 하며(요일 1:9), 회개를 통하여 죄와 사망의 법이 역사할 근거를 제거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구체적인 회개가 함께 갈 때 성도는 실제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4. 제사장과 대제사장에게 더 높은 성결이 요구된 이유는 무엇인가?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구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고, 제사를 집례하며,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고, 백성을 축복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제사장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백성 앞에서 보이도록 드러내는 대표자였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에게 요구되는 십계명의 성결 위에 직분자로서 지켜야 할 더 엄격한 규례가 더해졌다.
제사장이 더러우면 백성은 “당신부터 바로 사시오”라고 말하게 된다. 그의 말과 삶이 다르면 하나님 말씀의 권위까지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고 거룩해야 한다고 명하셨다.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들이었으므로 생활과 몸과 관계를 구별해야 했다(레 21:6).
직분이 높아질수록 자유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이 무거워진다. 예수께서도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않은 종은 많이 맞고, 알지 못하고 잘못한 종은 적게 맞는다고 하셨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고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하신다(눅 12:47-48). 영적인 지식과 은사와 권세를 받았다는 사실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더 철저히 자신을 살펴야 할 이유다.
모세와 아론의 사건도 이 원리를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므리바에서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고 명하라고 하셨지만, 모세는 백성에게 분노하며 반석을 두 번 쳤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책망하셨고, 약속의 땅으로 회중을 인도해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민 20:7-12). 오랜 세월 충성한 지도자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잘못 드러내면 엄중한 책임을 진다.
필자도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한 사람들을 향하여 평소에 하지 않던 거친 말을 한 뒤 깊이 참회했다. 귀신의 집을 많이 파괴하고 오랫동안 회개했더라도 순간의 분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릴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상처와 억울함을 앞세우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입술과 감정을 지켜야 한다.
이 때문에 지도자의 길은 외롭다. 가족의 요구와 성도의 필요가 동시에 놓일 때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무를 먼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사람의 인정과 인간적인 즐거움에서 한 걸음 떨어져 오직 주님과의 관계로 외로움을 이겨야 한다.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은 직분의 명예보다 심판과 책임을 먼저 보아야 한다.
특히 영적 지도자는 회개를 통하여 자기 안의 귀신의 집을 철저히 파괴해야 한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 사람 안에는 여러 귀신의 집이 형성될 수 있고, 사역자가 정결하지 않으면 자기 안의 영을 다시 불러들이거나 성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외부 사역을 하다가 일시적으로 붙은 영은 권세 있는 축사로 떠날 수 있지만, 조상 때부터 죄를 따라 합법적으로 내려와 자리 잡은 영은 본인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의 분량을 채우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기 쉽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될수록 더 오래, 더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5. 시체 접촉과 혼인 규례는 어떤 영적 원리를 보여 주는가?
레위기 21장은 제사장의 성결례를 다룬다. 레위기 21장은 가장 먼저 제사장에게 죽은 자와의 접촉을 제한한다. 일반적으로 제사장은 백성 중의 시체로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지만, 부모와 자녀와 형제 그리고 아직 출가하지 않은 자매 같은 가까운 혈족의 장례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레 21:1-4). 또한 이방인의 애도 풍습처럼, 머리털을 깎고 수염 가장자리를 밀며 몸을 베어서는 안 되었다(레 21:5). 슬픔을 표현하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의 주술적 관습을 따라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대제사장에게는 죽은 자에 대하여 더 엄격한 규례가 적용되었다. 그는 부모가 죽었을 때에도 시체를 가까이하거나 성소에서 나가 자신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다. 하나님의 관유가 그의 머리 위에 있었고, 그는 온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유일한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레 21:10-12). 이는 부모를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섬기는 공적인 직무가 개인의 슬픔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영적으로 풀면 이해가 훨씬 더 잘 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이 죽을 때 그 몸과 주변에는 수많은 악한 영이 자신이 머물 곳을 찾는 시간이기 때문에 장례식장과 시체 접촉은 영적으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혈기와 분노를 내는 일과 시체가 있는 장소에 오래 머무는 일은 악한 영이 많이 달라붙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득이하게 장례식장에 갈 때에는 예수의 피를 바르고 십자가 세우기를 하며, 돌아온 뒤에도 철저히 회개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
필자는 죽은 자를 위한 예배를 성경이 명한 적이 없다고 본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다(눅 9:60). 그러므로 장례식에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는 있지만, 죽은 사람에게 예배를 드리듯 입관예배·발인예배·장례예배를 행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25년 어머니 장례를 치르면서도 예배를 드리지 않고 조문과 기도로 장례를 마쳤다. 이는 레위기의 시체 접촉 규례를 오늘날에 적용한 목회적 판단이다.
