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43)] 이사야서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메시야의 예표로서 다윗왕의 특징(사 1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iaRtxQb04To
[기독론(143)] 이사야서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메시야의 예표로서 다윗왕의 특징
1. 들어가며
이사야서는 구약 선지서 가운데 메시야에 관한 증언을 가장 풍성하게 담고 있는 책이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신분과 사역을 동시에 예언하였다. 그는 메시야를 한 분 하나님으로, 처음과 마지막으로, 유일한 구원자로,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다윗의 후손이자 의로운 가지로, 고난받는 종으로, 목자로, 모퉁잇돌과 반석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재림주와 심판주로 증언하였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남유다의 역사와 심판을 읽는 것이 아니라, 구약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는 일이다.
그런데 이사야서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이름이 있다. 그것은 다윗이다. 이사야는 메시야를 말할 때 다윗의 보좌, 다윗의 나라, 이새의 줄기, 그의 뿌리에서 나오는 가지, 다윗의 장막, 다윗의 하나님, 내 종 다윗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이는 다윗이 단지 이스라엘 역사 속의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윗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왕권과 통치와 목양과 전쟁과 회개의 예표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흠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밧세바 사건을 통해 간음과 살인의 중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였고, 다시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는 사울의 왕권을 억지로 빼앗지 않았고, 자기 백성을 사랑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왕직을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삼고자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증언하셨다.
행 13:22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그러므로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다윗은 단순한 과거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어떤 왕으로 오실 것인지를 보여 주는 예표이며, 또한 오늘을 사는 성도들이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로 준비되려면 어떤 성품과 믿음과 회개와 전쟁성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모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서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메시야의 예표로서 다윗왕의 특징이 무엇이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에서 왕 노릇할 성도들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이사야는 메시야를 다윗과 연결했는가?
이사야가 메시야를 다윗과 연결한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의 왕권을 이 땅에서 가장 선명하게 예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단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택하신 왕이었고, 사울과 달리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었다. 사울은 왕권을 자기 체면과 자기 자리 보존을 위해 사용했지만, 다윗은 왕권을 하나님과 백성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였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아기와 아들을 예언하면서, 그분이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 위에 군림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다윗의 왕좌는 단순히 예루살렘에 있었던 정치적 왕좌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권의 자리이며, 장차 메시야가 완성하실 통치의 예표다.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의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말씀에서 메시야는 단순한 인간 왕이 아니다. 그는 아기로 태어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아들로 주어지지만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런데 그분의 통치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 위에 세워진다고 했다. 이는 다윗의 왕권이 메시야 왕권의 예표라는 뜻이다. 다윗의 보좌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앉으실 보좌의 그림자이며, 다윗의 나라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나라의 모형이다.
다윗의 왕국은 전쟁을 통해 평화를 가져온 왕국이었다. 그는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아람과 싸웠고, 이스라엘 주변의 원수들을 제압하였다. 그러나 그 전쟁의 목적은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 있지 않았다. 다윗의 전쟁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평강의 질서를 세우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전쟁에 능한 왕이면서 동시에 평강을 준비한 왕이었다. 이 점에서 다윗은 장차 마귀의 일을 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이사야가 다윗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추상적 구원자로만 말하지 않았다. 그는 메시야가 어떤 왕으로 오실 것인지를 다윗을 통해 보여 주었다. 다윗은 왕권의 예표이고, 메시야는 그 왕권의 실체다. 다윗은 그림자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몸체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를 읽을 때 다윗을 빼놓고 메시야를 이해하면 메시야의 왕권과 통치의 성격을 온전히 볼 수 없다.
3. ‘이새의 줄기’와 ‘그 뿌리의 가지’는 무엇인가?
이사야 11장은 다윗 왕권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새롭게 솟아날 메시야를 예언한다. 이사야는 “다윗”이라는 이름을 직접 쓰지 않고,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를 언급한다. 이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다윗이 이미 왕으로 드러난 뒤의 영광이 아니라, 다윗이 아직 들판에서 양을 치던 집안의 뿌리와 줄기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기서 “줄기”는 베어진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남은 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다윗 왕조는 바벨론 포로를 거치면서 마치 잘려 나간 나무처럼 보였다. 왕위는 끊어진 것처럼 보였고, 다윗의 집은 초라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줄기에서 한 싹이 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다윗 왕조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새 일을 행하실 것임을 뜻한다.
