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렘16:10~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SaZ7U5Jdy4
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
(렘 16:10-13)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성경은 어느 한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 붙들어서도 안 되고, 어느 신학자나 종교개혁자의 말만 반복해서도 안 된다. 인간은 불완전하므로 한 사람이 모든 진리를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구원을 받으려면 로마서나 갈라디아만 볼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과 야고보서와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까지 함께 보아야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救援, salvation)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알 수 있다. 성경 전체가 무엇을 말하는지 살피지 않고 편하고 쉬운 길만 붙들게 되면 마지막 결산의 날에 심히 당황하게 되거나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도 있다.
사람은 어떻게 회개하고 어떻게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예레미야 16장 10절부터 13절에서 남유다 백성은 하나님께 묻는다. 도대체 여호와께서 왜 남유다에 이렇게 큰 재앙을 선포하셨으며 우리가 무슨 죄를 범했느냐 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두 가지를 함께 대답하신다. 먼저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우상에게 절했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셨다. 이어서 당시 백성은 자기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고, 각자 완악한 마음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심판의 원인은 조상들의 죄만도 아니고 현재 세대의 죄만도 아니었다. 조상들의 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여 마침내 형벌의 분량이 차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왜 회개(悔改, repentance)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할 때에도 두 가지 방면을 함께 보아야 한다. 조상들의 죄로 들어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면이 있고, 자신이 직접 죄를 지어 불러들인 방면이 있다. 조상죄만 탓하며 자기 책임을 피해서도 안 되고, 자기 죄만 보며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영적 영향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예레미야는 조상들이 범죄하고 사라졌지만 후손이 그 죄악의 결과를 담당한다고 말하였으며(애 5:7), 동시에 신 포도를 먹은 사람의 이가 신 것처럼 각 사람이 자기 죄악으로 죽는다고도 말했다(렘 31:29-30). 이 두 말씀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거나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 죄를 통하여 후손에게 내려온 더러운 악한 영들의 영향을 끊고 자신을 정결(淨潔)하게 하기 위해서다. 반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일은 자기 영혼의 구원과 직접 연결된다.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고(계 3:5), 그리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계 21:27; 22:14-15).
누구든지 믿을 때에 예수님의 피로 속죄(贖罪, atonement)를 받고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얻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은혜다(롬 5:1). 그러나 칭의는 구원의 전 과정을 끝내는 종착점이 아니라 구원 여정에 들어서는 출발점이다. 그 뒤에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지은 죄를 자백하며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삶이 뒤따라야 한다(계 22:14).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행함은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약 2:22). 마지막에는 우리가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했는지만이 아니라 그 믿음이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도 주님 앞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회개의 분량을 단순한 횟수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천 번을 회개하고도 많은 영들이 남아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그보다 적게 회개했는데도 귀신의 집이 무너지는 특사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 차이는 조상들이 지은 죄와 자신이 직접 지은 죄의 분량, 그리고 그 죄를 얼마나 진실하게 통회했는가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는 기계적인 반복보다 죄를 슬퍼하며 가슴을 찢고 회개하는 중심을 보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칭의가 구원 여정의 출발점인 이유, 믿음과 행함과 회개의 관계, 회개해야 할 죄의 세 범주, 조상죄 회개의 목적, 조상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인 결과, 칠십 년의 형벌과 회개 분량의 관계, 그리고 특사 조치가 진실한 통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칭의는 왜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구원 여정의 출발점인가?
'칭의'란 무엇인가? 칭의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은혜다. 죄인은 자기 선행으로 과거의 죄를 없앨 수 없고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믿음 없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아니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죄인이며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을 회심(回心, conversion)이라고 부른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덮어 주시고 생명 주는 영을 집어넣어 그를 거듭나게 하신다.
