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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14.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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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mNPVNppsOOA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딤후4:6~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NPVNppsOOA

 

[이 설교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

  1.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왜 깨끗함인가?
  2.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끝까지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는 자세가 왜 필요한가?
  4.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역자는 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가?
  5. 크게 쓰임받을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6. 의의 면류관을 받을 충성되고 의로운 사역자는 어떤 사람인가?
  7. 평신도 사역자가 감당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은 무엇인가?

 

[설교핵심]

이 설교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참된 사역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내면의 자세와 실천적 요건들을 강조하는 신앙적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토대는 회개를 통한 자기 정결로,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시켜야만 악한 영의 흔듦을 받지 않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일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사역자는 사람의 비난이 아닌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태도로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사명을 묵묵히 완수해야 하며, 때로는 생명까지 내걸 수 있는 철저한 충성심과 순종이 요구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권한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유지함으로써, 겉모습만이 아니라 중심까지 의로운 모습으로 천국의 상급을 예비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합니다.

 

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

(딤후 4:6-8)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와 일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삶을 오랜 세월 다듬으시고, 말씀을 배우게 하시며, 성품과 순종(順從, obedience)을 훈련하셔서 당신이 쓰실 그릇으로 준비하신다. 그러므로 큰일을 맡는 것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이 있다. 과연 나는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인가 하는 문제다.

  모든 사역의 기초에는 회개(悔改, repentance)가 있어야 한다. 회개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혈기와 교만과 음란과 명예욕과 자기 자랑을 통하여 사역을 흔든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한 것처럼 보여도 마음과 성품이 정결(淨潔)하지 않으면 결국 변덕과 다툼과 타락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깨끗함 하나만으로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使命, mission)을 분명히 알고 묵묵히 걸어가야 하며, 작은 일에도 목숨을 내놓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모든 주권(主權, sovereignty)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며, 아무리 많이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일하신 것임을 알고 겸손(謙遜, humility)해야 한다. 끝까지 신실하고 의롭게 달려간 사람이라야 주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볼 수 있다(딤후 4:6-8).

  이 원리는 목회자나 특별한 은사(恩賜, spiritual gift)를 받은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성도는 가정의 파수꾼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돕고, 교회의 지체를 섬기도록 부름받았다. 어떤 직분과 역할을 맡았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사역자요 일꾼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이 왜 깨끗함인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완수하는 길은 무엇인지,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자세, 겸손과 충성과 의로움, 그리고 평신도가 감당할 세 가지 사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왜 깨끗함인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의 첫째 조건은 깨끗함이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를 사모하는 것보다 먼저 정결한 사람이 되기를 사모해야 한다. 은사와 능력과 지식이 있어도 그릇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 안에 담긴 것이 오염된다. 쓰임을 받는 것과 주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한때 크게 쓰임받았더라도 혈기와 교만과 음란과 명예욕을 회개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그 약점을 붙들고 사역을 흔들어 버린다.

  바울은 큰 집에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으며, 귀하게 쓰는 그릇과 천하게 쓰는 그릇이 있다고 말했다. 그릇의 재료보다 중요한 것은 그릇이 깨끗한가 하는 점이다. 누구든지 악한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거룩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된다(딤후 2:20-21).

딤후 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여기에서 ‘주인’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일반적으로 주님을 가리키는 ‘퀴리오스’가 아니라 ‘데스포테스’(δεσπότης)다. 이는 절대적인 주권자요 소유주라는 뜻을 지닌다. 사역자는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는 사람이 아니다. 나를 소유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필요에 따라 사용하시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그릇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준비는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다. 훈련자가 명령해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날마다 자기 죄를 살피고 자백하며 악한 영이 붙들 근거를 없애야 한다.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역을 시작하면 작은 자극에도 변동이 심해진다. 귀신은 혈기를 자극하여 관계를 깨뜨리고, 교만을 부추겨 책망을 거부하게 하며, 음란과 명예욕을 통하여 위대한 종까지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언제나 회개가 들어가야 한다. 회개 없이 시작한 열심은 오래가지 못하고, 회개 없이 사용하는 은사는 자기 자랑의 도구가 되기 쉽다. 먼저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을 내보낼 때 마음이 안정되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도 온전히 사용될 수 있다.

