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47)] 이사야의 예언(07) 누가 참 목자이며 누가 거짓 목자인가?(사 40:11, 56:10~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1EOrs6WNrfE
[설교핵심]
이 설교는 이사야서에 나타난 예언을 바탕으로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하며 기독론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참된 지도자의 핵심 자질로 영혼을 살찌우는 진리의 양식을 공급하는 능력과 악한 영으로부터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희생 정신을 꼽습니다. 반면, 영적 분별력 없이 자기 안위와 탐욕만 추구하며 위기의 순간에 방관하는 이들을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와 같은 거짓 목자로 규정하며 강하게 경계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에게 생명길로 인도하는 참된 영적 스승을 분별할 것을 권고하며, 모든 목회자가 양들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헌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목자상을 본받아야 함을 강조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기독론 147
누가 참 목자이며 누가 거짓 목자인가?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사야는 구약의 어느 선지자보다 메시야의 신분과 사역을 폭넓게 예언한 선지자다. 그는 메시야가 한 분 하나님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시고, 유일한 구원자이자 희년의 성취자이시며,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하나님 자신이고, 다윗의 후손이자 의로운 가지이며, 고난받는 의로운 종이라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이제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참 목자(牧者, true shepherd)로 보여 준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는 단지 왕좌에 앉아 명령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양 떼를 먹이고 품에 안으며 길을 잃은 자를 찾고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는 목자다.
성경에서 목자는 단순한 직책이 아니다. 목자는 인도자(引導者, guide)이며 보호자(保護者, protector)이고 양육자(養育者, nurturer)다. 그는 양 떼가 어디에서 먹어야 하고 어디에서 마셔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또한 어느 길이 생명의 길이고 어느 골짜기에 맹수가 숨어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자의 영적 분별력(靈的分別力, spiritual discernment)과 생명의 말씀을 공급하는 능력은 양 떼의 생사와 직접 연결된다.
다윗은 여호와를 자신의 목자라고 고백하였다(시 23:1). 여호와께서 자신을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호하신다고 고백하였다(시 23:1-4). 이 고백 안에는 목자의 두 가지 사역이 들어 있다. 하나는 양 떼에게 먹이와 물을 공급하여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맹수와 원수의 공격에서 양 떼를 지키고 건져 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두 사역을 완전하게 이루신 목자다. 그분은 양들의 큰 목자이시며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시고 목자장이시다(히 13:20, 벧전 2:25, 5:4). 그분은 생명의 말씀을 먹이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귀신에게 눌린 자를 해방시키셨고, 마침내 양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목회자와 영적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자상을 기준으로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목자가 참 목자는 아니다. 이사야는 성경에서 매우 이른 시기에 참 목자와 거짓 목자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을 맹인과 무지한 자와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와 탐욕스러운 목자라고 책망하였다(사 56:10-11). 그들은 영적 세계를 보지 못했고, 진리를 분별하지 못했으며, 위험을 보고도 경고하지 않았고, 자기 이익과 안락만을 추구하였다.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목회자가 많은 사람을 모으고 큰 조직을 운영한다고 해서 참 목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도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편안한 말만 들려준다고 해서 참 목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참 목자는 생명의 말씀을 정확히 먹이고, 죄를 죄라고 말하며, 회개(悔改, repentance)의 길을 가르치고, 악한 영의 공격에서 양 떼를 지키며, 필요하다면 자기 명예와 자리와 생명까지도 내려놓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도 역시 자신의 영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가볍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기 때문이다(마 15:14). 목자를 분별한다는 것은 사람을 비난하거나 완전한 사람을 찾는 일이 아니다. 그가 양 떼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무엇을 먹이는지, 위험 앞에서 양 떼를 지키는지, 자기 이익보다 양 떼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는지를 성경으로 살피는 일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경에서 목자란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예수 그리스도는 왜 모든 목자 위에 계신 큰 목자이신지, 다윗은 어떻게 참 목자의 예표로 준비되었는지, 이사야가 보여 준 참 목자의 두 가지 핵심 사역은 무엇인지, 이사야가 책망한 거짓 목자들은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선한 목자와 삯꾼과 도둑과 강도는 어떻게 구별되는지, 그리고 오늘날 목회자와 성도는 참 목자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에서 목자란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목자라는 말은 '양 떼를 돌보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단어는 단순한 직업을 넘어 영적 지도자(靈的指導者, spiritual leader)를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목자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왕은 백성을 보호하고 공의로 다스려야 했고, 제사장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며 백성을 거룩한 길로 인도해야 했으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죄를 책망하고 생명의 길을 제시해야 했다.