그러나 죄가 예수님의 피로 덮였다는 말과 죄의 모든 흔적이 실제로 사라졌다는 말은 결코 같지 않다. 즉 예수님을 믿어도 죄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처음 처음 믿을 때 자신의 지은 모든 죄를 하나씩 하나씩 다 기억하여 자백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아마도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받을 수 있도록 먼저 죄를 덮어버리고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죄를 통하여 들어온 뱀들과 귀신들이 그 순간 자동으로 모두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칭의를 얻은 뒤에도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혈기와 음란과 거짓의 유혹을 받으며, 오래된 저주의 영향 속에서 고통받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바울도 칭의를 결코 구원의 완성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앞으로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롬 5:9). 이미 얻은 칭의와 장차 받을 구원을 구별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성결(聖潔)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롬 5:1). 믿음으로 구원의 문에 들어섰다면, 이제는 그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계속 죄를 사랑하고 이웃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면, 그 믿음이 온전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믿음이 최종적으로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믿었다는 이유가 그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원받은 자라고 구원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의 비유이다.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은 주인으로부터 큰 빚을 탕감받았지만(여기서 탕감은 내버려두다는 뜻이다), 자기에게 작은 빚을 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인은 그가 받은 은혜를 거두어들이고 다시 그를 옥졸에게 넘기고 말았다(마 18:23-35). 용서받은 자는 용서받은 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는 큰 용서를 받았으면서 자기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용서받은 자답게 사는 삶이 아니다. 그런 자는 훗날 그가 받은 용서가 취소되는 것이다.
그럼, 구원의 완성은 무엇인가? 자신이 죽는 마지막 날까지 믿음을 지켜내어,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다.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으며, 주께서 자신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딤후 4:7-8, 18). 요한계시록의 표현으로 말하면 생명책(生命冊, Book of Life)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고, 자기 두루마기를 빨아 문들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야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칭의를 귀하게 붙들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회개와 순종을 생략하는 구원 보증서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칭의를 받은 순간부터 진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믿음은 행함과 회개를 통해 어떻게 온전해지고 끝까지 보존되는가?
믿음은 행함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믿음과 행함은 사실 따로 존재하는 관념이 아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주여, 주여”라고 말하는 사람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하셨다(마 7:21). 믿음으로 구원을 시작하였지만, 마지막에는 그 믿음이 순종의 열매를 맺고 있었는지를 주님께서 확인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행위로 구원을 사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행함은 믿음을 대신하는 값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이 밖으로 드러난 증거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그의 쓴 야고보서에서 이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말하였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이 어떻게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역시 이삭을 드리는 행함과 함께 일했고 그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기생 라합도 정탐꾼을 영접하고 다른 길로 내보내는 행함으로 믿음을 드러냈다고 했다(약 2:14-25).
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을 서로 싸우게 만들면 안 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구원의 첫 노정에 필요한 믿음과 그에 따르는 속죄와 칭의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율법을 지켜 자신의 행위로 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의를 전가받아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다르다. 야고보서는 구원의 노정에 끝부분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믿음을 강조한다. 믿었던 사람이 이제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자신에 맺은 열매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생의 노정에서 그가 맺은 열매가 죄밖에 없다면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논하고자 할 때에는 출발점의 말씀(속죄와 칭의)과 결승점의 말씀(열매)을 함께 보아야 한다. 하나를 붙들고 다른 하나를 성경에서 빼려고 하면 온전한 구원관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루터는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그는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를 사도적 저작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했다. 이 어찌 해괴망측한 독단인가!
그리고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처음에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어려움이 닥칠 때 입술로 주님을 부인하고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믿겠다고 하는 태도는 신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결혼한 사람이 한 배우자만 바라보아야 하듯,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은 사람은 다른 신과 세상의 쾌락을 따라 행하는 영적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존중하시므로 언제나 억지로 당신에게 순종하게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무엇을 믿고 누구를 따라갈 것인지 우리는 날마다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혹시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넘어졌다면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믿음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믿은 뒤 지은 죄를 감추면서 “나는 이미 칭의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믿음을 보존하는 길이 아니다.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피로 씻을 때 믿음이 다시 살아 움직이고, 성령의 인도를 따를 힘이 생긴다. 믿음은 필수적인 시작이며, 회개와 순종은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온전하게 하는 길이다.
