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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23.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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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4UKj0rPl_wg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호1:10~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4UKj0rPl_wg

 

[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

1. 호세아서는 왜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였는가?
2. 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은 무엇을 예표하는가?
3. 호세아·여호수아·예수의 이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4. 여호수아는 왜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는가?
5. 호세아서의 ‘다윗’과 ‘한 우두머리’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6. 북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7.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는 ‘내 백성 아닌 자’를 누구로 해석했는가?

 

 

[설교핵심]

본 설교는 구약의 호세아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비추는 결정적인 예표로 정의하며, 그 이름과 삶의 궤적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어떻게 상징하는지 심도 있게 고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호세아와 여호수아,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이 모두 ‘구원’이라는 동일한 어원을 공유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호세아가 음란한 고멜을 대가를 치르고 다시 사온 사건을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의 대속물 사역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특히 본문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진 민족이 마지막 날에 다윗으로 예표된 한 우두머리 아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혈통적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안식을 주는 것으로 성취되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언어적 유희와 역사적 성취를 통해, 진정한 회개를 거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자만이 하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는 회개와 천국 복음의 핵심 가치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기독론(198)

호세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어떻게 예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두머리이자 왕이 되셨는가?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호세아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豫表, typology) 가운데,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호세아서는 소선지서의 첫 번째 책이다. 그러나 호세아서가 소선지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되지는 않았다. 북이스라엘을 향해 정의와 공의를 외쳤던 아모스서가 호세아서보다 먼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호세아서가 앞에 놓인 것은 이 책의 이름부터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도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지만 마태복음이 복음서의 첫머리에 놓였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약속의 성취자임을 먼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호세아서도 소선지서의 첫머리에서 예수님을 가리킨다. 호세아라는 이름 자체가 구원 혹은 구원자를 뜻하고,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를 통해 생명씀이 흘러가게 했기 때문이다.

  호세아서에는 그리스도의 예표가 다섯 가지 정도 나타난다. 음란한 신부를 다시 값 주고 사 오시는 남편, 참된 왕 다윗의 자손, 다시 살려 회복시키시는 분,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아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구속자(救贖者, redeemer)이시다. 이번 시간은 그 가운데 두 번째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한 우두머리 아래 모이고 그들이 다윗의 자손을 왕으로 섬기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호세아서의 이름과 역사적 배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참된 우두머리와 왕이 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호세아서는 왜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였는가?

  호세아서는 무엇보다도 그 이름부터 예수님을 가장 강력하게 소개하기 때문에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인 것 같다. 호세아 1장 1절은 이 책의 저자를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라고 소개한다. '브에리'는 솟구쳐 나오는 샘과 관련된 이름이다. 생명수가 샘에서 솟아나듯 호세아를 통하여 구원의 말씀이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호세아'는 구원 또는 구원자라는 뜻이며, 히브리어 ‘야샤’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런데 호세아의 이름은 여호수아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어진다. 민수기 13장 8절에서 에브라임 지파의 정탐꾼으로 파송된 자로 눈의 아들 호세아를 소개하고 있다. 모세는 그의 이름을 여호수아라고 고쳐 불렀다(민 13:16). 여호수아는 ‘여호와’와 ‘야샤’가 결합된 이름으로써,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지만, 그의 이름은 장차 오실 참된 구원자를 가리키는 표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온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히브리어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슈아'(예수아)이다. 그런데 '예슈아'는 '여호수아'의 축약형이고, 이것이 헬라어로 옮겨지면서 그 이름이 '예수스'가 되었으며 이것이 남성 명사이니, 뒤에 나오는 '스'가 떨어지면 그분의 이름은 '예수'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꿈 속에서 요셉에게 나타난 전한 말은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했다(마 1:21). 그렇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호세아'와 '여호수아'와 '예수'라는 이름은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다. '호세아'는 구원을 가리키고,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더 분명하게 보여 주며, '예수님'은 실제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호세아서가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인 것은 그 이름으로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 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은 무엇을 예표하는가?

  호세아서의 예수님 예표는 이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다시 사 온 사건은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代贖物, ransom)로 주시려는 일을 미리 보여 준다(마 20:28).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뒤 고멜은 호세아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지만, 다른 남자의 사랑을 따라 집을 떠났다. 나중에는 노예 시장에 팔릴 만큼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그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여자를 다시 사랑하고 값을 주고 사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호세아는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고멜을 사온다(호 3:2). 

