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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26.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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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nYt4IOTVfG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렘31:31~3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Yt4IOTVfG4

 

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

(렘 31:31-3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예레미야 기독론의 핵심은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이다. 이사야와 다니엘도 메시아와 하나님 나라를 풍성하게 예언했지만, 새 언약을 예레미야처럼 선명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법을 백성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며,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예언했다(렘 31:31-34). 여기에는 속죄(贖罪, atonement)와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of the Holy Spirit)가 함께 들어 있다.

  그런데 예레미야만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신약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께서 안에 들어오셨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짓는가 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B.C.595년 새 언약의 약속을 주었지만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충분히 풀어 주지는 못했다. 그 답은 에스겔의 새 언약 예언과 함께 볼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에스겔은 새 영과 새 마음과 하나님의 영을 약속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먼저 맑은 물로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淨潔)하게 하겠다고 선포한다(겔 36:25-27).

  성경은 한 사람이나 성경 중 어느 한 권만 붙들어서는 온전히 알기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특정한 방면에 들어 쓰셨다. 사도 바울은 서신들을 통해 믿음으로 얻는 칭의(稱義, justification)와 '생명의 성령의 법'(롬 8:1)을 힘 있게 전했고,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일·이·삼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해 생명과 정결과 마지막 계시를 보충했다. 바울을 읽되 요한도 읽고, 예레미야를 읽되 에스겔도 읽어야 한다. 성경 전체를 통전적으로 볼 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온전한 구원(救援, salvation)의 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사실 구원의 여정의 시작이요 출발점이다. 그러면 거듭남 곧 중생(重生, regeneration)을 겪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 안에 분배되는 일이며, 그 뒤에는 죄를 자백하여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과정이 있다. 마지막에는 부활체를 입는 영화(榮化, glorification)에 이르러야 한다. 칭의만 모든 과정인 것처럼 확대하면 믿은 뒤의 자범죄와 몸 안에 남아 있는 악한 영을 처리하지 못한다.

  필자는 2013년부터 회개(悔改, repentance)가 보화 중의 보화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회개는 예수님의 속죄를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피의 정결하게 하는 효능을 실제로 적용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고 진리로 인도하시지만, 사람은 자유의지로 그 음성을 거절할 수 있다. 또한 성령이 영 안에 들어오셨어도 육체 속의 뱀과 귀신들이 자동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새 언약을 함께 살펴보면서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받은 성도가 왜 다시 죄를 짓고, 어떻게 자백과 정결을 통하여 성화와 영화로 나아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함께 보아야 새 언약이 온전히 드러나는가?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새 언약의 서로 다른 면을 보여 주는 짝이다. 예레미야는 법이 돌판 밖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속과 마음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죄악을 사하여 다시 기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렘 31:31-34). 이것은 죄를 덮는 속죄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는 내주를 약속한다.

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은 그 내적 변화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속에 두시며,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 이어서 “내 영”을 속에 두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신다. 그리고 이 약속 앞에 맑은 물로 더러운 것과 모든 우상숭배에서 깨끗하게 하는 정결의 단계가 놓여 있다(겔 36:22-27).

겔 36:25-27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장이 말하고 있는 대상은 “이스라엘 족속”, 곧 이스라엘 집이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세우겠다고 했지만, 에스겔은 포로 가운데서 불러 모을 이스라엘 집을 집중하여 말한다(렘 31:31; 겔 36:22-24). 유다 집이 혈통적인 언약 백성을 가리킨다면, 이스라엘 집은 하나님을 붙들고 끝까지 이기는 영적 후손까지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남유다의 남은 백성 가운데서 나온 열두 제자와 언약을 세우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기는 자들을 만들라고 명하셨다(마 28:18-20).

  그러므로 두 예언을 포개어 보면 새 언약의 세 요소가 나타난다. 첫째는 죄를 사하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속죄다(렘 31:34). 둘째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들어와 법을 가르치고 행하게 하는 성령의 내주다(렘 31:33, 겔 36:26-27). 셋째는 맑은 물로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를 씻는 정결이다(겔 36:25). 고로 예레미야의 속죄와 내주만 말하고 에스겔의 정결을 생략하면, 예수 믿은 뒤에 왜 죄가 반복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이 원리는 신약에서도 같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길(롬  3:28; 갈 2:16)과 성령을 따라 행하는 길을 가르쳤다(갈 5:16-17). 그러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죄를 자백하면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방면을 더 분명히 밝혔다(요일 1:7-9). 요한복음은 내주하는 성령을(요 14:16-17), 요한일서는 정결을(요일 1:9, 3:3), 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빨아 성에 들어가는 마지막 결과를 강조한다(계 22:14).

