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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13. (목)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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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3)] 이사야의 예언(23) 낙원, 아브라함의 품, 여호와의 동산,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떤 곳인가?(사5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wia2vapZ2qU

 

기독론(163)

이사야의 예언 (23)

낙원, 아브라함의 품, 여호와의 동산,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떤 곳인가?

(사 51: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를 살피다 보면 메시야를 믿고 이기는 자가 마침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알아야 한다.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의 처소를 낙원, 아브라함의 품, 여호와의 동산, 천국, 셋째 하늘, 새 예루살렘 성이라는 여러 이름으로 표현한다. 이 명칭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장소를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생명과 안식이 가득한 동일한 하늘 영역을 가리키면서도, 각각 강조하는 내용과 사용되는 시점에는 차이가 있다.

  음부와 관련된 여러 명칭도 이와 비슷하다. 음부 곧 스올과 하데스는 최후 심판 전까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머무는 임시 처소를 가리킨다. 게헨나는 꺼지지 않는 불의 최종 형벌을 강조하고, 무저갱은 사탄과 악한 영을 가두는 감옥이며, 불못은 백보좌 심판 뒤의 영원한 둘째 사망이다.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기능과 시점이 다르다. 이처럼 하늘 처소에 관한 용어도 공통점과 차이를 함께 보아야 한다.

  낙원은 음부와 대조되는 생명과 위로의 장소다. 아브라함의 품은 그곳에서 의인이 위로와 안식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호와의 동산은 에덴처럼 생명과 기쁨과 물이 풍성한 하나님의 동산이라는 뜻이며, 천국은 하나님께 속한 하늘의 실제적인 왕국을 가리킨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신 가장 높은 하늘을 말하고, 새 예루살렘 성은 구원받은 성도가 마침내 들어가 영원히 거할 구체적인 성을 가리킨다.

  이 용어들은 구속사의 진행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리 나타난다. 구약의 의인들은 죽은 뒤 낙원 곧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했지만, 필자는 그때에는 아직 성도 개인의 천국 집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본다.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뒤 승천하여 성도들의 거처를 예비하셨고, 지금 죽는 성도는 낙원이라 불리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자기 집에서 살게 된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때에는 그 성이 하늘에서 내려와 성도의 영원한 처소가 된다.

  그러므로 이 주제는 천국의 모습을 향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우리가 음부가 아니라 낙원에 들어가야 하며, 낙원에서도 성 밖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구원의 문제다. 또한 이 땅에서 회개하고 충성하며 섬긴 것이 천국의 집과 지위와 상급을 준비한다는 삶의 문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낙원과 아브라함의 품과 여호와의 동산과 천국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셋째 하늘과 낙원 및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떻게 연결되며, 성도는 어떻게 성 안에 들어가 아름다운 천국 집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낙원·아브라함의 품·여호와의 동산·천국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먼저 네 명칭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생명과 안식의 영역을 가리킨다. 음부가 불과 목마름과 고통과 흑암의 장소라면, 이곳은 생명수와 생명나무와 빛과 기쁨과 찬양이 가득한 장소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네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하늘 처소를 어떤 특징에 초점을 맞추어 부르느냐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비교되는 음부의 상태도 구속사의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필자는 이해한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 음부에는 불과 유황의 고통이 있었지만 귀신들이 불신자의 영혼을 고문하지는 않았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 쫓겨난 귀신들이 음부에 들어가 고문하기 시작했고, 사탄 마귀는 무저갱에 갇혀 있다가 다섯째 나팔 때 잠시 풀려난다(계 9:1-2, 20:1-3). 주님이 재림하시고 최후 심판이 이루어지면 악한 영들과 사망과 음부도 최종적인 불못으로 이어진다(계 20:10, 14). 이처럼 같은 영역을 가리키는 말도 기능과 시점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진다.