또한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가지”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흔히 ‘네체르’와 연결해서 이해된다. 이 표현은 마태복음 2장 23절의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 나사렛이라는 지명과 네체르라는 히브리어의 음가가 연결되며, 이사야가 말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가 나사렛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물론 마태복음 2장 23절은 구약의 특정 한 구절을 문자 그대로 인용한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종종 음가와 의미를 함께 사용하여 영적 사실을 증언한다. “네체르”는 잘려진 듯한 뿌리에서 새롭게 솟아나는 가지를 가리킨다. 나사렛 예수는 바로 그렇게 오셨다. 왕궁의 화려함 속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업신여기던 나사렛에서 자라나셨다. 그러나 그분은 다윗의 뿌리에서 솟아난 참된 가지이셨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표현은 예수님의 두 측면을 동시에 보여 준다.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은 예수님이 다윗 가문에서 나오신 후손임을 말한다. “그 뿌리에서 난 가지”는 예수님이 다윗 왕조의 생명 근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를 뿐 아니라 다윗의 뿌리라고도 부른다. 이사야 11장 1절은 바로 그 이중적 신비를 구약적 언어로 미리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새의 줄기와 그 뿌리의 가지는 단순한 족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것 같은 다윗 왕권에서 하나님께서 새롭게 메시야를 일으키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또한 그 메시야가 혈통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존재로는 다윗의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는 분임을 암시한다. 이 말씀 안에는 성육신과 왕권과 창조주의 신비가 함께 들어 있다.
4. 예수님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자 뿌리이신가?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은 자주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신다. 소경들이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무리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다윗의 후손으로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마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은 혈통적으로 분명 다윗의 자손이시다. 마태복음 1장 1절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시작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씨의 약속과 다윗에게 주신 왕권의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을 따라 사람으로 오셨고, 다윗 왕권의 약속을 성취하러 오신 왕이시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다윗의 뿌리라고 증언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후손은 나중에 오는 자다. 그러나 뿌리는 먼저 있는 자다. 예수님은 역사 속에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존재로는 다윗을 있게 하신 근원이시다.
계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 자신이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말한다.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시다. 다윗이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윗을 있게 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다윗의 혈통을 따라 사람이 되어 오셨다. 이것이 성육신의 신비다.
이 신비를 알지 못하면 예수님을 단지 훌륭한 다윗 왕조의 후손으로만 보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그렇게 제한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다윗보다 뒤에 오셨지만 다윗보다 먼저 계셨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다.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셨지만 그분은 처음과 마지막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과 다윗의 뿌리라는 표현은 한 분 하나님론을 분명하게 세워 준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별개의 또 다른 신이 아니다. 그분은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다. 그분은 다윗의 후손으로 역사 속에 들어오셨으나, 동시에 다윗의 근원으로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다. 이사야가 말한 이새의 줄기와 뿌리의 가지는 요한계시록에서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라는 말로 완성된다.
5. 다윗의 보좌와 나라는 무엇을 예표하는가?
이사야 9장은 메시야의 왕권을 다윗의 보좌와 다윗의 나라로 설명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다윗의 씨를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솔로몬에게 일차적으로 적용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삼하 7:12-13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 성전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의 왕국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의 후반부 삶에는 우상숭배의 실패가 있었고, 그의 사후 왕국은 갈라졌다. 그러므로 사무엘하 7장의 약속은 솔로몬에게서 완전히 성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솔로몬을 넘어 장차 오실 다윗의 참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약속이었다.
이사야는 바로 이 약속을 붙들고 메시야를 예언한다. 메시야는 다윗의 보좌에 앉아 다윗의 나라를 정의와 공의로 세우신다. 여기서 보좌는 통치와 심판의 자리다. 나라는 그 통치가 실현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보좌와 다윗의 나라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한다.
다윗의 왕국은 전쟁을 통해 평강을 이루었다. 다윗은 원수들을 제압함으로 솔로몬 시대의 평화를 준비하였다. 이 점에서 다윗은 마귀의 일을 멸하고 하나님 나라의 평강을 가져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셨고, 십자가에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으며, 부활과 승천으로 하늘의 왕권을 취하셨다. 이것이 다윗의 전쟁과 왕권이 가리킨 실체다.
히 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한 다윗의 보좌는 천국에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질 보좌와도 연결된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에게 자기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약속이 아니다. 이 땅에서 주님처럼 싸우고 이긴 자, 주님의 마음을 품고 충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왕권의 약속이다.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그러므로 다윗의 보좌와 나라는 과거 이스라엘 왕국의 추억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보여 주는 예표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이기는 자의 미래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처럼 전쟁에 능한 자, 다윗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자, 다윗처럼 회개할 줄 아는 자가 장차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의 길을 배우게 된다.
