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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07.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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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dU2XDBdHQvY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86)]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1)(단9:1~2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U2XDBdHQvY

 

기독론(186)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1)

(단 9:1-24)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다니엘서에 나타난 기독론(基督論, Christology)을 알려면 다니엘이 본 꿈과 환상을 함께 살펴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환상 자체에 대한 지식을 쌓는 데 있지 않다. 그 환상을 통하여 악을 멸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데 있다. 그러나 다니엘서는 종말론적인 묵시서이므로, 꿈과 환상이 주어진 배경을 놓치면 그 안에 나타난 그리스도도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다니엘은 모두 네 개의 큰 환상을 보았다. 제7장에서는 네 짐승을, 제8장에서는 숫양과 숫염소를, 제9장에서는 70이레를 보았다. 제10장부터 제12장까지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가 알려 주는 마지막 때의 일을 보았다. 또한 느부갓네살은 제2장에서 금 신상의 꿈을 꾸었고, 제4장에서는 큰 나무가 잘려 그루터기만 남았다가 일곱 때가 지난 뒤 회복되는 꿈을 꾸었다. 이 모든 꿈과 환상은 인간 나라의 흥망과 하나님의 통치, 그리고 마지막에 승리하실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다니엘서의 그리스도는 네 모습으로 나타난다. 제2장에서는 손대지 아니한 돌이고, 제7장에서는 인자 같은 이며, 제9장에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다. 제10장부터 제12장에서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로 나타난다. 손대지 아니한 돌은 세상 왕국을 깨뜨리는 심판주를, 인자 같은 이는 고난을 통과하고 영광을 받으신 왕을,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끊어져 죽으실 메시아를,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천상의 영광과 거룩함을 보여 준다.

  이 가운데 70이레의 환상은 해석하기가 가장 어렵다. 지금까지 서로 대립하는 네 가지 대표적인 해석이 제시되었고, 종교개혁자들이나 재림교회를 비롯한 여러 전통도 저마다 견해를 내놓았다. 각 해석에는 일리가 있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연대 계산부터 시작하면 어느 해석이 옳은지 분별하기 어렵다. 먼저 다니엘에게 왜 이 환상이 주어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환상을 낳은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살펴야 해석의 열쇠가 보인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읽다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끝난다는 말씀을 깨달았다. 그는 이미 정해진 기간이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백성의 죄를 자기 죄로 고백하고, 주의 긍휼과 용서를 구하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황폐한 성과 성소를 회복해 달라고 간구했다. 하나님께서는 70년의 회복을 구하는 기도에 70이레라는 더 큰 구원의 계획으로 응답하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다니엘의 네 환상과 그리스도의 네 예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70이레의 해석에 앞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다니엘이 언제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70년 예언을 깨달았는지, 왜 민족과 조상의 죄를 자신의 죄로 고백했는지, 정해진 형벌 앞에서 어떻게 간구했는지, 왜 70년을 구한 그에게 70이레가 계시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름부음 받은 자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니엘의 네 환상은 그리스도의 네 예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다니엘의 네 환상과 그리스도의 네 예표는 세상 제국을 끝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한 흐름으로 연결된다. 제7장의 네 짐승은 바벨론과 메대와 바사와 헬라와 로마로 이어지는 짐승 같은 통치와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보여 준다. 그 세력이 심판받은 뒤 하늘 구름을 타고 인자 같은 이가 와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다(단 7:13-14). 그러므로 인자 같은 이는 악한 제국 뒤에 영원한 통치를 세우는 그리스도다.

  제8장의 두 뿔 가진 숫양은 메대와 바사의 왕들을, 털이 많은 숫염소와 그 큰 뿔은 헬라와 그 첫째 왕을 가리킨다(단 8:20-21). 큰 뿔이 꺾인 뒤 네 뿔이 일어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왕이 나온다. 그 왕은 만왕의 왕을 대적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진다(단 8:23-25). 제2장의 손대지 아니한 돌처럼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악한 왕국을 끝내신다.

