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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09.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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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zlyZJacqOro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88)]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9)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3)(단9:20~2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lyZJacqOro

 

기독론(188)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9)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3)

(단 9:20-27)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다니엘서의 70이레는 말도 많고 해석도 많은 본문이다. 그중에서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다니엘서의 숫자와 기간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들은 1,335일 같은 기간을 계산하며 재림(再臨, second coming)의 날짜까지 정했지만, 정한 날에 주님은 오시지 않았다. 그러자 그날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서 조사심판을 시작하셨다고 해석했고, 이 일을 계기로 기존 교회에서 분리되어 하나의 교단을 이루었다. 오늘날에도 그 교단에서는 다니엘서 강의를 필수적으로 가르치며 많은 자료를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교단이 자료를 많이 만들고 오래 연구했다고 해서 그 해석이 자동으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70이레에는 역사비평적 해석, 무천년적 상징 해석, 간극설, 세대주의적 해석, 안식교 해석, 연대기적 해석, 문자적·상징적 통합 해석 등 일곱 가지 대표적인 견해가 있다. 각각 나름의 근거와 일리가 있어서 한 부분만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석의 수가 많다는 사실에 압도되지 말고,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을 찾아야 한다.

  이번 본문을 해석하는 첫째 기준은 그리스도 중심성이다. 다니엘서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권세와 그 세력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는 그리스도가 반복하여 등장한다. 제2장의 손대지 아니한 돌, 제7장의 인자 같은 이, 제9장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서로 떨어진 인물이 아니다. 초림(初臨, first coming)으로 오셔서 속죄(贖罪, atonement)를 이루신 예수님과 재림하셔서 악을 심판하실 예수님을 점진적으로 보여 준다.

  둘째 기준은 본문에 반복되는 단어와 숫자가 암시하는 성경 전체의 맥락이다. 70년과 70이레,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와 한 이레는 임의로 선택된 숫자가 아니다. 70년의 포로 기간은 땅이 누리지 못한 안식년(安息年, sabbatical year)을 되찾는 기간이었고, 70이레는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과 희년(禧年, Jubilee)의 완전한 자유와 회복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희년을 성취하러 오셨다.

  또한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의 구두점과 헬라어 칠십인역(Septuagint)의 문장 구조가 70이레를 어떻게 나누어 읽을지에 중요한 실마리를 준다.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분리하면 고레스나 느헤미야를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로 보기 쉽지만, 둘을 합하여 69이레로 읽으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른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70이레 환상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와 본문의 문장 구조가 주는 단서, 그리고 70년과 70이레가 안식년·면제년·희년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해방으로 성취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70이레 환상에는 어떤 해석들이 있으며 무엇을 기준 삼아야 하는가?

  70이레의 환상에는 크게 일곱 가지 해석의 흐름이 있다. 첫째는 다니엘서의 예언을 과거 역사 안에서만 풀이하는 역사비평적 해석이다. 둘째는 숫자와 사건을 교회 시대 전체의 상징으로 읽는 무천년적 상징 해석이다. 셋째는 예언의 한 구간과 다른 구간 사이에 긴 공백이 있다고 보는 간극설이다. 넷째는 마지막 한 이레를 미래의 7년 대환난으로 떼어 놓는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 해석이다.

  다섯째는 연대 계산을 통하여 재림과 조사심판을 설명하는 안식교 해석이다. 여섯째는 성경의 연대를 다시 구성하여 70이레의 시작과 끝을 찾는 연대기적 해석이다. 일곱째는 역사적 사건의 문자적 성취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성취를 함께 보는 문자적·상징적 통합 해석이다. 이 견해들은 시작점과 종착점,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의 관계, 제27절의 ‘그’가 누구인지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분별해야 하는가? 먼저 다니엘서 전체의 반복 구조를 보아야 한다. 세상 제국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등장하고, 하늘에서 비롯된 존재가 그 세력을 심판한 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운다. 제2장의 돌은 신상을 깨뜨리고, 제7장의 인자 같은 이는 영원한 권세와 나라를 받으며, 제9장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죄를 속하고 언약을 세운다. 그러므로 제9장도 그리스도와 그를 대적하는 세력의 충돌이라는 큰 틀에서 읽어야 한다.

