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6. 09. 21.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8do3PUAEadU

아침묵상입니다.

제목:[사역자론(17)]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1)(고전4:1~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8do3PUAEadU

 

[이 설교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질문들]

1.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뜻과 사명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2. 하나님의 부르심은 왜 충성의 과정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가?
3. 악한 영의 방해를 이기고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 천국의 면류관은 무엇이며 사역자의 삶을 어떻게 증언하는가?
5. 다섯 면류관 가운데 충성의 면류관은 누가 받는가?
6. 모세와 다윗은 맡겨진 백성을 위해 어떻게 충성했는가?
7. 오늘 맡겨진 작은 일과 영혼들을 위해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가?

 

 

[설교핵심]

본 설교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천국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보상인 다섯 가지 면류관을 소개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충성의 면류관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요셉과 같은 성경 인물들의 삶과 자신의 목회 경험을 예로 들어, 우리 삶의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 있음을 역설하며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특히 충성이란 단순히 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책임을 끝까지 이행하는 신실함을 의미하며, 이는 성도들을 향한 중보의 마음과 영적 싸움을 감내하는 태도로 증명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충실함으로써 내세의 상급을 준비하고, 주님께 인정받는 참된 일꾼으로 거듭날 것을 강력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역자론(17)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1)

(고전 4:1-20)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왜 태어났으며 하나님께서 어떤 뜻과 섭리(攝理, providence) 가운데 자신을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아는 사람과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가정의 구원을 이루고,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길 기본적인 책임을 맡기셨다. 그 가운데에는 모세나 바울처럼 특별한 사명(使命, mission)을 받고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인생길을 처음부터 전부 보여 주시는 것은 아니다. 요셉도 열일곱 살에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 단에 절하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을 살릴 것까지 처음부터 모두 알지는 못했다(창 37:5-11). 그는 꿈을 마음에 간직한 채 종살이와 감옥을 지나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씩 깨달았다.

  필자도 예수님을 믿던 열여덟 살 무렵부터 자신이 목사가 될 것이라는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성경 지식도 찬송가도 오래 믿은 친구들보다 훨씬 부족했다. 라디오 신앙 상담에서 목회자는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잠시 그 생각을 접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군종병과 교회학교 교사와 찬양 인도자로 섬기게 하셨고, 마침내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는 길까지 차례로 이끄셨다.

  함께 교회에 다니던 친구들은 삭개오와 나아만 장군과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고 찬송도 익숙하게 불렀다. 필자에게는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나는 목사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만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기독교방송에서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가 목회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고 상담하는 말을 들었다. 그 말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는 없었지만, 부르심에 대한 질문도 버릴 수 없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라고 말한다. 맡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재능이나 명성이 아니라 충성(忠誠, faithfulness)이다. 천국의 면류관(冕旒冠, crown)은 바로 이 땅에서 주님이 맡기신 일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드러내는 영광의 상이다.

고전 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맡은 일이 작다고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새벽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일,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일, 가족의 구원을 위해 회개하는 일, 교회의 작은 필요를 채우는 일도 하늘에서는 잊히지 않는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고, 끝까지 신실했던 사람에게 충성의 면류관을 씌우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사명을 어떻게 알게 하시며, 천국의 면류관이 무엇을 증언하고, 맡은 자가 어떠한 충성으로 그 상을 준비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뜻과 사명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뜻과 사명은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어떤 사람은 요셉처럼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는 꿈과 분명한 말씀을 받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삶의 만남과 사건과 훈련을 지나면서 뒤늦게 자기 길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는 것이다.

  필자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꿈을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啓示, revelation)의 꿈으로 분별해 왔다. 요셉의 꿈도 한 번의 호기심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형들이 그를 “꿈꾸는 자”라고 불렀을 만큼 분명했고, 훗날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와서 절했을 때 그 꿈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창 42:6-9).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의 심령에서 사라지지 않고 때가 되면 그 의미가 열린다.