  ‘낙원’은 울타리가 둘러진 아름다운 동산이라는 뜻을 지닌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한편 강도에게 바로 그날 자신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눅 23:43), 부활 승천하신 뒤에는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계 2:7). 따라서 낙원은 죽은 의인이 주님과 함께 들어가 생명나무를 누리는 하늘 처소다.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아브라함의 품’은 의인이 그곳에서 위로와 안식을 누린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음부의 불꽃 가운데에서 고통을 받았다. 두 처소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서로 건너갈 수 없었다(눅 16:22-26). 아브라함의 품은 낙원과 별개의 장소라기보다 약속을 믿고 죽은 의인이 최종 완성을 기다리며 위로받는 상태를 보여 주는 표현이다.

  ‘여호와의 동산’은 낙원의 풍성함을 구약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시온의 황폐한 곳을 위로하시고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노래가 있다(사 51:3). 하나님께서 계시는 동산은 죽음과 결핍이 아니라 생명과 충만함이 지배하는 곳이다.

사 51: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천국’은 이 하늘 처소의 장소성과 왕국의 질서를 강조한다. 천국은 단순히 마음이 평안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며 성도들이 실제로 들어가 사는 하늘의 왕국이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와 새 예루살렘 성, 생명강과 생명나무, 성도들의 집과 맡겨진 일이 있다. 그러므로 낙원이 동산과 생명과 안식을 강조한다면, 천국은 하나님 왕국의 실제적인 영역과 질서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새 예루살렘 성은 이 모든 표현이 지향하는 구체적인 성이다. 그 성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고 생명수가 흐르며 생명나무가 열매를 맺는다(계 22:1-3). 현재 구원받은 영혼이 들어가는 곳을 낙원이라고 부르지만, 그 낙원은 새 예루살렘 성과 동떨어진 임시 대기실이 아니다. 지금도 동일한 하늘의 성을 가리키되, 주님의 재림 뒤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내려와 영원한 처소로 완전히 드러난다.

3.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와 통치 면에서 어떻게 다른가?

  신약성경에서 ‘천국’은 복음서 가운데 주로 마태복음에 나타나고, 다른 복음서에서는 같은 문맥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두 말이 전혀 다른 나라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천국은 하늘에 속한 왕국의 장소성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실현되는 상태를 더 선명하게 보여 준다.

  천국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하늘들의 왕국’이라는 표현이다. 따라서 성도가 장차 들어갈 하늘의 실제적인 영역을 생각하게 한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와 박해받는 자에게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마 5:3, 10, 7:21). ‘들어간다’는 말은 천국이 사람이 실제로 들어가는 처소임을 보여 준다.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 상태를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하셨다(마 12:28). 아직 이 땅에 살고 있어도 귀신이 쫓겨나고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장차 들어갈 천국을 기다리면서도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 차이는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하다. 천국을 죽은 뒤에만 가는 장소로 여기면 현재의 삶에서 죄와 악한 영을 그대로 둘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죄를 회개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며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하나님의 다스림이 몸과 혼과 생활에 임한다. 혈기와 음행과 탐욕과 우상숭배가 지배하던 영역을 성령의 생명과 거룩함이 다스리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의 상태로만 축소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통치를 끝까지 받아들이는 사람은 마침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간다. 상태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장소적인 천국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하면서 죽은 뒤 천국에만 들어가려 할 수는 없다. 오늘 성령께 복종하는 삶이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준비가 된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온전히 통치하시는 곳이므로 귀신의 지배가 없고 저주와 사망도 없다. 성 밖에는 수고가 남아 있지만 성 안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할 것은 단지 죽어서 지옥만 피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장차 하늘의 왕국에서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4. 바울이 다녀온 셋째 하늘과 낙원은 같은 곳인가?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기록하면서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한 사람을 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사람이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사람이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큰 체험을 자랑하지 않으려고 삼인칭으로 표현했지만, 문맥상 바울 자신의 체험을 가리킨다(고후 12:1-5).

고후 12:2-4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린도후서가 주후 55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보면, 십사 년 전의 체험은 바울이 본격적인 선교 여행을 시작하기 전 무명 시절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바울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끌려 간’에 사용된 동사의 원형은 헬라어 ‘하르파조’로서, 자신이 계획하여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낚아채듯 붙들어 데려가신 수동적인 체험을 나타낸다.