  다음으로 제24절이 선언한 목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70이레는 반역을 끝내고 죄를 봉하며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며 환상과 예언을 봉인하고 지극히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붓기 위하여 정해졌다(단 9:24). 이 일은 단지 한 정치 지도자가 성벽을 건축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죄와 악을 끝내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단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본문의 단어와 숫자도 성경 전체에서 확인해야 한다. 70이라는 수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벨론 포로 기간과 연결되고, 일곱이라는 구조는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을 불러온다.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진다는 표현은 메시아의 죽음을 가리키며, 많은 사람과 굳게 세우는 언약은 예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新約, new covenant)과 연결된다. 본문 안의 모든 실마리가 한 방향으로 모일 때 해석은 힘을 얻는다.

  이번 시간에는 세 가지 해석 원칙 가운데 첫째인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과 둘째인 단어와 숫자의 성경적 맥락을 집중하여 살핀다. 남은 원칙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 분명히 다루게 될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느 학파의 이름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잃은 연대 계산은 정교해 보여도 70이레가 계시된 목적에서 벗어난다.

3. 왜 70이레는 초림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다니엘서의 환상은 세상 왕국의 흥망을 알려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왕국들을 심판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것이 중심이다. 제2장의 손대지 아니한 돌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산에서 나와 거대한 신상의 발을 쳐서 모두 부서뜨린다(단 2:34-35, 44-45). 이는 하늘로부터 오셔서 세상 나라를 심판하실 재림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물론 역사 속의 왕들도 앞선 제국을 무너뜨렸다. 느부갓네살은 앗수르의 권세를 꺾고 바벨론 제국을 세웠으며, 고레스는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포로 귀환을 허락했다. 이런 점만 떼어 놓으면 그들도 신상을 친 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손대지 아니한 돌은 모든 세상 제국을 끝내고 영원한 나라를 세운다. 이 일을 완전히 이루실 분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고레스가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 예표한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 목자’라 부르시고 예루살렘을 중건하며 성전의 기초를 놓게 하실 자로 말씀하셨다(사 44:28). 또한 고레스를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르셨다(사 45:1).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억압에서 풀어 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고레스가 인류의 죄를 속하거나 영원한 의를 드러낸 것은 아니다.

사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느헤미야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이끈 지도자였기에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의 모형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분을 온전히 성취하지 않았으며, 죄를 없애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않았다. 고레스와 느헤미야에게 맞는 일부 특징 때문에 제24절부터 제27절까지의 모든 예언을 그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 모형은 실체를 가리키지만 실체를 대신하지 못한다.

  제9장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끊어져 없어질 분이다(단 9:26). 그는 자기 죄 때문에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한 속죄를 이루기 위하여 죽으신다. 이 대목은 재림의 심판자보다 먼저 초림하신 예수님을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공개적으로 나타나셨으며(마 3:16-17), 약 삼 년 반의 공생애 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70이레는 초림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초림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아야 재림의 그리스도도 바르게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먼저 섬기고 죽으러 오셨으며, 그 사명을 완수하신 뒤 만왕의 왕과 심판주가 되셨다. 제9장은 기름부음 받은 자의 죽음과 언약을 보여 주고, 이어서 성읍과 성소를 황폐하게 할 대적과 그 위에 쏟아질 심판을 보여 준다. 초림의 속죄와 재림의 심판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어진다.

4. 마소라 본문과 70인역의 구두점 차이는 해석을 어떻게 가르는가?

  오늘 우리가 가진 히브리어 구약의 대표 본문은 마소라 본문이다. 처음 기록된 히브리어 사본에는 오늘날과 같은 장절 구분과 쉼표와 마침표가 없었다. 후대의 마소라 학자들이 자음 본문에 모음과 낭송 부호를 더했다. 단 9:25에는 문장을 크게 끊어 읽게 하는 에트나흐(athnach)라는 악센트가 있고, 그 위치에 따라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구분된다.