  필자가 처음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의 일이다. 흰옷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나타나 손을 얹어 안수해 주셨다. 다만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모든 내용을 한꺼번에 알려 주시기보다, 삶으로 찾아가며 깨닫게 하신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지를 감추어 괴롭히시는 분이 아니라, 믿음으로 한 걸음씩 걷게 하시며 사람을 빚으시는 분이다.

  필자의 어머니도 천국에 가서 주님을 뵌 체험을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본 주님은 흰 머리를 하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다. 주님께서는 “지금은 내려가고 일 년 뒤에 오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다. 이것은 필자의 어머니가 체험한 영적 사건이다. 이러한 체험은 사람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때와 사명을 다하기까지 이 땅에서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필자는 국어국문학을 공부했고 교생 실습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교육계로 오라는 권유도 받았다. 교육감은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니 교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목회자로 부르신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신학대학원 시험을 어떻게 치르는지만이라도 알아보려고 했다.

  시험을 약 다섯 달 앞둔 어느 날, 대학 중앙도서관 복도에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준비 모임 광고를 보았다. 일곱 명가량 모인 자리에서 필자는 단지 시험 과목과 방법을 알아보려 했지만, 성경 내용을 잘 안다는 이유로 성경 과목 정리를 맡게 되었다. 전국의 부흥집회를 다니며 남는 시간마다 성경을 읽어 각 장의 내용을 익혀 두었던 일이 그 자리에서 쓰였다. 결국 연습 삼아 치른 시험에 합격했고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 모임에는 이미 여러 번 시험을 준비한 이들도 있었고, 과목은 성경과 세계사와 한국사와 철학과 영어와 상식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처음 참석한 필자에게 성경 정리가 맡겨진 것은 뜻밖이었다. 그러나 오전 집회와 저녁 집회 사이의 긴 시간마다 성경을 읽어 온 준비가 있었기에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래전에 충성으로 쌓아 둔 것을 필요한 때에 꺼내어 사명의 문을 여는 열쇠로 사용하신다.

  이처럼 사명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완성된 설계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쌓아 둔 말씀, 만난 사람, 우연처럼 보이는 광고 한 장, 맡겨진 작은 섬김을 서로 연결하여 길을 여신다. 그러므로 오늘 듣는 말씀 한마디와 만나는 사람 한 명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하게 하는 표지가 될 수 있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은 왜 충성의 과정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가?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다음 일을 맡기시기 때문이다. 필자도 처음부터 성경과 성령의 사역을 함께 감당하고, 장차 불의 사역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모를 알지 못했다. 교회학교를 섬기고 군대에서 군종병으로 일하며 설교하고, 부흥집회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신학교에서 말씀을 배우는 과정을 충성스럽게 지나자 다음 단계가 열렸다.

  하나님께서 미래를 단계적으로 보이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직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한꺼번에 알면 교만해지거나 두려움에 눌릴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한 단계의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 순종이 확인되면 다음 단계를 보여 주신다. 소명을 아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일이 아니라, 순종을 통해 그 소명을 감당할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미래의 무게를 한꺼번에 지우지 않으신다. 오늘 맡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신 뒤 그다음 일을 맡기신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더 큰 일을 맡기고, 그 일에도 충성하면 더 넓은 사역과 더 큰 은사와 권세를 주신다. 이것은 사람을 차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당할 그릇을 빚는 하나님의 훈련이다(마 25:21).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사람마다 그릇과 길은 다르다. 모세가 갈 길과 아론과 미리암과 여호수아가 갈 길이 달랐다. 신약에서도 바울의 길과 의사 누가의 길과 디모데의 길은 같지 않았다. 모든 성도가 똑같은 직분과 사역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자리에서든 하나님께 받은 몫을 찾고 그 일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쓰신 성경 인물들을 보면 아담,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유다,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베드로, 바울, 디모데, 누가, 요한 등 서로 다른 사명을 수행했다. 이들은 같은 일을 복제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시대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한 사람들이다.