목자의 첫 번째 책임은 먹이는 것이다. 즉 양떼에게 먹이와 물을 공급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양은 시력이 약해서 스스로 좋은 풀밭을 찾아 먼 길을 갈 능력이 부족하다. 또한 독초와 좋은 풀을 구별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 떼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야 한다(시 23:1-2). 영적 목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람의 생각과 유행과 철학을 먹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여 영혼의 양식으로 공급해야 한다.
말씀을 먹인다는 것은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다르다. 성경 지식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영혼을 살릴 수 없다. 본문의 문맥과 원어와 하나님의 경륜을 정확히 밝혀, 성도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버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잘못된 해석에서 출발하면 아무리 많은 예화와 감동적인 이야기를 더해도 결국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참 목자는 자신의 견해를 성경에 억지로 집어넣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바를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
목자의 두 번째 책임은 지키는 것이다. 목자는 양떼를 맹수와 도둑으로부터 보호하는 책임을 지는 자인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신을 안위한다고 고백하였다(시 23:4). 여기에 등장하는 '지팡이'는 길을 잃은 양을 끌어당기고 인도하는 도구이며, '막대기'는 맹수와 도둑을 막아 내는 무기다. 목자는 양 떼를 사랑스럽게 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양 떼를 해치는 세력과 싸우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목자는 영적으로 성도를 보호하고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즉 목자는 양떼들을 거짓 교리와 죄의 유혹을 분별하여 인도해야 할 뿐 아니라, 사탄과 귀신의 공격으로부터 성도를 지키는 일을 해야 한다. 성도의 질병과 정신적 억압과 반복되는 죄와 가문의 저주 뒤에 악한 영의 역사가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고난과 질병을 귀신 하나로만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자연적인 질병과 과로와 잘못된 생활 습관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러나 악한 영의 실재를 아예 부정하여 양 떼가 공격받도록 방치하는 것도 참 목자의 태도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목자의 책임지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자는 양 떼가 많을 때만 기뻐하는 관리자가 아니다. 병든 양과 뒤처진 양과 길 잃은 양을 찾아가야 한다. 숫자가 줄거나 자신에게 손해가 생기더라도 양의 생명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양 떼를 이용하여 자신의 명예와 경제적 안정을 세우려 한다면 목자의 이름은 가졌어도 목자의 본질은 잃은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목자는 먹이는 자이자 지키는 자요, 인도하는 자이자 책임지는 자다. 이 네 기능 가운데 하나라도 고의로 버린다면 온전한 목자라 하기 어렵다. 생명의 말씀을 풍성히 공급하지만 악한 영의 공격을 외면해서도 안 되고, 축사(逐邪, deliverance)를 말하면서 말씀과 인격의 성장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참 목자는 양육과 보호를 함께 감당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왜 모든 목자 위에 계신 큰 목자이신가?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양들의 큰 목자'라고 부른다(히 13:20). 여기서 ‘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메가스’로서 규모가 크다는 뜻만이 아니라, 모든 목자 위에 계신 으뜸과 근원의 목자라는 뜻을 담는다. 교회의 목회자들은 예수님과 나란히 서는 독립된 목자가 아니다. 큰 목자이신 예수께서 맡기신 양 떼를 돌보는 청지기(廳直, steward)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라고 증언한다(벧전 2:25). ‘목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멘’은 양 떼를 돌보고 인도하는 자를 뜻하며, ‘감독’에 해당하는 ‘에피스코포스’는 위에서 살피고 돌보는 자를 뜻한다. 예수님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의 혼과 마음과 동기까지 살피시는 감독이시다.