필자가 영적 사역 현장에서 관찰한 바로는, 임종을 앞둔 성도에게 천사와 악한 영들이 다가와 그 영혼을 데려가려고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의 영혼이 이미 구원을 받아서 생명책에 기록되었지만 그후에 지은 죄가 많아서 구원을 잃어버릴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에 저승사자(악령들)가 그를 데려가려고 온 것이다. 고로 이 때에는 정말 주변에서 기도해주면서 그로 하여금 회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을 받게 된다고 말씀한다(고후 5:10). 그러므로 이때에 가족은 임종을 맞고 있는 자에게 복음을 다시 들려주고, 의식과 동의가 가능한 범위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실하게 고백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 회개를 돕는 기도문은 주문이 아니라 잊고 있던 죄를 하나님 앞에 인정하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4. 회개해야 할 죄의 세 범주는 무엇이며 구원과 정결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예레미야가 보여 주는 회개의 범주는 총 세 가지다. 첫째는 조상들이 죄를 지었지만 자신은 같은 죄를 직접 짓지 않은 경우다. 므낫세는 여호와의 성전에 우상의 제단을 쌓고, 일월성신을 섬기고,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찾아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죄 때문에 남유다를 여러 민족 가운데 흩겠다고 하셨다(대하 33:1-7; 렘 15:4). 후대 사람이 므낫세와 같은 죄를 직접 짓지 않았어도 그 후손이 그가 지은 죄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애 5:7).
그런데 이 경우 그의 후손이 자신의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목적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상의 구원 여부는 그가 살아 있을 때, 그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더 이상 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 그의 후손이 회개한다고 해서 죽은 조상의 영원한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상죄 회개는 그 죄로 인해 후손에게 내려온 더러운 영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 더러운 영들로부터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구별을 놓치면 조상죄 회개를 구원의 조건처럼 오해하거나, 반대로 구원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정결의 필요까지 버리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둘째는 자신의 조상들도 죄를 지었고 자신도 같은 죄를 지었거나 더 큰 죄를 지은 경우다. 예레미야 16장에서 하나님은 조상들이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씀하신 뒤, 당시 백성이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다고 말했다(렘 16:11-12). 그래서 예레미야는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함께 인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보다도 현재 살고 있는 이들의 죄악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한편 다니엘도 예루살렘이 수치를 당한 이유를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이라고 고백하고 있다(렘 14:20; 단 9:16). 그러므로 이때에 회개할 때에는 자기의 조상죄만 회개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조상들이 지은 죄들로 내려온 악한 영들의 영향으로 더 많은 죄를 저질렀음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형벌을 조상탓으로 여기지 말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는 조상들이 같은 죄를 짓지 않았어도 자신이 죄를 지은 경우다. 예레미야는 또 한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신 것이 아니라, 신 포도를 먹는 사람마다 자기 이가 시며 각 사람이 자기 죄악으로 죽는다고 말했던 것이다(렘 31:29-30). 이는 에스겔 18장에도 매우 강조해서 나온다(겔 18:20). 이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분명히 한 말씀이다. 조상의 배경이 깨끗하더라도 내가 우상을 섬기고 거짓말하고 음란과 혈기에 빠지면 그 죄의 결과를 내가 받기 때문이다. 자기 죄에 대한 회개는 자기 구원과 직접 연결되므로 미룰 수 없다.
회개기도문은 이 세 범주를 모두 함께 다 다룬다. 조상 제사, 부처와 불교, 무당과 점쟁이, 미신과 잡신을 섬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동시에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혈기와 분노 같은 생활 및 성품상의 죄를 회개하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의 죄를 지으면 귀신들이 들어오고, 생활과 성품상으로 죄를 지으면 뱀이 들어온다는 것은 필자가 회개와 축사 현장에서 확인한 영적 작동 원리이다. 이처럼 악한 영들은 두 종류가 있다. 그러나 이 영들은 서로 얽혀 있으므로 우상숭배만 회개하고 생활상에 짓는 자범죄를 숨기거나, 자범죄만 말하고 조상 우상숭배의 죄를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5. 조상죄 회개는 왜 조상의 구원이 아니라 후손의 정결을 위한 것인가?
