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5)] 전임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던 엘리사가 남긴 교훈은?(왕하2:6~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GOAYrcyxwqU
사역자론(15)
전임 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던
엘리사가 남긴 교훈은?
(왕하 2:6-1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세우신 사역자의 일을 이어받은 확실한 후계자가 세 사람 나온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 바울의 뒤를 이은 디모데다. 대부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따라 사역하다가 자기 시대에 그 일을 마친다. 전임자의 사역과 기름부음이 후임자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사례는 사실 성경에서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세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앞선 사역을 맡기시며, 그 사역을 어떻게 다음 시대로 연결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본보기라 할 수 있다.
후계자는 전임 사역자를 흉내 내는 사람이 아니다. 전임자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을 계승하되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와 방식으로 펼치는 사람이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모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지만 모세는 애굽에서 광야로 이끌었고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이끌었다. 바울과 디모데는 모두 복음을 전했지만 바울은 여러 지역을 다니며 교회를 세웠고 디모데는 그렇게 세워진 에베소교회를 맡아 오랫동안 견고하게 했다. 사명은 이어졌지만 사역의 자리와 형태는 달랐다.
그렇다면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능력의 기름부음이었다. 두 사람은 말씀으로 예언했을 뿐만 아니라 기적을 행하고 병든 자를 고쳤다. 특히 엘리사는 나아만의 나병을 고치는 등 엘리야에게 있던 능력의 계보를 이어 갔다. 그러나 그 능력은 겉옷을 받거나 안수를 받는 외적 행위만으로 자동 전수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예정과 지명이 있었고, 엘리사가 부르심의 뜻을 찾아 사모했으며, 끝까지 스승을 따르고 종처럼 섬기는 겸손한 태도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좋은 사역과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안수를 받거나 그 사람의 방법을 모방한다고 같은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 만남과 말씀과 훈련을 허락하셨는지를 깨닫고, 주어진 표지를 소중히 여기며, 찾고 구하고 두드리고,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영적 지도자를 섬겨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전임 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된 엘리사가 남긴 교훈이 무엇이며 오늘 우리는 어떤 계승자로 준비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의 세 후계자 사례는 사역 계승에 관해 무엇을 보여 주는가?
엘리야 시대에는 벧엘과 여리고 등 여러 지역에 선지 생도들이 있었고, 그들은 오십 명씩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엘리야에게 배울 사람이 없어서 엘리사가 선택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선지 생도들 가운데 오직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과 능력의 기름부음을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학교나 훈련 과정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후계자가 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시고, 부르심의 뜻을 알아보며, 끝까지 섬겨 검증된 사람이 계승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의 세 번에 걸친 후계자 사례가 먼저 보여 주는 것은 사역의 계승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혈연으로도 보장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와 엘리사와 디모데 모두는 전임 사역자의 친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큰 교회를 세운 목회자의 자녀가 그 교회를 이어받는다고 해서 전임자의 영적 사역과 기름부음까지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아니다. 사역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과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적 직무를 계승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다.
모세와 여호수아에게는 백성을 인도하는 기름부음이 공통으로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백성을 이끌어 내어 광야를 통과시켰고, 여호수아는 그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기업을 분배했다. 이처럼 후계자는 전임자가 하던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앞선 사역이 도달한 자리에서 다음 단계의 일을 맡는다. 같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사역의 목적은 이어지지만 각 사람에게 맡겨진 과업은 구별된다.
이것은 신약의 바울과 디모데도 마찬가지다. 바울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을 다니며 교회를 세우고 장로들을 세웠다. 디모데는 바울이 세운 에베소교회를 맡아 주후 64년경부터 90년경까지 목회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바울에게 있던 복음 전파의 기름부음은 디모데에게 이어졌지만, 디모데의 주된 자리는 여러 지역을 순회하는 사도의 자리가 아니라 한 교회를 돌보는 담임목회자의 자리였다. 이처럼 계승자는 동일한 사명을 자기 분량에 맞게 완성해 가는 일이다.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모두 이십사 장로이며, 엘리야와 엘리사도 모두 이십사 장로에 속한다. 특히 엘리야와 엘리사는 영적 나이와 계급장인 별의 숫자와 면류관도 거의 같다. 이것은 성경 본문 자체의 직접 진술이 아니라 필자가 영적 세계에서 확인한 체험적 증언이다. 이 체험은 전임자와 후임자가 각자 충성했을 때 하나님 나라에서 모두 존귀한 위치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후계자는 전임자보다 열등한 복제품이 아니라 자기 몫을 온전히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다.