예수님은 양 떼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신다. 그분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고,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영생을 가진다고 말씀하셨다(요 6:35, 53-57). 이는 육체적인 식사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과 생명과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다(요 6:63). 그러므로 참 목자의 설교는 결국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또한 양 떼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신다. 그분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사탄에게 매인 자를 자유롭게 하셨다(마 8:16-17, 눅 13:10-16). 그분은 단지 악한 영에게서 잠시 보호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히 2:14). 따라서 예수님의 목자 사역은 말씀 교육과 영적 전쟁을 함께 포함한다.
예수님이 큰 목자이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다. 일반 목자는 양을 지키다가 죽을 수 있지만, 예수님은 처음부터 양을 살리기 위하여 죽으러 오셨다. 그분의 죽음은 우연한 순교가 아니라 대속(代贖, substitution)의 죽음이었다. 죄 없는 목자가 죄 있는 양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 준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에도 목자의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요한계시록은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성도들의 목자가 되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고 증언한다(계 7:16-17). 십자가에서 죽임당한 어린양과 영원히 다스리는 목자가 동일한 분이다.
그러므로 모든 목회자는 예수님의 대리자처럼 군림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 속한 양을 잠시 맡은 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양 떼가 목회자 개인에게 종속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며, 큰 목자이신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고 따르도록 도와야 한다. 목회자가 자신을 중심에 놓을수록 양 떼는 큰 목자에게서 멀어지고, 목회자가 자신을 낮출수록 양 떼는 예수님을 더 선명하게 보게 된다.
4. 다윗은 어떻게 참 목자의 예표로 준비되었는가?
하나님은 다윗을 왕궁에서 먼저 훈련하지 않으셨다.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훈련하셨다.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형들에게도 가볍게 여김을 받았지만, 다윗은 맡겨진 양 떼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 가면 뒤쫓아가 그 입에서 양을 건져 냈고, 맹수가 자신에게 달려들면 수염을 잡고 쳐 죽였다(삼상 17:34-35).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던 이유도 목자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골리앗을 단순히 거대한 군인으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의 양 떼인 이스라엘을 삼키려는 맹수로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사자와 곰에게서 양을 건져 낸 것처럼,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주실 것을 믿었다(삼상 17:36-37). 목자의 마음이 있었기에 왕의 전쟁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목자의 두 도구도 익히게 하셨다. 가까이 다가오는 맹수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막아야 했고, 멀리 있는 원수는 물맷돌로 쳐야 했다. 반복된 훈련을 통하여 정확한 순간에 돌을 놓아 목표를 맞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한 번의 물맷돌은 우연한 기적만이 아니라, 맡겨진 양 떼를 지키기 위해 날마다 준비한 목자의 충성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더해진 사건이었다.
그러나 다윗도 항상 완전한 목자는 아니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사건에서 그는 한때 양을 보호해야 할 왕이 오히려 양을 빼앗고 죽이는 죄를 범하였다. 나단 선지자의 비유 속에서 다윗은 가난한 사람의 한 마리 암양을 빼앗은 부자와 같았다(삼하 12:1-7).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목자가 자기 욕망을 위해 양을 이용할 때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짓는지를 보여 주셨다.
다윗의 위대함은 죄가 없었다는 데 있지 않고, 책망 앞에서 회개했다는 데 있다.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다”고 즉시 인정하였다(삼하 12:13). 그리고 노년에 수넴 여자 아비삭을 가까이하지 않음으로 같은 성적 죄를 반복하지 않았다(왕상 1:4). 참 목자도 실수할 수 있지만, 죄를 합리화하고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양 떼를 해쳤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깊이 회개하고 삶을 돌이켜야 한다.
다윗의 목자다운 마음은 인구 조사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백성에게 전염병이 임하여 칠만 명이 죽자, 그는 백성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라고 탄식하며 자신과 자기 아버지의 집을 치고 백성을 살려 달라고 간구하였다(삼하 24:17).
