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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19.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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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Jsel06jladM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9)]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01)(겔2: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Jsel06jladM

 

기독론(169)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미리 예수님처럼 살았던 선지자 에스겔(01)

(겔 2:1-7)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에스겔은 말로만 예언한 선지자가 아니었다. 예레미야에게도 행동으로 말씀을 보여 준 경우가 있지만, 에스겔은 특별히 자신의 몸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 행동 예언자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장차 일어날 심판과 회복을 입으로 선포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말씀의 표징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에스겔을 이해하려면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시대에 누구에게 보냄을 받았으며 그 말씀을 어떻게 살아 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활동하던 때에 유다의 운명은 이미 심판을 향해 기울어 있었다. 므낫세 시대부터 쌓인 우상숭배와 피 흘림이 가득했고, 백성은 거듭된 경고에도 돌이키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의 끝이 이르렀으며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겔 7:2-4). 이는 하나님이 오랫동안 참지 않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셨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완고하게 반역하는 상태가 끝까지 계속되었기에 마침내 징계가 집행되는 때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심판이 정해졌고 대부분의 백성이 듣지 않을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왜 에스겔을 보내셨는가? 하나님은 그 시대를 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증거를 남기기 원하셨다. 백성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 하셨다(겔 2:5). 당장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종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고 계셨다. 에스겔의 존재와 순종은 심판의 시대에도 하나님이 침묵하지 않으셨다는 역사적 표지가 되었다.

  이 모습은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에게 영접받지 못하신 예수님의 삶을 미리 비춘다(요 1:10-11). 예수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오셔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셨지만,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그분을 배척했다. 병들고 귀신 들리고 소외된 이들은 예수님께 달려왔으나,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 한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로 결의했다. 에스겔이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완악한 자기 백성 가운데 오셨다.

  그러나 모두가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패역한 백성 가운데에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있었고, 예수님 시대에도 말씀을 받아들인 제자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평안하다는 말만 찾고 회개와 심판의 말씀을 외면하지만, 생명을 갈망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주시는 음성을 듣는다. 그러므로 결과가 작아 보인다고 말씀 전하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라도 듣고 돌이켜 영원한 생명을 준비한다면 선포의 사명은 헛되지 않다.

  에스겔과 예수님의 닮은 점은 ‘인자’라는 호칭, 서른 살 무렵의 소명, 열린 하늘, 하나님의 영과 말씀의 임재, 패역한 자기 백성에게 보냄받은 일, 삶으로 말씀을 증언한 일에서 드러난다. 이번 말씀은 그 가운데 첫 두 가지 환경에 집중한다. 에스겔과 예수님은 모두 듣기 싫어하는 자기 백성에게 보내졌고, 낯선 외국어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언어로 동족에게 말씀을 전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에스겔의 ‘인자’라는 호칭과 소명, 패역한 백성에게 보냄받은 이유, 예수님과의 닮은 삶,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을 향한 사명, 그리고 이 시대에 말씀을 듣고 전하는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에스겔의 ‘인자’ 호칭과 서른 살의 부르심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하나님은 에스겔을 부르실 때 “인자야”라고 말씀하셨다. 시편에도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느냐는 뜻으로 사람의 아들이 언급되지만,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계속하여 ‘인자’라고 부르신 것은 에스겔서에서 특별히 두드러진다. 필자가 설교를 준비하며 세어 본 바로는 에스겔서에 이 호칭이 아흔세 번 나온다. 다니엘에게 한 번 사용된 예가 있지만, 구약에서 이처럼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쓰인 경우는 에스겔이 독보적이다(단 8:17).

겔 2: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인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에스겔은 하늘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를 세우고 말하게 하는 힘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과 권능에서 왔다. 하나님은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고 하신 뒤 그에게 말씀하셨고, 그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워 들은 말씀을 경고하게 하셨다(겔 2:1-3, 3:17). 마른 뼈 골짜기에서는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고, 새 성전 환상에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마음에 두라고 하셨다(겔 37:3, 40:4). 인자는 하나님 앞에서 듣고 보고 순종하여 전달하는 사람이다.