  마소라 본문의 에트나흐를 따라 읽으면 예루살렘을 돌이켜 다시 건축하라는 말씀이 나온 때부터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일곱 이레가 지난다. 그 뒤 예순두 이레 동안 거리와 해자가 곤란한 때에 다시 건축된다고 읽게 된다. 이 구조에서는 일곱 이레 뒤에 나타난 고레스나 느헤미야 같은 역사적 지도자를 기름부음 받은 자로 연결하기가 쉽다.

  이 번역이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레스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재건을 허락했고,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성벽을 재건했다(느 2:1-8).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계획을 위하여 사용된 지도자였다. 그러므로 에트나흐를 존중하여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나누어 읽으면 역사 속 예표를 설명할 수 있다. 훌륭한 히브리어 번역자들이 이 구조를 따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구약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옮긴 칠십인역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합쳐 읽을 수 있는 구조를 보여 준다. 신약의 사도들과 초대교회가 널리 사용한 구약이 칠십인역이었고, 신약의 구약 인용도 대부분 이 번역과 깊이 연결된다. 그러므로 후대에 찍힌 구두점만 절대화하지 않고 칠십인역의 문장 구조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합하면 69이레가 된다. 한 이레를 칠 년으로 계산하면 483년이다. 예루살렘을 돌이켜 다시 건축하라는 말씀이 나간 때부터 69이레가 지난 뒤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가 나타난다고 읽으면, 그 끝을 주후 27년경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와 연결할 수 있다. 이 계산은 안식교도 사용하지만 그 교단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산을 통하여 특정 교단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기름부음 받은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또한 단 9:25에는 예루살렘을 ‘돌이켜’ 다시 건축하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물리적인 성과 거리의 재건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복을 바라보게 한다. 유대인들이 초림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주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자신의 몸 된 성전으로 세우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의 거처로 지어져 가는 영적 재건이 이루어진 것이다(엡 2:20-22).

  그러므로 나는 마소라 본문을 무시하지 않는다. 역사적 예표를 설명할 때 그 구두점이 주는 뜻을 존중한다. 그러나 70이레 환상의 최종 목적을 따라갈 때에는 칠십인역처럼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를 하나의 69이레로 연결하여 읽는다. 그렇게 할 때 제24절의 속죄, 제25절의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 제26절의 끊어짐, 제27절의 언약과 제사의 종결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5. 다니엘서 9장의 기름부음 받은 자와 ‘그’는 누구인가?

  단 9:26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69이레 뒤에 나타나고 이어서 끊어져 없어진다. 고레스는 포로를 해방했고 느헤미야는 성벽을 세웠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죽음으로 죄악을 속죄하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지 못했다. 제24절이 선언한 여섯 가지 목적과 제26절의 끊어짐을 함께 보면 기름부음 받은 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일 수밖에 없다.

  제26절에는 기름부음 받은 자와 다른 존재도 나온다. 장차 올 한 왕의 백성이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고, 전쟁이 끝까지 이어지며 황폐함이 작정된다. 이는 일차적으로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과 군대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파괴한 사건으로 나타났다.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백성과 성전을 대적할 적그리스도(敵基督, Antichrist)의 세력을 예표한다. 기름부음 받은 자와 황폐하게 하는 자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해석을 가르는 결정적인 대목은 제27절의 ‘그’다. 세대주의는 이 대명사를 앞에 나온 장차 올 왕과 연결하여 적그리스도라고 본다. 그래서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과 7년 평화조약을 맺고, 한 이레의 절반인 삼 년 반 뒤에 조약을 깨뜨리며, 성전 제사를 금지한다고 해석한다. 이 해석으로부터 환난 전 휴거와 제3성전과 7년 대환난의 시간표가 나온다.