  반대로 부르심과 예정된 길이 있다고 저절로 완주하는 것은 아니다. 구약의 사울왕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지 못했고, 신약의 가룟 유다도 사도로 택함을 받았지만 자기 길을 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선택받았으니 어떻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맡겨진 사명은 찾고 구하며 순종할 때 비로소 열매가 된다.

  필자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작은 문을 여셨다. 그 문으로 들어가 충성하면 다음 문을 열어 주셨다. 말씀을 연구하는 눈과 성령의 은사도 같은 방식으로 더해졌다. 그러므로 지금 하는 일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충성이 내일의 사명을 밝히는 등불이다.

4. 악한 영의 방해를 이기고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알려면 먼저 하나님께 묻고 말씀을 붙들며 회개(悔改, repentance)해야 한다. 필자는 왜 처음부터 환상과 사명의 전모를 분명히 보지 못했는지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조상의 우상숭배를 통해 내려온 무당의 영과 조상 영과 부처의 영 등 수많은 악한 영이 가득했고, 그것들이 영적인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고 특별한 사역자의 길만 걸었다면, 영적으로 눌려 자기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의 형편을 깊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 자신도 많은 회개와 영적 싸움을 통하여 막힌 것을 뚫고 나왔기에, 악한 영의 방해로 사명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실제적인 소망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사역 현장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무당의 영과 부처의 영과 조상 영이 강하게 역사하는 가정은 신앙의 길이 막히고 반복되는 가난과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런 가정에 소망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필자도 같은 방해를 회개와 영적 싸움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자기 사명이 없는 것으로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회개하며 주님을 찾으면 가려졌던 길이 열린다.

  사명을 가리는 악한 영을 이기려면 막연히 “언젠가 알게 되겠지” 하며 기다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구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며,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행해야 한다. 영적인 눈은 호기심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정결과 순종과 충성의 과정에서 밝아진다.

  가족 구원을 위한 회개와 영적 싸움도 중요하다. 피로 연결된 가족을 위해 회개하고 그들을 붙드는 악한 영을 십자가에 세우는 일을 계속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싸움에 필요한 영적 계급과 권세를 더하신다. 싸움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더 높은 영적 계급만을 구할 수는 없다. 실제 전쟁에 참여하고 때로 공격을 받아도 영혼을 살리기 위해 물러서지 않을 때 더 큰 권세가 맡겨진다.

  필자가 영적 사역의 훈련을 받을 때에는 먼저 자기 안에 있던 악한 영들과 그것들이 만든 집을 처리하는 일이 매우 힘들었다. 그것들을 충분히 제거한 뒤에는 성도들을 괴롭히는 영들을 불러내 처리하는 사역으로 나아갔다. 때로 허리가 휘고 손이 떨릴 만큼 고통이 컸지만, 맡겨진 성도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필자는 피로 연결되지 않은 성도들의 영적 문제까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를 스승에게 물었다. 그때 담임목사는 교회의 영적 부모이므로 맡겨진 성도들을 위한 이러한 사역이 허락되지만, 같은 책임을 맡지 않은 부목사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이는 필자가 훈련 과정에서 배우고 체험한 영적 사역의 원리다. 은사와 권세는 자기 자랑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영혼을 살리라고 주어진다.

  그러므로 사명을 찾는 사람은 먼저 자기 안의 방해를 회개로 처리하고, 이미 맡겨진 가족과 교회와 영혼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 내가 편안해질 만큼만 회개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사람이 자유함을 얻을 때까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 충성의 길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보냄받았는지를 더욱 분명히 알려 주신다.

5. 천국의 면류관은 무엇이며 사역자의 삶을 어떻게 증언하는가?