호 3: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그렇다면 호세가 지불한 그 값은 얼마 정도는 되는 양인가? 그 값은 당시에 은 삼십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노예의 몸값 정도 되는 액수다(출 21:32).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 넘긴 사건도 이 장면과 상당히 겹쳐 보인다(마 26:15). 한편 이 여자의 이름이 '고멜'이라고 하는데(호 1:3), '기업 무를 자'를 뜻하는 고엘과 연결지어 보면(룻 2:20), 이 둘은 언어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이는 고엘로서 호세아가 고멜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다시 사 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마 20:28). 대속물은 속전(贖錢, ransom price)이며, 값을 치르고 사 오는 값이다. 우리는 죄와 사망 아래 팔려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다. 호세아가 고멜을 찾아간 것은 고멜이 먼저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남편이 먼저 찾아가 값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멜은 과연 어떤 여자였을까? 어떤 이는 그녀가 신전 창기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를 가리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이라고 소개한다(호 1:3). 그렇다.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이 그녀의 이름 앞에 붙었다.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는 당시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그 여자 속에 음란하게 만드는 영, 밖으로 떠돌아다니게 하는 영, 꾸미고 사치하려는 영이 강하게 역사했지만 그녀를 음녀로 보기에는 과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의 상태가 아무리 무너져 있었어도 호세아로 하여금 그녀를 사랑하는 것을 식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바람난 신부를 찾아 값 주고 사 오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내어 주셨다(엡 5:25). 죄인을 그냥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속전('코페르')으로 산 신부이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다시 죄를 따라가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랑을 버리고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4. 호세아·여호수아·예수의 이름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호세아라는 이름은 어떤 단어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의 뿌리는 사실 '야샤'이다. '야샤'라는 말은 구원하다 또는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눈의 아들은 원래 호세아였다. 그런데 모세의 그의 이름을 '여호수아'로 고쳐불렀다(민 13:8). 그렇다면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어떤 이름인가? 그것은 '여호와'라는 단어와 '야샤'라는 단어가 합쳐진 이름으로서, 그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 등장하는 이름으로서 '예슈아'(예수아)는 여호수아의 축약형으로 나온 단어이다. 그러므로 호세아가 여호수아이며, 예슈아인 것이다. 그러다가 히브리어로 '예슈아'이었돈 자가 헬라어로 옮겨부를 때에 예수스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호세아와 여호수아와 예수는 모두 '구원'이라는 의미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은 단순한 발음의 유사성이 아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를 따라가며 멀어지는 가운데 구원을 외쳤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땅을 기업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건져 하늘의 기업으로 이끄셨다. 고로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은 이처럼 대부분 자신의 사명과도 함께 연결되어 있다. 

  특히 호세아 선지자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이 같다는 것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호세아 선지자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마지막 왕 호세아는 이러한 여로보암 1세의 구원의 외침을 듣지 않았다. 그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다가 애굽을 의지하게 되었고, 하나님보다 다른 힘을 붙들고 말았다. 그러자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게 B.C.722년경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을 받으려면, 구원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이름을 믿고 여호와께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실제로는 재물과 사람과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다면 평생 그분만 붙들어야 한다. 다른 신과 다른 힘을 함께 붙들 수는 없다.

5. 여호수아는 왜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는가?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안식을 준 것은 아니었다. 히브리서 4장 8절은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고 말한다. 가나안 정복은 참된 안식의 모형이었고, 완전한 안식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모두 쫓아내지 못했다. 그들과 섞여 살면서 나중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받아들였다. 땅을 차지했지만 영혼의 안식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이 땅의 자손 번성과 영토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종 안식이 아니다. 참된 안식은 죄와 마귀에게 눌린 사람이 자유를 얻고,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십팔 년 동안 귀신에게 매여 꼬부라진 여자를 고쳐 주셨다. 주님은 그 여자가 아브라함의 딸인데 사탄에게 매인 바 되었으니 안식일에 그 매임에서 풀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눅 13:16).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다. 그러므로 진정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악한 영의 매임에서 놓이는 것이다.

  필자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전했지만, 실제적인 안식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회개의 기도문을 붙들고 회개를 계속하고 있다. 약 이천육백 번을 지나 삼천 번을 목표로 회개하고 있는데, 이 회개를 통하여 우리와 후손이 안식의 자리에서 살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필자가 직접 걸어가며 확인하고 있는 과정이다.