  제9장의 70이레 환상에서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났다가 끊어진다(단 9:25-26). 이는 메시아가 기름부음을 받고 이 땅에 오지만 죽음을 통과할 것을 보여 준다. 제10장부터 제12장에는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순금 띠를 띠며 얼굴이 번갯빛 같고 눈이 횃불 같은 이가 나타난다(단 10:5-6; 12:6-7). 그 모습은 요한계시록 제1장의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과 연결된다(계 1:13-16).

  네 예표는 그리스도의 사역 순서를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 먼저다. 예수께서는 인자로서 섬기고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주셨다. 죽기까지 복종하고 사명을 완수하신 뒤에는 인자 같은 이로 영광을 받으셨다. 마지막에는 손대지 아니한 돌처럼 악한 왕국을 부서뜨리고 세마포 옷을 입은 영광스러운 왕으로 영원히 다스리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셨기에 비굴하게 살지 않으셨다. 그러나 자신의 본래 영광과 능력을 과시하지도 않으셨다. 사탄의 유혹을 받으실 때 돌을 떡으로 만들어 능력을 자랑하거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천사들의 보호를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으셨다(마 4:1-7). 올바른 자의식은 담대함을 주지만 자만심과 자랑으로 흐르지 않는다. 성도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긍심은 가져야 하되 은사와 신분을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빌립보서 제2장은 이 과정을 분명히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자가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그분을 주라 시인하게 하셨다(빌 2:6-11).

빌 2:8-1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존재가 무릎 꿇는 삼중의 왕권을 받으셨다. 하늘에서는 천사들과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 땅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땅 아래에서는 음부에 있는 자들과 악한 영들까지 그분의 주권 아래 놓인다.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가 되신 이 영광은 자기를 비우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길 뒤에 주어졌다.

  인자가 되어 섬기고 죽는 길을 통과해야 인자 같은 이의 영광에 이른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롬 8:17). 교회에서 군림하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면서 하늘의 상속자만 되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천국 길을 막는 세력을 제거하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라고 주신 사역의 도구다. 오늘 어떻게 섬기고 헌신하는지가 장차 받을 지위와 신분을 결정한다.

3. 70이레 환상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70이레 환상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숫자를 계산하기 전에 계시가 주어진 목적과 문맥을 알아야 한다. 다니엘은 미래의 연대를 호기심으로 알아내려고 기도한 것이 아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백성과 황폐해진 예루살렘과 성전이 언제 회복될지를 두고 눈물로 기도했다. 바로 그 기도에 응답하여 70이레가 계시되었다. 그러므로 70이레는 단순한 왕조 연표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다.

  여러 해석이 생긴 이유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와 70이레의 시작점과 중간 사건을 서로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고레스왕으로 보고, 어떤 이는 느헤미야로 보며, 또 어떤 이는 다른 지도자에게 적용한다. 종교개혁 시대부터 오늘까지 적어도 네 갈래의 대표적인 해석이 서로 대립해 왔다. 각 견해의 일부 요소는 역사와 맞아 보이므로 하나만 떼어 보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해석의 중심은 다니엘이 무엇을 구했고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응답하셨는가에 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차원의 속박, 곧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백성을 해방할 계획을 보여 주셨다. 포로 귀환은 그 큰 구원의 그림자이고, 70이레는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실 완전한 해방의 시간표다.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은 해석의 구조가 비교적 분명했다. 금과 은과 놋과 쇠와 쇠와 진흙의 나라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쳐서 없애고, 그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해진다(단 2:31-45). 인자 같은 이의 환상은 낮아지신 인자와 영광을 받으신 왕의 과정을 함께 생각해야 했기에 더 깊은 묵상이 필요했다. 70이레는 거기에 역사적 연대와 회개 기도와 메시아의 죽음까지 얽혀 있으므로 가장 세심하게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것을 경솔하게 다루지 않는 태도도 필요하다. 벨사살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온 기명으로 술을 마시며 우상을 찬양했다. 그때 손가락이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을 벽에 썼다. 다니엘은 왕이 저울에 달려 부족함이 드러났고 나라가 나뉘어 메대와 바사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해석했다. 벨사살은 다니엘을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았지만 그날 밤 죽임을 당했다(단 5:1-30). 하나님의 성전과 성물과 거룩한 일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주의 종을 대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잘 알지 못할 때에는 말과 행동을 절제하고 기도해야 하며, 경솔한 대적의 결과가 후손에게까지 무거운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언을 해석할 때도 같은 경외심이 필요하다. 자신의 교단과 기존 체계에 맞추어 한 구절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고, 환상이 주어진 이유와 앞뒤 문맥과 성경 전체의 증언을 따라야 한다. 고레스가 포로를 해방한 기름부음 받은 왕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과, 다니엘 제9장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궁극적으로 누구인지는 구별해야 한다. 예표와 성취를 혼동하지 않을 때 70이레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보인다.