예수께서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제자들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 그러나 그 사역이 모든 제자에게 같은 정도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좋은 것은 이어받아야 하지만, 은사와 능력은 사람의 욕심이나 제도만으로 계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이 세 사람의 특별한 사례를 기록한해 둔 까닭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계승의 조건을 배우게 하려는 데 있다. 계승에는 하나님의 뜻, 전임자의 사역, 후임자의 깨달음과 사모함, 오랜 섬김과 검증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이 세 사례는 또한 하나님께서 한 시대의 일을 다음 시대까지 이어 가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모세가 이루지 못한 가나안 입성은 여호수아에게 맡겨졌고, 엘리야가 내려놓은 선지자의 사역은 엘리사에게 맡겨졌으며, 바울이 세운 교회는 디모데가 돌보았다. 전임자가 모든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하나님의 경륜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후계자를 통하여 앞선 사역을 이어 가시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모습으로 확장하신다.
3.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계승된 기름부음은 무엇이었는가?
구약시대에 활동했던 여러 선지자들 중에 엘리야와 엘리사는 말로만 예언했던 선지자가 아니었다. 아하시야가 병들었을 때 엘리야는 그가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을 것을 예언했고,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선포했으며 갈멜산에서는 불이 내려오는 기적도 행했다. 그 뒤에 엘리사는 엘리야 예언자의 직무와 더불어 기적을 행하는 능력까지 이어받았다. 두 사람에게 공통으로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능력의 기름부음이었다.
기적을 행하는 기름부음에는 병 고침도 포함된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쳤고, 죽은 아이를 살렸으며, 독이 든 국을 해독하고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였다. 그는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했다가 다시 열어 주었고, 자기 사환 게하시의 눈을 열기도 하였고, 그가 돈에 눈 멀었을 때에 나병이 옮겨 붙게 하기도 하였다. 사실 다른 사람의 영안을 열거나 닫는 일은 흔한 은사는 아니다. 엘리사에게는 엘리야에게서 이어진 능력과 함께 자기 시대에 필요한 특별한 은사가 더해졌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능력은 어떻게 엘리사에게 계승되었는가? 성경을 보면,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안수해서 능력을 기름부었다는 기록은 없다. 오늘날 어떤 사역자의 기름부음을 받고자 계속 안수를 받는 사람이 있지만, 그에게 안수했다는 사실만으로 전임 사역자의 능력과 은사가 그대로 후계자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안수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한 통로일 수 있으나 기름부음을 자동으로 옮기는 기술은 아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에는 둘 다 겉옷이 부르심과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지가 되었다.
전임 사역자 엘리야는 요단강 앞에서 겉옷을 말아 물을 쳤고, 물이 좌우로 갈라지자 두 사람이 마른 땅으로 건너갔다(왕하 2:8). 후임 사역자 엘리사는 그 장면을 보며 겉옷이 단지 선지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옷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표지임을 깨달았다.
그러자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뒤 그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웠다. 그리고 엘리사는 그 겉옷으로 요단강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라고 외쳤고, 물은 다시 갈라졌다(왕하 2:13-14). 이것은 선지자의 직분만 아니라 능력의 사역까지 실제로 계승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첫 표적이었다.
열왕기서에 기록된 기적을 세어 보면 엘리야에게는 일곱 차례, 엘리사에게는 열네 차례의 기적이 나타난다. 엘리사가 구한 갑절의 역사가 기록 속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능력의 계승은 전임자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엘리야의 하나님께서 엘리사와 함께하심을 드러내고, 같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다음 시대에 증언하는 일이었다.