  구원(救援, salvation)은 인간의 실력이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겠는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엡 2:8-9). 그러나 구원받은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얼마나 충성했는지에 따라 하늘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과 상이 달라진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일하지 않은 것을 일한 것으로 계산하지 않으시고, 사람 앞에서만 보인 충성을 영원한 상으로 바꾸어 주지도 않으신다(고후 5:10; 계 22:12).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행한 대로 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사역의 출발점은 더 큰 일을 달라고 구하는 데 있지 않다. 오늘 내 안에 있는 혈기와 분노와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자랑을 발견하고 회개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금그릇인가 질그릇인가를 먼저 보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그릇인가를 보신다. 나를 깨끗하게 하는 일에 힘쓸 때 비로소 주권자의 손에 붙들려 오래도록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

3.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끝까지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끝까지 완수하려면 먼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명이 분명하지 않으면 환경과 사람의 말에 따라 쉽게 흔들린다. 어제까지 하던 일을 오늘 갑자기 그만두고, 지난번에 강조한 것을 다음에는 외면한다면 아직 자기 길을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사명이 분명한 사람은 처음과 끝이 일관된다. 상황이 어렵고 비난이 따라와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다.

  필자에게 주어진 사명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숨에 알게 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 조금씩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부터 천국에 깊은 관심을 갖게 하셨고, 스물다섯 살 무렵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 세미나로 알려진 이상관 목사를 만나 배우게 하셨다. 그는 필자의 첫 번째 영적 스승이었다. 필자는 전국 부흥회를 다니는 그를 돕기 위하여 반주를 맡았고, 설교 내용을 기록하여 주보에 요약해 올렸다. 같은 말씀을 거듭 듣고 적다 보니 설교의 흐름과 예화와 성구를 거의 외울 만큼 배우게 되었다.

  그 시절 필자에게 특별한 실력이 있어서 반주를 맡은 것이 아니었다. 부탁을 받았을 때 ‘아멘’ 하고 순종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맡기신 분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마음으로 섬겼다. 배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이미 안다는 태도가 아니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누구를 만나든 경청하고 필요한 것을 배우려 했다. 그 모든 배움은 하나님께서 회개와 천국복음의 진리를 찾아가게 하신 과정이었다.

  2013년에는 회개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회개 없이는 구원의 여정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경 전체에서 회개의 뜻과 사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뒤 4년 동안 연구하고 외친 내용을 모아 2017년에 『회개와 천국』을 펴냈다. 이 책에서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구원이 어떻게 시작되고 이루어지는지를 정리했다. 예수를 믿고 칭의(稱義, justification)를 받을 때 구원은 시작되지만, 광야와 같은 교회 생활을 지나 천국에 들어갈 때 구원의 경륜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믿음과 회개로 끝까지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빌 2:12; 히 3:14).

  사명을 발견하는 과정은 대개 이처럼 한 걸음씩 진행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릇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열어 주시고, 배움과 훈련과 인내를 통하여 사람을 만드신다. 만일 처음부터 모든 환상과 계획을 한꺼번에 보여 주셨다면 필자는 교만해져 타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때마다 하나씩 알려 주셨고, 마침내 세계에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할 터전까지 마련하게 하셨다. 사명은 어느 날 생겨난 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생을 통하여 빚어 가시는 부르심이다.

  사명이 분명해지면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필자는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이 이후의 삶과 상관없이 자동으로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는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사람이나 마귀가 아니라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하나님 한 분이다(마 10:28). 하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신다(마 10:29-31).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이 삼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추격했어도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침입을 통하여 막으시자 다윗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은 ‘셀라하마느곳’, 곧 분리의 바위라 불렸다(삼상 23:26-28).

  회개를 시작한 뒤 악한 영의 공격이 나타난다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중심을 아시고 지켜보신다. 하나님이 쓰시기로 작정하여 오랜 세월 준비하신 사람을 사탄이 마음대로 끌어내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비난을 피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받은 사명을 믿음으로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배우는 마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을 따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걸어가야 한다.