4. 다니엘은 언제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70년 예언을 깨달았는가?

  다니엘이 70이레의 계시를 받은 때는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첫해였다. 다니엘은 바로 그 통치 원년에 예레미야의 책을 읽다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끝날 것을 깨달았다. 성경은 환상의 시점과 기도의 동기를 함께 기록한다.

단 9:1-2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이 연대를 보통 주석에서는 주전 539년경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필자는 김명현 박사가 번역한 『다니엘 연대기』와 그 바탕이 된 미국 연대기 학자의 견해를 참고하여 주전 575년경으로 보는 입장을 취한다. 필자도 어느 연대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니엘서의 왕위 관계와 당시 바벨론의 상황을 함께 놓고 볼 때 주전 575년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잘 맞는다고 본다.

  이 연대기적 재구성에 따르면 느부갓네살은 신바벨론 제국을 세운 나보폴라사르의 아들이고, 그의 왕비 아미티스는 메대 왕 키악사레스의 딸이다. 두 제국이 싸우지 않도록 아들과 딸을 결혼시킨 정략결혼이었다. 메대의 아름다운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미티스를 위해 느부갓네살이 건설한 것이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로 불리는 바벨론의 공중정원이라고 전해진다.

  아미티스의 남동생 아스티게스가 다리오라고 불렸으며, 그는 느부갓네살의 처남이 된다. 이 계보에서는 아스티게스의 셋째 부인이 에스더였고, 첫째 부인에게서 난 딸 만다네가 바사의 캄비세스와 결혼하여 고레스 대왕을 낳은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관계는 메대와 바사와 바벨론의 왕들이 서로 단절된 이름들이 아니라 혼인과 왕권을 통하여 얽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원문에서 채택한 연대기적 설명이며, 필자는 이를 절대적인 연대 주장으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느부갓네살이 일곱 때 동안 정상적으로 통치하지 못하게 되자 왕비는 먼저 아들 벨사살에게 나라를 맡겼다. 그러나 벨사살이 삼 년가량 통치한 뒤 죽게 되자, 왕비가 자기 남동생 아스티게스를 불러 갈대아 나라를 다스리게 했다는 것이 이 해석의 핵심이다. 그래서 다니엘서 제9장은 다리오가 메대 나라가 아니라 ‘갈대아 나라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정치적으로는 왕이 미치고 왕자가 죽으며 제국의 앞날이 흔들리는 격변기였다. 신앙적으로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무너지고 유다 백성이 포로 생활을 하던 때였다. 다니엘은 세상의 혼란만 바라보지 않고 예레미야의 말씀을 펼쳤다. 그가 읽은 예언은 모든 땅이 폐허가 되고 민족들이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긴 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는 말씀이었다(렘 25:11-13).

  또한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하나님께서 백성을 돌보고 선한 말씀을 성취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도 발견했다. 하나님께서 품으신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며 미래와 희망을 주려는 것이었다(렘 29:10-11). 징계는 백성을 영원히 버리는 일이 아니라 죄의 값을 치르게 하고 정결하게 하여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 과정이었다.

