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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12.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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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QWe86Au_ZU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2)] 이사야의 예언(22) 스올(음부)와 낙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곳인가?(사5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QWe86Au_ZUI

 

기독론(162)

스올(음부)과 낙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곳인가?

(사 51: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인생을 바른 종착지로 이끄는 나침반이다. 나침반이 어느 곳에서든 남과 북을 가리키듯 성경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마침내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쳐 준다. 천국에서도 성경을 읽고 배우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66권을 잘 알아야 한다. 곁눈질하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더라도 말씀을 보고 즉시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사야서는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놀랍도록 풍성하게 예언한다. 여기에 사탄과 악한 영들의 타락과 심판을 알려 주고, 인간이 죽은 뒤 도착할 음부와 낙원까지 보여 준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본론이라면 악한 영들의 심판과 인간의 최종 처소는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부록이다. 이사야의 예언을 성경 전체와 연결하면 음부와 낙원의 위치와 상태와 차이를 더 분명히 볼 수 있다.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스올 곧 음부는 한마디로 고통받는 장소다. 불과 구더기가 있고 감사와 찬양과 소망이 없으며, 그곳의 권세 아래 들어간 영혼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사 14:11, 38:18, 막 9:48-49). 그러나 음부는 영원한 최종 처소가 아니라 백보좌 심판 때 불못으로 넘어가는 임시 처소다. 임시적이라고 해서 운명이 다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음부에 들어간 영혼은 결국 불못에 던져지므로 사실상 영원한 심판에 들어간 것이다(계 20:14-15).

  음부의 반대편에는 아브라함의 품과 낙원이 있다. 음부가 땅 아래 가장 낮은 곳이라면 낙원은 하늘의 높은 곳에 있다. 음부에는 불꽃과 칠흑 같은 어둠과 목마름이 있지만, 낙원에는 빛과 생명수와 생명나무가 있다. 음부에서는 고통과 슬픔이 계속되지만 낙원에는 위로와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찬양이 넘친다(눅 16:25, 사 51:3). 죽은 뒤에는 두 처소 사이의 큰 구렁텅이를 건널 수 없으므로 살아 있는 오늘의 믿음과 회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가장 감사한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계 1:18). 예수께서는 우리 죄의 값을 지불하려고 음부에 내려가셨지만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다. 그분을 믿고 회개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의 낙원으로 올라간다. 그러므로 음부의 공포만 살필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마련하신 생명의 길과 낙원의 실재를 함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누가 음부에 들어가 어떤 고통을 받는지, 음부의 권세와 최종 운명은 무엇인지, 낙원과 아브라함의 품과 여호와의 동산은 어디에 있으며, 생명수와 생명나무가 있는 그곳에 누가 들어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누가 스올에 들어가며 그곳에서는 어떤 고통을 받는가?

  스올에는 악인들과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 들어간다. 성경에서 악인과 죄인은 모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사람이지만, 십계명을 기준으로 구별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첫째부터 넷째 계명을 어긴 자를 죄인이라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다섯째부터 열째 계명을 어긴 자를 악인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죄도, 사람에게 악을 행한 죄도 회개하지 않으면 음부로 이끈다(시 1:5-6, 9:17).

시 9: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우리 민족도 오랜 세월 하나님을 잊고 살았지만 1885년 제물포항에 도착한 선교사들을 통하여 복음을 듣기 시작했다. 이 은혜를 받은 우리는 회개와 천국 복음을 자신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도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갑시다”라고 전해야 한다. 음부에 들어간 부자가 살아 있는 다섯 형제만큼은 자신이 있는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기를 간청했기 때문이다(눅 16:27-28).

눅 16:27-28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음부의 고통은 잠시 견디고 끝나는 고통이 아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으로 견딜 수 있지만, 음부에서는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 불꽃과 목마름이 계속되고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 주님께 감사하거나 찬양할 수도 없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기다릴 소망도 없다(사 38:18, 막 9:48-49). 시편 기자는 사망의 줄과 스올의 고통이 자신을 두르고 환난과 슬픔이 닥쳤다고 고백했다(시 116:3).