거짓 목자는 자신의 잘못으로 양 떼가 고통받아도 양에게 책임을 돌린다. 참 목자는 양의 잘못까지 자신이 책임지려는 마음을 가진다. 이것은 무조건 모든 책임을 대신 지라는 뜻이 아니라, 지도자의 결정과 가르침이 양 떼에게 미친 결과를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양 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손해를 보고 징계를 받는 것도 감수하는 마음이 참 목자의 마음이다.
이러한 다윗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 type)였다. 다윗은 양을 위해 위험을 무릅썼지만 예수님은 양을 위해 실제로 죽으셨다. 다윗은 범죄하고 회개한 목자였지만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는 완전한 목자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에게서 목자의 모형을 배우되, 그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아야 한다.
5. 이사야가 보여 준 참 목자의 두 가지 핵심 사역은 무엇인가?
이사야는 참 목자의 첫 번째 모습을 양 떼를 먹이고 품고 인도하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주 여호와께서 강한 자로 임하여 친히 다스리시지만, 그 통치는 폭력적이고 차가운 통치가 아니다. 그분은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며 어린양을 팔로 모아 품에 안고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신다(사 40:10-11).
이 말씀은 참 목자의 권위(權威, authority)가 사랑과 돌봄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강한 팔로 다스리는 분이 같은 팔로 어린양을 안으신다. 참된 권위는 약한 자를 눌러 자신의 힘을 증명하지 않는다. 연약한 자를 보호하고 세워 주는 데 사용된다. 특히 어린양과 젖 먹이는 어미 양을 배려한다는 것은 각 사람의 성장 단계와 형편을 살피는 목회를 뜻한다.
목회자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분량과 방식으로 말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갓 믿은 성도에게는 기초 진리를 먹여야 하고, 성장한 성도에게는 단단한 말씀을 공급해야 하며, 상처 입은 자에게는 위로와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위로만 주고 죄를 책망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며, 책망만 하고 회복의 길을 보여 주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참 목자는 양의 상태를 분별하여 필요한 양식을 공급한다.
또한 이사야는 참 목자의 두 번째 모습을 포로를 해방시키고 무너진 성을 다시 세우는 모습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내 목자”라고 부르셨다. 고레스가 하나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여 예루살렘을 중건하고 성전의 기초를 놓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사 44:28).
고레스(B.C.600-530, Cyrus the Great)는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 안에서 자란 선지자나 제사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여 바벨론에 포로 된 백성을 해방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이 점에서 목자의 사역은 단지 좋은 말씀을 들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고,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며, 잃어버린 기업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이 사역을 완전하게 이루셨다. 그분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셨다(사 61:1-2, 눅 4:18-19). 예수님은 귀신에게 눌린 자를 해방시키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으며, 죄와 사망에 매인 자를 생명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므로 참 목자의 두 사역은 말씀의 양육과 영적 해방이다. 생명의 말씀으로 푸른 풀밭에 인도하고, 사탄과 귀신의 압제에서 양 떼를 건져 내야 한다. 둘 중 하나만 강조하면 불균형이 생긴다. 말씀만 가르치고 악한 영의 실재를 부정하면 양 떼는 공격받은 채 방치된다. 반대로 귀신만 강조하고 말씀과 성품의 성장을 소홀히 하면 성도는 해방을 경험하고도 다시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
또한 어미 양을 온순히 인도한다는 말씀은 양 떼가 또 다른 양을 낳도록 돕는 사역과도 연결된다. 성숙한 성도는 자신만 은혜받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른 영혼을 전도하고, 회개를 돕고, 생명의 말씀을 나누며, 새 신자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참 목자는 양을 자신의 곁에만 묶어 두지 않고, 그 양이 또 다른 양을 돌보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세운다.
6. 이사야가 책망한 거짓 목자들은 어떤 특징을 지녔는가?
이사야 56장은 거짓 목자의 실상을 충격적인 언어로 폭로한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이 모두 맹인이며 무지하고,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이며, 꿈꾸고 누워 있고 잠자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만족할 줄 모르며, 그 목자들은 분별력이 없고 각기 자기 길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책망한다(사 56:10-11).