이어서 두 번째로 제사장은 혼인 규례도 제한받았다. 일반적으로 제사장은 창녀나 이혼당한 여인과 결혼해서는 안 되었지만 과부와의 결혼은 허용되었다(레 21:7). 그러나 대제사장만큼은 자기 백성 가운데 처녀를 아내로 맞아야 했고, 과부와 이혼당한 여인과 창녀를 아내로 절대 맞이할 수 없었다(레 21:13-15).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직분이 높아질수록 혼인에서도 더 엄격한 구별을 요구하신 것이다.
왜 그런가? 필자는 이 규례를 성관계를 통한 영의 교류라는 원리라고 본다. 부부가 한 몸이 될 때 서로의 가문과 삶을 따라온 영들도서로 오갈 수 있으므로, 여러 남자와 관계한 사람과의 혼인은 제사장의 성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모든 혼인에 구약의 신분 규정을 문자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만, 믿음과 회개의 상태를 보지 않고 외모와 조건만 따라 배우자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 결혼을 준비하는 청년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배우자를 구해야 한다.
이처럼 제사장에게 있어서 시체와 혼인의 규례의 핵심은 접촉과 연합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와 무엇을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영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통하여 섬김받을 성도들을 위해서라도 관계를 분별하고, 부정한 풍속과 음행을 끊으며, 예수의 피와 회개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6. 흠 있는 제사장의 직무 제한을 오늘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아론의 후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제사장 신분을 가진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맹인이나 다리를 저는 자, 코가 불완전한 자, 손발이 부러진 자, 꼽추나 키가 지나치게 작은 자, 눈에 백막이 있는 자, 피부병이 있는 자, 고환이 상한 자처럼 육체에 흠이 있는 사람이 태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제사장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에게 제단과 성소에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지 말라고 하셨다(레 21:16-23).
이 규례는 흠 있는 사람의 생존권이나 제사장 가문의 신분을 박탈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라도 다른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지성물과 성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다만 휘장 안으로 들어가거나 제단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직무는 맡지 못하게 했다(레 21:22-23).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함을 돌보시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성소가 흠 없는 거룩함을 상징하도록 직무를 구별하셨다.
고로 구약에서 제사장과 제물의 외적인 흠 없음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미리 보여 주는 표지였다. 예수님은 죄가 없고 흠이 없는 대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제물이시다(히 7:26-27, 벧전 1:18-19). 그러므로 육체의 흠이 있는 제사장의 직무 제한은 그 사람의 영혼이 덜 귀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모형과 그림자의 시대에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한 규례였다.
신약에서는 이 규례를 근거로 장애인은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구약에 여자 제사장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는 목회자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의 구원의 차별이 철폐되었고 모두 하나가 되었다(갈 3:28). 성령께서는 남종과 여종에게 함께 부어지시며 하나님의 일을 맡기신다(행 2:17-18).
그러나 신약이 육체와 성별의 장벽을 넘었다고 해서 지도자의 성결 기준까지 낮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죄와 상처와 영적 문제를 더 철저히 다루어야 한다. 필자는 장애가 조상의 죄를 통하여 내려온 악한 영의 영향과 관련될 수 있다고 보며, 그러한 경우 당사자가 회개를 통하여 그 영적 배후를 보다 더 철저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장애를 당사자의 죄나 귀신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지만(요 9:1-3), 영적인 원인이 확인된다면 외면해서도 안 된다.
여성이나 장애인이 목회자가 될 때에도 핵심은 성령의 부르심과 철저한 회개와 거룩한 열매다. 사실 남성이나 비장애인도 자기 안의 혈기와 교만과 음행과 탐욕을 처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외형적 조건을 자랑하는 대신 누구든지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직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한다.
이 규례는 교회가 약한 사람을 밀어내라는 말씀이 아니다. 공동체는 육체의 약함이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성물을 함께 누리게 하고, 그의 생계와 존엄을 보호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무는 감정이나 인간관계로 정하지 말고 부르심과 성품과 정결함과 은사와 열매를 분별하여 맡겨야 한다. 긍휼과 거룩함을 함께 지키는 것이 레위기 21장의 균형이다.