  그러나 제27절의 ‘그’는 기름부음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는 한 이레 동안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세우고, 그 이레의 절반에 희생 제물과 곡식 제물을 그치게 한다. 여기의 히브리어 동사 ‘샤바트’는 문맥상 강제로 금지한다기보다 그치게 하고 중지시키며 끝낸다는 뜻을 가진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구약의 희생 제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제27절의 언약은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피로 세우신 언약이다. 주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떡을 떼어 자신의 몸이라고 하시고, 잔을 주시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막 14:22-24). 다니엘의 ‘많은 사람과 굳게 세우는 언약’이 예수님의 성찬과 십자가에서 성취된 것이다.

막 14: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한 이레의 절반은 삼 년 반이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약 삼 년 반 동안 공생애를 사신 뒤 십자가에서 끊어지셨다. 그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고(마 27:50-51), 단번의 속죄 제사가 완성되었다(히 10:10-14). 그러므로 제사를 그치게 한 이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참된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다.

  이와 동시에 황폐하게 하는 자는 가증한 것들의 날개 위에 서고, 이미 작정된 심판이 그 위에 쏟아진다(단 9:27). 언약을 세우는 그리스도와 황폐하게 하는 대적이 평행하여 등장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초림으로 오셔서 언약과 속죄를 완성하셨고, 장차 재림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황폐하게 한 악한 세력을 심판하신다. 이것이 다니엘서 전체의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대조에 맞는 해석이다.

6. 70년과 70이레는 안식년·면제년·희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다니엘이 70년을 놓고 기도한 것은 단순히 포로 생활이 언제 끝나는지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그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는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자신과 백성의 죄를 회개(悔改, repentance)했다(단 9:2-5). 이미 정해진 기간이었지만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 드리고 긍휼과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70년보다 더 큰 70이레의 계시를 주셨다.

  왜 포로 기간이 60년도 50년도 아닌 70년이었는가? 역대하 기자는 그 이유를 땅의 안식에서 찾는다.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불사르고 살아남은 자를 바벨론으로 끌고 간 뒤, 그 땅은 황폐한 동안 안식하여 70년을 채웠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지키지 않은 안식년을 하나님께서 강제로 되찾으신 것이다(대하 36:19-21).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안식년은 일곱째 해에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포도원을 가꾸지 않으며 땅을 쉬게 하는 규례다(레 25:1-7). 그해에 저절로 난 소출을 주인이 독점하지 않고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거류민과 가축과 들짐승이 함께 먹는다. 이는 땅이 인간의 영원한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행위다. 사람은 그 땅을 맡아 경작하는 거류민이며 동거하는 자다.

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한 번도 이 규례를 온전히 지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자기 소유처럼 여기고 이방 풍속과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더럽혔다. 마침내 땅이 그들을 토해 냈고, 백성이 떠난 70년 동안 땅은 밀린 안식을 누렸다. 바벨론 포로는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라 “이 땅은 내 것”이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조치였다.

  70이레는 70에 일곱을 곱한 구조다. 이 일곱의 반복은 일곱째 해의 안식년과 면제년을 거쳐 일곱 안식년 후의 희년을 바라보게 한다(레 25:8-10). 안식년이 땅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해라면, 면제년은 빚과 종살이에서 사람을 풀어 주는 해이며, 희년은 잃었던 기업과 자유를 원래대로 회복하는 해다. 70이레는 이 모든 자유와 해방의 종합적인 성취를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오셨다고 선언하셨다(눅 4:18-19). 그리고 이 말씀이 듣는 자들의 귀에 응했다고 말씀하셨다(눅 4:21). 예수님이 바로 희년의 성취자다. 그러므로 70이레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초림의 예수님으로 해석해야 한다.

7. 안식년과 면제년은 각각 어떤 해방과 회복을 명령하는가?