  천국의 면류관은 이 땅에서 주님이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수행한 사람에게 주시는 명예의 상이다. 구원(救援, salvation)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천국의 상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주님께 드렸는가와 연결된다. 작은 화분에 물을 한 번 준 일, 예배를 위해 물 한 잔을 준비한 일, 이름 없이 드린 헌금과 봉사도 하늘에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천국 집의 일층에는 금으로 만든 책상과 같은 곳이 있고, 그 위에 각 사람이 받은 면류관들이 놓여 있다. 예배드리러 갈 때에는 그 면류관들을 쓰고 나간다. 여러 면류관을 어떻게 한꺼번에 쓰는지 살펴보니, 손으로 모으면 하나의 면류관처럼 합쳐지고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배를 마치고 내려놓으면 다시 각각의 면류관으로 나뉘어 제자리에 놓였다.

  면류관마다 모양과 박힌 보석과 빛이 다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길을 걸었으며 무엇에 충성했는지를 보여 준다. 십사만 사천 명의 보좌에 앉은 이들에게는 면류관이 있고, 이십사 장로 가운데에는 네 개나 다섯 개 이상의 면류관을 쓴 이도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일반 성도 가운데서도 앞자리에 서서 예배하는 이들 중 한두 개의 면류관을 쓴 이들이 있었지만, 세 개를 쓴 경우는 보지 못했다.

  여러 개의 금 면류관을 쓴다고 목이 무거워지는 일도 없다. 천국의 것은 이 땅의 물질 법칙에 갇히지 않으며, 예배를 위하여 가장 아름답게 쓰인다. 면류관의 중심은 자신을 과시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그러므로 천국의 상을 준비한다는 것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받은 모든 영광을 다시 주님께 돌려드릴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성경의 중요한 인물들이 받은 면류관과 천국 집과 영적 상태를 살피며 자료를 정리해 보니, 위대한 신앙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이 충성의 면류관이었다. 가장 받기 어려운 것은 생명의 면류관이었다. 생명의 면류관은 목숨을 바친 순교자에게 주어지며, 스데반도 이 면류관을 쓰고 있다. 또한 육체적인 순교만이 아니라 자기 마음과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드린 사람에게도 주어질 수 있었다.

계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번 첫 시간에는 진정한 사역자들이 받는 다섯 면류관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널리 발견되는 충성의 면류관을 집중하여 살핀다. 면류관은 사람 앞에서 유명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다는 하늘의 증언이다. 세상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맡은 자리에서 신실했다면 주님께서 그 충성을 기억하신다.

  그러므로 상을 사모하는 일은 탐욕이 아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그분이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고, 마지막 날 “잘하였도다”라는 칭찬을 받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이다. 천국의 면류관을 바라보는 사람은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평가를 중히 여기며, 보이는 일뿐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일에도 충성한다.

6. 다섯 면류관 가운데 충성의 면류관은 누가 받는가?

  충성의 면류관은 먼저 무엇인가를 맡은 사람이 받는다. 아무것도 맡지 않은 사람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고린도전서 4장 1-2절에서 “맡은 자”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 오이코노모스(oikonomos)이며, 집을 관리하도록 책임을 부여받은 청지기(steward)를 가리킨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자기 것처럼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이 명령한 뜻대로 관리하고 보고하는 사람이다.

  청지기에게는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 하나는 종처럼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맡겨진 것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주인이 개에게 먹이를 앞에 두고 돌아올 때까지 먹지 말라고 명했다면, 배가 고프고 침이 흘러도 기다리는 것이 충성이다. 자기 욕구보다 주인의 명령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충성은 잘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부족하고 힘들어도 주님이 맡기셨다면 감당하려고 달려드는 것이다. 할 수 없어서 넘어지고 공격을 받더라도 물러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감당할 능력을 더하신다. “이 일을 하다가 죽어도 행복하다”는 마음으로 책임을 붙드는 것이 충성이다.

  필자가 미국 선교를 다녀올 때 장시간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오랜 비행 중에도 책을 교정하다가 잠시 쉬면서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다. 흥남 철수 때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어린 여동생을 끝까지 지키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배에 오르는 마지막 순간에 동생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평생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짐을 안고 살다가 훗날 미국으로 입양된 동생을 다시 만나 눈물로 사과했다.