  예수님도 자신을 반복하여 ‘인자’라고 부르셨다. 인자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고,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며, 장차 구름을 타고 권능과 영광으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9:6, 17:22-23, 24:30). 예수님은 참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참사람으로 오셨다. 사람의 연약함과 고통을 실제로 짊어지고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에스겔에게 집중된 인자라는 호칭은 장차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말씀을 몸으로 살아 내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에스겔의 사역 시작도 예수님을 예표한다. 에스겔은 서른째 해에 그발 강가의 포로들 가운데 있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특별히 임했고 여호와의 권능이 그 위에 있었다(겔 1:1-3). 예수님도 약 서른 살에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위에 임했으며, 그 뒤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눅 3:21-23). 서른 살 무렵, 열린 하늘과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이 사역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 서로 닮았다.

  이 닮음은 우연한 외형의 반복이 아니다. 하나님은 행동 예언자인 에스겔의 생애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자취를 미리 새겨 놓으셨다. 에스겔은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살 수 없었고, 본 것과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며 하나님이 명령하신 표징을 수행해야 했다. 예수님도 자기 뜻을 행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오셨다(요 6:38). 에스겔의 순종은 제한된 인간 선지자의 표징이었지만, 예수님의 순종은 구원의 뜻을 온전히 성취한 실체였다.

  그러므로 ‘인자’라는 호칭은 연약함만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받은 말씀을 감추지 않고, 고난 속에서 말씀을 삶으로 나타내는 사명을 포함한다. 참된 하나님의 종은 말로만 옳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전한 말씀 때문에 손해와 외로움과 배척이 오더라도 그 말씀대로 살아 내야 한다. 에스겔이 먼저 걸어간 인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비추며, 오늘날 말씀을 맡은 자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여 준다.

3. 에스겔이 보냄 받은 패역한 족속은 어떤 상태였는가?

  에스겔이 보냄 받은 대상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자손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라고 하셨다(겔 2:3-4). 패역하다는 말은 단지 실수하거나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말씀을 듣고도 거역하며, 거듭된 은혜와 경고를 받고도 자기 길을 고집하는 반역의 상태를 가리킨다.

겔 2: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많은 민족 가운데 선택하여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려 하신 민족이었다(출 19:5-6). 그런데 그들은 그 은혜를 잊고 우상을 섬겼으며,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는 가증한 일까지 행했다. 므낫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무죄한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왕하 21:1-16). 전승에 따르면 그는 회개를 촉구하던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죽게 했다. 은혜를 받은 백성이 오히려 하나님의 종을 미워하고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패역이 가득 찬 상태였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지만 죄가 가득 찼을 때 끝을 선포하셨다. 에스겔 7장에서 “끝났도다”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시며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고 가증한 일을 보응하겠다고 하셨다(겔 7:2-4). 그러므로 에스겔의 시대는 조금만 더 설득하면 국가적 심판이 철회될 수 있는 평범한 때가 아니었다. 이미 바벨론을 통한 징계가 집행되는 때였고,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었다. 백성이 겪는 환난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거역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판하고 계셨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패역한 백성의 특징은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반역하는 족속 가운데 거주한다고 하시며, 그들에게 볼 눈과 들을 귀가 있어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겔 12:2). 문제는 정보가 없다는 데 있지 않았다. 선지자의 경고가 있었지만 듣기 싫어서 외면한 데 있었다. 마음이 굳어지면 심판의 징조가 눈앞에 나타나도 평안하다며 자기 확신을 붙들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을 불편한 공격으로 여긴다.

  오늘날에도 같은 위험이 있다.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구원이 자동으로 안전하다고 여기며, 죄를 버리고 돌이켜야 한다는 말씀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지도자가 괜찮다고 말하면 스스로 말씀을 살피지 않고 안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눈먼 지도자를 눈먼 사람이 따르면 함께 구덩이에 빠진다(마 15:14). 성도는 누가 평안을 약속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성경의 진리와 성령의 책망에 맞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필자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때에도 많은 사람이 듣기 편한 말보다 너무 엄하고 위험한 말을 한다고 여겼다. 기존 종교 체계와 기득권을 건드리는 말씀을 전하면 누군가가 해칠 수 있다고 염려하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권고도 받았다. 그러나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이 맡기신 말씀이 분명하다면 살아 있는 동안 그대로 전해야 한다. 패역한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종은 사람의 반응보다 말씀의 진실성을 붙들어야 한다.