보통 그리스인들이라면 “왜 내가 조상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가”라는 반응이 나온다. 조상이 지은 죄는 조상의 책임이고 나는 내가 지은 죄만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다. 영원한 구원의 책임만 놓고 보면 각 사람이 자기 믿음과 자기 죄에 대하여 판단받는 것이 맞다.
그러나 성경은 조상의 죄가 후손의 현실과 영적 상태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출애굽기 20장 5절은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기는 자의 죄악을 삼사 대까지 갚는다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와 예레미야애가도 조상의 죄가 후대의 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증언하고 있다(렘 15:4; 애 5:7).
조상죄의 영향은 그의 후손이 조상의 죄책을 그대로 물려받아 조상 대신 지옥에 간다는 뜻이 아니다.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이 후손에게 내려와서 유혹하고 억압하며 저주를 주며, 같은 죄를 반복하도록 만드는 영적 영향이다. 조상이 제사를 오래 지내고 무당과 점쟁이를 의지했다면 그와 관련된 영들이 후손의 육체와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그 영들은 그 가문이 음란에 약한지, 혈기와 거짓과 탐욕에 약한지, 교만에 약한지를 알고 더 교활하게 죄로 끌고 간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그 유혹을 따른 자기 책임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조상죄 회개는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결의 문제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했다(요일 1:9). 필자는 이 정결을 죄와 연결된 더러운 영이 떠나는 실제적인 과정으로 본다. 조상이 제사한 죄를 후손이 자기 가문의 죄로 인정하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할 때, 그 죄를 근거로 붙어 있던 영이 떠날 길이 열린다. 이는 조상을 원망하거나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대에서 그 죄의 연결을 끝내기 위해 회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조상죄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처음 회개를 시작한 사람이 조상죄에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자기 죄부터 회개해도 된다. 굳이 조상죄까지 회개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이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다만 조상죄의 영향을 그대로 둔 채 살아간다면, 그 영들이 계속 내 속에서 죄로 유혹하고 가난과 신기와 삶의 막힘 같은 저주의 통로로 역사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 깨끗한 삶과 더 온전한 순종을 위해서라면 조상죄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여기에서 질병과 장애를 다룰 때에는 진술의 층위를 구별해야 한다. 필자는 회개와 축사 사역에서 조상과 자신의 죄가 가난, 신기, 중한 질병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사례를 목회적으로 관찰해 왔다. 그러나 모든 질병이나 장애를 특정 죄의 직접 결과라고 의학적으로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아픈 사람과 장애인을 정죄해서도 안 된다. 몸과 정신의 증상은 전문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며, 자살 충동이나 환청, 현실 판단의 어려움이 있으면 즉시 가족과 의료기관과 응급 도움을 함께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개와 기도는 필요한 치료를 중단시키는 명령이 아니라 영혼과 삶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는 목회적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6. 조상들의 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죄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쌓일 수 있다. 므낫세 한 사람의 악한 통치가 남유다에 끼친 영향을 보자. 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면서(남북왕조 왕들 가운데 가장 오래 통치한 왕임)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와 일월성신을 섬겼으며, 여호와의 성전 안에 우상의 제단을 쌓았다.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고 신접한 자를 의지했다. 오랜 통치 기간에 죄가 나라 전체에 깊이 스며들었다(대하 33:1-7).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 시대에 잠시 개혁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 뒤에 세워진 왕들과 백성은 다시 죄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남유다가 멸망한 원인을 므낫세의 죄라고도 말할 수 있고, 예레미야 시대에 살던 백성의 죄라고도 말할 수 있다. 둘 다 맞는 것이다. 조상들의 죄가 심판의 그릇을 채워 왔고, 현재 세대가 회개하지 않고 더 악을 행하여 마지막 분량을 채웠기 때문이다(렘 16:11-12). 예레미야는 청년의 때로부터 그날까지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렘 3:25).