  필자에게는 약 십사 년 만의 미국 방문이었다. 과거에는 장거리 이동 뒤 몸살로 며칠씩 눕곤 했지만, 이번에는 중보기도팀이 함께 기도해 주어 무사히 일정을 감당했다. 긴 비행시간에도 놀기보다 출판할 책을 교정하며 시간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잠시 본 영화 한 편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맡겨진 책임을 끝까지 지키라는 메시지를 다시 새기게 하셨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과 사명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주님, 일평생 주님이 맡기신 일에 대하여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것이 충성이다. 조금 힘들다고 책임을 내려놓지 않고, 마지막까지 맡은 것을 붙드는 것이다.

  충성은 결과의 크기보다 책임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많은 사람을 이끌었어도 자기 영광을 구했다면 충성된 청지기가 아니다. 반대로 작은 교회와 한 영혼을 맡았어도 주님의 마음으로 끝까지 돌보았다면 충성된 사람이다. 주님은 성공의 숫자보다 신실함을 보시고 충성의 면류관을 예비하신다.

7. 모세와 다윗은 맡겨진 백성을 위해 어떻게 충성했는가?

  성경에서 충성의 대표적인 인물은 모세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맡기셨다. 모세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눈앞에서 생을 마쳤지만, 마지막까지 백성을 이끌고 말씀을 전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사십 년 동안 자기 성품을 다듬은 뒤 이백만 명가량의 백성을 맡았다. 그러나 백성은 광야에서 거듭 하나님을 시험하고 모세를 원망했다.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며, 애굽의 부추와 파와 마늘을 그리워했다. 지도자들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도 했다. 모세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충성은 모든 답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백성을 품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엎드리는 것이다.

히 3:4-6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광야의 백성은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을 때마다 모세를 원망했다. 고라 일당은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반역했고, 백성은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며 돌아가자고 했다. 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훌은 금송아지를 만들자는 요구에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고, 두려움에 빠진 아론은 결국 백성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사건을 보고 진노하셨다.

  그때 모세는 자신을 괴롭힌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며, 그렇지 않으시려면 자신을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 달라고까지 중보했다(출 32:31-32). 충성된 지도자는 백성이 자기를 인정할 때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백성이 배반하고 원망해도 하나님께 맡겨진 영혼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을 품고 기도한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다윗도 충성된 지도자의 마음을 보여 주었다. 그가 인구조사를 행한 뒤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셨을 때, 전염병으로 백성 칠만 명이 죽었다. 다윗은 죽어 가는 백성을 보며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라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이 자기와 자기 아버지의 집을 치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삼하 24:10-17).

  다윗은 자기 잘못 때문에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지도자의 죄가 백성의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책임을 자기에게 돌렸다. 모세와 다윗에게 공통된 충성은 백성을 자기 성공의 도구로 삼지 않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과 집까지 내어놓았다는 데 있다.

  오늘의 사역자도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성도가 말을 듣지 않고 문제를 일으킨다고 쉽게 버려서는 안 된다. 물론 죄를 옳다고 두둔하라는 뜻은 아니다. 진리를 분명히 가르치되, 맡겨진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끝까지 기도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충성하는 길이다.

8. 오늘 맡겨진 작은 일과 영혼들을 위해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가?

  오늘 내가 맡은 자리가 충성의 출발점이다. 더 큰 강단과 더 많은 사람과 더 눈에 띄는 사역이 주어져야 충성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감당하며, 새벽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지금 맡기신 일일 수 있다.