  사도 바울은 주로 서신서를 기록했지만 사도 요한은 복음서와 서신서와 계시록을 모두 남겼다. 요한은 다른 복음서가 기록하지 않은 내용을 보충하려는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요한복음을 썼다. 더욱이 요한복음은 주후 90년경, 요한계시록은 주후 95-96년경 기록된 마지막 시기의 계시다. 그러므로 먼저 주어진 바울의 계시를 존중하면서도, 더 뒤에 주어진 요한의 생명과 정결과 종말의 계시를 함께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사도의 강조만으로 닫히지 않는다.

  우리는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와 요한계시록을 반복하여 공부해야 한다. 요한복음은 하나님께서 생명 주는 영으로 사람 안에 들어오시는 거듭남을 보여 주고(요 3:3-8), 요한일서는 그 생명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지를 가르치며(요일 1:9; 3:2-3), 요한계시록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과 천국에 들어갈 정결한 성도의 최종 모습을 보여 준다(계 1:17-18). 이 세 책을 함께 볼 때 예수님이 누구시며 성도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온전히 연결된다.

  주의 종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교리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 말할 것이 아니라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와 복음서와 요한의 글도 가르쳐야 한다. 선지자는 먼저 보고 아는 파수꾼이다. 적이 오는 것을 보았으면 나팔을 불어야 하듯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자기 생각과 섞지 않고 전해야 한다(겔 3:17-19; 33:1-7). 성령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성경 전체를 살필 때 새 언약의 온전한 그림이 열린다.

3. 새 언약의 속죄와 성령의 내주는 언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옛 언약은 주전 1446년경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세워졌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 주셨고, 모세는 언약서를 낭독한 뒤 소의 피를 백성에게 뿌렸다(출 24:3-8). 그러나 법이 사람 밖에 있었으므로 읽지 않고 외면하면 마음대로 죄를 지었다. 짐승의 피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피를 보여 주는 모형이었기에 반복해서 드려야 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남편이 되어 이끄셨는데도 영적 간음과 육적 음행을 행했다(렘 31:32).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주전 595년경 예레미야를 통해 법을 사람 안에 두고 죄를 사하시는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렘 31:31). 그러나 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에게 이 언약이 즉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참 목자이자 다윗의 왕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려야 했다.

  약 600년 뒤인 주후 30년경,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예수께서 마가 다락방에서 열두 제자와 새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런데 모세가 당시에는 짐승의 피로 세웠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세우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신 뒤 십자가에서 실제로 피를 흘리셨다(눅 22:19-20). 그리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이기는 자들을 만들라고 명하셨다(마 28:18-20).

  한 분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의 방식으로 동시에 존재하셨다. 아들의 인격은 아버지께 기도했고, 겟세마네에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순종했다(마 26:39). 이것을 아버지가 되었다가 아들이 되었다가 하는 양태론(樣態論, modalism)이 아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서로 다른 세 신으로 나누어서도 안 된다. 아들의 뜻은 인간으로 낮아지신 자리에서 구별되었지만 하나님의 구원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러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구하여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 Paraclete)를 보내시겠다고 하셨다(요 14:16-17). 성령은 제자들과 함께 계실 뿐 아니라 그들 속에 계실 진리의 영이다. 예레미야가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겠다”고 한 약속과 에스겔이 “내 영을 너희 속에 두겠다”고 한 약속이 보혜사 성령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필자는 이 본문의 “영원토록”을 원문 그대로 보고, 그 시대 혹은 그 세대 동안 함께하시는 약속이라는 의미로 본다. 신약 성도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이 땅의 생애가 마칠 때까지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신다.