  음부의 바닥에는 불이 타고 그 불은 사람을 소금 치듯 사른다(막 9:49). 뜨거운 프라이팬에 소금을 뿌릴 때 튀는 것처럼 영혼이 고통 가운데 몸부림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곳에서는 영혼의 형체가 무너져도 다시 회복되어 같은 고통이 반복된다. 일 분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쉬지 않고 이어지므로 누구도 그곳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또한 음부에는 물이 없어 몸을 씻거나 더러움을 없앨 수 없다. 사람은 죽을 당시의 늙고 병들고 상한 모습으로 들어가며, 사고로 육체가 훼손되었다면 그 흔적을 지닌 채 고통을 받는다고 본다. 이 땅에서는 물로 몸을 씻고 치료를 받아 고통을 덜 수 있지만 그곳에는 그런 자비가 없다. 부자가 손가락 끝의 물 한 방울을 간청한 까닭도 음부의 갈증과 더러움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보여 준다(눅 16:24).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처럼 두려운 사실을 미리 알려 주시는가? 아직 살아 있을 때 돌이키게 하시려는 것이다. 음부에 들어간 뒤에는 나사로에게 물 한 방울을 부탁해도 받을 수 없고,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돌아갈 수도 없다. 지금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이며, 가족과 친척에게 천국 복음을 전할 때다. 음부의 실상을 아는 사람은 한 영혼의 구원을 세상의 성공보다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

3. 음부의 위치와 입·문들·손이 나타내는 권세는 무엇인가?

  성경은 음부를 언제나 아래로 내려가고 떨어지고 빠지는 곳으로 묘사한다. 야곱은 스올로 내려간다고 했고, 고라와 그 일당은 땅이 입을 벌리자 산 채로 스올에 빠졌다(창 37:35, 민 16:30-33). 다윗은 하늘을 가장 높은 곳으로, 스올을 가장 낮은 곳으로 대조했다(시 139:8). 가버나움이 하늘까지 높아지려 했지만 음부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같은 위치 관계를 보여 준다(마 11:23).

  음부는 깊은 곳에 있으며 입을 벌려 죄인을 삼킨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은 스올의 깊은 곳까지 사르고, 이사야는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입을 벌린다고 했다(신 32:22, 사 5:14). 여기서 음부의 입은 사망한 영혼을 받아들이는 통로이자 다시 나오지 못하게 가두는 권세를 나타낸다.

사 5: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성경은 그 입을 ‘스올의 문들’이라고도 표현한다. 욥은 스올을 자기 집으로 삼고 침상을 흑암에 펼 것을 말한 뒤 희망이 스올의 문들로 내려갈 뿐이라고 했다(욥 17:13-16). 히스기야도 자신이 중년에 스올의 문들에 들어갈 것이라고 탄식했다(사 38:10). 예수께서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헬라어 원문은 ‘음부의 문들’을 뜻한다(마 16:18). 문들은 사망한 영혼을 여러 통로로 삼켜 가두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은 이 문들을 이긴다.

  호세아가 말한 ‘스올의 권세’는 히브리어 본문에서 스올의 ‘손’을 가리킨다. 손은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실제적인 장악력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 손에서 속량하시고 사망에서 구속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호 13:14).

호 13: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음부에 들어간 영혼은 이 권세에 저항할 수 없다. 구더기가 달라붙어도 떼어 내지 못하고 귀신이 고문해도 싸울 수 없다. 그러나 살아 있는 지금은 자유의지가 있고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므로 꿈속에서 악한 영이 접근하거나 귀접의 영이 성적으로 미혹하며 가정을 깨뜨리려고 할 때 초기에 강하게 거절해야 한다. 오래 허용할수록 떼어 내기 어려우므로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전투방 기도로 대적해야 한다.

  악한 영들은 처음부터 정면으로 침범하기보다 가까이에서 반응을 살피고 틈을 얻으려 한다. 그때 예수의 피를 선포하고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땅에서는 회개와 믿음과 축사로 싸울 수 있지만 음부에서는 그럴 수 없다. 지금 악한 영을 내보내고 거룩함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 현재의 음부와 최종 불못은 어떻게 이어지며 달라지는가?