이러한 원리는 개인과 가정에도 적용된다. 조상들이 오랫동안 우상을 섬기고 사람을 억압하며 인색과 음란과 거짓의 죄를 지었다면 그 영향이 후손에게 내려올 수 있다. 그런데 후손도 똑같이 무당에게 묻고 제사를 붙들며 혈기와 탐욕을 따라 살면 내려온 영에 자신이 불러들인 영까지 더해진다. 그 결과 죄의 유혹은 강해지고, 가난과 관계의 파괴와 신기의 고통과 질병의 문제가 겹쳐 나타날 수 있다. 조상보다 자기가 더 악을 행했다면 조상만 탓해서는 결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회개할 때에는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와 더불어 자기자신의 성품상의 죄도 함께 회개해야 한다. 조상 제사의 죄는 회개하면서 자기 자신의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혈기와 분노를 붙들고 있다면 연결된 영들이 서로 힘을 공급한다.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간 죄를 회개하면서 탐욕과 두려움 때문에 다시 점을 보러 간다면 회개의 열매가 없다. 죄의 이름을 입으로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죄를 미워하고 실제 생활에서 끊어야 한다. 믿음의 행함이 바로 여기에 필요하다.
그러므로 내게 죄가 많이 쌓였다는 사실을 가지고 그것을 낙심할 이유로 볼 것이 아니라 더 진실하게 회개할 이유로 보아야 한다. 조상과 자신이 심은 것이 많다면 처리해야 할 분량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어떤 사람은 수천 번 회개하고도 많은 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만 미워하셔서가 아니라, 여러 세대와 자기 삶에서 들어온 영의 양과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횟수와 비교하지 말고 자기 가문과 자기 삶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또한 죄의 결과가 내 몸이나 내 정신의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모든 문제를 한 원인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필자의 목회적 관점에서는 치료를 받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조상과 자기의 죄를 살피고,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고, 우상과 악한 습관을 끊는 일이 영적 정결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죄를 감추지 않고 빛으로 가져올 때 저주의 연결이 약해지고 성령의 인도를 더 온전히 받을 수 있다.
7. 하나님께서 정하신 형벌의 70년은 회개 분량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남유다는 죄가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에 넘겨,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 칠십 년 동안 형벌을 받게 했다. 예레미야 25장은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폐허가 되고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예레미야 29장은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하나님께서 백성을 돌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필자는 “칠십 년이 차면”이라는 표현을 형벌의 정해진 분량이 채워진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즉 죄의 결과는 대충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전에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얼마나 안타까우셨는지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그 성을 용서하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끝내 이스라엘 백성은 돌아오지 않았다(렘 5:1). 마침내 죄가 가득 차자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이 불에 탔으며, 백성은 정해진 기간 동안 포로 생활을 해야 했다. 이처럼 살아 있을 때 은혜의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이 시작된 뒤에는 공의의 형벌을 고스란히 담당하게 된다.
이 칠십 년의 원리는 회개의 분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조상과 자신이 수십 년, 수백 년, 여러 세대에 걸쳐 죄를 쌓았다면, 몇 백 번의 형식적인 고백만으로 모든 결과가 즉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고통은 평생 담당해야 할 형벌처럼 깊이 자리 잡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저주가 천 번 하면 끝납니까, 이천 번 하면 끝납니까”라고 먼저 물어볼 것이 아니라, 죄가 얼마나 하나님을 아프게 했는지를 깨닫고 평생 회개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회개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죄를 자백할 때 형벌을 일으키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정해진 고통의 기간을 긍휼로 줄여 주실 길을 열어 놓으셨다. 남유다가 회개하지 않아 칠십 년을 채워야 했다면, 오늘의 우리는 살아 있을 때 회개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 드리고 저주의 통로를 끊을 수 있다. 이것이 회개가 보화 중의 보화인 이유다.
회개의 분량은 하나님께 값을 지불하여 용서를 사는 공로가 아니다. 죄를 하나씩 인정하고 그 죄와 연결된 영을 내보내는 정결의 과정이다. 같은 죄를 천 번, 만 번 반복했다면 그만큼 깊은 습관과 많은 영적 통로가 생겼을 수 있다. 회개기도문과 평생 회개기도문은 이 죄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자백하도록 돕는다. 숫자는 성실함을 점검하는 도구일 뿐, 하나님의 긍휼을 조종하는 공식이 아니다. 진실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방법을 맡겨야 한다.