4. 내주하는 성령은 성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여기서 내주하는 성령은 '보혜사'이시다.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는 곁에 와서 돕는 분이라는 뜻을 지니며, 돕는 자와 상담자와 위로자, 변호사의 역할을 나타낸다. 성령께서는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성도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5:26; 16:13-14). 그렇다면 내주하시는 성령은 성도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일까?

  첫째, 성령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신다. 사람에게 배운 지식은 성경 전체의 틀을 잡는 데 필요하지만, 진리를 실제로 열어 보이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래서 필자도 역시 새벽 시간에 원고만 의지하지 않고 성령께 입을 내어 드리는 훈련을 해 왔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배운 내용을 반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하게 되기 때문이다(요 14:26; 요일 2:27).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둘째, 성령은 예수님을 증언한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셨듯이, 성령께서도 스스로 말하지 않고 들은 것을 말하며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성령의 역사는 성령 자신을 높이는 데 머물지 않고, 예수께서 누구시며 무엇을 이루셨는지 알게 한다. 또한 장래 일을 알리시며 깨끗해진 사람에게 환상과 분별을 주신다(요 15:26; 16:13-14).

  셋째,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 죄에 대하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을 드러내고, 의에 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가 되심을 깨닫게 하며, 심판에 대하여는 이 세상 통치자가 이미 심판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 16:7-11).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의로 천국에 갈 수 없고,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와 생명을 받아야 한다.

  죄에 대한 책망은 예수님이 죄 사함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게 한다. 예수님을 거절하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의에 대한 책망은 사람이 자기 선행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우리의 공의’이신 예수님의 의를 옷 입어야 함을 가르친다(렘 23:6; 마 3:15). 심판에 대한 책망은 사탄 마귀가 최종 승자가 아니라 이미 판결받은 세상 통치자임을 알게 한다. 이 세 가지를 분명히 알 때 죄 앞에서는 회개하고, 의를 위해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영적 싸움에서는 담대해진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거짓말의 아비를 따르지 않고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 분명히 역사하신다. 마음속에 기존 교리를 지키려는 욕심이 진리보다 크면,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도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거역한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면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내용도 받겠다”는 자세로 들으면, 성령께서 성경의 부분들을 연결하여 전체 뜻을 깨닫게 하신다.

  넷째, 성령은 안에서 악한 자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신다. 사람은 흙으로 지어진 약한 존재지만 안에 계신 분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다(요일 4:4). 필자는 계급이 높은 악한 영을 대할 때도 전능자가 내 안에 계신다는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축사한다. 믿음의 근거는 내 능력이 아니라 안에 계신 성령과 이미 심판받은 세상 통치자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성령이 안에 계신다고 모든 가르침이 자동으로 들리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음성을 사모하고, 그분이 말씀하실 때 순종해야 한다. 진리임을 속으로 알면서도 기존 교리와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 성령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내주 자체와 내주하시는 분의 지도를 받아 사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5. 구약의 외적 성령 역사와 신약의 내적 성령 역사는 어떻게 다른가?

  구약 시대에도 성령은 강력하게 역사하셨다. 그러나 주로 특정한 사람에게 특정한 사명을 위하여 밖에서 임하시는 방식이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자 삼백 명으로 미디안의 큰 군대를 물리쳤고, 삼손에게 임하자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쳤다(삿 7:7, 19-22; 15:14-16).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재주로 성막 기구를 만들었고, 사울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그는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했다(출 31:1-6; 삼상 10:9-12).

  이처럼 외적으로 임하는 성령능력과 기적, 예언과 치유, 판단과 기술을 주셨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외적인 역사는 신약에도 계속된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사람에게 능력을 입혀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게 하시는 방면을 풍성하게 보여 준다(눅 4:18-19; 행 1:8; 10:38). 은사와 능력은 귀하지만,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내면이 깨끗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런데 몇 사람에게 있었던 구약의 외적 임재는 그 사람이 범죄할 때 떠날 수 있었다. 사울이 하나님을 거역하자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서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했다(삼상 16:14-15). 다윗은 이를 보았기에 범죄한 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간구했다(시 51:11). 사울은 끝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다른 영을 의지했고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삼상 28:3-25; 31:1-6).