  필자는 2절의 셋째 하늘 체험과 3-4절의 낙원 체험을 서로 연결되면서도 구별되는 두 장면으로 읽는다. 그러나 두 곳이 전혀 다른 세계라는 뜻은 아니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가장 높은 하늘 영역을 강조하고, 낙원은 그 영역 안에서 성도가 생명과 안식을 누리는 동산과 거처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같은 천국 영역이면서 관점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

  하늘을 나누는 보편적인 설명은 첫째 하늘을 새와 구름이 있는 대기권, 둘째 하늘을 해와 달과 별이 있는 우주 공간, 셋째 하늘을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로 보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틀린 설명은 아니라고 본다. 창세기에서 둘째 날 궁창을 만드셨을 때만 “좋았더라”는 말이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어두운 우주 공간이 악한 영의 활동 영역과 관련된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한편 필자의 스승은 다른 구분을 제안했다. 지구에서 보이는 대기권과 우주 전체를 첫째 하늘로 보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성도들이 살고 활동하는 영역을 둘째 하늘로, 그 위에 높이 들린 하나님의 보좌 영역을 셋째 하늘로 보아야 ‘하늘들의 왕국’이라는 복수 개념이 더 잘 설명된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직접 도표로 밝혀 준 구분이 아니라 천국의 구조에 관한 하나의 해석이므로, 보편적 설명과 구별하여 참고해야 한다.

  바울의 체험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사로잡힌 입신의 성격을 지녔다. 필자가 오늘 경험하는 환상과 천국 방문은 이와 조금 다르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충분히 회개하여 눈과 몸의 악한 영이 제거되고 주님과 친밀해지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눈을 감고 천국을 보고 눈을 뜨면 현재의 장소를 볼 수 있다. 사역 중에는 보고자 할 때 보고 평소에는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의 체험이든 주님의 허락을 벗어날 수 없다. 필자가 사역자를 천국으로 인도할 때에도 주님께서 허락한 층과 장소까지만 볼 수 있다. 동행하는 천사나 장로가 “여기까지”라고 알리면 더 들어가려 하지 않고 돌아와야 한다. 환상과 계시는 사람의 자랑이나 호기심을 위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에서 구원과 회개를 돕는 은사다.

5. 에덴동산은 하늘의 여호와의 동산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이사야는 회복될 시온을 에덴과 여호와의 동산에 비유했다(사 51:3). 에스겔도 사탄의 타락을 말하면서 그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고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단장되었으며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어 있었다고 했다(겔 28:13). 이 말씀들을 연결하면 에덴과 여호와의 동산과 하나님의 동산은 동일한 생명 영역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겔 28: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필자는 하늘에 먼저 있었던 여호와의 동산을 본떠 이 땅의 에덴동산이 만들어졌다고 이해한다. 하늘의 동산이 생명수와 생명나무와 보석과 찬양으로 가득하듯, 지상의 에덴에도 강물이 흐르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자랐다. 하나님은 그 한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어 아담에게 자유의지로 선택하게 하셨다(창 2:8-10).

  동산은 울타리가 둘러진 구별된 공간이다. 지상의 에덴에서 한 강이 흘러 동산을 적시고 네 근원으로 갈라졌으며, 새 예루살렘에서도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 성을 적신다(창 2:10-14, 계 22:1-2). 필자는 지상의 에덴이 새 예루살렘처럼 네모난 경계를 가졌고, 그 중심에서 물이 사방으로 흘렀다고 본다. 이것은 하늘의 생명과 질서를 물질세계에 보여 준 모형이다.

  필자는 이 모습을 한자의 모양으로도 설명한다. ‘밭 전(田)’의 네 구획은 에덴에서 갈라져 흐른 네 강을 떠올리게 하고, ‘동산 원(園)’의 둘러싸인 모양은 울타리 안에서 두 사람이 땅을 경작하며 입으로 그 열매를 먹었던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이는 한자의 역사적 기원을 입증하는 어원 설명이라기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을 경작하며 지키도록 부름받았다는 창세기 2장의 모습을 기억하게 하는 그림식 예화다(창 2:15).