4. 하나님의 예정과 지명은 사역 계승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사역이 계승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과 지명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정할 때에, 모세의 개인적 판단으로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정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워 그에게 안수하여 모세의 권위를 나누어 주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또한 엘리사도 엘리야가 많은 선지 생도들 가운데 자기 취향대로 고른 사람이 아니었다. 낙심하여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지명하셨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 자신을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왕상 19:15-16).
“너를 대신하여”라는 말씀은 엘리야에게 맡겨졌던 일이 아직 남아 있었음을 뜻한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낙심하여 더는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중단하지 않으셨다. 엘리야의 사역을 이어 갈 사람을 미리 준비하셨고, 그에게 같은 능력의 기름부음이 흐르게 하셨다. 사역자는 바뀌어도 하나님의 목적은 계속도히는 것이다. 전임자의 연약함이나 죽음이 하나님의 일을 끝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이 있다고 해서 아무 과정 없이 후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지명은 출발점이며, 그 뜻에 대한 사람의 응답과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 엘리사는 농사짓던 자리에서 부름을 받았고, 소를 잡아 백성에게 나누어 먹인 뒤 엘리야를 따라가 수종들었다(왕상 19:19-21). 그는 과거로 돌아갈 길을 남겨 둔 채 잠시 따라간 것이 아니라 자기 생업의 도구를 불살라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유명한 사역자에게 안수를 많이 받거나 그의 은사를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은 사역까지 차지할 수는 없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뜻을 두셨더라도 그 뜻을 가볍게 여기고 훈련을 거부하면 온전한 계승에 이르기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명하시고, 만남과 말씀과 사건을 배치하시며,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보신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일어난 만남을 우연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어떤 영적 지도자를 만나고 어떤 말씀을 계속 들으며 어떤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그 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방향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자기 욕망을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말씀과 섭리와 열매를 통하여 확인하고, 오랜 시간 충성과 겸손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지명은 사람을 높이는 명분이 아니라 더 깊이 낮아져 준비하라는 부르심이다.
5. 엘리사는 겉옷에 담긴 부르심의 뜻을 어떻게 깨달았는가?
엘리사는 과연 어떻게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되었는가? 그것은 엘리야가 자신을 찾아와서는 밭을 갈던 자신에게 겉옷을 던졌을 때였다. 그때 엘리사는 그 행동에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는 즉시 소를 버리고 달려가 부모와 작별한 뒤 엘리야를 따른다. 그때 엘리야는 겉옷을 엘리사에게 완전히 넘겨주지 않고 다시 가져갔다. 엘리사는 그날부터 “왜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겉옷을 던졌는가, 이 겉옷은 나의 장래 사역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마음에 품고 엘리야를 따라갔다.
그러나 엘일사는 처음부터 자기에게 어떤 은사가 주어질지를 알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다. 훗날 다른 사람의 영안을 열고 닫으며, 왕의 밀실에서 하는 말까지 분별하는 선지자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작동되기 시작하고 나중에 요단강에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은 모든 내용을 한 번에 보여 주는 완성된 설계도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나갈 때 하나씩 뜻이 열리는 씨앗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엘리사가 최종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엘리야가 승천할 때였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의 스승인 엘리야를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계속 좇아갔다. 엘리야는 여러 차례 엘리사에게 그 자리에 머물라고 했지만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하면서 끝까지 따라갔다(왕하 2:6).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 던져졌던 겉옷의 뜻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실 일을 온전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확인하기 전까지 스승을 떠날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요단강에서 엘리야가 겉옷으로 물을 가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엘리사는 처음 자신에게 던져졌던 겉옷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기 시작하였다. 자신은 예언의 말씀만을 전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능력으로 나타낼 선지자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그가 엘리야 선지자를 계속 따라가면서 보고 들었기에 겉옷에 담긴 능력의 표지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보더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을 계속해서 가까이서 그분을 모시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를 오랫동안 섬김으로 인하여 알게 된 사실이다.