  사람은 눈에 띄는 일을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가까이에 있는 책임을 보신다. 배우자와 자녀와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일, 맡은 부서의 약속을 지키는 일, 예배 전에 자리를 정돈하고 물 한 잔을 준비하는 일이 충성의 시험이 된다. 이 작은 책임을 가볍게 여기면서 더 큰 사명을 달라고 요구한다면 아직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먼저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거리가 멀어 현장에 올 수 없다면 정한 시간에 온라인으로라도 말씀을 듣고, 예배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회개와 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로 이어 가야 한다. 몇백 번이나 천 번을 회개했다고 이제 다 했다고 멈추어서는 안 된다. 자신과 가족과 맡겨진 영혼이 악한 영의 억압에서 자유함을 얻을 때까지 기도할 제목은 남아 있다.

  둘째, 가족의 구원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남편이나 부모가 아직 믿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 필자의 아버지도 기독교에 대한 깊은 반감이 있었고 인간적으로는 믿기 어려워 보였지만, 필자는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들어갈 것을 믿음으로 붙들었다. 신실한 믿음은 현재의 모습만 보고 포기하지 않는다.

  셋째, 교회와 맡겨진 영혼을 위해 자기 은사와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은사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자랑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영혼을 살리고 귀신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가족과 성도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섬기라고 주어진 것이다. 맡겨진 책임을 더 깊이 감당할수록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불과 능력과 영적 무기를 더하신다.

  넷째, 작은 봉사도 하늘의 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청소 한 번, 물 한 잔, 작은 헌금 하나도 주와 복음을 위해 드렸다면 천국 집에 흔적으로 남는다. 이 땅의 삶은 하늘과 단절된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행한 것은 하나도 헛되지 않으며, 행하지 않은 것이 저절로 상으로 바뀌지도 않는다.

  다섯째, 힘들 때 책임을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 충성은 형편이 좋을 때 잠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다. 몸이 힘들고 공격이 오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이 맡기셨다”는 한 가지 이유로 계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과정을 보시고 더 큰 일을 맡길지, 더 큰 권세와 은사를 줄지를 결정하신다.

  우리는 어느 날 주님 앞에 서게 된다. 그때 세상에서 얼마나 유명했는가보다 주님이 맡기신 일에 얼마나 신실했는가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오늘의 작은 책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과 교회와 영혼을 위해 끝까지 충성함으로 천국에서 충성의 면류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9. 나오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사명을 어떻게 알게 하시며, 천국의 면류관이 무엇을 증언하고, 맡은 자가 어떠한 충성으로 그 상을 준비하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모든 길을 처음부터 보여 주시지 않고, 오늘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할 때 다음 길을 열어 주신다.

  요셉은 꿈을 마음에 간직한 채 종살이와 감옥을 통과했고, 필자도 예수님의 안수와 목회 소명을 받은 뒤 군종병과 교회학교와 찬양 인도와 말씀 연구의 과정을 지나 신학대학원으로 인도받았다.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과 사건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사명을 발견하게 하는 표지가 되었다.

  악한 영은 영적인 눈을 가리고 사명의 길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회개와 영적 싸움을 통해 방해를 이기고, 가족과 교회와 맡겨진 영혼을 살리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은사와 권세는 자기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기 위해 주어진다.

  필자가 천국을 살피며 확인한 면류관은 이 땅에서 걸어온 충성의 길을 보여 주는 명예의 상이었다. 여러 면류관은 예배 때 하나로 합쳐져 머리에 씌워졌고, 그 모양과 보석과 빛은 각 사람이 감당한 사명을 증언했다. 그중 가장 많이 발견된 것이 충성의 면류관이며, 가장 받기 어려운 것은 자기 생명을 온전히 드린 이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이었다.