  에덴에서 흐른 강 주변에는 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있었다(창 2:11-12). 필자는 이것들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역을 보여 주는 상징으로 읽는다. 순금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성을, 베델리엄을 진주로 풀이하여 죄의 독을 해결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압력과 열을 견뎌 생기는 보석은 성령의 변화시키는 사역을 보여 준다고 이해한다. 이는 창세기의 직접 해설이라기보다 하늘의 보석과 성도의 천국 집을 연결한 영적 해석이다.

  성령은 믿는 자 안에서 생수의 강처럼 흐르신다(요 7:37-39).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회개하고 순종하면 그의 삶에서 금과 진주와 보석 같은 영원한 결과가 산출되고, 그것이 천국 집을 단장하는 재료가 된다. 반대로 귀신의 음성을 성령의 인도라고 착각하여 따라가면 하늘에 남을 보석을 준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영을 분별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는 회개가 중요하다.

  여호와의 동산에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노래가 가득하다. 에스겔이 소고와 비파를 언급한 것도 그곳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소임을 보여 준다.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은 성도가 보석으로 된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 땅의 에덴이 죄로 닫혔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로 생명나무에 나아갈 길을 다시 여셨다.

6. 낙원은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어떻게 달라지는가?

  구약의 의인이 죽으면 음부가 아니라 낙원 곧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가 위로와 안식을 누렸다. 그러나 필자는 구약 시대의 낙원에는 성도 개인의 천국 집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본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한정된 안식의 영역에 머물며, 메시야의 구속 사역과 하늘 거처의 준비를 기다렸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으며, 자신이 그들을 위한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다. 거처를 예비한 뒤 다시 와서 제자들을 영접하여 자신이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1-3). 필자는 이 말씀에 따라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 구약의 성도들과 이후의 성도들이 살 천국 집을 마련하셨다고 이해한다.

요 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약 육십 년이 지난 뒤 주어진 요한계시록에서도 그곳은 여전히 ‘하나님의 낙원’이라 불린다(계 2:7). 그러므로 지금 성도가 죽어 들어가는 곳을 낙원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적인 표현이다. 다만 지금의 낙원은 텅 빈 임시 공간이 아니라 예수께서 거처를 마련하신 새 예루살렘 성이며, 구원받은 성도는 그 안에서 자신의 집과 상급을 누린다.

  십자가의 한편 강도도 그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갔다(눅 23:43). 그러나 그는 죽기 직전에 믿고 회개했으므로 천국에서 행한 공적이 많지 않았다. 필자는 그에게 별도의 화려한 집이 없고, 아마도 새 예루살렘 성 안 시온산 주변의 꽃밭과 잔디밭 같은 곳에서 지낼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성경이 그의 집 위치를 직접 밝힌 것이 아니라 행한 대로 상을 주신다는 원리에 따른 추정이다.

  현재의 낙원과 장차의 새 예루살렘은 장소가 바뀌어 전혀 다른 곳이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면 지금 하늘에 있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다(계 21:1-2). 현재 영혼으로 누리는 낙원의 삶이 부활한 몸으로 누리는 영원한 삶으로 완성되고, 새 예루살렘이라는 최종 명칭과 상태가 온전히 드러난다.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음부에 들어간 영혼이 마지막에 불못으로 이어지는 운명을 스스로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낙원에 들어간 영혼도 다시 음부로 뒤집히지 않는다. 다만 임시 처소에서 최종 처소로 이어지는 구속사적 단계가 있다. 현재에는 낙원이라 부르고, 재림과 최종 완성 뒤에는 새 예루살렘 성이 영원한 거처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들어가야 할 곳은 새 예루살렘 성 안이다.

7. 새 예루살렘 성의 구조와 생명수·생명나무는 어떠한가?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 성에 열두 기초석과 열두 진주문이 있으며, 성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라고 말한다(계 21:12-17). 필자는 이를 오늘의 단위로 약 2,400킬로미터로 설명한다. 이처럼 거대한 성에는 지금까지 구원받은 모든 성도와 앞으로 들어올 성도가 충분히 거할 수 있으므로 천국에 자리가 부족할 염려가 없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별도의 성전이 없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해와 달의 비침도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을 비추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시므로 성 안에는 밤과 흑암이 없다(계 21:22-25). 음부가 빛 없는 고통의 장소라면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얼굴빛과 영광이 모든 곳을 밝히는 생명의 성이다. 성도는 그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직접 섬기며 세세토록 왕 노릇 한다.