  현재의 음부는 최후 심판 전까지 악인의 영혼이 머무는 임시 처소다. 불꽃과 목마름과 구더기의 고통이 있지만 공간 자체는 영원하지 않다. 백보좌 심판이 이루어지면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 사망은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세력이고 음부는 죽은 악인의 영혼을 가두는 공간인데, 둘 다 최종적인 둘째 사망 안으로 넘어간다(계 20:13-15).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음부가 임시 처소라고 해서 그곳에 들어간 사람의 운명이 임시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 지금 죽어 음부에 들어가면 마지막 심판 때 불못으로 옮겨지며, 낙원에 들어간 사람도 다시 음부로 떨어지지 않는다. 죽음 뒤에는 처소가 뒤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원한 미래는 먼 훗날에 갑자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며 믿음을 지키는 삶을 통해 준비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예수님의 구속 사역 이전에도 음부에는 불과 갈증과 구더기의 고통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는 타락한 영들이 그곳에 들어가 인간의 영혼을 고문하는 일까지 더해졌다. 땅에서 사용된 잔혹한 고문 도구와 방식들이 음부에도 있으며, 어떤 영화감독들은 사탄이 보여 주는 영상을 받아 이러한 장면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성경의 직접 문장이 아니라 필자의 영적 체험과 해석으로 구별해야 한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현재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들도 불못의 형벌을 받는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먼저 불못에 던져지고, 사탄은 그 뒤에 던져지며, 백보좌 심판 뒤에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과 사망과 음부도 그곳에 던져진다(계 19:20, 20:10, 14-15). 필자는 그때 귀신들이 들어가는 불못과 인간이 들어가는 불못에 공간적인 구분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성경이 직접 밝힌 구조가 아니라 저자의 추정이므로 그 유보를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음부의 영혼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까닭도 귀신들의 고문이 끝나고 최종 심판의 질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고문 방식이 끝날 뿐 불못의 영원한 형벌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최종 심판의 시간표를 안다는 것은 공포를 계산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구원의 기회를 붙드는 일이어야 한다.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보다 일편단심으로 충성하는 사람을 쓰신다. 오늘 회개하고 오늘 믿음을 지키는 신실함이 충성의 면류관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선택이 영원한 처소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예수께서는 왜 음부에 내려가셨고 누가 그 열쇠를 가지는가?

  예수께서는 우리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사망 뒤에는 음부가 따라와 영혼을 삼키기 때문이다(롬 6:23, 계 6:8). 예수께서는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 사흘 있었던 것처럼 자신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40).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위로 올라가시기 전에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다고 증언한다(엡 4:8-9).

엡 4:8-9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다. 죄 없는 분이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셨으므로 음부는 그분을 영원히 가둘 법적 근거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고, 예수님은 사흘 만에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고 나오셨다(행 2:24, 27). 부활은 예수님께 죄가 없으며 그분의 대속이 온전하다는 하나님의 확증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마귀가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 음부에 넣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죽음, 음부의 문을 열고 닫는 최종 권세가 주님께 있다. 주님의 허락 없이는 원수가 성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다(계 1:17-18).

계 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예수께서는 다윗의 열쇠와 사망과 음부의 열쇠와 천국 열쇠를 가지시고, 교회가 기도로 그 권세에 참여하도록 허락하셨다(마 16:19, 계 3:7). 그러므로 가족의 구원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내 어머니를 구원해 주십시오. 내 아버지와 남편과 자녀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변함없이 청원해야 한다. 필자도 그렇게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가족을 돌이키시는 것을 보았다.

  가족이 당장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진리를 약하게 말하는 교회로 옮기거나 신앙의 기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 상대를 따라 함께 느슨해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당신은 나를 만났으니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기도해야 한다. 천국과 지옥, 예수님과 회개와 악한 영의 실재를 성경대로 계속 가르치는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필자는 예수님의 사흘과 우리 민족의 삼박자 정서를 연결하여 부드럽고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리듬을 목회적으로 설명한다. 반대로 정욕을 자극하고 쾌락으로 이끄는 리듬에는 악한 영이 역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성경이 박자 자체를 교리로 규정한 직접 진술이 아니라, 찬양과 향락을 분별하도록 돕는 저자의 목회적 비유다. 핵심은 우리의 몸과 음악과 즐거움까지 예수님을 높이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6. 아브라함의 품과 낙원은 어디에 있으며 음부와 어떻게 다른가?

  영적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이 음부라면 가장 높은 곳은 하늘이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도 하나님께서 계시고 스올에 자리를 펴도 거기 계신다고 고백했다(시 139:7-8). 예수께서도 가버나움이 하늘까지 높아지지 못하고 음부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1:23). 이 대조를 통하여 음부는 아래에 있고 의인이 들어가는 낙원은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두 처소의 위치와 상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나사로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받들어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지만, 부자는 장사된 뒤 음부에서 고통받았다. 부자는 눈을 들어 멀리 있는 아브라함과 나사로를 보았고 두 곳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구렁텅이가 있었다(눅 16:22-26).

눅 16:22-24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눅 16:25-26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위로 올라갔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구원받은 영혼은 천사의 인도를 받아 북쪽 하늘을 향해 우주를 지나 빛나는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간다. 천국과 음부는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영적인 동시에 실제적인 장소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천국에서도 특정한 사람에게 음부의 가족을 보여 주실 수 있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도 영적 체험 가운데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천국에서 늘 지옥을 보며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대상에 초점을 맞춰 보여 주실 때만 보게 된다. 이 체험은 성경의 직접 문장과 구별해야 하지만 살아 있을 때 가족을 전도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일깨운다.