7. 제사장은 성물과 제물을 어떻게 거룩하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레위기 22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레위기 22장은 제사장 자신을 넘어 그가 다루는 성물과 제물의 거룩함에 대해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나병이나 유출병에 걸렸거나, 시체로 부정해진 사람과 접촉했거나, 설정했거나, 부정한 벌레나 사람과 접촉했다면 정결해질 때까지 성물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먼저 몸을 물로 씻고 해가 진 뒤에야 정하게 되어 성물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레 22:3-7). 성물이 제사장의 음식이라고 해서 아무 상태에서나 먹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일상적인 물건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제사장이 자신의 부정을 무시한 채 성물에 손을 대면 성물을 욕되게 하고, 그 죄로 죽을 수도 있었다(레 22:9). 거룩한 직분이 성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다룰 책임을 준다.
그리고 성물은 아무나 먹을 수도 없었다. 제사장의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산 종은 먹을 수 있었지만, 외국인이나 제사장의 객이나 품꾼은 먹을 수 없었다. 제사장의 딸이 일반인과 결혼하면 성물을 먹지 못했고, 자녀 없이 과부나 이혼한 여인이 되어 친정으로 돌아오면 다시 먹을 수 있었다(레 22:10-13). 이는 성물이 혈통과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언약 공동체와 질서 안에서만 나누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다. 번제와 화목제 가운데 서원제와 자원제를 드릴 때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중에서 흠 없는 수컷을 드려야 했다. 눈이 멀거나 상하거나 지체가 불완전하거나 종기와 습진이 있는 짐승은 제단에 올릴 수 없었다(레 22:18-25). 자신도 함께 먹는 화목제라고 해서 낮은 품질의 짐승을 골라서는 안 되었다. 언제나 가장 먼저 하나님께 드린다는 마음으로 온전한 것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제물의 출처도 중요하다. 죄를 짓게 하는 사업으로 번 돈을 십일조로 많이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술 취함과 음행을 조장하는 업종으로 돈을 벌면서 사업이 잘되도록 축복해 달라고 할 수 없다. 먼저 직업과 수입의 길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점검해야 한다. 예물의 액수가 아니라 그것을 얻은 과정과 드리는 사람의 거룩함을 하나님께서 보신다.
우상에게 바쳐졌거나 무당의 의식에 사용된 음식을 교회에 가져와 나누는 일도 피해야 한다. 필자가 들은 사례 가운데 무당의 신내림 의식에 쓰고 남은 음식을 교회에 계속 가져온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풍성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음식에 악한 영들을 붙어 있다. 그러므로 음식의 배후에 우상숭배와 악한 영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 성도의 공동체에 제사음식을 들여놓아서는 아니 된다(고전 10:19-21, 계 2:20). 혹 자신이 모르고 우상의 제물을 먹었던 일이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그 음식으로 들어온 영을 추방해야 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이 오래 입은 옷이나 사용한 물건에도 그 사람을 따라다니던 악한 영들이 묻어올 수 있다. 그러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다른 사람이 오래 사용한 옷보다 깨끗한 새 옷을 사용하고, 물려받은 물건을 쓸 때에는 예수의 피를 바르고 악한 영의 영향을 끊는 기도를 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레위기의 직접 명령이 아니라 접촉을 통하여 부정이 옮겨진다는 원리를 오늘의 생활에 적용한 것이다.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제물의 온전함뿐 아니라 짐승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요구하셨다. 갓 태어난 소나 양이나 염소는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고 여덟째 날부터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아서도 안 되었다(레 22:26-28). 감사제의 제물은 그날에 먹고 다음 날까지 남겨서는 안 되었다(레 22:29-30). 거룩함은 차갑고 잔인한 완벽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긍휼을 함께 따르는 것이다.
8. 속죄받은 성도는 어떻게 성결한 삶과 천국 상급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미 속죄받은 성도는 어떻게 자신을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첫째, 속죄를 신앙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알아야 한다.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은 가장 큰 은혜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 내신 목적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는 데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말씀을 배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야 했듯이, 구원받은 성도도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둘째, 날마다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죄를 지었다는 사실만 막연히 인정하지 말고 어떤 죄를 지었으며 어떤 영을 받아들였는지를 자백해야 한다. 혈기와 분노, 교만과 판단, 음행과 탐욕,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회개하고,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가라고 명령해야 한다. 회개의 분량이 채워질수록 죄와 사망의 법이 역사할 근거가 약해지고 성령의 인도에 더 민감하게 순종할 수 있다.