6. 왜 하나님은 자신을 다윗의 하나님이라 하셨는가?
이사야서에는 매우 놀라운 표현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히스기야에게 소개하실 때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리신다. 그런데 이사야는 하나님을 “다윗의 하나님”으로도 말한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특별한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사 38: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또한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이유를 “나와 내 종 다윗을 위하여”라고 말씀하신다. 이미 다윗은 오래전에 죽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을 기억하시고, 그를 “내 종”이라 부르시며, 그를 위하여 예루살렘을 보호하겠다고 하신다.
사 37:35 대저 내가 나와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왜 하나님은 다윗을 이렇게 기억하셨는가? 다윗이 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윗은 큰 죄를 지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사울에게 없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였다. 사울도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고백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즉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했고, 그 죄로 인해 깊이 통회하였다.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다윗은 회개 이후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았다. 노년에 수넴 여자 아비삭이 왕을 섬겼으나 다윗은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다. 이는 다윗의 회개가 단순한 감정적 후회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꾼 회개였음을 보여 준다.
왕상 1:4 이 소녀가 심히 아름다워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또 다윗은 자기 백성을 사랑한 왕이었다. 그는 왕권을 자기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았다.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 자신이 심판을 받겠다고 할 만큼 백성을 사랑했다. 다윗은 양을 치던 목자의 마음을 왕이 된 뒤에도 잃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내 종”이라고 부르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신을 “다윗의 하나님”이라 부르게 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윗의 마음을 기뻐하셨다는 표시다. 다윗은 죄가 없어서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죄를 지었을 때 진정으로 회개했기 때문에 인정받았다. 그는 권세를 가졌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왕이었으나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자 했다. 오늘 성도도 이 길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인정하실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7. 다윗의 열쇠는 어떤 권세를 뜻하는가?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소개한다. 열쇠는 여닫는 권한을 상징한다. 문을 여는 자가 있고 닫는 자가 있다. 그러나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절대적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이 표현은 이사야 22장 22절과 연결된다. 하나님은 엘리아김에게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겠다고 하셨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고 하셨다. 이는 왕궁의 관리에게 주어진 권세를 말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야가 가지실 통치권의 예표가 된다.
사 22: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예수님은 바로 그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다. 그분은 구원의 문을 여시고 닫으신다. 복음의 문을 여시고 닫으신다. 사역의 문을 여시고 닫으신다. 천국의 문을 여시고 닫으신다. 그러므로 이 열쇠는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라 왕의 권세와 통치의 권한이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천국 열쇠를 말씀하셨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권세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기의 교회를 세우시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시며, 하늘의 권세와 연결된 사역의 문을 주신다는 뜻이다.
마 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이 열쇠를 “다윗의 열쇠”라고 부른다. 이는 다윗의 마음과 다윗의 왕권과 다윗의 충성이 이 권세의 성격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기 권세를 자기 욕심대로 쓰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하나님께 묻고 행했으며, 백성을 사랑했다. 그러므로 다윗의 열쇠는 단순한 능력의 열쇠가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종에게 맡겨지는 왕적 권세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 주님은 그런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셨다. 그러므로 다윗의 열쇠는 큰 능력을 과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은 능력이라도 말씀을 지키고,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는 자에게 열린다.
계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오늘 성도도 다윗의 열쇠를 사모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권세를 탐하는 마음으로는 받을 수 없다.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마음을 가진 자에게 맡겨진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회개할 줄 알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자에게 주님은 문을 여신다.
8. 천국의 왕들은 다윗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다윗은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의 전형이다. 그러므로 오늘 성도들은 다윗에게서 왕의 특징을 배워야 한다. 다윗에게서 배워야 할 첫 번째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다윗은 왕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 그는 성전을 짓고 싶어 했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을 남겼다. 그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있었다.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께 묻는 삶이다. 다윗은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묻곤 했다. 그는 자기 경험과 군사력만으로 전쟁하지 않았다. 왕이었으나 하나님께 묻는 종이었다. 이것이 사울과 다른 점이다. 사울은 자기 판단을 앞세웠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세 번째 특징은 원수를 자기 손으로 제거하지 않는 태도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사울은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자기 손으로 해하지 않았다. 그는 왕권을 억지로 빼앗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실 때를 기다렸다.