  아브라함의 품은 위로받는 곳이고 음부는 괴로움을 받는 곳이다. 음부에는 불꽃이 있고 물 한 방울이 없지만 아브라함의 품에는 생명수가 풍성하다. 음부는 칠흑 같은 어둠이지만 낙원은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의 빛으로 가득하다. 불과 물, 어둠과 빛, 고통과 위로, 절망과 기쁨이 두 처소의 상태를 선명하게 갈라놓는다.

  낙원의 물은 생명을 공급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한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의 옷은 더러움이 묻어도 곧 사라지므로 세탁할 필요가 없고, 성도들은 생명강가에서 물을 마시며 목욕한다. 반대로 음부에는 씻을 물이 전혀 없어 더러움과 악취와 고통이 계속된다. 이 대조는 물이 풍성한 낙원이 얼마나 복된 처소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7. 낙원·여호와의 동산·셋째 하늘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시온의 황폐한 곳을 에덴 같게 하고 그 사막을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곳에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노래가 있다. 구약의 ‘여호와의 동산’은 생명과 물이 풍성한 에덴의 회복을 보여 주며, 신약의 낙원이 어떠한 곳인지를 이해하게 하는 모형이다(사 51:3).

사 51: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낙원’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데이소스’는 울타리가 쳐진 동산을 가리킨다. 이 땅의 에덴동산에도 경계가 있었고, 하늘의 낙원은 새 예루살렘 성벽 안에 있다. 예수께서는 회개한 십자가의 강도에게 바로 그날 자신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눅 23:43).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일을 말하면서 다시 자신이 낙원으로 이끌려 갔다고 표현했다(고후 12:2-4). 그러므로 셋째 하늘과 낙원은 전혀 관계없는 두 장소가 아니라 같은 하늘 영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연결된다. 다만 세부적인 공통점과 차이는 다음 말씀에서 더 살펴볼 주제이므로 이번에는 낙원이 땅속 음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의 생명 영역이라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메마른 곳에서도 만족하게 하시어 물 댄 동산과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같게 하신다고 했다(사 58:11). 아가서도 동산의 샘과 생수의 우물과 레바논에서 흐르는 시내를 노래한다(아 4:15). 여호와의 동산과 낙원의 공통된 특징은 물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필자는 하늘의 여호와의 동산을 본떠 이 땅의 에덴동산이 만들어졌다고 이해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생명나무를 에덴 한가운데 두시고 하늘에서 오는 물로 네 강의 근원을 이루게 하셨다(창 2:8-10). 그러나 아담이 생명나무보다 선악과를 먼저 먹고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악 가운데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셨다(창 3:22-24). 이후 하나님은 예수의 피로 죄를 씻고 생명 주는 영을 받아 영생에 들어가는 구원의 길을 여셨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는 빛과 궁창과 땅과 식물이 창조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지만 에덴의 강물을 별도로 창조했다는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필자는 에덴의 네 강을 이루었던 물이 하늘에서 공급되었다고 본다. 타락 이후 그 공급이 차단되고 공중에 남아 있던 물이 노아 홍수 때 쏟아졌다고 이해한다. 이는 성경이 물의 이동 경로를 직접 해설한 문장이 아니라 에덴을 하늘 낙원의 모형으로 보는 저자의 해석이다.

8. 누가 낙원에 들어가며 생명수와 생명나무를 누리는가?

  낙원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이 들어간다. 십자가의 한편 강도는 자신의 죄와 형벌이 마땅함을 인정하고 죄 없는 예수님을 왕으로 믿었기에 그날 낙원에 들어갔다(눅 23:40-43). 이 땅의 재산과 지위가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회개가 영원한 처소를 결정한다.

  예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낙원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생명나무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와 생명수의 강이 있다(계 2:7, 22:1-2).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2:1-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생명수의 강은 높이 들린 하나님의 보좌에서 시작하여 보좌 앞 유리 바다를 지나 새 예루살렘 성 안을 나선형으로 흐른다. 성은 약 2,400킬로미터의 높이로 올라가며, 생명수는 열두 바퀴를 돌아 성 안을 적신다. 천사들이 성도의 집을 지을 때에는 먼저 생명수의 지류가 들어올 도랑을 만들고, 충성과 상급에 따라 분수대와 연못도 마련한다. 이는 성경의 직접 치수 설명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을 바탕으로 한 필자의 영적 체험과 해석이다.