  여호수아가 보여 준 안식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된다. 가나안의 원수들을 쫓아낸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영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땅을 차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와 마귀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안식이다.

6. 호세아서의 ‘다윗’과 ‘한 우두머리’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호세아 3장 5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호세아 1장 11절은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울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윗은 죽은 다윗 왕이 다시 온다는 뜻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호세아 1장 10-11절은 먼저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라고 했던 자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 한 머리를 세운다고 말한다. 이 약속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다시 각각의 왕국을 이루는 정도가 아니라, 한 왕 아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약속이다.

  첫째 아들의 이름 이스르엘도 이 약속과 연결된다.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바알을 섬긴 이스라엘을 흩으셨지만, 흩으신 것에서 끝내지 않으시고 다시 모으신다.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날이 시작된 것처럼,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날이 온다는 뜻이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1세 이후 210년 동안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예배하지 못하게 했다. 벧엘과 단의 송아지를 여호와라고 부르고, 자기들 나름의 절기와 예배를 만들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혼합주의(混合主義, syncretism)에 빠졌고 앗수르에 멸망했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들이 마지막에 다윗을 찾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북이스라엘의 회복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길 때 이루어진다.

  남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어도 다윗의 왕통이 끊어지지 않았다. 여호야긴 왕의 후손인 스룹바벨이 돌아왔고, 그 왕손의 계보를 따라 예수님이 오셨다(마 1장).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왕통과 혈통의 정통성을 잃어버리고 여러 민족과 섞여 사마리아인이 되었다. 이런 북이스라엘까지 어떻게 다윗의 왕을 섬기게 되는가? 그 답은 혈통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데 있다.

7. 북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북이스라엘의 회복 약속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마지막 때 북이스라엘 열 지파가 다시 국가로 회복되어 다윗의 왕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는 이 약속을 이스라엘 민족과 교회를 끝까지 나누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호세아서의 약속이 신약에서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해석을 따라가야 한다.

  사도 바울은 호세아의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하리라”는 말씀을 로마서 9장에서 인용한다.

롬 9:25-26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리고 그릇은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시는 자라고 말한다(롬 9:24-26). 바울은 이 약속을 북이스라엘 열 지파만의 회복으로 가두지 않았다. 유대인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자와 이방인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자가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해석했다.

  베드로도 같은 방식으로 호세아의 말씀을 사용한다.

벧전 2:9-10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1장 1절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편지한다고 말한다. 이방 지역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말한다(벧전 2:9-10). 이것은 호세아의 로암미와 로루하마가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성취된 것이다.

  예수님도 같은 약속을 말씀하셨다.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예수님은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하셨다(요 10:16). 우리 안에 있던 양은 유대인이고, 우리 밖에 있던 다른 양은 이방인이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무리로 모으시고 한 목자가 되셨다.

  에스겔 34장 23-24절도 한 목자와 다윗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한 목자를 세워 양을 먹이게 하시고, 그분이 하나님의 종 다윗이며 그들 중에 왕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바로 그 한 목자이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왕이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그리고 우리에 들지 않았던 이방인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한 백성이 된다.

  그러므로 세대주의의 문자적 해석을 성경 전체의 최종 해석으로 삼을 수는 없다. 참고할 수 있는 역사적 가능성을 말할 수는 있지만,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가 보여 준 해석보다 앞설 수는 없다. 하나님은 특정 혈통만을 위해 이방인을 부르신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이다(갈 3:29).

8. 예수님과 바울과 베드로는 ‘내 백성 아닌 자’를 누구로 해석했는가?

  호세아의 “내 백성 아닌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이스라엘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지만, 이방인은 원래부터 언약 밖에 있던 사람들이다.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고,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호세아의 두 자녀 이름은 북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나타냈지만, 신약에서는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된다.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이 약속의 그릇이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분명히 말한다. 베드로는 이방 지역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한 민족만의 회복에 머물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다.