첫째, 거짓 목자는 맹인이다. 육신의 눈은 있어도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한다. 성도 안에 어떤 죄의 문이 열려 있는지, 어떤 악한 영이 역사하는지, 교회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분별하지 못한다. 영적 실상을 전혀 보지 못하면서 사람의 숫자와 헌금과 외형만 바라본다면 파수꾼의 눈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목회자가 반드시 환상이나 영적 체험을 동일하게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영적 분별은 성경과 성령의 조명과 삶의 열매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적인 체험이 성경보다 높아져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히 증언하는 사탄과 귀신의 실재를 신학적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거해 버리면, 양 떼를 공격하는 원수를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될 수 있다.
둘째, 거짓 목자는 무지하다. 여기서 무지(無知, ignorance)는 배운 것이 전혀 없다는 뜻만이 아니다. 많은 학위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길과 천국의 실상을 모를 수 있다. 말씀을 맡은 사람이 본문의 문맥과 원어와 성경 전체의 흐름을 연구하지 않고, 오래된 설교와 남의 자료만 반복한다면 양 떼에게 신선한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기 어렵다.
셋째, 거짓 목자는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다. 개는 위험을 보면 짖어 주인을 깨우고 도둑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위험을 보면서도 침묵한다. 죄를 지적하면 성도가 떠날까 두려워하고, 교단의 잘못된 가르침을 말하면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며, 사회의 압력과 사람들의 비난 때문에 진리를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
목회자는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안을 이단 정죄와 저주의 언어로 처리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와 거짓을 묵인해서도 안 된다. 참된 경고는 사람을 파괴하려는 비난이 아니라, 죽음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려는 사랑이어야 한다. 벙어리 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소리를 크게 지른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한 때에 성경적 진실을 말한다는 뜻이다.
넷째, 거짓 목자는 잠자기를 좋아한다. 파수꾼이 잠들면 원수는 쉽게 성 안으로 들어온다. 영적 잠(靈的睡眠, spiritual slumber)은 기도와 말씀 연구를 중단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상태다.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설교를 반복하며 새로운 깨달음과 더 깊은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편안할지 몰라도 양 떼는 메마르게 된다.
다섯째, 거짓 목자는 탐욕스럽다. 그는 만족할 줄 모르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다. 돈과 명예와 안정된 자리와 사람들의 대접을 좋아한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성도의 잘못을 책망하지 못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양 떼를 자신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탐욕(貪慾, greed)은 단지 돈을 많이 가지는 문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자리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다.
여섯째, 거짓 목자는 쾌락과 방탕을 추구한다. 이사야는 그들이 포도주와 독주를 잔뜩 마시며 내일도 오늘처럼 크게 넘칠 것이라고 말한다고 기록한다(사 56:12). 이는 단순한 음주 문제를 넘어, 마지막 심판과 양 떼의 위기를 잊고 현재의 즐거움에 취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거짓 목자를 분별할 때 한두 번의 실수나 인간적인 약점만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지치고 판단을 잘못할 수 있으며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다. 문제는 맹목과 무지와 침묵과 탐욕을 지속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태도다. 참 목자는 책망을 받을 때 자신을 살피지만, 거짓 목자는 양 떼와 비판자를 탓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려 한다.
7. 선한 목자와 삯꾼과 도둑과 강도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목자의 종류를 분명히 구별하셨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이며 강도라고 하셨고,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고 하셨다(요 10:1-2). 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참 목자는 예수님을 통하여 양 떼에게 나아가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양 떼를 돌본다.
절도는 몰래 훔치는 자이고 강도는 폭력으로 빼앗는 자다. 영적 절도는 성도의 마음과 충성과 물질을 몰래 자기에게로 돌리는 사람이다. 영적 강도는 두려움과 저주와 권위를 이용하여 성도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사람이다. 목회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거나 저주받는다고 위협하여 사람을 자신에게 묶어 두는 것은 목자의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영적 권위 자체를 모두 억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성경적 권위는 양 떼를 보호하고 질서를 세우며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필요하다. 문제는 권위의 목적과 사용 방식이다. 예수님의 권위는 양을 살리는 데 사용되었지만, 도둑과 강도의 권위는 양을 자기 소유로 만들고 빼앗는 데 사용된다.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와 삯꾼도 구별하셨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삯꾼은 목자도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요 10:11-13). 삯꾼은 평상시에는 목자처럼 보일 수 있다. 먹이를 주고 우리를 관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험이 닥칠 때 그의 본질이 드러난다.