  필자가 본 새 예루살렘 성은 동쪽에서 시작하여 나선형으로 높아지는 원통형 구조를 이룬다. 약 800킬로미터 지점에서 시작된 상승 구조가 약 1,600킬로미터를 더 올라 하나님의 높이 들린 보좌에 이르며, 전체 높이는 약 2,400킬로미터가 된다. 생명수는 보좌에서 영광의 광장과 유리 바다를 지나 성 안을 적신 뒤 각 성도의 집으로 흘러간다. 숫자와 구조는 필자의 영적 체험에 속하므로 요한계시록의 직접 인용과 구별해야 한다.

  낙원은 현재 구원받은 영혼이 들어가는 처소라는 점에서 임시적 명칭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생명나무와 생명수와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므로 곧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모든 구속의 경륜이 완성되면 새 예루살렘은 영원한 천국으로 드러난다. 장소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영혼이 누리는 낙원의 상태가 부활한 몸으로 누리는 영원한 상태로 완성된다는 뜻이다.

  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생명으로 먹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나무이시며 생명의 양식이시다. 그분을 먹는다는 것은 그분을 믿고 말씀과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요 6:51, 54).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며 악한 영을 내보내고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 세상의 쾌락과 편안함 때문에 진리를 낮추거나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서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남편이나 자녀가 당장 달라지지 않아도 천국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 계속 청원하고, 그들이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낙원에 들어갈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생각나는 영혼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 혼자 생명수를 마시는 데 만족하지 말고 가족과 이웃도 생명강가로 인도해야 한다.

  음부에는 물이 없고 씻을 수도 없지만 낙원에는 생명수가 끊임없이 흐른다. 음부에서는 죽었다 살아나는 형벌의 고통이 반복되지만 낙원에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땅 아래 음부가 아니라 천사들에게 받들려 올라가는 하늘의 낙원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뵙고 생명강가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

9. 나오며

  누가 스올에 들어가며 어떤 고통을 받는지, 음부의 입과 문들과 손이 가진 권세가 무엇인지, 현재의 음부와 최종 불못은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리고 아브라함의 품과 낙원과 여호와의 동산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성경은 음부와 낙원을 막연한 상징이 아니라 죽은 영혼이 실제로 들어가는 서로 다른 영적 처소로 보여 준다.

  음부에는 악인들과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이 들어간다. 그곳에는 불과 구더기와 목마름과 흑암이 있고 감사와 찬양과 소망이 없다. 음부의 입과 문들과 손은 영혼을 삼키고 붙들며 가두는 권세를 나타낸다. 살아 있을 때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대적할 수 있지만 그곳에 들어간 뒤에는 스스로 저항하거나 빠져나올 수 없다.

  현재의 음부는 임시 처소이지만 그곳에 들어간 영혼은 마지막 심판 뒤 불못으로 옮겨진다. 그러므로 지금의 선택이 영원한 운명을 준비한다. 오늘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며 어떤 환난과 핍박에도 일편단심으로 믿음을 지켜야 한다. 가족과 이웃에게도 아직 살아 있을 때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려고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으나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과 음부가 그분을 붙들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 성도는 마귀의 위협이 아니라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낙원은 아브라함의 품과 여호와의 동산과 셋째 하늘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그 실체가 드러난다. 그곳에는 불꽃 대신 생명수가 있고 흑암 대신 빛이 있으며, 고통 대신 위로와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수정 같은 생명수가 흐르고 생명나무는 달마다 열매를 맺는다. 우리는 반드시 천사들에게 받들려 이 하늘의 생명 영역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날마다 죄를 회개하며 악한 영을 대적해야 한다. 천국과 지옥을 분명히 가르치는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세상의 편안함 때문에 진리를 낮추지 말아야 한다. 천국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 가족의 구원을 끈질기게 청원하고 한 영혼이라도 더 생명길로 인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고 회개하여, 온 가족과 함께 생명수와 생명나무가 있는 하늘의 낙원에 들어가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12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사후 세계의 두 장소인 스올(음부)과 낙원의 실체를 대조하며, 성경을 신앙의 나침판 삼아 올바른 방향을 잡을 것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음부를 땅 아래에 위치한 영원한 고통의 장소로 정의하며, 이곳은 하나님을 잊은 악인들이 떨어져 불꽃 속에서 신음하며 자비 없는 괴로움을 당하는 곳이라 경고합니다. 반면 낙원은 하늘에 있는 물 댄 동산과 같은 곳으로, 생명수와 위로가 넘치며 구원받은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올라가는 기쁨과 감사의 처소임을 설명합니다. 결국 이 메시지는 인간이 사후에 어느 곳에 머물게 될지는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역설하며 성도들이 생명의 길을 선택하도록 권면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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