4. 듣지 않을 백성에게도 말씀을 전해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공률을 보장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백성이 심히 패역하여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먼저 알려 주셨다. 그럼에도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니라”고 명령하셨다(겔 2:7). 선지자의 책임은 사람들의 반응을 조종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충실히 전하는 데 있다. 듣게 하고 돌이키게 하는 일은 성령께 속하며, 선지자는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증언을 남겨야 한다.

겔 2: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이 말씀에는 심판 중에도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이 불타며 포로 생활이 이어지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떠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로들 가운데 에스겔을 세워 계속 말씀하셨다. 훗날 백성이 지나간 역사를 돌아볼 때, 하나님이 아무 경고 없이 심판하신 것이 아니며 가장 어두운 때에도 참된 선지자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에스겔의 사역은 당대의 가시적 성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당시에 많은 사람이 외면했더라도 그의 말과 행동은 기록되어 뒤 세대에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을 증언했다. 에스겔의 기록을 읽는 우리는 바벨론의 침공이 우연한 국제 정세의 결과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음을 안다. 또한 심판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회복의 길을 준비하셨음을 본다. 선지자의 순종은 시간을 넘어 다음 세대를 깨우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

  필자도 회개와 천국복음을 여러 해 전했지만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구원 얻는 회개의 필요성을 외쳤으나 소수만 귀를 기울였다. 2020년에는 병들고 귀신 들리고 소외되고 가난에 눌린 이들에게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회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 구체적으로 전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듣지는 않았지만 영적으로 목마르고 실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이들은 이 말씀을 찾아왔다. 듣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이 말씀의 가치를 없애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늘날 영상과 기록의 통로도 사용하신다. 말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면, 지금 듣지 못한 사람도 훗날 필요한 때에 들을 수 있다. 필자는 생방송 설교와 유튜브 영상을 통하여 자신의 설교와 신앙의 흔적을 남겨 왔고, 이 말씀을 전할 당시에는 영상이 9,180편에 이르렀다. 과거의 부족했던 설교까지 모두 지우지 않은 것은 한 사람의 배움과 변화의 과정도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설교 당시에는 반응이 작아도 어느 날 들을 귀가 열린 사람이 찾아와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충성이다. 한 사람이라도 듣고 회개하여 자기 미래를 준비한다면 말씀을 전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 천국에 이른 뒤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맡은 자는 대중의 환호나 즉각적인 결과를 기준으로 입을 열고 닫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고, 그 시대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

5. 에스겔은 어떻게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예표했는가?

  에스겔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표현했다. 하나님은 그가 먹는 음식과 눕는 자세와 침묵과 이동을 표징으로 삼으셨다. 그의 몸과 일상은 더 이상 개인의 편의를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심판과 고통과 회복을 눈에 보이게 전달하는 계시의 도구가 되었다. 이것이 행동 예언자의 길이다.

  행동 예언은 사람들이 알아주기 위한 연출이 아니다. 말씀을 전하는 당사자가 먼저 그 말씀의 무게를 몸으로 감당하는 순종이다. 말만 하는 사람은 반응이 나쁘면 표현을 바꾸거나 물러설 수 있지만, 삶이 표징이 된 사람은 자기 존재를 걸고 말씀을 증언한다. 에스겔은 패역한 백성이 비웃고 거부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명하신 행동을 해야 했다. 그가 감당한 외로움과 고통은 참된 선지자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님은 말씀을 삶으로 이루신 완전한 본이시다.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영접받지 못했고, 제자들에게조차 버림받았으며, 침 뱉음과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기적과 말씀을 경험한 사람들도 예수님의 고난 앞에서 그분을 변호하지 않았다. 죄가 없으신 분이 홀로 버림받고 죽음의 길을 가셨다. 에스겔이 패역한 백성 속에서 고독하게 말씀을 살아 낸 일은 이 예수님의 길을 미리 보여 준다.