4. 작은 사역에도 목숨을 내놓는 자세가 왜 필요한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는 맡은 일이 크든 작든 목숨을 내놓는 자세로 감당한다. 목회와 선교처럼 눈에 띄는 일만 사명이 아니다. 교회를 청소하고,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찬양 한 곡을 맡는 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이다. 작은 일이라고 적당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청소할 때에도 영혼을 회개로 깨끗하게 하듯 하나님의 집 한편을 깨끗하게 한다는 마음으로 충성(忠誠, faithfulness)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증언하셔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기 위하여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행 20:22-24).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함부로 다루거나 무모하게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편의와 기분에 따라 버리지 않고, 손해와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책임진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할 수 있지만 다음에는 못 하겠다’며 수시로 돌아서는 사람이 아니라, 한번 맡은 일을 초지일관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부족하다. 모든 능력이 확보된 뒤에 사명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먼저 순종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과 권세를 더하신다.

  필자의 첫 스승이었던 이상관 목사는 예수를 믿기 전 조직폭력배로 살다가 감옥 독방에서 성경을 읽고 주님을 만나 목회자가 되었다. 그가 백 평 남짓한 가건물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소음 문제를 빌미로 위협적인 사람들이 찾아온 일이 있었다. 마침 그날 과거의 후배였던 조직의 우두머리가 방문해 있었고, 그의 한마디에 찾아온 사람들이 물러갔다. 그 일을 계기로 필자는 왜 그 후배가 우두머리가 되었는지 들었다. 다른 사람은 ‘너를 쓰러뜨리고 나는 살아야겠다’는 자세로 싸웠지만, 그는 ‘오늘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각오로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명 앞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결단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를 설명하는 비유다. 영적 싸움에서도 악한 영을 두려워하여 피하기만 하면 영권이 자라지 않는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맞서며, ‘나는 쓰러질지라도 하나님의 원수를 끝까지 대적하겠다’는 자세로 서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사탄에게 마음대로 삼켜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싸울수록 믿음이 단련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권(靈權)을 경험하게 된다(약 4:7; 벧전 5:8-9).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드릴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한 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매우 작은 도시락이었지만, 주님 손에 드려졌을 때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재료가 되었다(요 6:8-13). 전능하신 주님은 우리 도움 없이도 일하실 수 있지만, 우리의 작은 내어 드림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 과정에서 믿음을 시험하시고 하늘의 상을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사역일수록 가볍게 여기지 말고 생명을 드리는 마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5.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역자는 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역자에게서는 절대적인 순종이 나온다. 나를 부르시고 세우시며 일을 맡기시는 분도 하나님이요, 사역을 멈추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다. 사역자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일을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주권자의 명령에 따라 시작하고 멈추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날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이토록 수고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라고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면 아직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나님의 불을 보았고, 큰 승리를 경험했다(왕상 18:20-40). 그러나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로 도망했고, 다시 호렙산까지 가서 자신만 홀로 남았다고 호소했다(왕상 19:1-14). 그는 열심이 특심이었지만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를 무시하지 않으셨다.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며,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대신할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명하셨다(왕상 19:15-16).

왕상 19: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엘리야는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를 지나 요단강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께서 언제 자기를 데려가실지 기다렸고, 엘리사에게 겉옷과 사명을 넘겨주었다(왕하 2:1-14). 자기가 세운 업적을 붙들고 자리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시작하라고 하실 때 시작하고, 후계자에게 맡기라고 하실 때 맡기며, 그만두라고 하실 때 그만두는 것이 순종이다.

  순종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는 자기 생각이다. 어떤 생각을 밤낮으로 되풀이하면 며칠 뒤에는 그럴듯한 논리가 된다. 마침내 ‘내 생각이 옳고 명령한 사람이 틀렸다’고 확신하게 된다. 사탄은 이렇게 생각을 이론으로 굳혀 하나님의 뜻에서 사람을 이탈시키려 한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한다고 말했다(고후 10:4-5). 그러므로 자기 논리가 아무리 합당해 보여도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 생각의 출처와 열매를 살펴야 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지도자의 정당한 가르침을 받을 때 자기 고집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라,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와 사역의 질서를 존중하라는 뜻이다. 순종하는 사람은 자기 의견이 없어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내 삶과 사역의 최종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기 때문에 따른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신다.