8. 특사 조치는 왜 형식적인 횟수가 아니라 진실한 통회와 연결되는가?
가끔씩 회개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특사 조치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회개에 있어서 '특사 조치'란 사람에게 정해진 회개의 분량을 모두 채우기 전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긍휼로 귀신의 집을 파괴하고 많은 영을 한꺼번에 내보내 주시는 은혜를 가리킨다. 필자는 수천 번을 채우기 전에 이러한 조치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필자가 특사조치를 받게 된 것을 두고 마지막 시대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정결하게 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사역하고 회개의 차이를 살피면서 그 안에 또 하나의 원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필자에게 있던 영의 대부분은 나 자신이 직접 악을 행하여 불러들인 영이라기보다 조상들의 우상숭배로 내려온 영이 대부분이었다. 필자는 예수를 믿기 전에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친이 술을 드시면 동생들이 맞을 매까지도 대신 맞으면서 살았고, 도둑질과 큰 악을 피하며 살았다. 스스로 무당을 찾아가거나 우상을 의지한 일도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 쪽에는 조상 제사의 영이 강했고, 어머니 쪽에는 무당과 불교와 미신의 영이 워낙 강했다. 그러니 필자의 머릿속에 있는 귀신의 집에는 불교 대사의 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흰 보새기 그릇에 물을 떠 놓고 천지신명과 칠성신과 여러 신에게 자녀들이 잘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병원에 쉽게 갈 수 없던 시절이니 그때에는 필자가 아프면 쌀이나 녹두를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올리고 주문을 외우는 방식으로 주술도 받았다. 필자가 모친이 살아 계실 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친은 자식들이 잘 된다고 하기에 모르고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필자는 그 죄를 멀리서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내 죄인 것처럼 끌어안았다. “우리 어머니가 모르고 자식 잘되라고 그랬으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눈물로 통회 자복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필자가 직접 짓지 않은 조상들의 죄까지 자기의 죄처럼 아파하며 회개하는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특사 조치를 베푸셨다. 내 속에 있는 귀신의 집을 모두 파괴한 뒤 그 안에 있는 모든 귀신들을 다 제거해주셨다. 물론 뱀들도 모조리 떠나가게 해 주셨다. 이것을 가리켜 특사 곧 특별 사면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러한 특사는 횟수를 적게 채우라는 것이 아니다. 사천 번이나 오천 번을 입으로 반복해서 회개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죄를 숨기면서 마음으로 통회하지 않으면 영들은 잘 나가지 않는다. 반대로 조상죄의 큰 짐을 대신 지고 회개하면서 그 죄를 진실하게 슬퍼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분량을 다 채우기 전에 긍휼을 베푸신다. 이것이 바로 특사 조치인 것이다.
그러나 조상들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죄를 실로 많이 지었다면 자신에게는 더 깊은 책임이 뒤따른다. 예를 들어, 조상들도 갖가지 우상숭배를 하였고, 자신도 불교 단체의 책임자로서 오래동안 활동했거나, 일마다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서 물어보고 했거나, 음란과 거짓과 혈기로 많은 영을 불러들였다면 자기 죄의 분량만큼 회개의 분량도 같이 채워야 한다. 조상죄만 탓하면서 자기 죄를 숨긴 채 회개하고 있다면 그에게서 특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회개하고 있지만 내게서 특사조치가 늦어진다고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아직 인정하지 않은 죄와 끊지 않은 행위가 없는지 살피고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실한 통회자복은 죄의 결과만 없애 달라고 조르는 기도가 결코 아니다. 그 죄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을 깨닫고, 죄 자체를 미워하며, 다시 그 길로 가지 않겠다고 돌이키켜 회개하는 것이다. 횟수를 채우면서도 계속 우상과 악한 습관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서 회개의 열매는 약하다. 더욱 특사조치는 기대할 수가 없다. 반대로 날마다 가슴을 부여안고 하나씩 하나씩 자기와 자기 조상의 죄를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귀신의 집을 한꺼번에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래서 나를 정결케 해주실 것이다.