  에스겔과 예수님 모두 자신의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 사명을 바꾸지 않았다. 에스겔은 심판이 임한다는 불편한 말씀을 전했고,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외치며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자들을 책망하셨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와 이익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분을 죽이려 했다. 진리가 기득권의 죄를 드러낼 때, 진리를 회개로 받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전하는 사람을 제거하려 한다.

  필자에게도 말씀 때문에 외로운 길을 가야 했던 때가 있었다. 기존 교계가 보편적으로 말하지 않는 내용을 전한다는 이유로 중단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염려도 들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깨달은 것은 삶의 경계를 정하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이다. 주님이 여기까지라고 하시면 내려놓을 준비를 하되,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이 체험은 교리를 만드는 근거가 아니라, 받은 말씀을 삶으로 감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개인적 간증이다.

  우리의 신앙에도 말과 삶의 일치가 필요하다. 평안할 때 진리를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말씀 때문에 손해를 보고 홀로 서야 할 때까지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려운 길이 올 수 있다는 말씀을 미리 들으면 실제 고난이 닥쳤을 때 “올 것이 왔구나” 하고 견딜 수 있다. 에스겔과 예수님의 삶은 고난 자체를 숭배하게 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놓지 않는 순종을 배우게 한다.

6. 예수님은 에스겔처럼 자기 백성에게 어떻게 배척받으셨는가?

  예수님은 세상을 지으신 분이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고,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0-12). 이 말씀은 거절과 영접이 동시에 일어났음을 보여 준다. 다수가 배척했다고 해서 모두가 멸망한 것은 아니며, 패역한 세대 한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따르는 사람들이 나왔다.

요 1:11-13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께 달려온 이들은 대개 병들고 귀신 들리고 죄인 취급을 받으며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종교적 기득권보다 치유와 구원과 긍휼이 절실했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다. 반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백성이 예수님께 모이는 것을 자기 영향력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 헤롯 가문도 참된 왕이 나타나는 일을 정치적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종교와 정치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메시아를 제거하려는 세력이 형성되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표적을 보면서 진실을 보지 못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귀로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눈으로 보아도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들어 백성의 굳은 마음을 지적하시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다(마 13:13-15). 진리를 들을 귀는 단순한 청력이 아니다. 자기 생각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말씀 앞에서 돌이키려는 마음이다.

  제자들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눈이 보고 귀가 듣기에 복이 있다고 하시며,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그들이 보는 것을 보고자 해도 보지 못하고 듣는 것을 듣고자 해도 듣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마 13:16-17). 하나님의 비밀은 학식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자동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받고 회개하며 따르는 사람에게 열린다.

  오늘날에는 성경 강해와 영상과 여러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인공지능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정리할 수도 있다. 이는 배우고 비교하며 확인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축적된 보편적 교리와 다수의 견해를 종합하여 답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것이 곧 이 시대에 성령께서 깨우치시는 모든 진리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필자는 더러운 영들이 떠난 뒤 성령만 의지하는 가운데 이전보다 말씀이 더 선명하게 연결되는 체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설교하기 좋은 시대인 동시에, 익숙한 통념이 진리인 것처럼 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위험한 시대이기도 하다. 모든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성경과 성령의 인도 안에서 분별해야 한다.

  진리를 듣는 일은 결국 각 사람의 책임이다. 지도자가 괜찮다고 말해도 마음에 말씀과 맞지 않는 부분이 느껴진다면 성경을 찾고 기도하며 확인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대신 믿고 대신 판단해 줄 수 없다. 신앙의 길은 때로 외롭지만, 먼저 걸어간 에스겔과 예수님의 길을 알면 배척과 고난이 왔을 때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떠나도 주님이 보고 계시며,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말씀을 듣는다.

7. 하나님은 왜 에스겔을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에게 보내셨는가?

  하나님은 에스겔을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여러 민족에게 보내지 않고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셨다. 만일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를 쓰는 이방 민족에게 보냈다면 그들이 오히려 들었을 것이라고 하셨다(겔 3:5-6).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언어를 몰라서 못 들은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알아듣고도 듣기를 거부했다.