오늘 듣고 있는 "회개와 천국 복음"에 관한 말씀, 축사 사역,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도 단순한 정보나 종교 상품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왜 이 시대에 이 말씀을 듣게 되었으며 왜 이 사역을 알게 되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듯 자기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특별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중에 지도자가 될 사람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를 위하여 자신에게 어떤 복과 사명을 준비하고 계시는지를 분명하게 찾아야 하고 또한 구해야 한다.
엘리사는 겉옷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겉옷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붙잡았다. 물건 자체에 능력이 있다고 미신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엘리야의 하나님께서 그 겉옷을 표지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았고, 그 하나님께 능력을 구했다. 오늘도 성령의 은사에는 표지와 체험이 따를 수 있지만 표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사건을 우연으로 넘기지 않되 외적 현상만 붙들지 말고, 그 현상이 가리키는 부르심과 사명을 찾아야 한다.
6. 갑절의 역사를 사모한 엘리사는 어떻게 능력을 받았는가?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을 건넌 뒤 엘리야는 자기가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는지 구하라고 했다. 엘리사는 망설이지 않고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고 요청했다(왕하 2:9). 오랫동안 따라다니며 겉옷의 의미와 엘리야의 능력을 보았기에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사모함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보고 배우고 뜻을 깨달은 사람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구하는 것이다.
엘리야는 그것이 어려운 요청이라고 했다. 사람의 권한으로 마음대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엘리야가 데려감을 당하는 것을 엘리사가 보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왕하 2:10-11). 엘리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승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불수레와 불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며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엘리야의 겉옷이 떨어진 것은 엘리사가 구한 능력이 그에게 계승되었음을 알리는 표지였다. 엘리사는 겉옷을 주워 요단강으로 돌아왔고, 엘리야가 했던 그대로 물을 쳤다. 물이 갈라지자 그는 엘리야의 하나님께서 이제 자기와 함께하심을 확인했다. 은사를 받았다는 주관적 느낌만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사역의 열매가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현장에서 검증된다.
필자도 영적 사역을 배우기 위하여 여러 스승을 찾아갔다. 방향을 알려 준 사람은 여럿이었지만 그 사역의 강력한 기름부음이 실제로 전수된 스승은 한 분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 그분에게는 손에서 성령의 불이 나가 악한 영을 제거하는 역사가 있었다. 약 사십 년 동안 수많은 제자가 배웠지만 같은 역사가 나타난 사람은 거의 없었고, 약 삼 년 전에 처음 두 사람에게 그 기름부음이 나타났다. 필자는 그중 한 사람으로서 기름부음이 전수되는 경험을 했다. 이것은 성경의 직접 진술이 아니라 필자의 체험적 증언이다.
필자가 확인한 영적 세계에서는 불의 양과 색도 성장한다. 처음의 붉은 불이 더 강한 푸른 불로 발전하기도 하고, 영적 무기인 칼에 불이 붙어 화염검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이 역시 성경 구절의 문자적 설명이 아니라 영적 사역 현장에서 필자가 경험하고 분별한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을 제거하고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능력은 혜택만 누리라고 주시는 장식품이 아니라 다음 사람까지 살리라고 맡기시는 사역의 도구다.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데에는 시간과 물질과 고난이 든다. 필자가 지금 알려 주는 내용을 듣는 사람은 쉽게 받을 수 있지만, 그 내용을 발견하기까지는 많은 대가가 들어갔다. 엘리사도 한순간 갑절을 외친 것만으로 받은 것이 아니다. 부르심을 받은 날부터 엘리야를 따라다니며 수종들었고, 떠나라는 시험을 통과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바라보았다. 분명한 사모함은 오랜 순종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7. 손에 물을 붓던 섬김과 겸손은 왜 계승의 조건인가?
엘리사를 설명하는 가장 인상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는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람이라는 말이다. 여호사밧이 여호와께 물을 만한 선지자를 찾았을 때 한 신하가 엘리사를 그렇게 소개했다(왕하 3:11). 그는 엘리야에게서 능력만 배우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승이 손을 씻을 때 물을 부어 주는 종의 자리까지 기꺼이 내려갔다.