  안식년과 면제년은 모두 일곱이라는 주기를 가지지만 강조점이 다르다. 안식년은 땅을 쉬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육 년 동안 씨를 뿌리고 포도원을 가꾸어 소출을 거두지만, 일곱째 해에는 경작을 멈추어야 한다. 그해에 저절로 난 것은 자기만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과 짐승이 함께 먹는 양식이 된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땅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면제년은 빚을 탕감하고 종을 자유롭게 하는 해다. 매 칠 년 끝에는 이웃과 형제에게 꾸어 준 것을 독촉하지 말고 면제해야 했다(신 15:1-3). 가난한 형제가 필요를 호소할 때 마음을 완악하게 하거나 손을 움켜쥐지 말고 넉넉히 꾸어 주어야 했다(신 15:7-1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 명령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복을 주시므로 백성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게 된다고 하셨다(신 15:4-6).

신 15:1-2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의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히브리 남자나 여자가 가난하여 종으로 팔려 왔을 때에는 육 년 동안 섬기게 하고 일곱째 해에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했다. 보낼 때에는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양 떼와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에서 후히 주어 다시 살아갈 기반까지 마련해 주어야 했다(신 15:12-15). 해방은 단지 속박을 풀어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무너진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기업을 나누는 데까지 나아간다.

신 15:13-14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 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안식년은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곱째 해에 함께 지켰다. 면제의 원리는 빚을 진 때와 히브리 종이 팔려 온 때부터 각각 계산되어 적용되기도 하므로, 사람마다 자유를 맞는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같다. 하나님의 백성이 땅과 재물과 사람을 자기 소유처럼 움켜쥐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 쉬게 하고 탕감하며 놓아주는 것이다.

  이 원리는 주기도문에도 들어 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 ‘죄’로 번역된 헬라어 명사 오페일레마(ὀφείλημα)는 빚, 곧 갚아야 할 것을 뜻한다(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한 것처럼 우리의 빚도 용서해 달라는 면제의 정신이 담겨 있다.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작은 빚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면, 일만 달란트 빚진 종처럼 자신이 받은 긍휼을 잃게 된다(마 18:23-35).

  가난의 문제도 이 말씀 앞에서 돌아보아야 한다. 우상에게 재물과 정성을 바치면서 하나님과 가난한 자에게 인색했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어려움에 빠진 형제와 고아와 과부를 외면하고, 내게 빚진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았던 죄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용서와 복을 받은 사람은 자신도 용서하고 나누며 놓아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면제년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가 이웃에게 그 긍휼을 흘려보내는 해다.

8. 희년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희년은 안식년과 면제년이 지향하는 완전한 회복이다. 일곱 안식년, 곧 마흔아홉 해가 지난 뒤 속죄일에 나팔을 불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고 온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를 공포해야 했다. 각 사람은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고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갔다(레 25:8-10). 잃어버린 기업이 돌아오고 종 된 자가 자유를 얻으며 무너진 질서가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희년을 육적인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으로만 성취하지 않으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하고 지상의 왕국을 세워 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 아래 붙잡힌 인류를 해방하러 오셨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 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의 상속자가 되며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백성이 된다.

  70이레의 성취는 먼저 죄의 빚을 탕감하는 데서 시작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어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다. 주님께서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고 포로 된 영혼을 놓아주는 일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사역이다. 복음 전파와 치유와 축사는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일과 연결된다.

  필자가 성경을 연결하여 깨달은 바에 따르면, 땅이 하나님의 소유이듯 흙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육체도 하나님의 소유다(창 2:7, 레 25:23). 악한 영이 죄를 틈타 사람의 몸을 점령하고 있다면, 축사(逐邪, deliverance)를 통하여 그 영을 내보내고 주님의 소유권을 회복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축사는 땅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안식년의 영적 실천과 연결된다. 사람의 몸과 영혼이 마귀의 압제에서 놓여 주님의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었다는 말만으로 희년의 삶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살며, 빚진 자를 탕감하지 않고 종 된 자를 놓아주지 않으며, 가난한 형제에게 인색하게 대한다면 안식년과 면제년과 희년의 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한 번 믿었다고 하면서 죄를 밥 먹듯 짓고 불쌍한 사람을 외면한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계 3:5).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몸과 재물과 시간과 기업을 내 것처럼 움켜쥔 죄를 회개해야 한다. 용서받았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은 죄, 가난한 자와 종 된 자를 긍휼히 여기지 않은 죄, 하나님보다 세상과 우상을 더 의지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회개할 때 주님은 죄의 빚을 용서하시고 악한 영이 떠날 근거를 마련하시며, 잃었던 안식과 자유와 기업을 회복하게 하신다.