  충성의 면류관은 무엇인가를 맡은 청지기가 받는다. 충성은 잘할 수 있는 일만 골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맡기셨기에 힘들어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모세는 원망하고 반역하는 백성을 위해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기도했고, 다윗은 자기 죄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을 대신하여 자신과 자기 집을 쳐 달라고 간구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큰 일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오늘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가족 구원을 위해 회개하며, 교회를 섬기고, 한 영혼이 자유함을 얻도록 끝까지 기도해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께서 보고 계시며, 주와 복음을 위해 드린 수고는 천국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맡겨진 가정과 교회와 영혼들을 끝까지 책임지며, 주님 앞에 서는 날 충성의 면류관과 “잘하였도다”라는 칭찬을 받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21일(월)
정보배 목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동영상URL
» [사역자론(17)]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1)(고전4:1~20)_2025-09-21(월) new 갈렙 2026.09.21 5 https://youtu.be/8do3PUAEadU
2400 [기독론(195)]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6)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2)(단10:1~19)_2026-09-18(금) file 갈렙 2026.09.18 94 https://youtu.be/lsLW3X5H1sA
2399 [기독론(19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단10:1~19)_2026-09-17(목) file 갈렙 2026.09.17 89 https://youtu.be/pFjMmK2XCGg
2398 [기독론(19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단9:24~27)_2026-09-16(수) file 갈렙 2026.09.16 118 https://youtu.be/YUm3zJD82MI
2397 [기독론(19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단9:24~27)_2026-09-15(화) file 갈렙 2026.09.15 137 https://youtu.be/WhqAlJuyIgM
2396 [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딤후4:6~8)_2026-09-14(월) file 갈렙 2026.09.14 130 https://youtu.be/mNPVNppsOOA
2395 [기독론(19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1)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5)(단9:24~27)_2026-09-11(금) 갈렙 2026.09.11 107 https://youtu.be/bSDlEjPO81c
2394 [기독론(189)]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0)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4)(단9:20~27)_2026-09-10(목) file 갈렙 2026.09.10 147 https://youtu.be/0YyG0bFep3Q
2393 [기독론(188)]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9)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3)(단9:20~27)_2026-09-09(수) file 갈렙 2026.09.09 154 https://youtu.be/zlyZJacqOro
2392 [기독론(187)]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8)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2)(단9:20~27)_2026-09-08(화) file 갈렙 2026.09.08 175 https://youtu.be/xW9hu4CA10s
2391 [기독론(186)]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1)(단9:1~24)_2026-09-07(월) file 갈렙 2026.09.07 203 https://youtu.be/dU2XDBdHQvY
2390 [기독론(18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5) 인자 같은 이(04)(단7:9~14)_2026-09-04(금) 갈렙 2026.09.04 214 https://youtu.be/IoG2jyoQGSk
2389 [기독론(18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인자 같은 이(03)(단7:9~28)_2026-09-03(목) file 갈렙 2026.09.03 177 https://youtu.be/gEeXsuvfGYk
2388 [기독론(18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인자 같은 이(02)(단7:1~14)_2026-09-02(수) file 갈렙 2026.09.02 208 https://youtu.be/oiMzkpFfbIw
2387 [기독론(181)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인자 같은 이(01)(단7:13~14)_2026-09-01(화) file 갈렙 2026.09.01 223 https://youtu.be/bBmsmeED-S0
2386 [기독론(18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손대지 아니한 돌(단2:25~49)_2026-08-31(월) file 갈렙 2026.08.31 200 https://youtu.be/1l23I9Z34wM
2385 [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렘16:10~13 )_2026년 08월 28일(금) file 갈렙 2026.08.28 264 https://youtu.be/dSaZ7U5Jdy4
2384 [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1)(렘16:10~13)_2026-08-27(목) file 갈렙 2026.08.27 198 https://youtu.be/BKjQHVKliwY
2383 [기독론(175)] 신약 성도는 속죄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는데도 왜 여전히 죄를 지을까?(렘31:31~34)_2026-08-26(수) file 갈렙 2026.08.26 212 https://youtu.be/nYt4IOTVfG4
2382 [기독론(174)] 배역한 이스라엘 민족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놓은 처방전, 새 언약의 비밀(렘31:31~34)_2026-08-25(화) file 갈렙 2026.08.25 197 https://youtu.be/VsnBzpUMMXQ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1 Next
/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