  예수님은 이 약속을 한 우리와 한 목자의 비유로 설명하셨다. 유대인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만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 들지 않았던 다른 양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된다. 그 한 무리를 다스리는 분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 교회에 주신 큰 기회이다. 남유다가 잃어버린 것처럼, 북이스라엘이 잃어버린 것처럼, 교회도 주님이 맡기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혈통이 아니라 열매 맺는 백성을 통하여 일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며 하늘의 기업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가 약속의 자녀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끝까지 갈라 놓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을 미워하거나 죽여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유대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고, 이방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예수님 안에서 둘이 하나가 되고, 한 왕과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백성이 된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은 호세아서가 소선지서의 첫머리에 놓인 이유, 고멜을 값을 주고 사 온 사건이 예수님의 대속을 어떻게 보여 주는지, 호세아·여호수아·예수의 이름이 어떻게 구원이라는 의미로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여호수아가 완전한 안식을 주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호세아 1장 10-11절과 3장 5절의 다윗과 한 우두머리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한 왕 아래 모이고, 우리에 들지 않았던 다른 양들까지 한 무리가 되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바울과 베드로도 호세아의 말씀을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부르시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해석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을 참된 왕과 목자로 붙들어야 한다. 이름만 예수님을 부르는 데 머물지 말고, 다른 신과 세상의 힘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와야 한다. 회개와 천국 복음을 붙들고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하늘의 기업을 이어받는 삶을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23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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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 [사역자론(17)]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천국에서 받을 5대 면류관은 무엇인가?(01)(고전4:1~20)_2025-09-21(월) file 갈렙 2026.09.21 142 https://youtu.be/8do3PUAEa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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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9 [기독론(19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5) 힛데겔 강가의 환상에 나오는 세마포 옷을 입은 이, 그는 누구인가?(01)(단10:1~19)_2026-09-17(목) file 갈렙 2026.09.17 116 https://youtu.be/pFjMmK2XCGg
2398 [기독론(19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4)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02)(단9:24~27)_2026-09-16(수) file 갈렙 2026.09.16 135 https://youtu.be/YUm3zJD82MI
2397 [기독론(19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3) 한 이레에 대한 세대주의의 해석과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단9:24~27)_2026-09-15(화) file 갈렙 2026.09.15 152 https://youtu.be/WhqAlJuyIgM
2396 [사역자론(16)]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가 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가?(딤후4:6~8)_2026-09-14(월) file 갈렙 2026.09.14 147 https://youtu.be/mNPVNppsOOA
2395 [기독론(19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1)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5)(단9:24~27)_2026-09-11(금) 갈렙 2026.09.11 118 https://youtu.be/bSDlEjPO81c
2394 [기독론(189)]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10)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4)(단9:20~27)_2026-09-10(목) file 갈렙 2026.09.10 159 https://youtu.be/0YyG0bFep3Q
2393 [기독론(188)]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9)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3)(단9:20~27)_2026-09-09(수) file 갈렙 2026.09.09 166 https://youtu.be/zlyZJacqOro
2392 [기독론(187)]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8)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2)(단9:20~27)_2026-09-08(화) file 갈렙 2026.09.08 193 https://youtu.be/xW9hu4CA10s
2391 [기독론(186)]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7) 70이레의 환상과 성취(01)(단9:1~24)_2026-09-07(월) file 갈렙 2026.09.07 216 https://youtu.be/dU2XDBdHQvY
2390 [기독론(184)]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5) 인자 같은 이(04)(단7:9~14)_2026-09-04(금) 갈렙 2026.09.04 225 https://youtu.be/IoG2jyoQGSk
2389 [기독론(183)]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4) 인자 같은 이(03)(단7:9~28)_2026-09-03(목) file 갈렙 2026.09.03 189 https://youtu.be/gEeXsuvfGYk
2388 [기독론(182)]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3) 인자 같은 이(02)(단7:1~14)_2026-09-02(수) file 갈렙 2026.09.02 221 https://youtu.be/oiMzkpFfbIw
2387 [기독론(181)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2) 인자 같은 이(01)(단7:13~14)_2026-09-01(화) file 갈렙 2026.09.01 233 https://youtu.be/bBmsmeED-S0
2386 [기독론(180)] 다니엘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표(01) 손대지 아니한 돌(단2:25~49)_2026-08-31(월) file 갈렙 2026.08.31 210 https://youtu.be/1l23I9Z34wM
2385 [기독론(177)]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2)(렘16:10~13 )_2026년 08월 28일(금) file 갈렙 2026.08.28 277 https://youtu.be/dSaZ7U5Jdy4
2384 [기독론(176)] 죄를 정결케 함에 있어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죄에 따른 회개의 비밀(01)(렘16:10~13)_2026-08-27(목) file 갈렙 2026.08.27 206 https://youtu.be/BKjQHVKli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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