렘 29:10-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5. 다니엘은 왜 민족과 조상의 죄를 자신의 죄로 고백했는가?

  다니엘은 말씀을 깨달은 뒤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회개(悔改, repentance)의 자리에 섰다.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드리기로 결심했다(단 9:3). 그는 “그들이 범죄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민족의 죄를 자기와 무관한 과거의 문제로 밀어내지 않았다.

단 9:4-5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포로 생활에는 세 가지 고통이 있었다. 첫째는 수치였다. 본래 자유인이며 귀족이던 사람들도 바벨론에서 종노릇하며 수치를 당했다. 둘째는 큰 재앙이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동안 칼과 기근이 임했고, 나라는 멸망했으며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다(단 9:12-14). 셋째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황폐함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던 성과 성소가 무너져 주변 민족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단 9:16-18).

  다니엘은 이 결과가 조상들의 죄만으로 생겼다고 말하지 않았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고백했고, 율법에 기록된 저주가 우리에게 쏟아졌다고 했다(단 9:11). 이어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라고 반복했다. 그는 조상들의 죄가 남긴 결과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 영향을 받아 같은 죄를 지어 온 자신과 동시대 백성의 책임도 함께 고백했다.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죽은 조상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거나 조상을 천국으로 옮기는 일이 아니다. 후손이 조상의 죄책 때문에 대신 지옥에 간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나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악행을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의 영향이 혈통을 따라 후손의 삶에 내려오고, 후손도 그 영향을 받아 같은 죄를 반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와 내 부모와 조상들이 범죄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자기 안에 남은 죄와 영적 영향을 함께 처리해야 한다.

  원문은 가정에 나타나는 질병과 장애와 정신적 고통도 이러한 영적 영향과 연결하여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필자의 목회적·영적 해석이며, 특정 질병이나 장애가 반드시 본인이나 조상의 특정 죄 때문에 생겼다고 단정하는 의학적 진단이 아니다. 환자와 가족을 죄의 원인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되며, 조현병·파킨슨병·치매를 비롯한 질환과 장애에는 검사와 진료와 약물 등 전문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자해·타해 위험이나 급성 정신증, 의식 저하 같은 위기에는 즉시 119와 응급실 및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회개와 기도는 안전한 치료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가는 영적 돌봄이어야 한다.

  다니엘의 고백은 진실한 회개의 본을 보여 준다. 그는 의로운 선지자였지만 백성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았다. “우리가 범죄했습니다. 우리가 악을 행했습니다. 우리가 반역했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섰다.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회복을 구하는 사람도 남의 잘못만 열거하지 말고, 자신이 같은 죄의 영향을 받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범한 자범죄까지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6. 정해진 70년 형벌 앞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하나님께 간구했는가?

  다니엘은 70년이라는 기간이 정해졌음을 알면서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미 심판을 선고하셨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체념하지 않았다. 그는 징계를 피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 형벌이 공의로운 결과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 안에 긍휼과 용서가 있음을 붙들었다.

단 9: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다니엘의 기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3절부터 제15절까지는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자복이다. 범죄하고 패역하고 행악하며 반역한 죄,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은 죄, 율법을 어긴 죄를 낱낱이 고백했다. 제16절부터 제19절까지는 주의 분노를 거두고 거룩한 산과 예루살렘과 성소를 회복해 달라는 간구다. 죄의 용서와 무너진 예배 처소의 회복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공로를 근거로 삼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많이 기도했으니 이제 응답해야 합니다”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한다고 고백했다(단 9:18). 회개의 횟수를 하나님의 응답을 청구하는 영수증처럼 내밀어서는 안 된다. 조상과 자신이 쌓은 죄가 크다면 더욱 낮아져 “주님께 긍휼이 있지 않습니까. 주여 용서해 주소서”라고 구해야 한다.