셋째, 접촉과 관계를 조심해야 한다. 장례식장과 우상숭배의 장소에 갈 때에는 예수의 피를 바르고 십자가 세우기를 하며, 음행과 술 취함과 점술을 조장하는 환경을 멀리해야 한다. 결혼할 사람을 선택할 때에도 세상의 조건보다 믿음과 회개의 상태를 먼저 보아야 한다. 무엇을 먹고 누구와 가까이하며 어떤 물건을 받아들이는지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넷째, 지도자는 더 철저히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말씀을 전하고 성도를 섬기는 사람이 혈기와 교만과 음행을 품고 있으면 그 더러움이 사역을 통하여 묻어날 수 있다.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이 요구받는다. 그러므로 직분과 능력을 구하기 전에 회개하여 귀신의 집을 파괴하고, 상처와 억울함을 십자가에 내려놓으며,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해야 한다. 예배와 헌금과 봉사와 찬양을 남는 시간과 남는 물질로 대충 드려서는 안 된다. 깨끗한 직업과 정직한 수입으로 얻은 것을 기쁘게 드리고, 교회에 가져오는 음식과 물품도 그 출처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가장 좋은 것, 흠이 없는 것, 감사와 믿음이 담긴 것을 준비해야 한다.
여섯째, 말씀에 순종하는 적극적인 성결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회개는 악한 영을 내보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고 섬겨야 한다. 필요할 때에는 한 영혼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고 해야 할 것을 행할 때 성결이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
일곱째, 천국의 지위와 상급을 바라보아야 한다. 속죄만 받고 아무 열매 없이 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 앞에 드릴 것이 적다. 그러나 회개를 통하여 깨끗해지고 말씀과 성령에 순종하여 충성한 사람은 천국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면류관과 상급을 얻는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로 사는 것이 아니지만, 구원받은 뒤 어떻게 살았는지는 주님 앞에서 분명히 평가받는다(고전 3:12-15, 계 22:12).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성결을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속죄받고, 계속되는 회개로 더러움을 제거하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주어진 작은 순종 하나가 천국의 영원한 상급을 준비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간신히 심판만 피하게 하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거룩함을 드러내며 영원한 나라에서 귀하게 쓰임받게 하려고 부르셨다.
9. 나오며
레위기의 '속죄'와 '정결'과 '성결'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제사장과 대제사장에게 왜 더 엄격한 성결이 요구되었는지, 시체 접촉과 혼인과 육체의 흠에 관한 규례 및 성물과 제물의 성결례가 오늘날 어떤 교훈을 주는지를 살펴보았다. 레위기는 죄를 덮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더러움을 씻으며,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살도록 이끈다.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주어지는 은혜의 출발점이다. '정결'은 죄와 부정으로 더러워진 것을 씻어 내는 과정이며, '성결'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행하는 삶이다. 이 세 단계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속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회개로 깨끗해지고 순종으로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다.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대표했기에 일반 백성보다 더 엄격한 성결을 지켜야 했다. 시체와 혼인의 규례는 접촉과 연합의 영적 영향을 분별하게 하며, 육체에 흠 있는 제사장의 직무 제한은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함과 장차 오실 흠 없는 그리스도를 보여 주었다. 신약에서는 장애나 성별로 직분을 기계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모든 지도자는 더 철저한 회개와 거룩한 열매로 부르심을 증명해야 한다.
성물과 제물도 속되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부정해진 제사장은 정결해질 때까지 성물을 먹지 못했고, 하나님께는 흠 없는 제물을 드려야 했다. 예물의 출처와 드리는 사람의 상태도 중요하다. 죄를 조장하여 얻은 물질이나 우상숭배에 사용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복을 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깨끗하고 온전하며 긍휼과 감사가 담겨 있어야 한다.
오늘의 성도는 거룩한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을 때 구체적으로 자백하여 용서와 깨끗함을 받고, 그 죄로 들어온 악한 영을 예수의 이름으로 내보내야 한다. 혈기와 분노와 교만을 버리고, 접촉과 관계를 분별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특히 많이 알고 많이 맡은 지도자일수록 더 엄중하게 자신을 살펴야 한다.
'성결'은 단지 더러운 것을 피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전도와 예배와 찬송과 기도와 구제와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행해야 한다.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삶의 열매로 드러내고, 천국에서 주실 지위와 면류관과 상급을 바라보며 오늘의 작은 순종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받고 날마다 회개하여 정결해지며, 성령과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세상에 드러내고 천국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상급을 얻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12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레위기 21장과 22장을 바탕으로 제사장과 성물 및 제물의 성결에 관한 핵심 원리를 다룹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이 단순한 죄의 사함을 넘어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게 하려 함임을 강조하며, 특히 공동체의 지도자인 제사장은 시체 접촉 금지와 엄격한 결혼 규례를 통해 자신을 성결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재물은 흠이 없는 온전한 것이어야 하며, 이는 오늘날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과 철저한 회개를 통해 내면의 부정함을 씻어내고 온전한 순종의 삶을 드려야 함을 시사합니다. 결국 성결의 본질은 외적인 형식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천국 시민으로서의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 가는 과정임을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