한편 내가 특사 조치를 받았다고 해서 회개를 끝내서도 아니 된다. 왜냐하면 특사는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허가 아니라 더 깨끗하게 살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죄를 지으면 다시 악한 영을 불러들일 수 있으므로 우리는 평생 회개해야 한다. 행여 특사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한꺼번에 집을 무너뜨리는 은혜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날마다 하나씩 정리하며 성품을 빚는 길을 걷게 하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진실하게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다.
9. 나오며
지금까지 칭의가 구원 여정의 출발점인 이유와 믿음이 행함과 회개로 온전해지는 과정, 회개해야 할 세 범주, 조상죄 회개의 목적, 조상죄와 자기 죄가 함께 쌓일 때 나타나는 결과, 칠십 년의 형벌과 회개 분량의 관계, 그리고 특사 조치와 진실한 통회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첫째,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 믿음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며, 믿은 뒤의 삶에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행함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대신하지 않지만 살아 있는 믿음을 온전하게 한다. 넘어졌다면 즉시 회개하여 믿음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
둘째, 회개해야 할 죄의 세 범주를 구별해야 한다. 조상들이 지은 죄로 내려온 영향이 있고, 조상과 자신이 함께 지은 죄가 있으며, 자신이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지은 죄가 있다.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은 죽은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인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다. 자기 죄의 회개는 자기 영혼의 구원과 직접 연결되므로 결코 미뤄서는 안 된다.
셋째, 조상 탓만 하거나 자기 죄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남유다가 멸망한 것은 므낫세를 비롯한 조상들의 죄가 쌓였기 때문이면서, 예레미야 시대 백성이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고통에도 여러 원인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조상에게서 내려온 영적 영향은 끊고, 내가 불러들인 영의 통로는 내 책임으로 닫아야 한다. 우상숭배의 죄와 생활 및 성품의 죄를 함께 자백하고 실제 행위도 돌이켜야 한다.
넷째, 회개의 횟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죄의 역사와 분량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정결의 속도도 다르다. 칠십 년이 차야 했던 바벨론 포로 생활처럼, 죄의 결과에는 담당해야 할 분량이 있다. 그러므로 몇 번이면 끝나는지 계산하기보다 평생 회개할 중심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는 자에게 형벌을 줄이고 저주의 연결을 끊어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해야 한다.
다섯째, 특사 조치를 숫자로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입술의 반복만이 아니라 죄를 슬퍼하는 진실한 마음이다. 필자가 조상들의 죄를 자기 죄처럼 끌어안고 눈물로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귀신의 집을 파괴하는 긍휼을 베푸셨다. 자기 죄를 감추지 말고, 조상들의 죄까지 가슴 아파하며,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여섯째, 몸과 정신의 고통을 겪는 사람을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필자의 영적 해석과 목회 현장의 관찰을 모든 질병의 보편적인 의학 원인으로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기도하고 회개하면서도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하며, 위급한 정신건강 증상에는 즉시 가족과 의료기관의 도움도 요청해야 한다. 교회는 아픈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곳이 아니라 영혼과 몸이 함께 도움을 받도록 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살아 있는 지금이 은혜를 받을 때다. 심판이 시작된 뒤에야 회개하려 하지 말고 오늘 죄를 인정해야 하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시작한 구원을 끝까지 지키고, 날마다 자기 죄와 가문의 죄를 예수님의 피 앞에 자백하며, 성령께 순종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죄와 저주의 연결에서 벗어나 자기 두루마기를 깨끗이 빨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28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원의 여정에서 철저한 회개가 갖는 필수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특히 본인과 조상들의 죄를 정결케 하는 원리를 예레미야서를 통해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인 칭의는 구원의 시작일 뿐이며, 천국에 안전하게 입성하기 위해서는 삶에서 지은 죄를 씻어내는 성결의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 설교는 회개의 범위를 세 가지 층위인 조상의 죄, 조상과 나의 공통된 죄, 그리고 나 자신의 죄로 구분하여, 가문을 통해 내려오는 영적 저주와 형벌을 끊어내기 위한 회개 기도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결국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생명책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진실한 뉘우침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 사면과 같은 정결함을 입는 것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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