  다니엘은 반복하여 ‘주 자신을 위하여’ 행해 달라고 간구했다. 예루살렘은 주의 성이고 성전은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소이므로, 주의 얼굴빛을 다시 비추어 달라고 했다. 자신의 명예와 편안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기도의 근거로 삼았다. “주님의 성이 황폐한 채로 있어야 하겠습니까. 주님의 성소에 다시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를 드렸다.

단 9:17-19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정하신 목적이 채워질 때까지 계속될 수 있다. 첫 포로가 시작된 주전 605년경부터 고레스가 귀환 명령을 내린 주전 536년경까지 70년이 정확히 채워졌다고 본다. 기도한다고 하나님의 공의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징계 중에도 긍휼을 구할 수 있고, 죄를 용서받으며, 더 큰 재앙을 막고, 회복을 준비할 수 있다. 정해진 기간 앞에서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성품과 이름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

7. 하나님은 왜 70년 회복을 구한 다니엘에게 70이레를 계시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민족의 죄를 자기 죄로 품고 진실하게 회개했기 때문에 그가 구한 것보다 더 큰 계시를 주셨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언제 회복될지를 물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거룩한 성을 향한 더 원대한 구원 계획을 보여 주셨다. 70년의 포로 귀환을 넘어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될 70이레를 알려 주셨다.

  ‘이레’는 일곱을 한 단위로 묶은 말이다. 그러므로 70이레는 일흔 곱하기 일곱, 곧 490을 가리킨다. 희년을 마흔아홉 해로 계산하는 견해와 쉰 해로 계산하는 견해가 있지만, 마흔아홉 해를 기준으로 보면 490년은 열 번의 희년에 해당한다. 이는 단지 정치적 귀환 한 번이 아니라 메시아를 통하여 주어질 완전한 희년(禧年, Jubilee)과 해방을 바라보게 한다.

단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70이레 안에서 이루어질 일은 여섯 가지다. 첫째, 허물이 그친다. 둘째, 죄가 끝난다. 셋째, 죄악이 용서된다. 넷째, 영원한 의가 드러난다. 다섯째, 환상과 예언이 성취된다. 여섯째,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는다. 중심은 메시아가 와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는 데 있다. 세상 왕의 교체만으로는 이 여섯 가지가 이루어질 수 없다.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 것은 땅이 안식년을 누리지 못한 기간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징계와 연결된다(대하 36:20-21). 백성이 희년과 안식년의 정신을 저버렸으므로 땅이 황폐한 동안 쉬게 되었다. 그러나 70이레는 과거의 빚을 갚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 사람을 죄에서 완전히 해방하는 미래를 보여 준다.

  참된 회개와 기도에는 이러한 보너스가 따른다. 다니엘은 한 가지 회복을 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구속사의 더 큰 비밀을 맡기셨다. 은사는 자랑을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받은 사람이 자기 목숨을 내놓고라도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고,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세력을 제거하라고 주신 도구다. 진실한 회개는 사람을 깨끗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 큰 계시와 사명을 맡길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한다.