  열두 기초석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열두 문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계 21:12, 14).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각 진주문은 사람이 통과하는 부분만도 지름이 약 70미터에 이르고 천사가 지키고 있다. 그 문은 성 안에 들어갈 합당한 권세를 받은 자에게 열리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필자가 본 새 예루살렘 성의 내부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전체 높이 약 2,400킬로미터 가운데 땅에서 약 800킬로미터까지는 성도들이 집을 짓고 사는 시온산의 영역이다. 그 위 약 1,600킬로미터는 지름 약 482킬로미터의 원통형 영역으로 이어지며, 성도들이 회의하고 공연을 준비하며 맡은 일을 수행하는 일터가 있다. 꼭대기에는 영광의 광장이 있고, 그보다 더 높이 들린 곳에 주님의 보좌가 있다. 이 세부 구조와 수치는 성경의 직접 도면이 아니라 필자의 영적 체험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성도들이 사는 아래 영역은 평면으로 쌓인 아파트가 아니라 나선형으로 높아지는 시온산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여호와의 동산이고 성도에게는 거대한 시온산으로 보인다. 그 위 원통형 영역에서 성도들은 억지 노동이 아니라 기쁨으로 맡은 일을 한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베드로는 생명강의 물고기와 성도들의 연못에 들어갈 물고기를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그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열두 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으며 그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한다(계 22:1-2). 필자가 본 생명강은 보좌와 영광의 광장 아래 유리 바다를 지나 원통형 영역을 타고 내려온 뒤, 동쪽에서 시작하여 시온산을 나선형으로 열두 바퀴 돌며 성 안을 적신다.

계 22:1-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지상의 에덴에는 생명나무 한 그루가 있었지만, 천국의 생명강 좌우에는 생명나무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열매를 따면 곧 새 열매가 생기고, 그달의 열매가 익어 있는 동안 다음 달에 맺힐 꽃도 함께 피어 있다. 따라서 열매를 먹으려고 줄을 서거나 부족함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천국에는 다른 과일밭과 여러 종류의 떡도 풍성하여 먹고 마시는 기쁨에 부족함이 없다.

  성 안에는 아픔과 슬픔과 병과 죽음이 없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지 않다(계 21:4). 돈을 벌기 위한 고된 노동도 없다. 그러나 성 밖은 지상의 환경과 비슷하여 먹고살기 위한 수고가 남아 있다고 필자는 가르친다. 그러므로 단지 불못을 피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생명수와 생명나무와 참된 안식이 있는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8. 성도는 어떻게 성 안에 들어가 아름다운 천국 집을 준비하는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끝까지 회개해야 한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문들을 통하여 들어가 생명나무에 나아갈 권세를 얻는다. 반면 점술과 음행과 살인과 우상숭배와 거짓을 붙든 자는 성 밖에 있게 된다(계 22:14-15). 예수님의 피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죄를 그대로 품어서는 안 된다.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둘째, 회개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를 분명히 받아야 한다. 사람 안에 귀신과 뱀이 많으면 그 음성을 성령의 음성으로 착각하기 쉽다. 회개하여 악한 영이 제거될수록 영안이 깨끗해지고 주님과의 친밀함이 깊어지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도 바르게 사용된다. 성령의 생명수가 우리 안에서 흘러야 천국 집을 장식할 금과 진주와 보석 같은 열매가 준비된다.

  셋째, 가족과 이웃에게 회개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천국과 음부는 죽은 뒤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아직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도록 도와야 한다. 가족을 위하여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주변 사람에게 낙원과 새 예루살렘 성의 소망을 전하는 것이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가장 큰 사랑이다.

  넷째,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충성해야 한다. 예배와 찬양과 식사와 안내와 봉사와 섬김은 작은 일이 아니다. 성도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들으며 천국에 들어가도록 돕는 모든 수고가 하늘에 기록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충성의 열매에 따라 천국의 지위와 집과 보석과 면류관을 준비하신다(계 22:12).