6. 크게 쓰임받을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쓰임받을수록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한 모든 일이 사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수고를 했더라도 은사와 기회와 능력과 열매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잊고 ‘내가 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받은 것을 자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의 책망을 듣지 못하게 된다. 책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바로 교만의 뚜렷한 표지다.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자기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떠나가기를 세 번 간구했지만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대답하셨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므로 바울은 오히려 자기 약한 것을 자랑했다(고후 12:7-10).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교만하려는 사람에게 두 가지 장치를 두실 수 있다. 하나는 사탄의 사자가 남아 있게 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한 부분을 완전히 없애 주지 않으시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에게 사람을 넘겨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강하다고 착각하지 않고 늘 주님을 찾도록 붙들어 두시는 배려다.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되고 모든 능력을 한꺼번에 받으면 자기 힘으로 일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부족한 것이 남아 있기에 고개를 숙이고 은혜를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큰 사명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큰 시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크게 쓰시는 만큼 더 깊이 무릎 꿇게 하시고, 끝까지 순종하는지를 살피신다. 높은 계시와 강한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저절로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꾼도 얼마든지 사탄에게 이용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날마다 자신의 동기와 태도를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야 한다. 약함이 드러날 때 불평하기보다 그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해야 한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만 낮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섬기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과거 우리 교회에서 식당 봉사 책임을 맡은 이가 목회자에게는 좋은 음식을 챙기며 잘했지만, 다른 봉사자들에게는 위압적으로 명령한 일이 있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함께 섬기는 지체를 눌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 일을 맡기셨고 당신에게도 일을 맡기셨으니 서로 연합하여 감당하자’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많으면 일을 나누고, 부족한 사람은 도우며, 각 사람을 하나님의 종으로 존중해야 한다.

  사역자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겉모습만 잘 꾸미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보이는 자리와 보이지 않는 자리의 태도를 모두 살피신다. 내가 설교하거나 앞에 설 때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똑같아야 한다.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을 사용해 주시는 것이 감사하여 끝까지 낮은 자리에서 봉사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계속 쓰신다.

7. 의의 면류관을 받을 충성되고 의로운 사역자는 어떤 사람인가?

  의의 면류관을 받을 사역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길을 끝까지 달리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전제와 같이 벌써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며 믿음을 지켰기에,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주실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그 면류관은 바울에게만 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딤후 4:6-8).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왜 바울은 단순히 면류관이라고 하지 않고 ‘의의 면류관’이라고 했는가. 면류관을 주시는 분이 의로우신 재판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크기나 사람의 평판만 보지 않으시고 마음과 동기와 과정까지 심판하신다. 불의하게 이룬 성과에는 상을 주지 않으시며, 사람 앞에서는 열심히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형편없이 산 이중적인 삶도 인정하지 않으신다. 설교할 때의 말과 설교하지 않을 때의 생활이 같고, 사람 앞과 하나님 앞이 같은 사람이 의로운 사역자다.

  충성은 맡은 일을 신실하고 변함없이 감당하는 것이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다(고전 4:2). 주님도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시며 더 많은 것을 맡기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셨다(마 25:21, 23). 충성은 잠시 뜨거웠다가 식는 열심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마음으로 주인이 맡긴 일을 완수하는 태도다.

  이 땅의 삶과 천국의 상급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며, 불로 각 사람의 공적을 시험하신다(고전 3:12-15).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여 충성하지 않은 삶까지 충성한 것으로 계산되는 것은 아니다. 천국은 의가 지배하는 나라이므로, 이 땅에서 교만하고 불의하게 살면서 하늘에서 높은 지위와 아름다운 집을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일을 정직하고 신실하게 감당했다면 의로우신 주께서 결코 잊지 않으신다(히 6:10).

  필자는 구원이 믿을 때 시작되고 천국에 들어갈 때 완성된다고 가르쳐 왔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것은 구원의 시작이었지만, 불순종한 다수는 광야에서 엎드러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전 10:1-12; 히 3:16-19). 그러므로 한때 믿었다는 기억이나 한때 쓰임받았다는 경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날마다 회개하고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주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재판장 앞에 서기를 힘써야 한다.