  그러나 신약의 약속은 성령께서 성도의 영 안에 들어와 생명을 주고 지속적으로 함께하시는 내적 역사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과 연합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죄를 깨닫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이끄신다(요 14:16-17; 고전 6:17; 롬 8:9-16).

  외적 역사와 내적 역사는 서로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내주하는 성령을 받은 성도에게도 전도와 치유와 축사를 위한 능력이 위로부터 입혀질 수 있다. 그러나 밖으로 큰 능력이 나타나는 것과 안의 성품이 정결한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구약의 선지자처럼 예언하고 기적을 행해도 마음과 육체에 더러운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로 자기 영적 상태를 판단하지 말고, 안에 계신 성령의 책망을 따라 계속 깨끗해져야 한다.

  그렇다고 성령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구원이나 깨끗함이 끝까지 자동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신약에서는 범죄했다고 해서 구약의 사울처럼 곧바로 떠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으므로 오히려 담대하게 죄를 지을 위험도 있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끝내 회개하지 않아 죽을 때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에게서는 성령께서 떠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과거의 체험을 죄의 면허로 삼지 말고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계 3:5; 22:14-15).

6.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받은 성도가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는 무엇인가?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받은 성도가 죄를 짓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유는 여전히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사람을 인격 없는 기계로 만들지 않으신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대적할 때 어느 편을 따를지는 사람이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지만, 육체를 따르면 다시 죄를 범한다.

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둘째 이유는 성령과 악한 영의 거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듭날 때 성령은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시지만, 이전의 죄와 조상들의 우상숭배를 통하여 육체 안에 들어온 뱀과 귀신들이 자동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다. 창세기 3장 14절에서 뱀이 흙을 먹으라는 심판을 받은 것과 창세기 2장 7절에서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지어진 것을 연결해 보면, 악한 영은 육체를 발판으로 죄의 욕망을 일으킨다. 영 안에서는 성령이 선으로 이끌고 육체 안에서는 악한 영이 죄로 끌어당긴다.

  셋째 이유는 속죄와 정결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먼저 피로 덮어 죄 없는 자처럼 여겨 주고 생명을 넣어 주신다. 만일 과거의 모든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자백해야만 생명을 주신다면 아무도 거듭날 수 없다. 그러므로 칭의는 은혜로 먼저 주어진다. 그러나 덮인 죄를 믿은 뒤에 자백하여 실제로 깨끗하게 하는 과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순서를 놓치면 두 극단에 빠진다. 하나는 모든 죄를 완벽하게 회개해야만 처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은혜를 무너뜨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을 때 모든 문제가 끝났으므로 이후의 자백과 정결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피로 죄를 덮고 생명을 주신 뒤, 안에 계신 성령의 책망을 따라 하나씩 죄를 자백하게 하신다. 칭의는 시작의 은혜이며 정결은 그 생명을 지키고 자라게 하는 과정이다.

  넷째 이유는 죄 된 본성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성령을 따라 사는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이제는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고백했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한다고 말했다(갈 2:20; 롬 8:1-2). 그러나 교리로만 알고 성령께 순종하지 않거나 몸 안의 악한 영을 처리하지 않으면 로마서 7장의 탄식처럼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된다(롬 7:15-24).

  필자는 서른 살 무렵 이상관 목사의 ‘생명의 성령의 법’ 세미나를 듣고 이것이 죄를 이기는 길이라고 붙들었다. 십 년 동안 유행가 한 번 부르지 않을 만큼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며 살려고 했다. 교회도 부흥했고 눈물로 회개했지만 가난하게 하는 영과 사람을 밀어내는 영은 떠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삶의 어떤 영역은 달라지지 않는지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했다. 그 답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에 더하여, 자백으로 과거의 죄와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7. 칭의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죄와 악한 영은 어떻게 정결해지는가?

  칭의만으로 해결되지 않은 죄와 악한 영은 구체적인 자백을 통하여 정결해진다. 에스겔은 내 영을 속에 두겠다는 약속에 앞서 맑은 물로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하게 하겠다고 했다(겔 36:25-27). 사도 요한도 주님을 향한 소망을 가진 사람마다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요일 3:2-3).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자백에는 두 결과가 따른다. 첫째,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지우신다. 둘째, 그 죄를 통하여 들어와 육체에 붙어 있던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 죄 사함과 모든 불의에서의 깨끗함은 구별되지만 하나의 자백 안에서 함께 일어난다. 예수님의 피는 죄책을 덮을 뿐 아니라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히 9:14).