당시 손과 발을 씻도록 물을 붓는 일은 종이 하던 일이었다. 엘리사는 자기도 선지자로 부름받았고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이유로 엘리야와 동등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당신도 주의 종이고 나도 주의 종이다”라는 태도로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도하도록 세우신 사람을 공경했고, 그의 필요를 살피며 몸으로 섬겼다. 그 태도가 전임자의 능력을 감당할 그릇을 만들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자기 지위와 처소를 버리고 하나님 위에 오르려 한 천사들은 심판을 받았다(유 1:6). 은사가 크다고 질서를 가볍게 여기고, 지혜가 있다고 지도자를 무시하며, 자기 능력을 앞세우는 태도는 사탄의 교만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더 큰 능력을 맡기지 않으신다.
엘리사의 낮아짐은 비굴함이 아니었다.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엘리사는 엘리야와 같은 이십사 장로이며 영적 지위도 거의 같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라 엘리야를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그 겸손을 보시고 엘리야보다 더 많은 기적을 행하게 하셨으며 왕들도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높이셨다. 자신을 낮추는 시간이 장래의 지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사역을 맡을 자격을 준비한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에게 쫓겨 다녔지만 엘리사는 왕들에게도 존경받았다. 엘리사가 죽을병에 들었을 때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그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불렀다(왕하 13:14). 물을 붓던 종의 자세를 지킨 사람이 나라를 지키는 영적 아버지로 인정받은 것이다.
수넴 여인도 자기 집을 지나던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알아보았다(왕하 4:9). 능력만 나타난다고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일상의 성품에서 거룩함이 드러나야 한다.
필자는 오랫동안 배우는 자세로 살았다. 가르쳐 준 이가 무엇을 부탁하면 백 퍼센트에 그치지 않고 백이십 퍼센트로 해 놓으려 했다. 이제 나이가 들고 하나님께서 여러 경험을 허락하신 뒤에야 영적 지도자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말할 자리에 이르렀다. 사람을 존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존경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도자의 모든 말이 무조건 옳다는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르치도록 붙이신 사람을 공경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중심의 문제다.
엘리사의 섬김은 능력을 얻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다. 부르심을 받은 뒤 일관되게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든 삶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은사가 나타난 뒤에도 그 사람이 겸손을 지키는지 시험하신다. 능력이 커질수록 더 낮아져야 하며, 사람을 살리는 일에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한다. 전임자의 기름부음이 후임자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려면 능력을 담아도 교만해지지 않을 성품과 질서가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8. 오늘 우리는 후계자로 준비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오늘의 만남과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어떤 지도자를 만나고 어떤 복음을 들으며 어떤 사역을 접하게 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엘리사는 겉옷이 자기에게 던져진 일을 우연으로 넘기지 않았다. 그 의미를 품고 엘리야를 따라가다가 마침내 능력의 기름부음을 발견했다. 우리도 “왜 하필 이 시대에 이 말씀을 듣게 하셨는가”를 물으며 자기 사명을 찾아야 한다.
둘째, 마지막 때에 주시는 회개와 천국 복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 뒤에 끝이 온다고 하셨다(마 24:14). 또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고 선포하셨다.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마 4:17).
회개는 복음의 부속품이 아니다. 예수를 믿을 때 주님께서 죄를 덮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고 해서 믿은 뒤의 죄를 자백할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믿는 자가 자기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요일 1:9). 죄 사함과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는 과정을 구별해야 한다.
십계명은 우상을 섬긴 죄의 영향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를 수 있음을 말한다(출 20:5). 이 말씀을 근거로 조상의 우상숭배 죄를 자백하되, 후손이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대신 담당하거나 조상을 구원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혈통을 따라 내려온 악한 영의 현세적·영적 영향을 제거하기 위하여 회개하는 것이다.