  오늘 우리의 목표는 육적인 예루살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시온산과 새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곳에는 혈통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두루마기를 빨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가 들어간다(계 22:14). 이기는 자는 하늘의 기업을 받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간다. 희년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땅에서부터 자기 것을 내어놓고, 빚진 자를 탕감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9. 나오며

  지금까지 70이레에 관한 일곱 가지 해석과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 원칙, 마소라 본문과 칠십인역의 문장 구조, 기름부음 받은 자와 제27절의 ‘그’의 정체, 그리고 70년과 70이레에 담긴 안식년·면제년·희년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다니엘서 전체가 가리키는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을 놓치면 숫자를 정교하게 계산해도 환상의 목적을 잃는다.

  고레스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 받은 지도자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을 부분적으로 예표했다. 그러나 죄를 끝내고 악을 속죄하며 영원한 의를 드러낸 분은 예수님뿐이다. 69이레 뒤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나타나신 예수께서는 약 삼 년 반 뒤 십자가에서 끊어지셨고, 많은 사람을 위한 언약의 피를 흘리심으로 모든 희생 제사를 완성하셨다. 제27절의 ‘그’는 언약을 깨뜨리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새 언약을 굳게 세우신 그리스도다.

  70년 동안 황폐했던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지키지 않은 안식년을 누렸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땅이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면제년에는 빚을 탕감하고 히브리 종을 놓아주며 빈손으로 보내지 않아야 했다. 희년에는 잃었던 기업과 자유와 가족이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이 세 규례가 지향한 안식과 탕감과 해방과 원상회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희년을 삶으로 나타내야 한다. 내 몸과 재물과 기업이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색했던 죄와 용서하지 않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주님께 죄의 빚을 탕감받은 사람답게 내게 빚진 자를 용서하고, 종 되고 눌린 자가 자유를 얻도록 복음과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마귀가 차지한 영역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되찾아 주님의 소유로 드려야 한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길은 날짜를 계산하거나 어느 학파의 시간표를 붙드는 데 있지 않다. 기름부음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피로 세우신 언약 안에 거하며, 날마다 자기 죄를 회개하고, 이웃에게 긍휼과 면제를 베푸는 데 있다. 그리하여 희년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따라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전하고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하늘의 기업을 얻도록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09일(수)
정보배 목사

 

[본문 이해를 위한 핵심 질문 7가지]

  1. 70이레 환상에는 어떤 해석들이 있으며 무엇을 기준 삼아야 하는가?
  2. 왜 70이레는 초림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3. 마소라 본문과 70인역의 구두점 차이는 해석을 어떻게 가르는가?
  4. 다니엘서 9장의 기름부음 받은 자와 ‘그’는 누구인가?
  5. 70년과 70이레는 안식년·면제년·희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6. 안식년과 면제년은 각각 어떤 해방과 회복을 명령하는가?
  7. 희년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설교핵심]

본 설교는 다니엘서 9장에 나타난 '70이레' 환상을 그리스도 중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며, 그 성취의 의미를 성경 전체의 맥락으로 확장하여 설명합니다. 저자 정보배 목사는 70이레를 단순히 역사적 연대기나 세대주의적 종말론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통해 완성되는 영적 구원의 원리로 파악합니다. 특히 이 환상의 핵심 지표를 70이레의 바탕이 된 안식년, 면제년, 그리고 희년의 개념과 연결함으로써, 그리스도가 죄의 결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하고 진정한 하늘의 안식을 회복하러 오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경 해석의 제1원칙이 그리스도 중심성에 있음을 천명하며, 성도들이 신년의 성취자이신 주님 안에서 긍휼과 용서의 삶을 실천할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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