  죄를 자백할 때에는 막연히 “죄인입니다”라고만 말하지 말고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사건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어떤 우상을 섬겼는지, 누구를 미워하고 속였는지, 어떤 음행과 탐욕을 품었는지를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이 죄를 통하여 이런 영을 받아들였습니다”라고 죄와 악한 영의 통로를 함께 끊어야 한다. 구체적인 자백은 죄를 미화하거나 책임을 피하지 못하게 하며, 악한 영이 붙들고 있던 근거를 예수님의 피 아래 내려놓게 한다.

  이 과정은 한 번에 모든 기억을 끌어내어 끝내는 일이 아니다. 성령께서 빛을 비추실 때마다 새롭게 깨닫고 자백해야 한다. 처음에는 큰 우상숭배와 음행을 회개하고, 그다음에는 말과 생각과 성품 속에 숨어 있는 교만과 분노와 미움까지 다루게 된다. 회개의 횟수를 자랑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꾸준히 자백한 만큼 정결의 실제 열매가 쌓인다.

  개인의 자범죄뿐 아니라 조상들의 우상숭배로 내려온 영적 영향도 다루어야 한다.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후손이 대신 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상숭배를 발판으로 들어온 악한 영의 영향은 삼사 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출 20:5-6). 회개하지 않은 세대가 거듭되면 아주 오래된 영이 후손의 육체에까지 내려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조상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상과 자신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자백하여 후손에게 작용하는 악한 영을 제거하는 것이다.

  필자 자신도 과거에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살았다는 일반적인 말로 회개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따라 무덤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놓고 세 번 절했던 것처럼 구체적인 우상숭배의 사건은 자백하지 않았다. 그 죄를 통하여 이미 들어온 영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그 죄로 받아들인 영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보낼 때 정결이 실제가 된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고후 7:1).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만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자백할 때 육체 안의 더러운 영도 떠나게 한다. 정결은 행위로 구원을 사는 일이 아니다. 이미 받은 속죄의 피를 믿고 그 피의 또 다른 효능인 깨끗함을 적용받는 일이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은 주문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으로 기도의 모범을 가르치셨듯이, 무엇을 어떻게 회개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구체적인 죄를 자백하도록 돕는 길잡이다. 문장을 외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기 죄를 인정하며 끊을 때, 악한 영이 떠나고 성령의 인도를 더 온전히 받을 수 있다.

8. 칭의에서 성화와 영화로 나아가려면 왜 평생 자백해야 하는가?

  칭의는 믿을 때 한 번 받는 구원의 시작이지만 정결과 성화는 평생 반복해야 할 과정이다. 죄를 하나 자백할 때 그 죄가 씻기고 관련된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 죄의 종류와 뿌리가 많으므로 한두 번의 기도로 모든 과정이 끝나지 않는다. 회개의 분량을 채우며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고 말한다. 씻음은 한 번 옷을 받은 사실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질 때마다 어린양의 피로 빠는 지속적인 행위다. 속죄를 믿는 사람일수록 자백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다(딤후 2:20-21). 아무리 많은 은사와 능력을 행했어도 회개하지 않아 더러운 상태라면 그 수고가 나무와 풀과 짚처럼 불타 없어질 수 있다. 반대로 정결한 상태에서 순종한 일은 금과 은과 보석처럼 남아 하늘의 상급이 된다(고전 3:12-15). 하루를 살아도 주님 앞에서 계산될 삶을 살아야 한다.

  필자가 천국을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은사의 창고에는 성도들이 구하지 않아 남아 있는 은사가 많았고, 그중 가장 줄어들지 않은 것이 축사의 은사였다. 많은 사람은 예언을 사모하지만 회개 없이 예언만 좇으면 거짓 영이 섞이기 쉽다. 미국의 신사도와 빈야드 계열에서 예언을 앞세우다가 미혹된 사례를 보아 왔다. 은사의 크기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깨끗한 그릇이다.