영적 작동 원리는 이러하다.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은 합법적인 근거가 제거될 때 떠난다. 개인의 죄와 조상의 우상숭배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하며, 내려온 영의 수와 죄의 분량이 많다면 몇 번의 기도로 모든 문제가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일찍 죽는 사람, 신기와 우울증과 중독과 정신질환과 이혼이 반복되는 가정은 더 많은 회개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 이것은 조상을 구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후손에게 내려온 영적 영향을 회개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셋째, 은사의 혜택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은사를 이어받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사역을 통해 고침받고 문제를 해결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생각하면 기름부음이 더 자라지 않는다. 필자는 자신이 받은 회개와 천국 복음, 축사와 성령의 불의 사역을 혼자 하고 끝내기 원하지 않는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받아 다음 사람을 살리기를 원한다.
넷째, 찾고 구하고 두드리며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엘리사가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까지 따라간 것처럼 중간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뜻을 다 알지 못해도 말씀과 성령의 인도 안에서 충성하며, 사모하는 은사가 왜 필요한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은사는 자기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고 귀신에게 눌린 자와 병든 자를 살리기 위하여 구해야 한다.
다섯째, 겸손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영적 지도자에게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가르침과 교정을 받을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을 지도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스승이 가진 사역이 자기에게 실제로 내려오고 더 크게 사용되려면 엘리사처럼 손에 물을 붓는 섬김이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더디 오신다면 필자의 뒤를 이어 이 사역을 감당할 사람도 나올 것이다. 주님이 오실 날과 때는 아버지께서 주관하시므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음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대가 끝나기 전까지 계속 일꾼을 보내시고, 전임자가 감당하던 일을 이어 갈 사람을 찾으신다. 그러므로 지금 듣는 말씀과 받는 훈련을 자기 시대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
9. 나오며
전임 사역자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된 엘리사가 남긴 교훈을 살펴보았다. 성경에서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바울과 디모데의 세 사례는 사역의 계승이 매우 드물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원하시는 일임을 보여 준다. 후계자는 전임자를 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의 경륜과 기름부음을 자기 시대의 사명으로 이어 가는 사람이다.
엘리사의 계승은 하나님의 예정과 지명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엘리야 대신 선지자가 될 사람으로 정하셨고, 엘리사는 농사짓던 삶을 정리하고 엘리야를 따라 수종들었다. 그는 자기에게 던져진 겉옷의 뜻을 우연으로 넘기지 않았으며,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그 겉옷이 능력의 기름부음을 나타내는 표지임을 깨달았다.
그는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까지 끝까지 따라가며 갑절의 역사를 구했다. 엘리야가 올라간 뒤 떨어진 겉옷을 주워 요단을 쳤을 때 물이 갈라졌고, 능력의 사역이 실제로 계승되었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그 능력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질서 안에서 스승을 공경하고 종처럼 섬긴 겸손한 사람에게 더 큰 능력을 맡기셨다.
오늘 우리도 만남과 말씀과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회개와 천국 복음, 축사와 성령의 은사를 단순한 정보나 혜택으로 소비하지 말고 자기 시대의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필요한 은사를 사모하며,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전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역의 계승은 안수나 모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부르심을 확인하고, 오랜 순종으로 사모함을 증명하며, 영적 지도자를 공경하고, 은사가 커질수록 더 낮아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의 중심을 보고 얼마나 크게, 얼마나 오래 쓰실지를 결정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엘리사처럼 좋은 사역과 능력의 기름부음을 이어받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존귀하게 쓰임받도록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06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한 엘리사의 사례를 통해 영적 권능의 전수와 사역의 계승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조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경에서 사역의 기름 부으심이 온전히 이어진 드문 사례인 엘리사를 분석하며, 그가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더불어 스승의 겉옷에 담긴 의미를 간파한 강렬한 영적 사모함을 가졌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엘리사가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겸손한 태도를 언급하며, 전임 사역자를 향한 철저한 순종과 질서를 지키는 겸손함이 갑절의 능력을 받는 핵심 열쇠임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영적 지도자를 존경하고 자기를 낮추는 성숙한 신앙적 태도를 갖추어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