  의로운 사역자는 자기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모든 능력은 은혜로 받았다고 고백하되,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더 많이 수고한다(고전 15:10). 자신이 세운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평가를 바라보고, 눈앞의 칭찬보다 마지막 날의 면류관을 소중히 여긴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생애 마지막에 바울처럼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고백할 수 있다.

8. 평신도 사역자가 감당해야 할 세 가지 사명은 무엇인가?

  모든 평신도에게도 분명한 사명이 있다. 첫째, 자기 가정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파수꾼은 위험을 먼저 보고 깨우는 사람이다(겔 33:7). 가정에 죄와 분열과 영적 공격이 들어오지 않도록 자신부터 깨어 회개하고, 배우자와 자녀를 말씀과 기도로 지켜야 한다. 다른 가족을 책망하기 전에 자기 안의 혈기와 교만을 처리하고, 사랑과 인내로 가정예배와 신앙생활을 세워 가야 한다.

  둘째, 하나님께서 쓰시는 주의 종을 도와야 한다. 이는 목회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사람을 우상화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시간과 재능과 물질로 협력하며, 필요한 일을 기꺼이 나누어 맡는 것이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을 때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길 수 있었다(출 17:10-13). 사역의 현장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뿐 아니라 곁에서 손을 붙들어 주는 충성된 동역자가 필요하다.

  셋째, 교회의 지체를 섬겨야 한다. 교회는 한 몸이며 성도는 서로 지체다. 눈이 손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머리가 발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전 12:12-27). 식당 봉사와 청소와 교사와 찬양과 안내는 서로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자리다. 맡은 역할이 다르다고 우열을 정하거나, 책임을 맡았다고 다른 지체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서로 봉사해야 한다(벧전 4:10-11).

  이 세 가지 사명을 감당할 때에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깨끗함이다. 혈기와 분노로 가정을 지키려 하면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시기와 질투로 주의 종을 도우면 사역을 분열시키며, 교만과 명예욕으로 지체를 섬기면 봉사가 지배로 변한다. 그러나 회개하여 악한 영이 떠나가고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자신이 할 일도 더욱 분명해진다.

  평신도의 사명은 목회자의 사명보다 낮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다른 분량과 자리를 맡기셨으며, 맡은 자리에서 얼마나 신실했는지를 보신다. 가정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기도를 드리고, 주의 종의 짐을 말없이 나누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 지체를 돌보는 일이 하늘에서는 귀한 사역으로 기록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유명한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주인이 맡긴 일을 깨끗한 마음과 충성된 자세로 감당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도 자신을 단순한 예배 참석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나는 가정에 세워진 파수꾼이며, 복음 사역을 함께 짊어진 동역자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꾼이다. 이 정체성을 붙들고 날마다 회개하며, 작은 일에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겸손과 충성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9. 나오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를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느 날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움과 훈련과 인내를 거치고, 좋은 지도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으며, 순종과 성품을 하나씩 다듬는 가운데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된다.

  그 모든 준비의 첫째는 깨끗함이다. 회개하여 혈기와 교만과 음란과 명예욕과 자기 자랑을 처리하지 않으면 악한 영이 약점을 붙들어 사역을 흔든다. 그러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은사와 능력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큰일을 맡는 것보다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을 먼저 구해야 한다.

  자기 사명을 분명히 발견한 뒤에는 사람의 비난과 환경의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작은 봉사에도 생명을 드리는 자세가 필요하며, 시작과 끝과 결과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많은 일을 이루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행하셨음을 알고 낮아져야 한다. 약함과 시험이 남아 있을 때에는 불평하기보다 그것을 통하여 주님을 더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해야 한다.

  마지막에는 충성과 의로움이 남는다. 사람 앞과 하나님 앞이 같고, 보이는 자리와 보이지 않는 자리의 삶이 같아야 한다. 구원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고 믿음과 회개로 달려갈 길을 마쳐야 한다. 평신도 역시 가정의 파수꾼으로 서고, 주의 종을 도우며, 교회의 지체를 섬기는 세 가지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오늘 나는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어떤 결격 사유가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발견한 죄는 회개하고, 부족한 성품은 고치며, 맡기신 자리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의로우신 재판장께 인정받고 의의 면류관을 받도록 끝까지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14일(월)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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