삯꾼이 보수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다고 말한다(고전 9:14). 목회자가 생활비를 받는 것도 정당하다. 삯꾼의 문제는 보수를 받는 데 있지 않고, 보수가 끊기거나 위험이 닥치면 양 떼를 버리는 데 있다. 사역의 중심이 사랑과 소명(召命, calling)이 아니라 돈과 안정에 있을 때 삯꾼이 된다.
선한 목자는 양을 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양을 알고 양도 자신을 안다고 말씀하셨다(요 10:14-15). 안다는 것은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다. 양의 상처와 약점과 형편을 알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며, 양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대형 공동체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성도를 세밀히 알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여러 목회자와 순장과 교역자가 함께 돌보는 구조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양이 숫자로만 취급되지 않는 것이다.
선한 목자는 위험 앞에서 양을 버리지 않는다. 교회가 공격받을 때 자기 명예만 지키지 않고, 성도가 악한 영에게 눌릴 때 귀찮다고 외면하지 않으며, 한 영혼이 죄에 빠졌을 때 회복을 위해 수고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모든 문제를 혼자 떠안거나 전문적인 치료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과 중독과 가정폭력 등은 영적 돌봄과 함께 의료·상담·법적 보호가 필요할 수 있다. 참 목자는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고 끝까지 함께 책임지는 사람이다.
선한 목자는 양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내 양”이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의 양 떼는 목회자의 소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도를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자원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성도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사명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
8. 오늘날 목회자와 성도는 참 목자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을 물으신 뒤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셨다(요 21:15-17).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양 떼를 돌보는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처 입은 영혼과 길 잃은 양을 외면한다면 목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먹이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보스코’는 풀을 먹이고 양식을 공급한다는 뜻이다. 목회자는 성도가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의 말씀을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이전에 알고 있던 지식만 반복하지 않고 성령께서 현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설교는 자기 자랑과 경험의 과시가 아니라 양 떼가 먹을 수 있는 풀이어야 한다.
‘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마이노’는 목자로서 돌보고 다스리고 지키며 보호한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에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는 말씀에도 사용된다(계 2:26-27). 그러므로 양을 친다는 것은 부드럽게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양을 해치는 악한 영과 거짓 교리와 죄의 세력을 대적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오늘날 목회자는 먼저 자신이 큰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임을 기억해야 한다. 목회자도 말씀을 먹고 회개하며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자신은 항상 옳고 성도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교만에 빠진다. 잘못을 지적받을 때 성경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죄가 확인되면 공개적으로라도 회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목회자는 성도의 배경을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가문과 학력과 출신 지역과 경제력보다 지금 그 사람이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고 진리의 길을 가려 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잘것없는 제자들을 불러 사도로 세우셨다. 목회자는 자신이 받지 못했던 도움을 다른 이에게 제공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성도도 참 목자를 세우는 일에 책임이 있다. 목회자를 우상화해서는 안 되지만, 양 떼를 살리기 위해 기도하고 연구하고 싸우는 목회자를 위해 중보하고 협력해야 한다. 목회자가 진리를 전하다 비난받을 때 사실을 분별하지 않고 소문에 휩쓸려서는 안 되며, 반대로 목회자가 명백히 죄를 범하거나 양 떼를 착취할 때 맹목적으로 감싸서도 안 된다.
목자를 분별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첫째, 그가 성경의 생명수를 풍성히 공급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둘째, 죄와 거짓을 분별하고 회개의 길을 가르치는가를 보아야 한다. 셋째, 사탄과 귀신의 공격에서 양 떼를 지키고 실제 해방을 돕는가를 살펴야 한다. 넷째, 돈과 명예와 자리보다 양 떼의 생명을 우선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다섯째, 잘못했을 때 회개하고 돌이키는가를 살펴야 한다.