겔 3:5-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동시에 이 말씀은 하나님이 종에게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언어와 대상을 맡기신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에스겔은 외국어를 새로 배워 먼 민족에게 가라는 부름을 먼저 받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말로 자기 민족의 죄를 깨우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했다.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 주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며 유대 땅에서 그들이 알아들을 언어로 천국복음을 전하셨다(마 15:24).

  필자는 한때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국제 집회에서 이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이 듣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스겔의 소명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다. 하나님은 먼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교회와 한국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다른 언어권으로 전달할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붙여 번역과 자막의 길을 열 수 있다. 실제로 필자의 설교를 영어로 번역하여 인터넷에 올리는 사람도 생겨났다.

  한국어를 사랑하고 정확히 다루는 배경도 사명에 사용되었다. 필자는 국문학을 공부하며 작품의 중심 내용과 배열, 복선과 상징을 분석하는 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은 성경의 문맥과 구조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구약의 에스겔서와 다니엘서와 스가랴서에 놓인 상징과 예표를 알아야 요한계시록의 표현을 바르게 연결할 수 있다.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 일은 지나간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분별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한다.

  설교 중 필자는 조선 오백 년 가운데 적어도 삼백오십 년간 제사를 강요받고, 이어 일제의 삼십육 년 지배를 겪고도 한국어가 보존된 역사와 남미 원주민 언어에 한국어와 비슷하게 들리는 표현이 남아 있다는 사례를 들었다. 이것은 언어와 민족의 뿌리에 대한 필자의 관심을 보여 주는 예화다. 그 예화의 핵심은 언어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한 민족의 역사와 사고를 담는 그릇이라는 데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가진 언어와 문화와 교육의 배경을 복음 전달의 통로로 사용하신다.

  필자는 교육자의 길과 목회자의 길 사이에서 고민한 적도 있다. 교육계의 지도자로부터 교직을 맡아 달라는 권유를 받았고, 학교 교목에 지원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길을 생각하기도 했다. 학교에는 해마다 새로운 학생이 오므로 복음을 전하기 좋은 자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길이 열리지 않았고 결국 목회의 자리에서 성경을 가르치게 되었다. 돌아보면 세상 학문을 가르치는 교사보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가르치는 사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가진 언어와 무대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주신 말과 경험과 자리에서 시작하게 하신다. 한국어로 전한 말씀이 필요하면 번역자를 통하여 다른 민족에게 갈 수 있고, 한 지역 교회에서 전한 설교가 영상을 통하여 세계로 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가능성을 먼저 갖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언어로 맡겨진 백성에게 정확히 말하는 것이다.

8. 패역한 시대에 말씀을 듣고 전하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먼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에스겔 시대에는 나라가 멸망하고 백성이 포로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이 떠나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환상이 나타났으며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했다. 눈에 보이는 형편이 무너졌다고 하나님의 통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심판의 때에도 하나님은 자기 종을 세우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을 살리며, 다음 세대를 위한 말씀을 남기신다.

  둘째, 스스로 말씀을 듣고 분별해야 한다. 지도자의 말만 의지하여 괜찮다고 안심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성령께서 무엇을 책망하시는지 살펴야 한다. 오늘은 유튜브와 여러 성경 자료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궁금한 내용을 확인하기 좋은 시대다. 다만 많은 정보가 있다고 자동으로 진리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여러 자료를 비교하고, 무엇보다 성경 본문과 맞는지를 확인하며, 죄를 가볍게 만들고 회개를 막는 가르침은 경계해야 한다.

  셋째, 들은 말씀을 한 귀로 흘리지 말고 자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구원 얻는 회개와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회개의 필요성을 들려주셨다면, 지식으로만 저장하지 말고 실제로 죄를 자백하고 돌이켜야 한다. 교회에 나온다는 사실이나 과거의 신앙 고백만으로 안심하지 말고, 현재의 삶에 회개의 열매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귀가 복되다는 것은 귀한 말씀을 많이 안다는 뜻만이 아니라, 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의 길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넷째, 말씀을 맡은 자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진리를 전해야 한다. 물론 자기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포장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받은 내용이 진실한지 거듭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확인한 말씀이라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기존 체계가 압박하더라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종은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 심판을 피하고 천국을 준비하도록 생명의 길을 알려 주는 사람이다.