8. 70이레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70이레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고레스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포로 귀환을 명령한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 불렸다(사 45:1). 느헤미야도 예루살렘 성벽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그들을 70이레 해석의 한 요소나 메시아의 예표로 연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다니엘 제9장이 말하는 모든 일을 완성할 존재로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메시아는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의 직분을 모두 지닌 분이어야 한다. 고레스는 왕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죄를 담당하는 제사장이나 하나님의 최종 계시를 전하는 선지자는 아니었다. 느헤미야는 총독으로 예루살렘을 재건했지만 죄를 끝내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모든 환상과 예언을 성취할 수는 없었다. 허물과 죄악을 해결하고 완전한 구원(救援, salvation)을 이루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무엇보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나타난 뒤 끊어진다. 다니엘 제9장 26절의 ‘끊어진다’는 말은 메시아의 죽음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고 복음을 전하셨으며, 자기 죄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사람을 포로 상태에서 해방한 정치적 왕을 넘어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에서 풀어 주는 대속(代贖, redemption)을 이루셨다.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제61장의 말씀을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임하신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선언하셨다(눅 4:16-21). 예수님 자신이 희년의 실체요 성취라는 뜻이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70년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형벌을 다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간이었다. 70이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값을 대신 지불하여 백성을 더 근본적인 포로 상태에서 해방하는 하나님의 시간표다. 구약의 징계에는 정해진 기간을 채우는 엄중함이 있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이미 죄값을 담당하셨으므로 우리가 진실하게 회개할 때 긍휼을 입고 징계의 기간이 단축되는 은혜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횟수를 자랑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피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여 끝까지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 70이레의 핵심은 달력 계산 자체가 아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께서 오셔서 끊어지고, 그 죽음으로 죄를 용서하며 영원한 의를 가져오고, 완전한 희년을 성취하신다는 데 있다. 환상을 주신 목적과 다니엘의 기도와 제24절의 여섯 가지 결과를 함께 대입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9. 나오며

  다니엘의 네 환상과 그리스도의 네 예표, 70이레 환상을 해석하는 열쇠, 다니엘이 70년 예언을 깨달은 역사적 배경, 민족과 조상의 죄를 자신의 죄로 고백한 이유, 정해진 형벌 앞에서 드린 간구, 70년보다 더 큰 70이레가 계시된 목적, 그리고 기름부음 받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다니엘서는 세상 제국의 흥망만 알려 주는 책이 아니다. 네 짐승과 숫양과 숫염소와 70이레와 마지막 때의 환상을 통하여 악을 멸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손대지 아니한 돌, 인자 같은 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 세마포 옷을 입은 이는 낮아짐과 죽음과 승리와 영광을 통과하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70이레를 해석할 때에는 계산보다 먼저 기도를 보아야 한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을 읽고 운명처럼 체념하지 않았다.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백성의 죄를 자기 죄로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의와 기도 횟수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께 있는 긍휼과 용서를 붙들었다. 주의 성과 주의 성소와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해 달라고 간구했다.

  우리도 가정과 교회와 민족의 회복을 구할 때 남의 죄만 지적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내 부모와 조상들이 지은 죄의 영향을 분별하고, 내가 실제로 반복하여 지은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동시에 질병과 장애를 특정인의 죄로 단정하거나 환자를 정죄하지 말고, 필요한 의료적 치료와 안전한 영적 돌봄을 함께 받아야 한다. 회개는 뻔뻔한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자신을 맡기는 겸손한 간구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구한 70년의 회복보다 더 큰 70이레의 비밀을 보여 주셨다.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넘어 메시아가 죄를 끝내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완전한 희년을 이루실 계획을 알려 주셨다. 고레스와 느헤미야는 그 회복의 도구와 예표가 될 수 있지만,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사역을 완성하고 끊어져 죽으심으로 죄를 해결한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자로 섬기고 죽으신 뒤 인자 같은 이로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 은사와 지위를 자랑의 수단으로 삼지 말고 사람을 살리고 천국 길을 여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이미 정해진 징계 앞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주의 긍휼과 용서를 의지하여 진실하게 회개하며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간구하고 기름부음 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증언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07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다니엘서 9장에 나타난 70이레 환상을 통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와 인류 구원의 원대한 계획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니엘이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금식하며 간절히 회개 기도를 드리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단순한 포로 귀환을 넘어 메시아를 통한 영원한 의와 죄 사함의 계시를 보여주셨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주님 자신과 그분의 긍휼함을 근거로 삼는 다니엘의 기도 자세를 본받아야 함을 역설하며, 이는 오늘날 성도들이 겪는 고난과 질병의 문제를 철저한 회개로 풀어가는 핵심 열쇠임을 제시합니다. 결국 70이레는 그리스도가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는 인자 같은 이로서 세상 죄를 끝내고 진정한 희년의 자유를 완성하실 것을 선포하는 종말론적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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