성도는 한 목회자의 말만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들은 말씀이 그러한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행 17:11). 그러나 끊임없이 목회자를 의심하고 평가만 하면서 자신은 순종하지 않는 태도도 옳지 않다. 성경으로 확인된 진리에는 순종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겸손히 질문하며, 목자와 양이 함께 큰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참 목자의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니다. 양 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명예를 내어 놓아야 하고, 때로는 오해와 공격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목자는 희생 자체를 자랑해서는 안 되며, 과로와 무모함을 영성으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몸과 가정을 돌보고 동역자와 책임을 나누면서도, 위험 앞에서 양을 버리지 않는 충성을 지켜야 한다.
결국 목회자의 사명은 양 떼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다. 말씀을 먹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고, 악한 영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며, 다른 영혼을 살리는 성숙한 일꾼으로 세워야 한다. 이것이 보스코와 포이마이노가 함께 이루어지는 목회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누가 참 목자이며 누가 거짓 목자인지를 살펴보았다. 성경에서 목자는 양 떼에게 먹이와 물을 공급하고, 맹수와 도둑에게서 보호하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그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임을 살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목자 위에 계신 큰 목자이시며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시고 목자장이시다. 그분은 생명의 말씀을 먹이고 귀신과 질병과 사망의 권세에서 양 떼를 건져 내셨으며, 마침내 양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셨다. 모든 목회자는 이 예수님의 목자상을 따라야 한다.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며 사자와 곰의 입에서 양을 건져 내는 훈련을 받았고, 그 목자의 마음으로 골리앗과 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비록 밧세바 사건에서 양을 해치는 죄를 범했지만, 책망 앞에서 회개하고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았다. 또한 인구 조사로 백성이 죽어 갈 때 자신과 자기 집을 치고 양 떼를 살려 달라고 간구하였다. 목자는 자신의 잘못으로 양이 고통받을 때 책임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이사야는 참 목자가 양 떼를 먹이고 품에 안으며 온순히 인도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고레스처럼 포로와 압제에서 백성을 건져 내는 사람이라고 보여 주었다. 오늘날 목회자도 생명의 말씀을 공급하는 일과 사탄과 귀신의 공격에서 양 떼를 지키는 일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 말씀만 있고 해방이 없어서도 안 되며, 영적 전쟁만 있고 말씀과 성품의 성장이 없어도 안 된다.
이사야가 책망한 거짓 목자는 맹인이며 무지하고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이며 탐욕스러운 목자였다. 그는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고,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며, 위험을 알아도 경고하지 않고, 자기 이익과 안락만을 추구하였다. 목회자는 사람들의 대접과 교단의 자리와 경제적 안정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침묵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경고한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상처 입히지 않도록 사랑과 정확성을 갖추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와 절도와 강도와 삯꾼을 구별하셨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만, 삯꾼은 위험이 닥치면 달아난다. 성도를 두려움과 저주로 통제하거나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이용하는 사람은 참 목자가 아니다. 목회자는 양 떼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주의 종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어린양을 먹이고 양 떼를 쳐야 한다. 생명의 말씀을 풍성히 공급하고, 악한 영과 거짓 교리와 죄의 공격에서 양 떼를 보호하며, 상처 입고 뒤처진 영혼을 끝까지 돌보아야 한다. 잘못했을 때는 회개해야 하고, 사람의 배경을 따라 차별하지 말아야 하며,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 진리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성도 역시 자신의 영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성경으로 분별해야 한다. 목회자를 우상화해서도 안 되고, 모든 목회자를 불신해서도 안 된다. 생명의 말씀을 먹이고, 회개를 가르치고, 악한 영에게서 양 떼를 지키며, 자기 이익보다 양 떼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참 목자가 되도록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참 목자의 길은 자기 영광을 얻는 길이 아니라 양 떼를 살리는 길이다. 목자는 자신의 목숨이 아깝지 않아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주님의 피로 산 귀한 생명이기 때문에 자신을 내어 놓는다. 그러나 그 희생도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큰 목자이신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큰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생명의 말씀으로 양 떼를 먹이며, 사탄과 귀신의 공격에서 양 떼를 지키고, 자신의 이익보다 영혼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는 복된 목자와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17일(금)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