  다섯째, 말로 전한 진리를 삶으로 남겨야 한다. 에스겔은 자신의 몸을 통하여 그 시대에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의 성도도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정직과 회개와 충성으로 말씀을 살아 내야 한다. 사람들은 설교 내용만이 아니라 그 말씀을 전한 사람이 위협과 고난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본다. 말과 삶이 일치할 때,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신다는 증거가 된다.

  여섯째, 자신의 길이 외롭다고 잘못된 길이라고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도 사랑하던 제자들에게 버림받고 홀로 십자가를 지셨다. 에스겔도 대부분이 듣지 않는 백성 가운데 말씀을 전했다. 신앙의 결정은 결국 각자가 주님 앞에서 해야 한다. 다만 외로움을 자기 의로움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피며 바른 길이라면 끝까지 걸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각 사람의 삶을 섭리 가운데 사용하심을 믿어야 한다. 지금 겪는 고난과 제한이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먼저 지나간 길이 훗날 같은 어려움을 만난 사람에게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하나님은 평범한 배경과 부족한 능력도 사용하시며, 성령을 의지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깨달음과 통로를 열어 주신다. 절대 절망하지 말고,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성실히 살아 내야 한다.

9. 나오며

  에스겔이 패역한 족속 가운데 보냄을 받아 말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미리 보여 준 선지자였음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그를 아흔 번 이상 ‘인자’라고 부르셨고, 서른 살 무렵 열린 하늘과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 가운데 사역을 시작하게 하셨다. 에스겔은 연약한 사람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본 것과 들은 것을 전하며, 자기 삶을 말씀의 표징으로 내어 드렸다.

  그가 보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거듭 배반한 패역한 족속이었다. 이미 심판이 집행되는 때였고 대부분이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하나님은 그 시대에도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기 원하셨다. 나라가 무너지는 중에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셨으며, 들을 귀 있는 소수를 살리고 다음 세대가 역사의 의미를 깨닫도록 증언을 보존하셨다.

  예수님도 자기 땅과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영접받지 못하셨다. 병들고 소외된 자들은 긍휼을 구하며 나아왔지만, 종교적·정치적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려 그분을 배척했다. 그럼에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 다수가 거부하는 시대에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있고, 한 영혼을 살리는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낯선 언어의 먼 민족보다 같은 말을 쓰는 동족에게 먼저 보내셨다. 이는 이스라엘이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듣지 않았음을 드러내며, 동시에 하나님이 종의 언어와 배경을 사명에 사용하심을 보여 준다. 우리도 다른 사람의 능력과 무대를 부러워하기보다 이미 주어진 언어와 경험과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 필요한 때에는 하나님께서 기록과 영상과 번역의 통로를 열어 말씀을 더 멀리 보내실 것이다.

  패역한 시대일수록 말씀을 맡은 자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진리를 전해야 하고, 말씀을 듣는 자는 한 귀로 흘리지 말고 회개와 순종으로 자기 영혼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눈앞의 형편이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보고 계시며 일하고 계신다.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하여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 그리하여 들을 귀로 생명의 말씀을 받고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끝까지 진리를 살아 내어, 패역한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증언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19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에스겔 선지자가 ‘행동 예언가’로서 구약 시대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예표하며 살았음을 강조하는 설교 강해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에스겔이 패역한 족속에게 보냄을 받아 거절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한 과정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영접받지 못했던 예수의 고난 섞인 사역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실 때 사용하신 ‘인자(Son of Man)’라는 칭호가 훗날 예수의 자기 계시로 이어진다는 점을 들어, 에스겔이 단순한 대언자를 넘어 삶 자체로 그리스도를 보여준 인물이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정보배 목사는 에스겔과 예수처럼 진리를 외치는 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음을 밝히며, 현대의 성도들 또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이 시대에 선포되는 참된 복음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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