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네 번째 특징은 백성을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이다. 다윗은 양을 치던 목자였다. 그는 사자와 곰에게서 양을 건져냈다. 왕이 된 뒤에도 그 마음을 잃지 않았다. 백성이 고통받을 때 자신과 자기 집을 치라고 호소할 만큼 백성을 사랑했다. 왕은 백성을 이용하는 자가 아니라 백성을 보호하는 자여야 한다.
다섯 번째 특징은 전쟁에 능한 왕의 모습이다. 다윗은 평화만 말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원수와 싸웠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세력들을 제압했다. 이것은 신약 성도들의 영적 전쟁과 연결된다. 오늘 성도들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한다. 다윗이 원수들을 제압하여 평화를 가져왔듯이, 신약 성도도 귀신을 대적하고 내보냄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여섯 번째 특징은 진정한 회개다. 다윗은 죄를 숨기려고 할 때 고통을 겪었으나, 나단의 책망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다. 그는 형식적 고백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회개는 마음을 찢는 회개였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회개였다.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는 능력만 가진 자가 아니라 회개할 줄 아는 자여야 한다.
일곱 번째 특징은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삶이다. 이사야 11장 2절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올 메시야 위에 여호와의 영,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할 것을 말한다. 다윗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그를 왕으로 준비시켰다. 성령이 없이는 참된 왕권도 없고, 참된 통치도 없다.
사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러므로 천국의 왕들은 다윗에게서 왕의 길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께 물어야 하고, 원수를 자기 혈기로 처리하지 않아야 하며, 백성을 사랑해야 하고, 영적 전쟁에 능해야 하며, 죄를 범했을 때는 진정으로 회개해야 하고,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다윗의 길이며,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자들이 배워야 할 길이다.
특히 이사야 11장은 다윗적 왕권의 영적 성격을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그 왕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만 심판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고,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한다. 이것은 사람의 외모와 소문에 끌려다니는 왕이 아니라, 성령의 지혜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판단하는 왕의 모습이다.
사 11:3-5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것은 다윗에게서 시작된 왕권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보여 준다. 다윗은 원수와 싸웠지만, 완전한 공의와 정직의 왕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입의 막대기와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심판하시는 완전한 왕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은 예표이고, 그리스도는 실체다. 성도들은 다윗에게서 왕의 모형을 배우되, 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성도들이 천국에서 왕 노릇한다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권세를 휘두른다는 뜻이 아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고 행했듯이, 왕 노릇할 자는 주님의 뜻과 마음을 알아야 한다. 다윗의 열쇠는 자기 야망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주님이 열고자 하시는 문을 열고 주님이 닫고자 하시는 문을 닫는 청지기의 권한이다. 그러므로 왕권은 충성의 결과이지 욕심의 결과가 아니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이사야서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메시야의 예표로서 다윗왕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사야는 다윗을 단순한 과거의 왕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윗의 보좌와 나라, 이새의 줄기와 그 뿌리의 가지, 다윗의 장막, 다윗의 하나님, 내 종 다윗이라는 표현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야의 왕권과 통치와 심판과 목양을 예언하였다.
예수님은 혈통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시다. 그러나 존재로는 다윗의 뿌리이시다. 그분은 다윗의 후손으로 사람이 되어 오셨지만, 다윗을 있게 하신 창조주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단지 다윗 왕조의 위대한 후손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메시야이며, 다윗의 보좌와 나라를 완성하시는 왕이시다.
또한 다윗은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의 예표다. 다윗은 전쟁에 능했으나 자기 욕심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는 백성을 사랑한 목자였고, 하나님께 묻는 왕이었으며, 원수를 자기 손으로 제거하지 않는 왕이었다. 그는 큰 죄를 지었으나 진정으로 회개했고,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자기 삶을 돌이켰다. 그러므로 다윗의 위대함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회개의 깊이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 성도들도 다윗의 길을 배워야 한다.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는 단순히 구원받은 자의 자리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빚어져야 하고,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하며, 귀신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죄를 범했을 때는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해야 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은 오늘도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자 앞에 열린 문을 두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윗처럼 말씀을 붙들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며, 다윗처럼 회개하고, 다윗처럼 전쟁에 능한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의 자손이자 다윗의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12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이사야서에 나타난 다윗 왕의 예표적 특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역을 깊이 있게 통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이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라는 성경적 선포를 바탕으로, 그분이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전능자 하나님인 동시에 인류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아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이사야 11장에 등장하는 '가지'라는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게 된 영적 배경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의 회개와 사랑을 본받아, 주님으로부터 진정한 종이라 인정받는 삶을 살 것을 강력히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