  조상에게서 내려온 성향도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나는 조상 제사를 통하여 들어온 논리적으로 따지는 영과 가르치는 영이 있었지만, 회개로 나쁜 영향은 제거하고 논리성과 가르치는 재능은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해 왔다. 새벽 네 시부터 큰 소리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습관도 새벽마다 정성을 들이던 어머니에게서 이어진 면이 있다. 악한 영은 내보내되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성품과 재능은 선하게 드려야 한다.

  회개는 보화 중의 보화다. 자기 소유를 팔아서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 천국의 보화처럼, 죄를 자백하여 정결해지는 길은 영원한 미래를 준비한다. 평생 회개하면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죄의 충동이 약해지고, 은사와 능력과 축사의 무기도 깨끗하게 사용되며, 행한 일이 하늘에서 금과 은과 보석으로 남고 빛나는 충성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

  필자는 2013년부터 자백하는 회개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발견한 뒤 회개기도문을 통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왔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기도를 배웠고 예수님도 주기도문이라는 모범을 주셨듯이, 기도문은 기도를 대신하는 주문이 아니라 기도의 길을 익히는 샘플이다(눅 11:1-4). 이를 주술이라고 매도하면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신 뜻까지 놓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문구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을 자기 죄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정결하지 않은 채 은사만 구하면 위험하다. 예언과 환상이 나타나도 그 근원이 성령인지 거짓 영인지 분별하지 못할 수 있다. 성령의 은사는 회개를 대신하지 않고, 오히려 깨끗한 그릇 안에서 바르게 쓰일 때 주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은사를 얼마나 받았는가보다 오늘 내 양심과 육체가 예수님의 피로 얼마나 씻기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칭의에서 멈추지 않고 성화로 나아간 사람은 마지막에 영화의 몸을 입고 정결한 신부로 주님 앞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으며,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머물러야 한다. 회개와 천국 복음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행위 복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은 생명을 끝까지 지키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완전한 복음이다.

9. 나오며

  신약 성도가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고도 여전히 죄를 짓는 이유와 그 해결의 길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죄를 사하고 법을 마음에 기록하는 새 언약을 약속했고, 에스겔은 새 영과 하나님의 영을 속에 두는 약속 앞에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하게 되는 과정을 놓았다.

  새 언약은 주전 595년경 예언되었고 약 600년 뒤인 주후 30년경 예수께서 마가 다락방에서 자기 피로 체결하셨다. 성령께서는 보혜사로 성도 안에 들어와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진리로 인도하며,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신다. 구약의 외적 역사와 달리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영 안에 들어와 생명을 주고 지속적으로 이끄신다.

  그럼에도 자유의지가 육체의 소욕을 선택할 수 있고, 육체 안에 남아 있는 뱀과 귀신들이 죄로 유혹하므로 성도는 다시 죄를 짓는다. 속죄는 죄를 덮어 생명을 받을 길을 열지만 몸 안의 악한 영을 자동으로 내보내지는 않는다. 덮인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 죄 사함과 모든 불의에서의 깨끗함이 일어나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가 생긴다.

  칭의는 한 번 받는 시작이지만 정결과 성화는 평생 계속해야 한다. 바울의 칭의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붙들면서 요한의 정결과 두루마기를 빠는 신앙까지 나아가야 한다. 은사와 능력보다 깨끗한 그릇이 먼저이며, 회개의 횟수 자체보다 죄를 실제로 끊고 성령께 순종하는 열매가 중요하다.

  우리는 자백하는 회개를 행위 구원이라고 오해하지 말고 예수님의 피가 지닌 깨끗하게 하는 효능으로 받아야 한다.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성령의 음성을 따라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칭의에서 성화와 영화로 나아가 정결한 신부로 주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26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신약 성도가 죄 사함과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고도 왜 반복해서 죄를 짓는지에 대한 해답을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새 언약을 통해 통전적으로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레미야의 속죄 약속뿐만 아니라 에스겔이 강조한 정결의 과정이 병행되어야 함을 역설하며, 단순한 믿음의 단계인 칭의를 넘어 성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내주하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백과 회개를 통해 우리 육체 속에 잔존하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실천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텍스트는 사도 요한의 신학적 전통을 따라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정결함을 유지함으로써 천국 입성을 준비하는 완전한 회개와 천국 복음의 성취를 그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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