  다섯째, 천국 집의 실제를 바라보며 오늘을 소중히 살아야 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성도의 집에는 이 땅에서 행한 충성과 섬김에 따라 보석 장식과 정원과 생명수의 지류와 연못이 마련된다. 연못에는 물고기가 있고 정원에는 새와 꽃이 있다. 그러나 구원받은 뒤에도 주님을 위하여 행한 일이 없다면 성 안에 들어가더라도 화려한 집과 풍성한 상급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섯째, 성 밖에 머무는 신앙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성 밖은 불못은 아니지만 참된 안식의 완성도 아니다. 필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곳에서는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계속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간신히 멸망만 피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죄를 씻고 이기는 자가 되어 생명수와 생명나무가 있는 성 안에서 왕 노릇 하게 하는 데 있다(계 21:7, 22:5).

  마지막으로 천국의 체험이나 지식 자체를 자랑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셋째 하늘과 낙원을 보았지만 자신을 높이지 않고 약한 것만 자랑했다. 우리도 천국의 구조를 많이 아는 것보다 그 말씀대로 회개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하루의 회개, 한 영혼을 위한 전도, 이름 없이 드린 봉사가 영원한 집을 준비한다.

9. 나오며

  낙원과 아브라함의 품과 여호와의 동산과 천국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은 무엇을 강조하는지, 셋째 하늘과 낙원 및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지상의 에덴이 하늘의 여호와의 동산을 어떻게 보여 주며, 낙원이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어떤 상태로 이어지는지, 성도는 어떻게 천국 집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살펴보았다.

  낙원은 의인이 생명과 안식을 누리는 하늘 처소이고, 아브라함의 품은 그곳의 위로를 강조한다. 여호와의 동산은 생명수와 생명나무와 기쁨과 찬양이 가득한 에덴의 성격을 보여 주며,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실제적인 하늘의 왕국을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 성은 이 모든 표현이 지향하는 성도의 최종적인 거처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도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장차 장소적인 천국에 들어가야 하지만, 지금부터 성령을 힘입어 악한 영을 내보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하면서 죽은 뒤 하늘의 왕국만 얻으려 할 수는 없다. 오늘의 회개와 순종이 영원한 처소를 준비한다.

  바울이 이끌려 간 셋째 하늘과 낙원은 같은 천국 영역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여 준다. 하늘을 구분하는 방식에는 보편적인 설명과 필자의 스승이 제시한 해석이 있으므로 이를 성경의 직접 진술과 구별해야 한다. 천국 환상과 새 예루살렘의 세부 구조에 관한 내용도 필자의 영적 체험임을 분명히 하되, 모든 체험은 주님의 허락과 성경 말씀 아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여 성도들의 거처를 예비하셨다. 현재 구원받은 영혼은 낙원이라 불리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고, 재림 뒤에는 그 성이 새 하늘과 새 땅에 내려와 영원한 처소로 완전히 드러난다. 그곳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와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있으며, 사망과 애통과 아픔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 날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 회개하여 악한 영을 내보내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가족과 이웃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회에서 예배와 찬양과 안내와 식사와 구제와 봉사로 영혼을 섬기고, 주님께서 행한 대로 주실 천국의 집과 지위와 상급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가족과 이웃을 생명길로 인도하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생명수와 생명나무를 누리며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13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설교는 이사야 51장 3절을 바탕으로 낙원, 아브라함의 품, 여호와의 동산,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이라는 다양한 명칭이 본질적으로 같은 장소를 지칭하면서도 강조점과 시기에 따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도가 사후에 머무는 낙원이 주님의 재림 이후에는 성도들의 거처가 완성된 새 예루살렘 성으로 불리게 되며, 이곳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기쁨과 안식의 공간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천국의 구조를 셋째 하늘과 나선형의 거주 공간 등으로 구체화하여 설명하며, 성도가 영원한 처소인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철저한 회개를 통해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텍스트는 성도들이 막연한 사후 세계를 넘어 실재하는 천국을 소망하며 현재의 삶 속에서 복음 전파와 섬김을 통해 하늘의 상급을 예비할 것을 독려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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